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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피어스
작가 : 레이지아츠
작품등록일 : 2017.7.22

무엇이 옳고 그른가?

운명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내던져진 채 각기 다른 신념을 위해 싸우는 영웅들의 우정과 대립, 그리고 처절한 투쟁

 
9화 : 마녀의 외출
작성일 : 17-07-28 12:08     조회 : 374     추천 : 0     분량 : 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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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용이 나올 것만 같은 넓은 동굴안

 

 쿵...쿵...

 

 지축을 뒤흔드는 거대한 짐승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커지며 조용한 동굴안을 무너트릴 듯 울렸다.

 

 그르르

 

 짧게 으르렁거림을 멈춘 '붉은 야수'는 곧 발걸음 소리보다 더 큰 소리와 함께 어깨에 지고 있던 무언가를 바닥에 팽개쳤다.

 

 그것은 눈알이 뒤집혀진 채 혀를 빼어 물고 죽어있는 거대한 마수의 잘린 머리.

 강력한 둔기에 치명상을 입고 죽었다는 걸 정수리의 움푹 패인 상처가 말해주고 있었으며 그렇게 만든 것이 자신이라는 걸 증명하듯 거대한 붉은 야수가 제 키만치 육중한 전투망치를 돌려서 고쳐잡고 조심스레 눈 앞에 있는 무언가에게 다시 으르렁거리며 다가갔다.

 

 "늦었네?"

 

 정적을 깨는 여인의 고운 목소리.

 

 딱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가 나자 은은하게 빛나는 연기로 이루어진 마법의 광구(光球) 바로 아래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 듯한 검지와 다 벗은 거나 다름없이 요염하게 옆으로 누워있는 남국복장의 여체가 드러났다.

 

 [...드디어 죽음으로 속죄하러 왔는가, 흉안의 마녀?]

 

 붉은 야수가 놀랍게도 유창한 인간말을 내뱉자 흉안의 마녀라고 불린 여인이 겹쳐있던 두다리중 위에 있던 다리를 끌어올려 도드라진 골반을 손으로 쓸어 사르륵 살결이 미끄러지는 소리를 내며 새신부의 면사포같은 하얀 베일로도 가려지지 않는 붉은 입술의 양쪽 끝을 올렸다.

 

 "그럴리가? 농담도 잘하신다 우리 임금님."

 

 그녀의 도발에 격노한 붉은 야수가 금방이라도 달려들듯 울부짖으며 무릎을 구부리자 여인의 검지끝 허공에 놓여있던 광구(光球)가 쏘아져 빠르게 그의 앞길을 막았다.

 

 후웅

 

 걸리적거리는 공기마저 부수는 소리.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재빠른 동작으로 광구(光球)를 거대 망치로 휘둘러 후려쳐 흩날리는 빛의 먼지로 만들어버린 붉은 야수가 악다문 송곳니가 드러난 주둥이를 부들거리며 사라진 여인을 찾으려 두리번 거리자 순식간에 바로 등뒤에 나타난 여인이 허공에 뜬 채 붉은 야수의 넓은 어깨를 탁자삼아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괴었다.

 곧바로 그녀는 남은 손으로 붉은 야수의 귀를 잡아당겨 속삭였다.

 

 "그 아이를 찾았어. 당신을 많이 닮았다던데?"

 

 그녀의 귓속말에 찢어질 듯 눈이 커진 붉은 야수가 다시 손톱을 휘두르자 미꾸라지처럼 그것을 피해 사라진 여인이 멀리서 모습을 드러냈다.

 

 "서둘러야 하는 거 아니야? 난 이미 부하들을 풀었는데 키킥. 열심히 발버둥쳐봐. 어차피 날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녀는 말을 하는 와중에도 검지 손가락으로 자신의 붉은 입술을 툭툭 치고 있었다.

 

 "자, 그럼 가까운 시일 내에 또 뵙기로 하죠. '붉은 칸'이시여."

 

 할 말을 마친 그녀는 잠깐 손을 흔들다가 있지도 않은 양 치마자락을 붙잡는 듯한 제스쳐를 하며 고개를 비스듬히 숙이고 그대로 바람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쿵

 

 허망하게 거대 망치의 머리를 땅에 떨군 붉은 야수가 '푸른 안광'이 넘실거리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날카로운 손톱이 드러난 자신의 손바닥을 힘 없이 내려다 보았다.

 

 그의 손이 꽉 쥐어졌다.

 

 

 

 

 촛불외에는 빛이 일절 들지 않는 누군가의 집무실.

 

 차가운 낯빛의 사내가 눈빛을 숨기려는 듯 고개를 숙여 안경을 빛냈다.

 

 "여기는 무슨 일이신지?"

 

 [...볼 일이 생겨왔다.]

 

 별안간 미친 사람처럼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속삭인 그의 말에 놀랍게도 바로 대답해주는 이가 있었다.

 어둠속에서 스멀스멀 드러나는 목소리의 주인공.

 사내는 그를 천천히 살폈다.

 검은 로브 밖으로 드러나는 창백한 피부.

 반투명한 그의 모습은 유령 그 자체.

 

 "다음부터는 문을 이용하도록해주십시오. 자칫하면 목이 달아날 수도 있으니까요."

 

 사내는 안경속 눈빛을 날카롭게 빛내며 검은 로브의 사내를 노려보았다.

 

 [자네가 사교도와 붙어먹었다고 광고라도 하란 소린가?]

 

 "기별이라도 하고 오라는 말입니다."

 

 끌끌끌거리는 웃음소리가 흘렀다.

 

 [유체를 베겠다니 참 재밌는 농담이군...그래. 다음부터는 조심하지.]

 

 검은 로브의 사내는 음산하게 웃으며 반투명한 손으로 탁자위 지도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놈이 여기까지 쫒아와 수색중이다. 핑계를 대서 동맹군을 이용해 발목을 붙잡도록. 은신한 덕분에 쉽게 잡히진 않는다만 정말 개코가 따로 없더군. 더이상 늦었다간 정말 날 찢어죽일거다.]

 

 

 "발목만 붙잡으라...?"

 

 약간 불만 어린 그의 반문에 검은 로브의 사내가 어깨를 으쓱 들어보였다.

 

 [...자네도 겪어보지 않았나? '생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죽여서도 안되지 소중한 그릇이니. 골치 아프군.]

 

 팔짱을 끼고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안경낀 사내는 이윽고 팔짱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습니다. 그렇게하지요. 그나저나 어지간히 급했나보군요. 대륙 제일의 강령술사께서 이 한낱 미천한 인간 하급관리에게 부탁을 다 하다니."

 

 잠시 쓴웃음을 지은 강령술사의 반투명한 몸이 서서히 공기중에 흩어져갔다. 한 마디를 남긴 채.

 

 [그럼 부탁좀 하지. 조사관 나리.]

 

 조사관은 그가 완전히 사라지자 공허한 자리에서 눈을 뗀후 펜을 들고는 지도위 강령술사가 가리켰던 지명에 신경질적으로 밑줄을 그으며 외쳤다.

 

 "집사!"

 

 "네. 주인어른."

 

 그의 부름에 기다렸다는 듯 문을 열고 들어온 집사가 한 팔을 배에 붙인 채 조사관에게 목례했다.

 

 "랭던을 부르게."

 

 "예. 당장 랭던 훈작을 불러오겠습니다."

 

 조사관은 부하가 올 때까지 서신을 적어내려갔다.

 

 한참 후,

 

 똑똑똑

 

 "미하일 랭던입니다."

 

 "들어와라."

 

 문이 벌컥 열리고 보통 체격이지만 꽤 단단해보이는 신체의 사내가 들어왔다.

 

 "찾으셨습니까"

 

 조사관은 번거롭다는 듯 의자쪽으로 대충 손을 까딱 저어 인사를 받는 것과 앉으라는 제스처를 한꺼번에 해결했다.

 

 어깨를 으쓱거린 미하일은 의자를 끌어당기고 털썩 주저앉아 조사관의 용무를 기다렸다.

 

 "미하일. 몸은 좀 괜찮나?"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해야지요. 언제 하극상으로 문초 받을 지 모르는데."

 

 탁

 

 피식 쓴웃음을 머금은 조사관은 의미없이 자신의 손바닥을 탁탁치던 지휘봉을 고쳐 들어 테이블을 한쪽을 쳤다.

 

 "...뭡니까?"

 

 한쪽 눈썹을 일그러트린 미하일의 재촉에 조사관은 입꼬리를 조금 더 올렸다.

 

 "자네에게 베푸는 위로랄까?"

 

 "위로?"

 

 "자네 머리로 공놀이를 한 강아지 말이야. 보고싶지않나?"

 

 쾅

 

 두손으로 테이블을 내려친 기사의 눈빛이 희번덕거렸다.

 

 "그 영웅행세하는 개새끼말입니까?"

 

 조사관은 부하의 무례에도 싱긋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드득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 짚어주고 있지않나?"

 

 좀전에 테이블을 때렸던 그의 지휘봉 끝이 지도위 어지럽게 표시된 한 지점에 멈춰있었다.

 

 조용한 집무실을 울릴 정도로 이를 갈은 미하일은 실룩거리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잘됐군요. 마침 녀석의 앞발에 붙잡혔던 머리가 지끈거려 짜증나던 참이었는데."

 

 조사관은 편지를 봉하기 위해 막 촛농을 떨어트린 봉투에 도장을 찍어 미하일에게 건넸다.

 

 "우선 근처 동맹 아르헨도 영지에서 병력을 지원받고 용병도 한개소대정도 구하고서 움직이도록. 필요한 자금은 집사에게."

 

 편지를 받아든 미하일은 벌떡 일어나 가벼운 목례후 뒤돌아 문을 열었다.

 

 "미하일 랭던."

 

 조사관은 미하일이 흠칫 멈춰서자 그의 대답이 나오기전에 말을 이었다.

 

 "목표의 '생포를 최우선'으로 한다."

 

 미하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잔인해보이는 미소를 입가에 걸고 마저 발걸음을 떼었다.

 

 문이 닫히자 조사관은 깍지 낀 손위로 턱을 괴며 눈빛을 감추듯 안경을 빛냈다.

 

 

 

 

 

 

 "잡아라!"

 

 숲에서 하얀 로브를 입은 무리가 한 여인의 뒤를 쫓고 있었다.

 대상은 고혹적인 흑발 여인.

 신기하게도 그녀는 발을 땅에 붙이지 않고 살짝 허공에 뜬 채로 빠르게 대지 위를 날며 쫓기는 와중이면서도 표정에 전혀 긴장끼 하나없이 아니 오히려 무언가 기대감에 부푼 얼굴이었다. 중간중간 하얀로브의 무리가 던진 암기와 공격 마법을 마법으로 가볍게 받아내며.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이 의도적으로 몰았는지 이내 거대한 벽과 같은 절벽 밑에 가로막힌 그녀의 주위를 하얀 로브의 무리가 에워쌌다.

 

 "어떻게 우리로부터 어디까지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한거지? 얌전히 심판을 받아라 이 마녀..."

 

 "어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너희들 말야."

 

 기척도 없이 나타난 거대한 실루엣에 하얀 로브 무리는 순식간에 산개하여 여자와 '그것' 경계하였다.

 

 어느틈에 다가왔는지 경악하기도 전에 불과 마흔여 걸음까지 접근한 그들과 마찬가지로 후드를 쓴 거한.

 

 "조심해. 우리 엄마가 여자를 괴롭히는 못된 놈들은 꼭 혼내주랬거든."

 

 거한이 스스로 후드를 벗자 붉은 맹수의 머리가 드러났다.

 

 "라이칸!?"

 

 붉은 야수 그로울은 수상한 흰색 로브 무리에게 고개를 삐딱하게 비틀고 송곳니가 흉측한 입을 벌렸다.

 

 "이봐 너희들 혹시 검은 로브놈을 알고 있..."

 

 그 순간 쫓기던 정체불명 여인의 비명소리가 숲속을 가득 메웠다.

 

 "귀여워어어어어어!"

 

 아니 비명에 가까운 감탄성.

 한번도 겪어본 적 없는 반응에 잠시 입을 벌리고 삐딱한 고개를 반대쪽으로 갸우뚱 꺾은 그로울은 바로 질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족히 몇십걸음이나 떨어져 있던 흑발의 여자가 어느새 태연하게 자신의 팔에 팔짱을 끼고 있었으니.

 

 그리고 그녀가 지나온 자리에는 하얀 로브의 무리가 전부 쓰러져 신음하고 있었다.

 

 "아, 저거? 심심해서 데리고 놀던 내 장난감 들이야♡"

 

 긴장한듯 얼굴을 굳힌 그로울은 천천히 고개를 숙여 그녀를 내려다 보았다.

 

 "무서워하지 말렴. 어머나 어깨를 다쳤구나? ...어떤 나쁜놈이 장난을 쳤네?"

 

 자신의 어깨로 뻗는 그녀의 손을 거칠게 뿌리친 그로울은 등뒤로 손을 가져가 지난 전투의 동족에게서 노획한 워해머를 집어들며 긴장한 표정으로 으르렁거렸다.

 

 "...너 정말 마녀인가...?"

 

 그녀는 차가운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그래. 널 잡아먹을 마녀지!"

 

 순간이동으로 다가온 그녀에게 주저없이 거대 망치를 휘두른 그로울은 자신의 공격에 흩어지는 환영을 뒤로 하고 돌아서서 진짜 마녀에게 흉측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경고했다.

 

 "더이상 가까이 오지마... 여자건 뭐건 곤죽을 만들어줄 테니까."

 

 그로울의 흉흉한 경고에 여자는 조금 시무룩해진 듯 쓴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물러섰다.

 

 "장난이었는데 삐진 건가? 또 보자 예언의 강아지..."

 

 자기 손에 입술을 맞추고 그로울에게 날린 후 마법의 빛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진 마녀가 머문 자리를 흘겨보던 그로울은 근처에 쓰려져 있던 흰색로브의 인물중 한명의 멱살을 잡고 들어올렸다.

 

 "이봐, 저 여자는 뭐냐? 너희들은 뭐고?"

 

 그의 유창한 인간 언어에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응수하던 흰색로브의 사내는 짜증이 난 붉은 야수가 잡은 멱살 채로 흔들고 나서야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그, 그녀는 우리 교단에서 쫓고 있는 마녀, 우, 우리는 보다시피 여신을 섬기는 크릭트 교단의 사제들이다!"

 

 그로울은 그를 얼른 놓아주고 먼지를 털어주었다.

 

 "아, 이거 모르고 실례했습니다 사제님들. 제가 고향밖으로 나오는 건 처음이라 세상물정이 어두워서... 그럼 이만."

 

 붉은 야수의 넉살에 벙찐 교단사람들은 한참을 그가 사라진 곳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교단 사람들을 구해준 걸 알면 낙원에서 기뻐하실까?

 그로울은 원래 구하려던 상대가 뒤바뀌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달렸다.

 분명 근처에서 풍기는 원수의 악취를 쫓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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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지아츠 17-07-28 12:32
 
이번화도 다 뜯어고치다시피해서 시간이 걸렸네요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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