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연의 귀여운 얼굴에 가슴 아프게 새겨진 멍은 한동안 남아 이쁜이 이모네 집에 입양을 보냈던 수녀님의 심장을 후벼파고 안쓰럽게 만들며 바라볼 때마다 더욱 생채기 난 상처를 벌렸다.
김동욱 박사와 김해인 연구원이 죽음을 막기 위해 설정한 사회성 덕에 이겨내기 힘든 마음의 고통 속에서도 애연은 여전히 5살 어린 아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의 밝음을 찾아갔고 멍든 눈과 터진 입술이 가슴 깊이 아리어 바라보는 수녀님을 향해 도리어 해맑게 웃어주곤 했다.
애연의 설정은 창조주인 그들이 그녀가 좌절하지 않고 이겨내어 자신들의 불행에 관한 실험의 고통을 받아들일 성실한 실험체로 살아남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이 또한 애연이에게 불행임에 틀림없을 정도로…,
어린 애연이 차츰 그날의 공포에서 벗어날 때까지 이쁜이 이모는 시도 때도 없이 그녀에게 찾아와 자신을 숨기며 고아원 한켠에서 이미 젖는 슬픔 가득한 눈으로 다가가지도 못한 채 그저 바라만 보았다.
지은 죄가 너무 커 바라보기 밖에 못하였지만, 시리도록 해맑은 애연의 모습이 그립고 애달퍼 외면하지도 못했다.
수녀님은 그런 이쁜이 이모의 모습을 지나가다 보면서 화남이 꺾이고 안쓰러움이 생겨나 ‘이 여인도 그저 가엽구나’라는 생각이 가득해져 눈물젖는 그 서럽고 작은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시며 언젠가 애연이가 먼저 다가올 거라 말씀하셨다.
“감사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수녀님의 따스한 한 마디에 이쁜이 이모는 바닥에 주저 앉아 눈물이 얼룩진 얼굴로 울었다.
자식의 죄는 곧 어미의 죄였다.
수녀님은 이 가여운 여인이 안쓰러워 등을 두드려 주시며 부드러이 말씀하셨다.
“괜찮아요. 괜찮아. 아직까진 괜찮아요. 아직 바닥까지 떨어지지 않았으니. 당장은 아니어도 그 언젠가 모든 것이 더욱더 나아 질 거예요.”
수녀님의 말씀 “괜찮아요.”는 애연이의 불행이 바닥까지 내려옴이 아닌 것을 말씀하신 것인지, 이쁜이 이모의 아들 준희가 최악이 아니라서 개선의 여지가 있음인지 혹은 애연이와 이쁜이 이모의 관계가 끝나지 않았음을 말씀하신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그 자체로 이쁜이 이모는 좋았다.
수녀님이 말씀하신 그 언젠가는 생각보다 꽤 길었다.
그 고통 속에서 큰 일을 겪었음에도 애연은 여전히 이쁜이 이모의 모습이 보이면 달려가고 싶을 정도로 너무도 좋았지만, 이전처럼 이쁜이 이모를 따르게 되면 그 무서운 오빠가 사는 집에 다시 데려갈까 두려워, 어린 마음에 거리를 두었고 이 거리는 또 다른 상처가 생기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애연에게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상처는 아주 사소한 일부터 시작되었다.
애연이 정한 거리를 서둘러 좁히지 않으면서도 이쁜이 이모는 애연을 위해 성심을 다했고 덕분에 애연은 초등학교 입학 후 그 누구도 부모 없는 고아라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밝고 부족함이 없었다.
학교에선 씩씩하고 명랑한 애연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생겼고 새로운 인연은 항상 즐거웠다.
***
“정말 잠시만 눈을 떼도 저 아이는 금방 쑥쑥 자라는군요. 김동욱 저 양반, 시간도 빨리 돌리고 캐릭터들의 행동도 조절할 수 있으니 저 EP라는 컴퓨터 세상 속에선 그야말로 전지전능하다 말해도 되겠어요.”
엘리고의 곁에 무릎을 세우고 쪼그려 앉아 턱을 괸 엘리아가 오아시스에 비춰지는 상처가득한 아이를 온종일 바라보는 엘리고에게 말했다.
엘리아의 물음에 대답대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감싸는 엘리고의 시선은 여전히 오아시스 속 애연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엘리고가 대답이 없자, 자신의 얼굴로 오아시스를 향한 엘리고의 시선을 막으며 엘리아가 대답을 보챘다.
그제야 그녀에게 시선을 돌린 엘리고는 미소를 지으며 답변하기 시작했다.
“저곳의 신은 창조주인 김동욱의 연구팀이 있으며, 그들이 설정해 애연이가 믿는 신이 있을 것이고, 그 가녀린 기도를 들은 우리가 있어요. 하지만 저곳에 실질적 영향력을 미칠 힘은 그들이 쥐고 있지요. 비를 내리게 하고, 시간을 빠르게 돌리며, 아무렇지도 않게 툭 던지듯 불행을 건넬 수 있는 그들의 권능이 가장 크지요. 그러나 저들은 자신들이 전지전능하다 생각하겠지만, 저곳에 사는 이들의 감정조차 통제하지 못하는 것을 모르고 있어요.”
엘리아는 엘리고가 자신을 바라보며 말하기 시작하자 다시 자리로 돌아가 그가 오아시스를 볼 수 있도록 시야를 열어 주었다.
무엇 때문인지 오아시스를 바라보는 엘리고의 표정은 근심 가득했고 그런 그의 말을 듣는 엘리아는 턱을 괸 고개를 끄덕이며 말 했다.
“오랜만이에요.”
무엇을 오랜만이라는 말하는지, 불쑥 끼어든 엘리아의 말에 빙그레 웃어 보인 엘리고가 다시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맞아요. 오랜만이에요. 우리에겐 며칠 흐르지 않았지만, 애연이에겐 오랜만에 찾아온 평온한 시간이었어요. 그렇지만, 애연이의 생이 7년이나 흐르는 동안 저들의 시간은 고작 7일 흘렀지요. 이는 곧 그들이 순수히 악함만 지니게 된 이쁜이 이모의 아들에 대한 분석 시간이 없었음을 뜻해요. 그저 버그라 단정짓고 준희는 무시하며 실험을 위한 준비만 하는 저들은 그들이 놓친 위험성으로 큰 곤혹을 치르게 될 거라 생각해요. 이제 저들이 시간을 빠르게 한 이유대로 애연에게 가혹한 실험이 가해지겠지요. 인간의 감정을 신도 통제 못하듯 저곳 사람들의 감정은 김동욱 팀도 감당하지 못할 거예요. 그렇기에 마음이 몹시 불안하네요.”
엘리고는 김동욱 박사의 연구팀이 애연의 시간을 빠르게 진행함이 또 다른 실험에 애연의 나이를 맞추기 위하여라 단정지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그의 머릿속은 그 빠른 시간 속에서 AI들의 점점 진화하는 감정을 김동욱 박사의 연구팀이 통제하지 못해 벌어질 사고를 우려하고 있었다.
‘EP 세상이든 현실 세상이든 통제하지 못하는 감정은 반드시 사고를 부르기 마련이야.’
엘리고의 불안이 전파된 것인지 반짝이던 엘리아의 눈빛도 불안감에 어둠이 내리더니 고개를 돌려 집중해 오아시스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
“EP의 한계는 우리네 세상처럼 시간이 흘러야하고, 나이도 먹으며 살아야 한다는 거예요. 이것 때문에 뭐 좀 실험하려면 기다려야하니 너무 루즈한 게 답답하네요. 어차피 AI 캐릭터일 뿐인데 더 빨리 불행하게 진행하면 안 되는 것인가요?"
현광등 불빛 아래 입도 가리지 않은 채, 피곤 가득한 표정의 연구원이 하품을 하며 투덜거렸다.
“그렇다고 천지개벽하듯 시간을 점핑할 순 없죠. 어쨌든 우린 저곳의 창조주고 AI들이 사회성을 기르며 사는 것도 연구할 필요는 있어요. 하지만, 다음 불행 실험이 애연의 고3 때인데 아직도 꽤 기다려야하니 지겹긴하네요.”
애연에게 불행을 던져줄 시기를 지루하게 기다리는 이들의 대화에 김해인 연구원이 눈살을 찌푸리며 김동욱 박사에게 말을 건넸다.
“꼭 이쁜이 이모를 죽이는 것이 옳을까요? 다른 불행도 있잖아요.”
연인의 불만을 조용히 듣던 김동욱 박사는 머리를 긁적이며 달래기 시작했다.
“이런 불행에 관한 시뮬레이션 설계는 내가 영 재주가 없네요. 안재현 연구원이 치밀하고 섬세히 시나리오를 잘 짜는데. 아무튼, 애연에게 자신이 거리를 둔 이쁜이 이모의 죽음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갖게 해 우리네 삶 속에서 지인의 죽음이 정신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보는 계기로 삼았으면 해요.”
자신이 죽음과 트라우마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있음에 스스로 놀라며 김동욱 박사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아직은 어린 저 AI에게 설정할 불행이 이것 말고는 적당한 게 없네요. 일단 이대로 가고 애연이 나이를 좀 더 먹으면 그때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성인들의 불행을 설정해 보죠.”
초기 목적의 한계로 불행 말고는 달리 실험할 것 없는 이 위대한 창조물 EP와 그 속의 AI들을 생각하니, 자신들이 행하는 실험이 너무도 보 잘 것 없고 지겨워 애연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서둘러 결과물을 만든 후, 한시라도 빨리 EP와 AI들을 다른 창조적인 일에 활용하고 싶어졌다.
이런 김동욱 박사의 생각은 다른 연구원들도 마찬가지였고 그들에게 이제 불행에 관한 실험은 EP를 세상에 홍보할 수단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그렇기에 애연이가 받게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겪게될 트라우마를 논하는 자리치고는 꽤 부산스럽고 진중하지 못한 회의였다.
반복된 실험과 새로움에 대한 기대는 애연이 겪을 고통에 대해 무감각하게 만들었다.
***
5학년이 된 애연은 여전히 밝았고 그 밝음을 쫓아 다가온 친구들로 항상 그 곁이 북적였다.
따스한 햇빛을 담은 웃음은 그녀가 고아임을 티나지 않게 하기에 충분했다.
삼십 년 차 베테랑, 애연의 담임은 1학기 중간고사 준비에 온통 신경이 집중되었기에, 생활 기록부에 기재할 학생 개인 상담 내용을 질문지로 대신해 아이들에게 건네 작성시킬 생각으로 프린트하고 있었다.
그의 눈엔 별일 아닌, 그저 평범한 질문지였다.
베테랑의 매너리즘이란 감정의 뒤엔 항상 사고가 따르는 법이란 것을 그는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엔 손에 들린 질문지의 내용은 수십 년간 그가 해왔던 평범한 질문으로만 보였다.
"야! 선생님 오신다."
아이들의 요란한 소리로 교실 안이 소란스러움이 가득해 살짝 미간을 짜푸리며 교탁을 치는 선생님의 짜증섞인 목소리는 떠들던 아이들의 입을 막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에 떠들지 말아라. 그리고 이거 하나씩 작성하고."
심드렁한 말투, 아이들은 선생님이 사무적으로 내민 서류를 기계적으로 받아 넘겼으나 그 손을 향한 눈빛은 호기심으로 가득해졌다.
개인 생활부 기록을 위한 조사서.
애연은 받아든 문서를 아무 생각 없이 받아 눈으로 내용을 읽고는 조그만 입을 벌려 중얼거렸다.
“사는 곳, 부모님 이름, 연세, 연락처, 부모님 직업, 종교.”
성실히 기재할 항목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하나하나 살피는 애연은 성실했고 조금의 망설임 없이 적어 나갔다.
선생님에게 제출할 문서엔 거의 모든 항목이 누가 봐도 눈에 잘 들어오게 수녀님의 이름과 연락처로 기재 하며 고아원 이름과 주소도 망설임 없이 또박또박 적어 내려갔다.
애연이에게 고아원에서 수녀님 보호 아래 사는 것이 두려운 일도 부끄러운 일도 아니였기에 그 설문지 작성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그 용기어린 소녀와 모두의 생각이 같지는 않았다.
자신이 기재하던 문서를 곁눈질로 바라보던 짝꿍의 놀란 눈빛과 움찔거리는 입을 보지 못한 것은 거침없었던 애연의 불행이었다.
누군가의 입은 다른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불행이 되버린다는 걸 애연이도 김동욱 박사의 연구팀도 그녀를 바라보는 엘리고도 그때는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