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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피어스
작가 : 레이지아츠
작품등록일 : 2017.7.22

무엇이 옳고 그른가?

운명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내던져진 채 각기 다른 신념을 위해 싸우는 영웅들의 우정과 대립, 그리고 처절한 투쟁

 
14화:청산
작성일 : 17-07-29 05:15     조회 : 335     추천 : 0     분량 : 5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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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미레이는 손걸레로 창문을 닦고, 엘레네는 먼지털이개로 가구 틈새를 털도록! 다들 잡고 있는 청소도구 놀리지 말고 어서 움직여! 그리고..."

 

 간호 수녀는 발걸음을 옮겨 멀뚱이 빗자루를 들고 쭈뼛쭈뼛 거리는 금발 소녀에게 다가가 허리에 손을 얹었다.

 

 "애피드 자매님. 그 빗자루는 누구 한대 후려치시려고요? 들고서 뭐하는 거죠? "

 

 "저... 어디를...?"

 

 수녀복을 빌려입고 빗자루를 가슴골 깊이 끌어안은 채 안절부절 못하는 코로나는 큰 눈망울에 잔뜩 불안함을 담고 간호수녀의 눈치를 살피다가 간호 수녀의 한숨을 들이키는 작은 동작에도 화들짝 놀라 움찔거렸다.

 

 "이쪽으로."

 

 관자놀이를 잡고 고개를 저으며 뒤돌아 걷는 간호 수녀를 따라가며 코로나의 볼이 힘없이 부풀었다.

 

 "무슨 불만이라도?"

 

 "아, 아닙니다!"

 

 뒤통수에 눈이라도 달린건가

 

 기운없이 고개를 숙인 코로나의 아랫입술이 몰래 삐죽 튀어나왔다.

 

 도착한 곳은 사원 앞뜰.

 

 말 없이 땅바닥을 가리키는 간호 수녀의 손짓에 코로니는 힘 없이 쓸기 시작했다.

 

 "아니 대체 다 큰 귀족 처자가 시종도 거느리지 않고 돈도 한푼없이 무슨 생각으로 여행을 다니신 겁니까? 또 가문에는 왜 도움을 청하지 않는데요?"

 

 딱히 대답하라는 얘기가 없어 묵묵히 쓸기만하지만 끊이지 않는 그녀의 잔소리에 죽겠다는 듯 살짝 눈이 감긴 코로나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렇게 코로나가 지옥같은 시간을 얼마나 보냈을까.

 

 "자매님! 자매님!"

 

 어린 수녀 한명이 허둥지둥 코로나와 간호 수녀 앞까지 달려왔다.

 

 "무슨 일이냐?"

 

 몸을 숙이고 숨을 고르던 어린 수녀는 그녀의 채근에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데 그러냐?"

 

 "그게..."

 

 코로나의 눈치를 살피며 말끝을 흐리던 어린 수녀가 하는 수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근처 에레보스 산맥 숲에서 트롤들이 집결하고 있답니다. 필시 마교 강령술사의 농단임이 분명하여 영지에서 우리 사원에도 퇴마 사제(Exorcist)의 파견을 요청했습니다..."

 

 "이거 큰 일이구나. 단 둘뿐인 퇴마 사제들이 본청에 연수중이라 치료 사제님들 뿐인데..."

 

 "저..."

 

 발만 동동 구르던 두 수녀는 눈치를 보며 할 말 있다는 듯 작게 손을 든 금발 소녀를 바라보았다.

 

 "저도 일단은 교황청 소속인데 괜찮으시다면 이곳 사원 명의로 대신 출전해도 될까요? 빚을 갚는 셈치고..."

 

 "자매님이...?"

 

 미심쩍다는 듯 자신을 쳐다보는 어린 수녀의 시선에 울컥한 코로나는 이리저리 살피다가 마침 근처에 굴러다니는 주먹보다 큼지막한 돌덩이를 가볍게 들어보였다.

 

 "고작 그 정도 완력으로 남정네들도 힘든 성전을 하..."

 

 콰직

 

 부스러진 돌조각의 파편들이 코로나의 고운 손가락 사이로 떨어졌다.

 

 "...겠네요. 충분히."

 

 팔짱낀 채 턱을 괴며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직급이 높은 간호 수녀는 입이 떡 벌어진 어린 수녀에게 시선을 옮겼다.

 

 "아미르. 가서 동생들과 함께 애피드 자매님의 무장 준비를 돕도록."

 

 "넵!"

 

 올때보다 더 빨리 달려 사라져가는 어린 수녀에게서 시선을 거둔

 치료 수녀는 곁눈질로 코로나를 슬쩍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받을 헌금은 이걸로 계산하기로."

 

 "네!"

 

 그녀의 눈빛이 풀이죽어 있던 좀전과는 달리 자신감이 넘쳐흘렀...으나,

 

 "참, 어지럽힌 건 마저 치우고 가세요."

 

 "네..."

 

 간호 수녀의 바닥을 가리키는 손짓에 코로나는 얌전히 자신이 부순 돌부스러기를 주섬주섬 주우며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해서 퇴마 사제님들 대신 합류하게 된 크론 애피드입니다. 잘부탁드립니다."

 

 용케 제 키만한 대검을 등뒤에 매고 정규군 보급형 투구를 눌러쓴 어린 검사.

 목소리를 보아 변성기도 채 끝나지 않은 듯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토벌군 사령관은 골치가 아팠는지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아무리 퇴마 사제가 없다기로서니 저런 꼬맹이를 붙여주다니.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투구를 쓴 어린 검사는 흉부가 제법 단련되었는지 또래에 비해 두툼했지만 허리부터 전체적으로 갸냘픈 와중에 특이하게도 하필이면 골반이 유달리 커서 여성스러웠다.

 여러모로 마족 토벌군 엘리트로 쓰기에는 하자가 있어보이는 용모.

 

 "각하! 이정도면 우리 영지를 아주 무시하는 처사가 아니옵니까?"

 

 어린 검사의 뒤에서 커다란 할버드를 치켜든 큰 체구의 기사 하나가 기가 막히다는 듯 나서며 창 끝을 그를 향해 가리켰다.

 

 "네 이놈!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얼굴을 가리는 것이냐? 당장 투구를 벗지 못할까!"

 

 소년은 하는 수 없다는 듯 투구 면갑만을 올려 곱상하지만 짜증이 한 가득 섞인 얼굴을 드러냈다.

 호수를 담은 듯한 그의 푸른 눈동자가 역설적이게도 불꽃처럼 이글거렸다.

 

 "흥. 계집같은 놈. 당장 실력을 보여라! 이 심장이 뛰는 골렘으로 불리는 나, 카시야스를 꺾지 못한다면 물건이나 제대로 달려는 있는지 네 아랫도리를 벗겨 확인해주마!"

 

 어디 덤빌테면 덤벼보라는 듯 잡고 있던 할버드에 체중을 실은 채로 거만하게 내려다보는 거구의 기사를 귀찮다는 듯 슬쩍 마주본 소년이 말없이 면갑을 내리고 그에게 다가가 몇발자국 앞에서 멈춰섰다.

 

 휙

 

  제 키만한 거대한 대검을 순식간에 나뭇가지 휘두르듯 가볍게 휘두른 소년이 검을 다시 등뒤로 붙이고 더는 볼일도 없다는 듯 미련없이 돌아서자 동시에 거구의 기사가 휘청거렸다.

 

 그가 기대있던 통짜 쇠로된 할버드가 두동강난 탓

 

 소년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입만 벙긋거리는 거구의 기사를 뒤로한 채 뚜벅뚜벅 사령관에게 걸어갔다.

 

 "네, 네이놈 감히 이몸을 상대로 등을 보여!?"

 

 아직 승부가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창피했던 탓인지 흥분한 거구의 기사는 그 큰 몸을 단숨에 움직여 소년에 의해 반토막이 나 가벼워진 할버드를 도끼 휘두르 듯 뒤돌아선 그의 뒤통수를 향해 휘둘렀다.

 아니 휘두르려 했다.

 

 "으으."

 

 반토막난 할버드를 들고 마치 마비라도 된듯 멈춰선 채 부들거리는 거구의 기사는 코끝에 닿을 듯 말듯 떠있는 검끝을 바라보며 식은 땀을 흘렸다.

 

 그가 노리던 어린 기사가 뒤를 돌아보지도, 검을 뽑지도 않고 단지 등뒤에 매인 검의 손잡이만 잡아 눌러 검끝을 올려 기사를 멈춰 세운 것이었다.

 

 "카시야스경."

 

 차가운 목소리로 장내를 식힌 어린 검사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투구밖으로 서슬퍼런 안광을 내비추며 마저 말을 이었다.

 

 "골렘의 핵이 뜨거운 피를 뿜기전에 이쯤하는 게 어떠신지요?"

 

 거구의 검사가 부들거리는 몸으로 쓰러지듯 무릎을 꿇자 어린 검사는 대수롭지도 않은 듯 면갑을 다시 올리고 사령관에게 다가가 오른 팔을 올려 가슴에 대는 군 경례 자세로 전과는 달리 경악한 표정으로 자신을 맞는 사령관의 대답을 기다렸다.

 

 "...최고의 전력이 되겠군. 환영하네 애피드경."

 

 "과찬이십니다."

 

 코로나는 투구밖으로 남장 행색에 어울리지 않는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팔다리 하나씩 부러트려 놓은 게 주효했던 듯 다행히 아무리 둘러봐도 낯익은 병사는 없다.

 

 오랜만의 행군을 만끽하며 걷던 코로나의 발걸음이 갑자기 멈췄다.

 

 "적이다!"

 

 정찰병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숲속을 메아리치며 전투를 알리는 나팔소리와 마치 긴장한 병사들의 고동소리를 대변하는 듯한 북소리.

 

 남몰래 입꼬리를 치켜올린 코로나는 가볍게 뛰어 앞을 가로막은 병사들 위를 넘어서 착지하자마자 달려 단숨에 선봉을 제치고 앞으로 쏘아져 나아갔다.

 

 땅이 파이며 신난듯 달리던 그녀의 발이 멈추자 언제 휘둘렀는지 대검이 둥글게 포물선을 그리는 피를 흩뿌리며 멈췄다.

 

 말을 달리고도 그녀보다 뒤늦게 도착한 기병들 앞으로 트롤의 머리가 떨어지며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휘유. 많기도 하다."

 

 여유를 부리며 면갑을 살짝 올리고 다가오는 트롤들의 군세를 살피던 코로나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대략 500구인가. 어?...저건?!"

 

 그녀는 서둘러 허공에 휘둘러 피를 털어낸 검을 치켜들며 한 지점을 노려보았다.

 

  불길한 기운을 흘리며 허공에 떠있는 마법진.

 

 "범인 행차신가?"

 

  보호하듯 그것의 주위로 트롤들이 곤봉을 질질 끌며 모여들자 코로나는 겨냥하듯 한쪽 눈을 감고 날채로 잡아올린 대검의 끝을 조준하듯 그 지점을 향해 띄운 채 활 시위를 당기듯 손잡이를 어깨뒤로 끌어당겨 자세를 잡았다.

 

 "돌겨어억!"

 

 전장에 도착한 사령관의 명령을 신호탄으로 코로나의 몸이 화살처럼 쏘아지고 산발적으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흥분한 트롤이 휘두른 눈먼 곤봉에 맞은 운 나쁜 병사 하나가 날아가 아군 진형을 어지럽히고나서야 뒤늦게 궁병들이 앞으로 나와 전방의 트롤들을 고슴도치로 만들었다.

 

 어느새 코로나의 몸은 마치 기병이 랜스를 찔러넣듯 쭉 뻗은 대검을 따라 부딪힌 트롤들의 사지를 박살내며 달려가 이윽고 순식간에 도착한 그녀는 그대로 대검을 마법진 속에 박아넣었다.

 

 "크윽?!"

 

 자신만만하던 코로나의 입에서 당황섞인 신음이 흐르자 불길한 마법진이 삼켰던 대검을 토해내며 쇠를 긁는 듯한 누군가의 소름끼치는 웃음소리와 함께 코로나의 검끝을 잡은 앙상한 두손가락이 튀어나왔다.

 

 "...누구냐?"

 

 이를 악문 코로나의 물음에 마법진에서 마저 온몸이 빠져나온 손가락의 주인이 검은 후드밖으로 창백한 얼굴에 웃음을 띄우며 대답했다.

 

 "나는...진정한 주인을 섬기는 자."

 

 으드득

 

 "마교...!"

 

 마법진을 지키던 트롤이 뒤늦게 곤봉을 휘두르자 마교도의 두손가락에 잡혀있던 대검을 회수해 재빠르게 휘둘러 곤봉끄트머리와 함께 트롤의 머리를 땅바닥에 떨어트린 코로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그를 노려보았다.

 

 "제법이구나. 창녀의 종이여."

 

 "그 더러운 주둥이로 여신을 더럽히지마라!"

 

 깡

 

 그의 목을 향해 순식간에 휘둘러진 대검의 날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 허공에 멈추어 떨었고

 불과 한뼘의 거리를 남긴 채 펼쳐진 앙상한 손바닥의 주인은 조용히 비웃음을 흘렸다.

 

 "으윽!?"

 

 코로나는 안간힘을 써 검을 밀어넣었지만 고작 손가락 한마디 정도 더 움직인 것에 그쳤고 마교도는 웃으며 조금 더 다가온 대검의 날에 장난치듯 손가락을 튕겼다.

 그 가벼운 움직임에 들고 있는 대검채로 날아간 코로나가 곧 정신을 추스르고 빠르게 일어나 피하자 그녀가 쓰러져 있던 바닥에 트롤의 곤봉이 박혔다.

 

 "부하들이 이렇게 느려터져서야 주인의 머리가 몸과 떨어지는 걸 막을 수나 있을까?"

 

 "글쎄? 우선 그 미개한 물건이 이몸에 닿을 수나 있느냐가 관건인데."

 

 자신의 도발에 어깨를 으쓱 들어보인 마교도를 노려보며 코로나는 짐짓 허세를 부려보았지만 각성이후 난생처음 겪어보는 압도적인 열세에 몸서리치며 입술을 깨물었다.

 

 '틀렸어. 이곳 트롤 정도야 시간만 주어지면 모두 처리 가능하지만 이정도 실력의 강령술사를 상대하려면 나와 이 병력으로는 어림도 없을거야...어떡한담.'

 

 궁리하는 걸 잠시 멈춘 채 쇄도하는 곤봉을 가볍게 피한 후 트롤의 심장에 대검을 찔러넣은 코로나는 뽑는 반동을 이용해 그대로 반대쪽에서 곤봉을 뒤로 젖힌 트롤의 목을 베어버렸다.

 

 몸과 떨어진 채 핏방울을 흩날리며 발치로 떨어진 트롤의 흉물스런 머리를 걷어찬 코로나는 귀찮다는 듯 벌레쫓는 손짓 하나로 허공에서 그녀에게 걷어차여 날아온 트롤의 머리를 튕겨내며 방심하는 마교도를 향해 한껏 끌어당겼던 대검을 쭉 뻗어 찌르며 돌진했다.

 

 "칫."

 

 순식간에 걸린 방어 마법과 저주로 인해 아슬하게 빗겨나간 대검은 마교도의 후드를 벗기는 걸로 만족해야했다.

 

 얼굴을 생채기내며 스쳐지나간 대검을 보고 좀전과 달리 차갑게 표정을 굳힌 마교도가 뻗은 앙상한 손이 불안을 품은 채 저주로 인해 굳어진 코로나의 푸른 눈을 덮쳤다.

 

 "아아 그, 그만...!"

 

 벗겨진 채 땅바닥에 구르는 투구를 뒤로한 금발 소녀의 신음을 기점으로 마교도 입에서 흘러나오는 주문소리가 점점 커졌다.

 

 "태양을 집어삼키는 어둠이여 천사의 영혼을 더럽히는 난봉꾼이여 내 그대에게 바치노니 그대 앞에 놓인 제물에게 그대가 가진 축복을 내려..."

 

 그르르르

 

 점점 생기를 잃어가는 코로나의 눈에 비친 앙상한 손 너머로 별안간 분노에 가득찬 붉은 야수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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