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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천사를 위하여
작가 : 그라시아스
작품등록일 : 2019.9.6

운명의 실로 이어진 천사 후보생 동진과 은수. 힘겨운 인간의 삶을 통해 측은지심을 깨달은 그들이 바라보게 된 또다른 세상. 그 곳을 지키기 위한 천사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71화. 추억과 결심
작성일 : 19-10-31 09:45     조회 : 37     추천 : 0     분량 : 7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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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앗, 차거! 이거, 이거 뭐야?"

 

 

 따스했던 목욕탕 나들이 이후, 해인이와 동생 해민이는 꽤 친해졌다.

 

 여느 자매와 마찬가지로, 둘은 이 시골 삶을 함께 즐기기 시작했다.

 

 어디서든 각진 휴지각을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생길 정도로,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외롭지 않아 해인이는 좋았고, 항상 자신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해민이가 귀여워 더 좋았다.

 ​

 

 ‘맞아, 해민이는 아주 작은 아가일 때부터 나를 따라다녔어.’

 

 

 이제야 떠올려 보는 기억속 동생의 옹알이는 ‘언냐!’라는 말을 ‘아빠!’보다 먼저 했었다.

 

 

 ‘이기적인 나와 달리 해민이는 우리라는 말을 참 좋아했었지.’

 

 

 어깨를 나란히 걷는 또래보다 무척 작은 동색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는 해인이었다.

 

 

 ‘우리 가족이 함께하던 지금보다 우리가 조금 더 작았던 시절은 참 행복했는데. 우리 가족이 함께 했다면 해민이도 더 컸을 텐데.’

 

 

 동생 해민이의 애처로운 왜소함이 고모 집에서 받은 학대가 부모님의 이혼 당시 엄마를 선택한 자신 때문이라 생각되어 괜스레 미안해졌다.

 

 오늘은 고모네서 마음 고생이 심했던 해민이를 위해 동네 외곽, 조그맣게 흐르는 시냇가로 놀러 왔다.

 

 때마침, 아직 코뚜레도 하지 않은 송아지 한 마리가 첨벙첨벙 물가로 쳐들어온 터라, 깜짝 놀란 해인이와 동생은 젖은 옷이 짜증 나 "어이! 어이!" 외치며 저 멀리서 개울가를 향해 달려오는 동호에게 미간을 찌푸렸다.

 ​

 

 "미안혀. 미안혀. 이넘의 소씨끼 밖에 나왔다고 어찌나 지럴을 해대 싸는지 놓쳐 뿌렸어. 저 저 또또. 지럴 허네. 지럴혀. 니 일루 못 오냐?"

 

 ​

 구수한 사투리에 해민이는 웃음을 참지 못했고, 황당해하는 해인의 눈치를 보던 동호는 옷 젖는 것도 아랑곳없이 고삐 풀린 미친 송아지의 밧줄을 잡아 끌어당기다가 이미 물맛을 본 송아지의 발버둥에 풍덩 빠졌다.

 

 동호의 그런 모습에 애써 굳은 얼굴을 유지하던 해인이도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

 두 자매는 의도하지 않았으나 성실하게 몸으로 웃음을 준 동호가 기특해 일어날 수 있도록 팔을 잡아주고는 날뛰는 송아지의 밧줄도 함께 잡아끌었다.

 

 물놀이가 신난 송아지는 물에서 나가기 싫다며 발버둥 쳤고, 그럴수록 세 아이의 몰골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송아지야! 여기 풀! 풀! 이거 맛있어! 냠냠!”

 

 

 조그만 해민이가 어디서 나온 순발력인지 잔뜩 젖은 모습으로 순식간에 달려서 냇가 옆 무성히 핀 풀을 뜯어 오더니 송아지의 눈앞에 흔들었다.

 

 

 “그려! 그려! 풀! 풀! 어여 어여 이 소시끼야.”

 

 

 겨우 송아지의 관심을 끌어서 먹을 것이 가득한 곳으로 유인했고, 맛있는 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준 마음 좋은 송아지 덕분에 제1차 시냇가 대전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어매! 해민이는 소도 잘 다루고, 냉증에 소 장수 하면 쓰겄다.”

 

 

 “소 장수? 싫어. 난 나중에 수의사할거야. 아이고 힘들어, 언니! 여기 눕자.”

 

 ​

 흐트러진 머리에서 땀과 물이 뚝뚝 떨어지며 다들 지친 기색 역력해 그대로 시냇가 옆, 나름 큰 바위에 하나씩 자리 잡고는 드러누웠다.

 

 햇빛의 온기로 따끈하게 아늑해진 바위는 고생한 그들을 가만히 감싸 안아주었고, 세 아이는 고개를 돌리면서 서로의 엄청난 얼굴을 보고 환히 웃었다.

 

 한참을 웃다가 생각이 난 듯 동호가 해인이를 바라보며 얼굴에 뭐가 그리 좋은지 여전히 웃음기를 감추지 못하고 말하기 시작했다.

 ​

 

 "이따가 호미 드리려 집에 갈 건디. 니네 할무니 계시냐?"

 

 ​

 "할머니는 이따 오후 지나서 오셔. 저녁 시간에. 지금은 아마 순딩이 할머니네 마실가셨을 거야. 근데, 호미 갖다 주는 게 그렇게 신나? 왜 자꾸 웃어?”

 

 ​

 "아, 몰러. 그냥 웃음 나. 근디 할무니가 옆 동네까정 가셨구먼. 멀리도 가셨네. 알것어. 할 수 없구먼. 이따 저 소시끼 델따 놓고 가야 것어."

 ​

 

 “뭐가 할 수 없어? 하여튼 도통 속을 알 수 없다니깐. 왜 갑자기 시무룩인데?”

 

 

 환히 웃다가 갑자기 시무룩해진 동호를 두 자매가 놀리자, 화내기는 커녕 다시 방긋 웃는 동호였다.

 

 아이들의 청량한 웃음 소리가 울리는 바위에서 바라본 하늘은 온갖 모양의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머리 들어 본 그 모습이 해인이는 퍽이나 이뻤다.

 

 해민이와 한참을 "저거는 토끼야."라고 하면 "어디 어디? 진짜네 나도 나도 음, 앗! 저건, 소시끼? 큭큭" 여유롭게 흘러가는 구름을 눈으로 따라가면서 모양 맞추기 하다가 “소시끼"거리는 동호의 말투를 흉내 내보고는 다시 한번 웃음이 터져 나왔다.

 ​

 그 와중에 심심하고 무안했던 것인지 동호가 몸을 일으켜 냇가로 들어갔고 시원한 첨벙 소리가 자매의 귓가를 때렸다.

 

 그리고 바로 차가운 물방울이 곧장 하늘을 올려보던 무방비 상태의 소녀들에게 쏟아져 날아오기 시작했다.

 

 해인와 해민이는 갑자기 당한 공격에 "꺄!"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켜 짓궂게 웃으면서 손으로 물살을 부수어 무지갯빛으로 던지고 있는 동호를 향해 단호한 표정으로 달려가 공격하였다.

 ​

 2 대 1, 수적으로 불리한 동호의 항복 선언이 나온 뒤에도 분노한 소녀들은 동호에게 매서운 공격을 한참 퍼부었다.

 

 시원하게 퍼지는 물방울들을 정신없이 날리니 동호는 어푸푸 소리를 내며 "살려줘!" 하더니, 송아지가 풀 뜯어 먹는 초원으로 도망갔다.

 

 자매는 하이파이브를 하며 제2차 시냇가 대전 승리를 자축했다.

 

 산에서 타고 내려온 물이라 그런지,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고 투명했다.

 

 흐르는 물에 아랑곳없이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 떼들에게 손을 뻗어보기도 하고, 큰 돌을 뒤집어 가며 그 작은 틈바구니 속 숨어있는 가재 찾기도 했다.

 

 혹시 하나라도 발견한다 치면 괜스레 보물찾기 상품이라도 받은 느낌에 성취감이 꽤나 좋아, 장나꾸러기 삼인조는 서로가 잡은 가재가 더 크다며 허세를 부려보기도 했다.

 ​

 서서히 떨어지는 해를 보면서 오늘 즐거웠던 냇가의 추억을 가슴에 안고 젖은 옷으로 한참을 부산거렸던 삼인조는 송아지를 앞세워 집으로 가기 시작했다.

 

 덜덜 떨리는 몸으로 즐거웠던 오늘에 쌓인 추억 하나로 친구가 된 소년과 소녀, 세 아이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흔들며 공통된 감정을 나눴다.

 ​

 그때부터였던 것 같았다.

 

 해인이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동호를 보게 된 것이.

 

 동호는 학교가 끝난 한가한 오후쯤, 이장 할아버지의 심부름이 끝나면 자매를 찾아왔다.

 

 명분인즉슨, 동네에 숨어있는 놀만 한 곳 찾기였는데 그것뿐만은 아닌 것 같아, 그녀는 "너 나 좋아하지?"라며 당황해하는 동호를 마음껏 놀리기 일쑤였다.

 

 놀림에도 아이들의 만남은 즐거운 시골 생활 중에 하나가 되어버렸다.

 ​

 어떤 날은 동네 뒷산에 가 칡도 잘라 먹고, 어떤 날은 이장 할아버지 댁 밭에 심어놓은 참외를 양껏 서리해 앞니로 깨어 먹기도 했다.

 

 몰래 훔쳐먹으니 더욱더 달달하고 참으로 맛났다.

 

 그리고 어떤 날은 동네 입구 쌀집 할아버지가 세워둔 자전거를 타고 읍내까지 나갔다가 "어떤 도둑놈이! 내 자전거를."하며 노발대발하는 쌀집 할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며 사각지대에 몰래 세워놓고 도망가는 스릴을 즐기기도 했다.

 ​

 그러다가 오늘은 시냇가 옆, 언덕 너머 들꽃 가득한 초원으로 동호가 자매를 안내하였다.

 

 자신이 즐겨 찾는 비밀의 정원이라며 입가에 “쉿!”하고 손가락을 붙이고는 해민이와 그녀에게 환상적인 것을 선물하겠다면서 이끌었다.

 

 보라색, 흰색, 분홍색, 노란색 등 다채로운 색이 뒤엉켜서 초록색 풀과 어울리는 풍성한 자연의 조화였다.

 

 "와!" 감탄이 절로 나오게 하는 풍경 앞에서 자매는 그만 입을 헤벌린 채 바라보았다.

 

 눈이 참으로 호강스러우며 텔레비전 선전에 나올 법한 색감의 향연이 뇌에 자극이 되었다.

 

 해민이는 감탄에 감탄을 하면서 꽃밭 사이로 뛰어 들어갔고, 해인이는 우쭐해진 동호를 바라보며 감탄을 날렸다.

 

 동호는 웃으면서 해인이의 손을 잡아 끌었고, 해인이는 따스한 동호의 손을 느끼며 해민의 뒤를 따라 꽃밭 가운데로 향했다.

 ​

 은은한 꽃향기가 상큼하게 소년과 소녀들을 감싸 안았다.

 

 휘감기는 바람에 해인이의 고운 머리카락이 날리고 향기도 함께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꽃밭의 모든 향기가 해인이에게서 퍼져나온 것인 양, 동호와 해인이 사이에 미묘한 무엇인가가 향기를 입고 주위를 물들여나갔다.

 

 동호의 눈을 바라보던 해인이는 자신에게만 고정된 그 아이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피하며, 헛기침 한 번 하더니 이미 꽃다발 한가득 만든 해민이를 곁눈질로 살피다가 동호에게 새침히 그간 궁금했던 질문을 했다.

 ​

 

 "넌, 왜 이장님이랑 살아? 부모님이 우리처럼 이혼했어?"

 

 ​

 새침한 소녀의 갑작스런 질문에 갑자기 우울한 얼굴이 된 동호는 꽃을 꺾으며 이제껏 듣지 못했던 어두운 음성으로 해인이의 궁금증에 답 해주기 시작했다.

 ​

 

 "내는. 내는 고아여."

 ​

 

 "응?"

 

 ​

 "내가 6학년 때였어. 경주로 출장 가시던 우리 아부지가 생각 나는 구먼. 그날 아부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음서 나에게 선물 사가지고 온다고 혔는디. 내가 장군이 쓰는 칼 사다달라 혔는디. 무슨 터널에서 졸음 운전하던 유조차 기사가 계속 엑셀을 밟으면서 아버지 차를 덮쳤고,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뒤따라오던 수학여행 버스가 연달아 쓰러지며 크게 사고가 났어. 휘발유 덩어리와 사고가 났으니, 얼마나 사고가 컸겠어? 뉴스에도 나왔구먼."

 ​

 

 "아! 그랬구나."

 

 ​

 "응. 그리고 엄마는 그때 충격으로 쓰러져 더 이상 일어나지 못했구먼. 그렇게 두 분 다 떠나시고 형은 친할머니가 키우고 난 외할아버지댁에 온 겨."

 

 

 덤덤하게 꽃을 꺾으며 말하는 말투의 무게가 느껴지며 괜스레 가슴 한켠이 무거워져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는 해인이였다.

 ​

 

 "내는 여기가 좋구먼. 내 송아지 통통이 키우는 맛도 있고, 밭에서 일하는 것도 잼나고. 난 농사꾼이 될 껴. 울 아부지가 농사꾼 되어 함께 소 키우자고 혔고, 내도 이게 참 좋구먼.”

 

 

 동호에게 시골 일이란, 행복했던 시절에 아버지와 나눈 약속 중 하나로 반드시 혼자서라도 지키고 싶은 꿈이었다.

 ​

 미래를 말하는 동호의 말투에도 이미 과거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한 해인이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아름다운 꽃들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

 

 "자, 됐었다. 옛다. 선물이여."

 

 ​

 해인이는 깜짝 놀라 고개 들어 동호를 바라보았다.

 

 머리에 들꽃으로 만든 예쁜 화관을 쓴 채, 꽃을 닮은 소녀의 머리에 예쁜 꽃 모자를 씌워준 동호가 웃고 있었다.

 

 햇빛 받은 동호의 웃음이 멋스러워서였을까?

 

 발그레한 볼로 수줍음을 입은 소녀였다.

 

 ​

 ***

 

 ​

 지희 어머니의 편지가 애연에게 전달된 이후 지겹도록 자신을 학대하며 끊임없이 자살 시도하던 애연의 행동이 멈추었다.

 ​

 이제야 살겠다는 아이의 의지 덕분에, 수녀님과 함께 밤낮으로 애연의 곁을 지켰던 이쁜이 이모는 오늘 오랜만에 마음 편히 공주에 자신의 일을 보러갈 수 있었고, 애연이는 사고 이후 처음으로 수녀님과 단 둘이 되었다.

 ​

 이쁜이 이모의 배려 덕에 일인실을 사용하고 있는 터라 자살시도하는 그녀를 말리는 행동과 그녀의 괴로운 울부짖음만 없다면 항상 조용한 공간이었다.

 

 오랜 입원 기간 동안 애연은 말을 잊고 지내며 자기 자신을 생채기 내기 바빴다.

 ​

 싸늘할 정도로 조용한 병실 창 밖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며칠을 보낸 애연은 적출된 눈을 감쌌던 붕대를 풀던 날에도 조금의 슬픔과 괴로움 따위 없는 표정으로 자신의 신체 변화를 담담히 받아들였고, 거추장스런 붕대 대신 하얀 안대를 착용한 채 이전과 다름 없이 창 밖으로 시선을 고정한채 어린아이답지 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

 수녀님은 그런 애연의 모습이 안쓰러워 말을 건네 보았으나 돌아오는 애연의 답변은 항상 건조하고 매말라있었다.

 ​

 오늘도 식사 때가 되어 침상 위에 마련된 작은 탁자에 식판을 놓으며 권해 보는 수녀님의 마음은 혹여 또 애연이가 끼니를 거부할까 근심으로 가득했다.

 ​

 

 “애연아, 점심 식사가 왔구나. 한술 떠 보자.”

 

 ​

 수녀님의 부드러운 말투에, 창밖으로 향했던 고개를 수녀님께로 돌린 애연의 남은 한 쪽 눈엔 조금의 생기도 보이지 않았다.

 ​

 사고 전 맑고 생기 넘쳤던 눈동자를 더 이상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은 수녀님의 마음을 찢어 놓기에 충분했다.

 ​

 수녀님은 그런 속마음을 연한 미소로 인자하게 감추시면서 손길을 부지런히 놀려 밥공기의 뚜껑을 들어내 주시고는 그저 열려진 밥공기와 수녀님을 번갈아 바라보기만 하는 애연의 손에 수저를 쥐어주셨다.

 ​

 잠시 망설이던 애연이의 손이 부지런히 수저를 들어 밥 한술 크게 뜨더니 수녀님에게 시선을 옮겨 묻기 시작했다.

 ​

 

 “수녀님도 식사하셔야죠.”

 

 ​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애연의 메마르지만, 다정한 음색은 수녀님의 마음을 울컥하게 하며 목이 메어옴을 느끼게 했다.

 

 젖어드는 눈을 감추신 수녀님은 다정한 말투로 애연에게 속내를 티내지 않고 말씀하셨다.

 

 ​

 “나는 병원 밥 싫단다. 우리 애연이가 한끼 뚝딱하면, 난 나가서 더 맛난 것 먹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우선 너부터 먹자구나.”

 

 ​

 수녀님의 말씀을 끝까지 다 듣고서야 수저에 담긴 밥을 크게 입 벌려 넣고는 입안을 메운 밥을 씹으며 애연이가 말하기 시작했다.

 

 ​

 “며칠 전, 휠체어를 타고 엄마와 산책 나온 아이가 있었어요."

 ​

 

 말하면서도 열심히 밥을 씹는 애연의 모습이 기특하기만 한 수녀님은 혹여 애연의 마음이 상할까 두려워 연신 맞장구를 쳐 주셨다.

 ​

 

 “그래, 그래. 엄마와 병실 밖으로 산책 나온 아이인가 보구나.”

 

 ​

 “아침, 점심, 저녁으로 산책을 자주 나와요.”

 

 ​

 다시 수저로 크게 밥을 뜨며 애연이 말하자 수녀님은 그저 애연이의 먹는 모습이 흐뭇해 수저 위에 반찬을 올려 주시며 연신 맞장구를 쳐 주셨다.

 

 ​

 “그렇구나. 옳지 애연이 잘 먹네.”

 ​

 

 꼭꼭 씹는 애연의 모습이 너무도 기특하고 사랑스런 수녀님의 눈에 이슬이 고였다.

 

 ​

 “그 아이가 오늘은 휠체어 없이 목발만 짚고 나왔어요.”

 

 ​

 “아, 그렇니? 많이 완쾌 되었나 보구나.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야.”

 

 ​

 국도 떠 먹으라고 권하시며 수녀님이 말씀하시자, 수저로 국을 떠 입에 넣으며 애연이가 말을 이었다.

 ​

 

 “그런데 그 아이는 왼쪽 다리가 없어 환자복의 무릎 밑이 바람에 날렸어요.”

 

 ​

 애연의 음색은 여전히 밝았고,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

 수녀님은 잠시 멈칫하셨지만, 애연의 변함없는 음색에 맞춰 본인께서도 밝은 음색을 유지하시며 말씀하셨다.

 ​

 

 “아이고, 그렇구나. 고생이 심하겠네. 애연아 이것도 좀 먹어 보렴.”

 

 ​

 수녀님이 권한 반찬을 입에 넣고는 애연이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

 

 “오늘도 여전히 엄마가 아이의 곁에서 부축하며 산책을 했어요. 왼 쪽 다리가 없어 목발을 짚어도 무척 불편해 보였고 부축하는 엄마도 힘들어 보였어요.”

 

 ​

 오늘 따라 말도 많고 식사도 잘 먹는 애연의 모습에 그저 신께 감사드리고픈 수녀님은 애연이의 말에 맞장구를 쳐 주시면서 아이에게 집중하셨다.

 ​

 

 “아, 엄마랑 아이가 고생이 심하겠구나. 천천히 꼭꼭 씹으렴. 아가.”

 

 ​

 수저를 쥔 채로 여전히 자상하고 다정한 수녀님을 빤히 올려다 보는 애연이의 하나 남은 눈동자가 차츰 빛이 돌더니 흘려내리는 눈물은 모든 것을 체념한듯 뺨을 타고 흘렀다.

 ​

 

 “제 곁엔 항상 수녀님과 이쁜이 이모가 계시니 제겐 두 분이 엄마에요. 맞죠? 전 그래도 저 아이처럼 다리를 잃은 게 아니고 손과 발이 멀쩡해 산책을 나가도 두 분을 힘들게 하진 않을 것이니, 정말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에요. 맞죠?”

 

 ​

 한 쪽 눈을 적출한 자신이 다리를 잃은 아이보다 다행이며 이쁜이 이모와 자신을 엄마라 말하는 애연의 말이 그저 짠해 수녀님의 눈에서도 그 안쓰러움이 흘러 볼을 타고 내렸다.

 

 ​

 “지희의 꿈이 박물관 큐레이터였어요. 지희는 공부도 잘 했고 예쁜 아이라 분명 꿈을 이루었겠죠? 제가 지희가 되어 큐레이터를 할 거예요. 물론 외눈박이 큐레이터를 뽑아 줄 곳은 없겠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도전할 거예요. 반드시 지희 대신 큐레이터가 되겠어요. 수녀님.”

 

 ​

 여기까지 말한 애연은 고개를 떨구었고, 눈가를 적시던 이슬은 방울방울 흘러 그녀의 밥공기로 뿌려졌다.

 ​

 한참을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떨군채 눈물 흘리던 애연이 다시 수저를 들어 입으로 향했고, 그런 애연을 바라보시던 수녀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하셨다.

 ​

 

 “그래, 그래.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 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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