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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상속녀의 남자
작가 : 은하연
작품등록일 : 2017.6.4

한날 한시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대일그룹 상속녀 인 유세희와 아버지를 잃은 천재 소년 도현준.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손녀 딸을 지키기 위해 유 회장은 도움이 필요한 현준을 받아들이고 세희를 대신해 그룹의 후계자 수업을 받게 되었다.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세희와 그녀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 홀로 떨어진 현준은 세희를 노리는 탐욕스러운 그룹의 세력들의 노림수로 인해 강제로 그녀와 헤어지게 되는데......
10년후, 그녀가 돌아왔다.

 
45. 은아의 계획 (3)
작성일 : 18-01-07 18:45     조회 : 25     추천 : 0     분량 : 5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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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거운 발걸음을 억지로 떼어낸 현준이 눈앞에 보이는 오피스텔로 걸어 들어갔다.

 

 은아는 하루 전부터 이 순간을 위해 준비했다. 힘든 운동으로 몸에 힘을 주고 구석구석 청소도 마쳤다.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준비한 향초와 은은하면서도 야릇한 불빛을 내는 조명등을 확인하는 은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음식을 준비했다. 그동안 틈틈이 요리교실을 다니며 배운 실력으로 현준이 즐겨 먹는 스테이크와 아스파라거스, 양파, 당근으로 가니쉬를 만들었다. 거기에 안주로 육포와 치즈를 다듬어 먹기 좋게 접시에 올렸다.

 

 음식 준비를 끝낸 은아는 남아 있는 냄새를 없애기 위해 양초를 창문을 열고 향초를 켰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준비를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만약을 위해 다시 샤워를 하고 머스크 향이 강한 향수를 피부에 뿌리고 문질렀다. 남자들이 유혹적이라 느끼는 향을 몸에 입히고 검은색 레이스로 이루어진 속옷을 입고 거울을 확인했다. 살짝 치켜 올라간 눈꼬리와 붉은 입술, 운동으로 다져진 육감적인 자신의 몸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은아는 준비해 놓은 원피스를 입었다.

 

 오늘을 위해 준비한 니트 소재의 검은색 드레스는 그녀의 몸에 제2의 피부처럼 찰싹 달라붙는 옷이었다. 백화점에서 이 옷을 입고 탈의실을 벗어나자 주변의 시선이 온전히 그녀에게 쏠리는 것을 느끼며 바로 구매했던 드레스였다. 키가 큰 그녀에게 조금 짧은 드레스였지만 덕분에 다리가 더 길어 보이는 게 은아의 마음에 쏙 드는 드레스였다.

 

 유혹적으로 보이는 눈매를 또렷이 하고 입술을 촉촉하면서도 붉은 립스틱으로 마무리한 은아는 인터폰 소리에 눈을 번뜩였다.

 

 ‘왔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누르며 인터폰을 확인한 은아는 화면 속 반갑지 않은 얼굴에 화를 했다.

 

 -나야. 문 좀 열어줘.

 ‘저 인간이 여긴 왜 왔지?’

 

 은아는 절대 다른 남자들을 집안으로 끌어들이지 않았다. 그녀가 그들의 집으로 찾아가거나 호텔을 이용했을 뿐. 흥분한 얼굴로 인터폰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시간을 확인하며 한시라도 빨리 저 인간을 여기서 보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뭐야? 여긴 왜 왔어?”

 -큭. 그래, 난 여기 찾아올 주제도 안 된다는 건가?

 

 낮게 깔리는 남자의 목소리에 깔린 위험을 알아차린 은아는 태세를 변환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연락도 없이 오니까 그렇지. 지금 일하느라 몰골도 엉망이고 집도 엉망이라 나갈 수가 없단 말이야.”

 

 초조해 죽을 것 같은 마음을 누르고 아양을 떨자 남자의 얼굴이 살짝 풀렸다.

 

 -그래서 안 들여보내 줄 거야?

 “지금은 진짜 안 돼. 대신 오빠 집에 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내가 일 끝나는 대로 예쁘게 하고 갈게. 응?”

 -……. 휴. 알았다. 기다릴 테니 꼭 전화해.

 “알았어. 집에 가서 쉬고 있어.”

 

 교태 어린 목소리로 남자를 살살 달래는 데 성공한 은아는 어두운 얼굴로 문 앞을 떠나는 남자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휴, 큰일 날 뻔했어.”

 

 현준이 오기 전 그를 보낸 것에 안도하며 잔뜩 긴장했던 몸이 소파 위로 무너져 내렸다. 왠지 모르게 불길한 기분이 들어 격하게 고개를 저으며 거실을 서성였다. 그가 방문하는 시간이 조금만 더 늦었다면, 또는 현준이 조금만 더 일찍 도착했다면? 하는 불길한 생각이 은아의 신경을 괴롭혔다. 괜찮다며 자신을 위로하며 아껴두었던 코냑을 잔에 따랐다. 알싸하면서도 달큰한 향이 코와 혀를 감싸며 빈속을 뜨겁게 달래주며 내려갔다. 뜨거워진 뱃속과는 반대로 머리가 차가워졌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오늘이 그녀가 무언가를 시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는 걸.

 

 은아는 예전부터 그가 계약을 꺼낸 이유가 유 회장 때문임을 눈치채고 있었다. 아니 모를 수가 없었다. 평소에는 냉랭하기 짝이 없던 그가 자상하고 다정한 모습을 보일 때가 바로 유 회장 앞에서였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이 모든 것이 그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세계에 발을 들이면서 은아는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싶었다. 잘생기고 능력 있는 남자를 마다할 여자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은아는 무뚝뚝한 그의 성격도, 그의 말을 거스를 때마다 보이는 얼어붙을 것 같은 시선도 상관없을 만큼 그를 원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줄다리기해온 결과 은아에게 남은 건 욕망과 오기였다. 그에게 받은 상처를 다른 남자들과 관계를 맺으며 치유하고 낮아진 자존심이 회복되면 다시 그에게 돌아갔다. 현준은 그녀가 무슨 짓을 해도 그가 그어놓은 선을 넘지 않는다면 그녀에게 주던 것들을 거두어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달라지겠지.’

 

 세희가 돌아오기 전부터 현준은 그녀의 노력을 가차 없이 잘라내던 남자였다. 그래서 세희가 오자마자 급한 마음에 실수를 저질렀던 은아에게 오늘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기회였다.

 

 마지막을 각오하며 마음을 가다듬던 은아는 인터폰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터폰에 비친 남자는 그녀가 기다리던 현준이었다. 은아가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열림 버튼을 눌렀다.

 

 “들어와.”

 

 문을 열고 그를 맞아 주는 은아의 뒤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온 현준은 야릇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소품들을 보며 얼음장 같은 미소를 지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분명 의논할 일이 있다고 해서 온 건데 아니었어?”

 “뭐 하는 짓? 아무리 너라도 너무 막말하는 거 아니야? 이건 엄연히 내 취향일 뿐이야. 내가 내 집 꾸미는데 네 허락이라도 맞아야 해?”

 

 현준의 성격을 알고 있는 은아는 오히려 개인적인 취향임을 강조했다. ‘너완 상관없는 일이야.’를 강하게 항의하며 오히려 그녀의 취향을 배려하지 않는 그에게 서운함은 내비치자 현준이 한 걸음 물러났다.

 

 “아니, 미안하다. 내가 오해한 거라면 사과할게.”

 “됐다. 그만하고 밥이나 먹자.”

 

 은아는 예민하게 반응하는 현준의 신경을 돌리기 위해 식탁으로 그를 이끌었다.

 

 “스테이크 괜찮지? 먹고 싶어서 솜씨 좀 부려봤어. 혼자 먹을 때는 음식을 잘 안 하게 되더라고.”

 

 쓸쓸해 보이는 얼굴로 식탁을 차리자 현준이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그는 강하고 정 없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마음이 여렸다. 그의 약점을 이용해 분위기를 주도하게 된 은아는 먹음직스럽게 요리된 음식을 가져다주면서 가볍게 물었다.

 

 “스테이크엔 와인이지. 너도 한잔할래?”

 “아니, 차 가져와서 안 돼.”

 “그럼 포도 주스라도 가져다줄까?”

 “응, 부탁해.”

 

 예상대로 주스를 주문하는 현준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은아는 뒤돌아서며 음흉한 얼굴로 준비된 포도 주스를 와인 잔에 따랐다.

 

 미디움 레어로 익힌 스테이크는 부드럽고 담백하니 맛있게 익었고 곁들인 채소들도 아삭하니 잘 구워져 즐거운 식사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은아 역시 현준의 반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 덕분에 현준이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는 예상보다 늦어진 시간이었다.

 

 “벌써 일어나려고?”

 “응, 그만 가야겠다.”

 

 현준은 조금 전부터 머리가 무겁고 몸이 뜨거워지는 것이 이상하다 여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

 

 비틀거리는 현준을 잡아주며 은아가 몸을 부딪쳐왔다. 현준은 그를 안는 자세로 부축해준 은아를 밀어내며 뒷걸음질 쳤다.

 

 “괜찮아.”

 “괜찮기는 똑바로 서지도 못하면서. 이쪽으로 와봐.”

 

 괜찮다는 현준을 안쪽으로 데려가려는 은아와 벗어나려는 그 사이에 몸싸움이 붙었다. 그제야 현준은 오늘 그녀가 집으로 그를 부른 이유를 알아차렸다

 

 “내 음식에 뭘 탄 거지?”

 

 싸늘하다 못해 얼어붙을 것 같은 목소리와 반대로 열이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몸에서 거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머, 벌써 눈치챘어?”

 

 밀어내는 현준의 손길에 뒤로 물러난 은아가 요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별거 아니야. 외국에서 들어온 최음제를 좀 섞었어.”

 “여기. 그게 네 목적이었나? 날 자빠트리는 거?”

 “자빠트리다니요. 사장님. 그런 저렴한 말보다는 고상하게 사랑을 나눈다는 말이 낳지 않아?”

 “애정이 동반되지 않은 짝짓기 놀음에 사랑이란 말은 사치야. 네가 하려던 건 그냥 짐승들이나 하는 짝짓기 놀음에 지나지 않아.”

 

 정신을 붙잡기 위해 이를 악문 현준은 격한 숨을 몰아쉬며 거칠게 대꾸했다.

 

 “짐승들의 짝짓기? 결국, 난 짐승 밖에 안 된다는 거야? 뭐 좋아. 까짓거 짐승들이 하는 거 우리도 하면 되지 뭐. 난 너랑 함께 라면 짐승이 돼도 괜찮아.”

 

 현준은 다가오는 은아를 피해 뒷걸음질 쳤다. 열기가 오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온몸이 불타는 듯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흐려지는 시야를 붙잡기 위해 노력하며 은아가 있다고 짐작되는 방향으로 싸늘한 시선을 던졌다.

 

 “그런데 어쩌지? 난 너랑 짐승처럼 뒹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거든. 그런 건 네가 만나왔던 남자들이랑 하는 게 어때? 네가 원하면 도전할 남자들이 한두 명이 아닐 텐데.”

 “너, 네가 어떻게…….”

 

 은아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숨긴다고 최선을 다했는데 어떻게 알게 됐는지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말하지 않는다고 모르는 건 아니지. 그러니까 내가 처음부터 말했잖아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관심 없다고. 계약이 끝났을 때 네가 친구로 남고 싶다고 할 때도 말했지. 딴생각만 품지 않으면 네가 좋은 친구가 되도록 노력해 보겠다고.”

 

 현준은 힘겹게 침을 삼키며 벽을 잡고 천천히 움직였다. 열이 들끓어서 그런지 아까부터 갈증이 심했다. 그렇다고 말을 멈출 수도 없었다. 지금이야 숨기고 있던 일들을 그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일 테지만 이성이 돌아오면 어떻게 나올지 장담할 수 없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돼.’

 

 “이젠 그 약속도 끝이야. 계약은 이미 끝났으니 약속한 대로 이 집은 그냥 두지. 하지만 회사는 그만두도록 해. 안 그러면 오늘 일은 조용히 넘어가지 않을 테니까.”

 “조용히 넘어가지 않으면 어쩔껀데? 고소라도 하게? 큭큭.”

 

 갑자기 큰 소리로 웃는 은아를 보며 현준은 조용히 신발의 위치를 확인했다.

 

 “하하하. 내가 비서실에 오기 전 어디서 근무했는지 잊은 건 아니지? 나도 마음만 먹으면 오늘 일을 퍼트려서 널 곤란하게 만들 수도 있어. 친구이자 여직원에게 성적 욕구를 품고 집까지 찾아온 그룹 사장 이야기는 어때?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숨기고 싶던 치부와 오랫동안 갈망하던 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한 은아는 분노와 수치심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현준이 그녈 밀어내지만 않았다면 그런 놈들과 엮일 일도 없었을 거란 생각에 당황과 분노를 오가던 마음은 그의 경고에 폭발하듯 불타올랐다.

 

 ‘가만두지 않을 거야. 내가 가질 수 없다면 아무도 가질 수 없게 만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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