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부를 깊숙히 찌르는 고통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아픈 몸뚱이를 무겁게 짓누르는 짐덩이를 신경질적으로 밀쳐 치운 후 노려본다.
...최후의 순간 나를 감싸고 죽은 전우.
미안함일까 고마움일까
의무적으로 두손을 모으고 앉아 눈물을 짜보지만 나오는 건 고통에 찬 신음뿐.
청승맞은 짓거리를 때려치우고 고통이 끝까지 찬 머리를 굴린다.
최선봉에 섰던 열신도들은?
설마 성기사들마저 몰살당했나?
헐떡이는 숨을 고르려 아무리 애를 써도 되려 더 거칠어지고 벌어진 입에서는 피 섞인 침이 길게 늘어지며 추하게 떨어진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문득 이 지경이 되기까지의 일을 되짚어본다.
마물과 마족을 앞세워 전세계, 전종족에게 전쟁을 선포하며 화려하게 부활을 알린 마왕.
그를 토벌하려 전 대륙에서 모여든 다국적, 다종족 연합군.
그 선봉에 서는 영광을 얻고자 얼마나 노력했던가
부모님과 아내의 걱정어린 눈망울과 언제올거냐며 빨리 오라던 철 모르는 딸아이.
그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후회를 해보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여신이건 세계건 이젠 어찌되어도 상관없으니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그들 곁으로 돌아가고 싶어
소용없는 걸 알면서 나를 이 지옥에 보낸 교단과 스스로를 원망해본다.
이제 이세상은 끝이다.
다행히 거칠어진 숨이 안정을 찾아가고 고통도 잦아든다. 동시에 눈앞이 조금씩 어두워진다.
이렇게 죽는건가?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 위로부터 찬란한 빛의 날개를 일렁거리는 아름다운 존재가 내려와 정화하려는 듯 시체와 피로 더럽혀진 이 지옥에 발을 디뎠다.
여신의 강림
나를 낙원으로 데려가기 위함인가 마왕을 물리치기 위함인가
감겨오는 눈을 억지로 치켜뜨며 그녀를 눈에 담았다.
여신의 앞을 막아서는 이는...
흐르는 물에 피가 번지듯 붉은 머리칼을 허공에 나부끼는 미청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우들과 나를 이렇게 만든 장본인.
이런 엄청난 만행을 저지르고도 그는 '마왕'이라는 악명에 어울리지 않게 아름다운 미소를 띠고 여신에게 다가간다.
...이런 젠장.
여신이 마왕의 품에 안겼다.
도대체 이게 무슨 뭣같은 상황이지?
헛웃음이 터진다. 그리고 숨이 멎어온다.
어서 이 개꿈에서 깨야지. 그럼 그렇지. 악몽이었잖아?
저 멀리서 딸아이가 웃으며 달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