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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피어스
작가 : 레이지아츠
작품등록일 : 2017.7.22

무엇이 옳고 그른가?

운명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내던져진 채 각기 다른 신념을 위해 싸우는 영웅들의 우정과 대립, 그리고 처절한 투쟁

 
12화 :여신의 이름으로
작성일 : 17-07-29 05:07     조회 : 358     추천 : 0     분량 : 5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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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뿔피리 소리가 길게 늘어져 온산에 울려퍼졌다.

 

 "뭐지? 네 친구들이냐?"

 

 그로울의 질문에 금발 소녀는 짜증섞인 도리질로 대답했다.

 

 "...그럼 내 손님인가보군."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린 그로울은 근처 나무에 기대져 세워놓은 워해머를 향해 단숨에 뛰었다.

 

 철푸덕

 

 또 쇠사슬이 발목, 아니 손목을 잡자 그로울은 땅에 박힌 머리를 치켜들고 금발소녀를 향해 분통을 터트렸다.

 

 "야! 사이좋게 여신님께 문안인사하러 가기 싫으면 어서 풀어!"

 

 "싫어."

 

 "뭐야?"

 

 "싫다고."

 

 "대체 왜!?"

 

 그녀는 제 키만한 거대한 대검을 가볍게 한손으로 들어올려 어깨에 걸쳐놓고 아름다운 얼굴에 한껏 조소를 머금고 그로울을 향해 검지를 흔들었다.

 

 "도망가면 곤란하다구. 이 '주인님'이 알아서 할테니 '전리품'은 얌전히 있도록."

 

 "야이 미친년아!"

 

 "이쪽이다!"

 

 어느새 모여든 사람들이 그 둘의 대화를 가로막았다.

 

  보급형 경장갑을 장착한 영지군부터 사제 무장을 갖춘 용병들까지 제각각 무기를 든 병사들이 그로울과 다리를 살짝 벌려 자세를 잡은 금발 소녀를 기점으로 원을 그리듯 둥글게 빙 둘러 에워 쌌다.

 

 그들이 열걸음 정도까지 다가오자 갑작스레 금발 소녀가 눈을 빛내며 어깨에 걸친 거대한 대검을 휘둘렀다.

 

 딱 금발 소녀를 기점으로 반원을 그리며 멈춘 대검으로 인해 몰아친 바람이 마치 태풍처럼 병사들의 옷자락을 크게 흔들었다.

 

 여자를 떠나서 인간으로 믿겨지지않는 엄청난 힘.

 

 "저기! 다들 무슨 용건이시죠?"

 

 입이 딱 벌어진 병사들을 아랑곳 않고 팔짱을 낀채 땅에 박아넣은 대검에 등을 기댄 금발 소녀가 천연덕스럽게 병사들에게 용무를 물어도 대답이 없자 볼을 부풀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이 강아지를 노리는 거라면 포기하고 떠나십시오. 다치기 싫으면."

 

 어릴적 엄마와 리나부부 이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보호받는 상황으로 인해 묘한 기분에 휩쌓인 그로울은 본격적으로 구경하듯 양반다리를 하고 관전하기 시작했다.

 

 "뭐 좀 다치더라도 어쩔 수 없지. 우리집 개는 데려가야하니."

 

 인파를 헤치고 나온 어떤 이가 여태 눈치없이 가로막은 마지막 병사의 머리를 따귀 때리듯 기분나쁘게 밀쳐내며 등장했다.

 

 "넌!?"

 

 그로울이 벌떡 일어나 그를 아는 척하자 금발 소녀의 동그랗게 떠진 눈이 자신의 전리품을 향해 손을 흔드는 사내를 담았다.

 

 "여어. 오랜만이다 개새끼. 근데 꼴이 왜 그래? 고작 계집 하나에게 결박당한거냐 너?"

 

 "...넌 쟤가 평범한 계집처럼 보이나보지?"

 

 "어쨌건 수고를 덜었군. 소식들었다. 널 감싸던 그 멍청한 여편네가 뒈졌다며? 네 동족한테."

 

 분노로 인해 짧게 포효를 내지른 그로울이 그에게 달려들려했지만 쇠사슬에 막혀 발만 동동 굴렀다. 다만 애먼 병사들만이 그의 으르렁거림에 바짝 겁을 먹고 뒷걸음질칠 뿐.

 

 "넌 우리 엄마 아니었으면 진작 죽었어 이 멍청한 자식!"

 

 "애초에 그 여편네가 아니었다면 너 따위가 감히 사람말을 지껄이며 영웅행세할리 없을테지."

 

 "그만, 그만!"

 

 소외되었던 금발 소녀는 볼을 부풀리고 억지로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쪽이 책임자인가요?"

 

 "그렇습니다만 그쪽은 누구신지?"

 

 "사정상 이름은 밝힐 수 없으니 간단하게 소개하죠. 떠돌며 기사 수업중인 '계집'입니다."

 

 살짝 목례하는 금발 소녀의 머리가 서서히 올라가자 기다렸다는 듯 쓴웃음을 머금은 사내가 입을 열었다.

 

 "오호. 그렇습니까? 그 정도면 어느 영지에서라도 데려가려고 줄을 설텐데."

 

 "아직 마음에 차는 주군을 만나지 못해서."

 

 "그렇다면 제 상사에게 부탁해서 중앙정부쪽 줄을 대어드릴테니 저 괴물을 넘기고 이만 물러가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싫은데요?"

 

 "...억양으로 볼때 남부 크림로즈국 출신이신 거 같은데...사정을 보아 강제송환되면 곤란해지실텐데요?"

 

 "저는 내전때문에 쫒겨온 입장이 아닙니다만? 뭐 좋을대로 생각하세요. 그것보다 그쪽이 나를 강제송환시킬 수 있으련지 걱정이네요."

 

 사내는 피식 웃어 보였다.

 

 "이거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교황청 직속 이단심문국 2반 아이언윙 소속 미하일 랭던입니다. 조사관 신분으로 파견되어 현재 마교 수사관련 중요 증거로서 저 마물을 확보해야하니 여신의 이름으로 협조 부탁드립니다."

 

 "교황청 직속!?"'

 

 미하일은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검을 검집채 풀어 검에 새겨진 여신의 상징 십자성 표식을 금발 소녀를 향해 자랑스레 보여주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묵묵히 십자성 표식을 확인한 금발 소녀는 뜬금없이 자신의 옆머리를 쓸어 미하일에게 새하얀 목덜미와 함께 귀를 보여주었다.

 

 "이거 우연이네요. 저또한 교황청 소속 여신무력부 최정예 성기사단 슈텐크로이츠의 정식 입단 시험차 '여신의 이름으로' 마교 일파를 수사중인 수습기사거든요."

 

 그녀가 보여주는 앙증맞은 귓볼 밑으로 십자성 귀걸이가 조용히 흔들렸다.

 

 '어쩐지 인간같지 않은 괴력이다 했더니 교황청 끄나풀이였군.'

 

 그로울은 자신보다 더 괴물같은 저 소녀를 달랑 수습기사 자리를 던져주고 소속시킨 슈텐크로이츠라는 성기사단과는 절대 엮이지 말아야겠다고 몸서리치며 다짐했다.

 

 잠시 놀라 할말을 잃은 미하일이 곧 고개를 젓고 이마를 짚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거 하필 가장 반갑지 않은 한 식구를 여기서 만나는군요."

 

 "아무래도 그렇죠? 같은 교황청 산하라도 이단심문국과 여신무력부는 서로 앙숙이니."

 

 "안타깝군요."

 

 "뭐가요?"

 

 "좀더 친해지고 싶었는데."

 

 그는 천천히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이런 미인을 여기서 죽여야 한다는 게!"

 

 특유의 잔인해보이는 웃음을 머금은 미하일이 금발 소녀를 지목하며 소리쳤다.

 

 "죽여라! 제일 먼저 저년의 목을 따는 자에게 금화 100냥을 주마!"

 

 그녀의 엄청난 무력을 눈앞에서 목격하고도 돈이 돈인지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많은 병사들이 그녀를 향해 뛰어들었다.

 

 "칫."

 

 쾅

 

 나름 죽이지 않으려는 것인지 본보기로 가장 먼저 용감하게 튀어나온 용병 하나를 검등으로 후려쳐 날려버린 금발 소녀는 쭈뼛대며 다가오는 적들에게 먼저 뛰어들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날붙이를 대검으로 방패 삼아 막는 한편 팔꿈치와 발차기를 이용한 체술을 사용해 그들을 하나씩 무력화시켜 나아갔다.

 

 금발 소녀가 병사들을 상대로 쥐떼에게 달려든 고양이같이 엄청난 실력을 보여주는 사이 미하일은 마치 안으려는 듯 두팔을 벌리며 그로울에게 다가갔다.

 

 "이거이거 완전 목줄 묶인 개 신세군."

 

 그로울이 미하일의 도발에 어이없다는 듯 흉측한 송곳니를 드러낸 코웃음으로 대답했다.

 

 "너 학습효과가 없구나? 이제 네 곪아터진 머리를 쥐어짜 터트려도 말려줄 사람 없다고?"

 

 "꼼짝도 못하는 놈이 주둥이는 자유롭구나. 내기 하나 할까? 내 머리가 먼저 으스러질지 네놈 목이 먼저 떨어질지."

 

 그로울의 한쪽 눈이 가늘어졌다.

 

 "...너 대체 뭘 믿고 까부는거냐?"

 

 미하일은 조용히 자신의 갑옷안에서 목걸이를 빼낸 후 그로울에게 보란양 흔들어보였다.

 

 "...그게 뭐? 네 저승길 통행증이라고?"

 

 "아니. ...네놈을 지옥으로 안내할 나침반이다!"

 

 미하일이 광기 어린 웃음을 흘리며 목걸이를 뜯어 걸친 갑옷 명치 부위에 있는 홈에 거칠게 박아넣자 그를 중심으로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가늘게 뜬 눈으로 쳐다보던 그로울은 우연히 금발 소녀에게 맞고 자신의 발치까지 날아와 투구가 흘러내린 채 헤롱대는 용병 하나의 뒷덜미를 잡아 수상한 낌새의 미하일을 향해 집어던졌다.

 

 미하일은 날아오는 용병을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날벌레를 쫒듯 간단히 손을 털어 흘려버리고 자신을 감싸던 바람이 차츰 잦아들자 서서히 고개를 들었고 놀랍게도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그의 머리에 갑옷에서 생성된 액체 상태의 무언가가 튀어나와 감싸며 빠르게 투구 모양으로 바뀌어가고 동시에 갑옷의 모양이 날렵하게 바뀌었다.

 

 "하아? 그건 또 뭐하는 물건이냐?"

 

 갑옷에 박혀 은은하게 빛을 뿜는 목걸이가 주인의 대답을 대신했다.

 

 "많이 기다렸니? 나 왔어."

 

  이제야 힘의 차이를 알았는지 남은 병사들이 섣불리 덤비지 못하자 여유가 생긴듯 병사들의 삼분의 일 가량을 정리한 금발 소녀가 숨도 차지않는지 가뿐한 모습으로 그로울의 옆에 섰다.

 

 "과연 교황청 직속 이단색출 및 처벌관련 특수임무 전담부서답게 그 값비싼 미스틱 웨폰을 가지고 있던건가. 멋지다...한번쯤 입어보고싶던 건데."

 

 미하일은 주변에서 다들 팔다리 하나씩 부러져 신음하는 병사들을 슥 둘러보더니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고개를 삐딱하게 쳐들었다.

 

 "지금이라도 그 저주받은 마물을 넘긴다면 우리 부서에 특별히 추천서를 써주도록 할테니 이제 그만 협조해주십시오."

 

 "으으 지금까지중 가장 혹하는 제안이었어요. 하지만."

 

 "하지만...?"

 

 금발 소녀는 싱긋 웃어보였다.

 

 "제 실력을 높이 사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이미 자랑스런 슈텐크로이츠의 입단대기자 명부 한 귀퉁이에 제 이름이 걸려있어서요. 당신이 하는 짓을 보건데 이 귀여운 강아지를 데려가면 선배들에게 꽤 귀여움받을 수 있지않을까요?"

 

 "그전에 신성모독및 공무집행방해로 그 예쁜 머리가 몸에서 떨어질 수도 있다는 걸 아셔야 할텐데."

 

 "어머, 말은 바로 하셔야죠. 공무집행방해는 그쪽이 하고 있는 거 아닌가? 타부서 공적을 낼름 삼키려들다니. 이단심문국이 고작 그 정도밖에 안되는 팀인가요?"

 

 "...피차 말이 길었군요."

 

 "그러세요? 이제 더 할 말 없으시면 저 들러리들 데리고 사라져주시죠?"

 

 "그건 안됩니다 레이디. 할 말은 없지만 할 일은 남았거든요."

 

 말을 마친 미하일이 자신의 검을 뽑으며 금발 소녀에게 다가갔다.

 

 "...이렇게 나오신다? 이 일을 교황청에 정식으로 고발하죠."

 

 미하일의 면갑 밖으로 웃음 소리가 새어나왔다.

 

 "고작 수습따위가? 마음대로. 단,'

 

 눈깜짝할 사이에 그의 몸이 금발소녀 코앞까지 들이 닥쳤다.

 

 "여기서 살아나간다면 말이지!"

 

 "칫."

 

 가까스로 그의 검을 막은 금발소녀가 후속공격도 겨우겨우 막으며 뒷걸을질 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미하일이 그녀를 빠르게 몰아부쳤다.

 

 속공 와중에 작정하고 날리는 미하일의 큰 공격을 금발 소녀는 노렸다는 듯 대검의 길다란 손잡이 끝으로 흘리고 곧장 그의 머리에 양단하겠다는 듯 내리찍었다.

 

 푹

 

 언제 피했는지 옆으로 빠진 미하일탓에 갈곳 잃은 그녀의 대검이 흙바닥에 내리 꽂혔고 그 틈을 놓칠 미하일이 아니었다.

 

 "안녕히."

 

 이를 악문 금발 소녀가 뒤늦게 검을 뽑았지만 미하일의 검이 더 빨랐다. 그 순간

 

 퍽

 

 분명 목을 노리고 들어가던 미하일의 검이 아슬아슬하게 소녀의 레몬빛 금발 몇가닥만 끊어내고 멀어졌다.

 

 그로울에게 던져진 병사가 흘리고 간 투구를 손에 맞고 기회를 놓친 미하일이 간신히 금발 소녀의 역공을 피한 후 뒤로 물러서섰고 금발 소녀와 미하일 둘 다 약속이라도 한듯 잠시 싸움을 멈추고 투구가 날아온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그곳에서는 두 사람의 시선을 한몸에 받자 기다렸다는 듯 붉은 야수가 생긴 것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익살맞은 폼으로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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