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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천사를 위하여
작가 : 그라시아스
작품등록일 : 2019.9.6

운명의 실로 이어진 천사 후보생 동진과 은수. 힘겨운 인간의 삶을 통해 측은지심을 깨달은 그들이 바라보게 된 또다른 세상. 그 곳을 지키기 위한 천사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22화. 싸늘하고 따스한
작성일 : 19-10-31 09:18     조회 : 25     추천 : 0     분량 : 5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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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쏟아지는 비를 고스란히 받아내며 그녀와 산이가 그의 전동 휠체어를 밀고 벗어난 힘들었던 날의 다음, 여느날과 다름 없이 그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같은 시간 좀머 씨처럼 우직하게 구둣방을 열었다.

 ​

 

 

 온갖 고민으로 잠 이루지 못한 채 바닷바람을 그대로 맞은 피곤한 몸에는 감기 기운이 조금 있었으나 혹시나 하는 마음이 온통 불편하여 나와 보지 않을 수 없었다.

 ​

 

 

 혼절했던 그녀의 단호하고 올곧은 눈빛이 그의 마음에 새겨져서 또다시 자신을 찾아올 것이란 예감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

 

 

 더욱이 힘없이 인형처럼 굳어 쓰러졌던 그녀의 맞잡았던 차가운 손등의 감촉이 서리가 되어 심장에 박히어 그 느낌을 아직도 느끼고 있는 터라, 아픈 몸을 이끌고 산이와 함께 자신을 찾아 무거운 전동 휠체어를 밀고 빗속을 걸었던 그녀의 상태가 마음 깊이 걱정스러워 미열이 흐르는 자신의 몸 따위는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

 

 

 도대체 성하지 않은 사람이 뭐 볼 것 있다고 찾아오나 싶어 걱정과 짜증 그리고 자신에 대한 원망이 가득 일었다.

 ​

 

 

 그러나 생각과 달리 막상 그녀가 자신의 눈앞에 파랗게 변한 입술과 창백해진 얼굴로 나타나자, 그는 이질적으로 반짝이는 그녀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떨구고는 수선 중인 구두에만 집중하는 척을 하며, 신경쓰지 않으려 노력하는 중이었다.

 ​

 ​

 그녀에게서 향기를 품은 시원한 바람이 자신을 향해 불어오는 착각과 함께 핏기가 사라져 파래진 자그마한 입술 너머 들려오는 흥얼거리는 노래 소리는 그의 마음을 흔들기 충분했기에 관심이 없는 모습을 무시한 채, 이미 그의 심장은 아름다운 그녀의 목소리를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

 

 

 "멀어져 가는 저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난 아직도 이 순간을 이별이라 하지 않겠네. 달콤했었지 그 수많았던 추억 속에서 흠뻑 젖은 두 마음을 우린 어떻게 잊을까. 아 다시 올거야 너는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아 나의 곁으로 다시 돌아 올거야. 그러나 그 시절에 너를 또 만나서 사랑할 수 있을까. 흐르는 그 세월에 나는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려나."

 ​

 

 

 그녀의 흥얼거리는 노래, 슬픈 인연이 꼭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온통 가슴이 아려와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것을 티내지 않으려 마른 침 한번 삼키며 바라보고 싶은 욕구를 억지로 참고는 여전히 숙인 고개를 들지 않은 채, 감정을 싣지 않고 말했다.

 ​

 ​

 "가십시오. 왜 마트도 안 가십니까?"

 ​

 ​

 감사하고 걱정된 마음. 그녀에 대한 불만은 조금도 없는 그의 마음과 달리 그의 마른 입을 통해 나온 소리는 건조하고 퉁명스러웠다.

 ​

 

 

 ***

 ​

 

 

 볼멘소리 가득한 그의 음성에 벌 받는 아이의 눈을 하고도 그녀는 여전히 그의 구둣방에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

 ​

 오히려 그녀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는 그에게 온 마음으로 미안하여 좀 더 몸을 가까이 기울여 물었다.

 ​

 

 

 "저 싫으세요?"

 ​

 

 

 도발적 물음.

 ​

 ​

 그녀의 물음에 그로서는 저항하기 힘든 신비로운 향기가 담겨있었다.

 ​

 

 

 그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여전히 떨 듯이 고개를 들자 그녀의 파래진 입꼬리가 살포시 올라갔다.

 ​

 

 

 "그거 보십시오. 저 좋아하면서. 왜 자꾸 나가라고 하세요? 저를 그…,"

 ​

 

 

 말이 채 끝나기 전에 갑자기 흐려지는 그녀의 시야.

 ​

 ​

 그의 말 소리가 아득히 멀리 들리는 가운데 흐려진 시야에 놀라 주변을 둘러보던 그녀는 구둣방 유리창에 붙은 구두수선 글자 사이로 구름이 갈라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

 

 

 구름이 갈라지는 그곳, 그 구름 사이로 커다란 나무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몇 번의 깜박임 후, 맑아진 시야 속에서 선명해진 나무에 방울방울 빛나는 무언가가 매달려 있는 것도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

 

 

 ‘왜? 지금 비현실적인 하늘 위, 그 나무가 보이는 건지.’

 

 그저 눈만 비비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보는 그녀였다.

 ​

 

 

 그 순간 가슴 속 나약하게 떨리는 심장 쪽으로 무시무시한 싸늘함이 갑자기 파고들면서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

 

 

 답답하고 좁은 구둣방엔 오래된 선풍기 하나만이 덜덜거리며 돌고 있어 외부보다 열기가 높게 쌓여 있기에 그녀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냉기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

 

 

 분명 이 찜통 같은 구둣방 안의 열기에 온몸이 땀으로 가득하것만, 뼛속까지 아리는 한기에 몸을 떠는 자신의 상태가 이해되지 않아 다시 자신의 시선을 피해 구두 수선에만 여념 없는 그를 불러 보았다.

 ​

 ​

 ***

 ​

 ​

 "동진 씨, 저기 춥지 않으세요?"

 ​

 ​

 그는 두려운 눈길로 떨고 있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그녀의 티셔츠 사이사이 젖어있는 땀을 힐끗거리더니 걱정어린 시선을 치우면서 자신의 일에 몰두하려는 양 고개를 숙이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

 

 

 “이 더위에 추울 리가 없죠. 은수 씨 이마에 흐르는 땀이 여기가 얼마나 더운지를 알려주지 않습니까? 아직도 은수 씨 몸이 상해 있는 것은 아닌지. 이만 돌아가 쉬세요. 그리고 병원에도 가 보시고요.”

 ​

 

 

 그의 망치질 소리가 그 조그마한 구둣방을 울리고 있었다.

 ​

 

 

 쾅 쾅, 그의 마음을 굳건하게 닫아버리려는 소리에 그녀는 말없이 그저 그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

 ​

 아무 소리 없는 궁금함에 숙인 고개를 살짝 들어 힐끗 바라보던 동진은 창백하면서 빛나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순간 놀라 손을 뻗어 그녀의 손등에 살며시 손끝을 대보았다.

 ​

 

 

 어제 이후로 이상하게 그녀에게서 이질적이며 낯선 느낌이 드는 그였다.

 ​

 

 

 원래도 향기어린 사람이었으나, 이전보다 더 짙은 향기와 함께 묘하게 밝은 빛이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

 

 

 손에서 느껴지는 차가움 역시 두렵고 낯설어 그는 자신의 눈앞 그녀에게서 걱정스러운 시선을 감히 치우지 못하고 있었다.

 ​

 

 

 ***

 ​

 

 

 그녀 역시 자신의 몸이 뭔가 달라짐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점점 심해지는 한기와 더불어 온통 저린 손과 발이 꿈속에서 자신을 향해 슬픈 눈길로 말하던 천사의 걱정이 이젠 현실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들었다.

 ​

 

 

 자신의 손등에 손끝을 대보며 걱정어린 눈빛을 담아 바라보는 그의 마음에 서서히 슬퍼지면서 그와의 이별에 벌써부터 마음 아픈 그녀였다.

 ​

 

 

 자신을 향한 순수한 걱정이 그의 손을 타고 손등으로 흘러내리자, 담담하게 바라보던 그녀의 눈에서 두려움과 아쉬움이 방울방울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

 ​

 

 “은수 씨, 몸이 너무 차요. 지금 이 상태로 여기 계시면 안 되세요. 저와 병원에 함께 가요.”

 ​

 ​

 

 너무도 시린 한기에 놀라며 다급히 그녀의 볼에 손을 올리던 그가 재촉했다.

 ​

 

 그녀의 손등에 올린 손을 타고 흐른 한기가 그의 몸까지 들어와 심장에 강한 충격을 주었던 모양이었는지, 놀란 눈으로 그는 들고 있던 망치마저 내려놓은 채, 걱정을 넘은 그녀의 안위가 두려운 마음으로 방울방울 떨어지는 그녀의 눈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

 ​

 생각 이상으로 심각한 그녀의 상태.

 ​

 ​

 그는 내려앉은 심장을 겨우 달래면서 놀라버린 정신을 차리고 함께 병원 가기를 재촉했다.

 ​

 ​

 

 "괜찮아요. 지금은 당신 이외에 그 누구도 싫습니다."

 ​

 

 ​

 거부하는 그녀의 입술은 처음보다 더욱더 파래지고 있었다.

 ​

 ​

 충격이었다.

 ​

 ​

 그의 두려움 가득해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이 담긴 시선의 무게가 느껴지자, 그녀는 더욱더 눈물을 흘리면서 슬픈 눈길을 치우지 않고 있었다.

 ​

 

 

 그리고는 침 한번 삼키더니 도리어 담담한 말투로 자신이 겪은 말도 안 되고 이해도 할 수 없는 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

 ​

 "그날이요. 동진 씨. 당신을 찾아 울며 앉아있던 벤치에서 쓰러지던 날. 꿈에서 천사가 나타났어요. 저에게 당신과의 만남은 축복이라 하면서 이제는 천사로 돌아가야 한대요. 그런데, 동진 씨. 온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하고 그 누구의 반대에도 용기 있게 대처할 만큼 저는 지금이 좋은데 그 천사는 절 죽이려고 해요. 인간의 허물을 벗고 천사가 되어야 한다면서 슬프게 울며 절 태워갈 배를 준비하러 간다더군요. 거부할 수도 없대요. 그 꿈이 생생했지만, 꿈일 뿐 개의치 않으려 했어요. 그런데. 이 미칠듯하게 더운 폭염에 저는 왜 이해할 수 없는 한기로 뼛속까지 시릴까요? 손이 저리고 발이 얼얼해서 그 꿈이 꼭 사실 같아요."

 ​

 

 

 말도 안 되는 그녀의 말.

 ​

 

 

 하지만, 손끝은 이미 생기를 잃고 그녀의 말을 정당화하고 있었기에 그는 당황스런 시선으로 눈물과 하얗다 못해 서늘한 그녀의 손을 번갈아 바라만 보고 있었다.

 ​

 ​

 "그런데 동진 씨."

 ​

 ​

 그는 어느덧 숙였던 시선을 들어 떨리는 말과 함께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얼굴을 황당하고 아프게 바라보았다.

 ​

 

 ​

 "천사는 이 세상이 지옥이고, 절 여기서 구해주겠다는데 전 이제 여기서 당신과 알콩달콩 살고 싶어요. 당신과 함께 같은 침대에서 눈뜨고, 같은 식탁에 앉아 밥먹으며 수다떨다가 정신없이 산이를 학교로 보내고 나면 저는 마트로 당신은 구둣방으로 출근하면서 통화버튼 눌러 아쉽게 끊었던 수다를 마저 하고 싶어요. 그리고 오렌지 불빛이 길게 바닥에 드리우면 절 마중나온 당신의 팔을 잡고 산이가 있는 엄마 집으로 가는 길이 참 행복할 거같아요. 산이의 손을 잡고 도착한 우리 집에서. 이제 자야지. 산아. 이런 말하며 서로에게 보내는 야릇한 시선도 느끼고 싶어요. 산이가 자는동안, 당신의 품에 안겨서 절 감싸고 있던 모든 것을 다 벗은 채, 오롯이 당신의 체온을 입고 싶어요. 전 그렇게 하고 싶은데 온 마음으로 이곳에 살고 싶은데 천사는 이곳이 지옥이라 말하며 절 죽이러 하고 있네요. 동진 씨가 있으니 행복하고 제 마음은 이렇게 당신과의 미래로 가득차 있는데 꿈 속의 천사는 왜 여기가 지옥이라며 절 데려가려 할까요? 동진 씨 사랑해요. 이 차가워진 손 끝이 무서워서 온 몸이 떨리고 소름이 돋아 꿈 속의 천사가 사실이 아님을 부정하고 싶을 정도로 전 당신을 사랑합니다."

 ​

 

 

 그녀는 가는 호흡과 함께 자신 혼자서는 이해도 감당도 못할 생각을 이야기로 만들어 그에게 건넸고 그는 이 터무니 없는 그녀의 이야기에 달리 할 말을 찾지 못해 그저 멍하니 방울져 떨어지는 그녀의 눈물에만 시선을 고정하였다.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 턱 끝에 맺히다 바닥에 떨어진 눈물은 작은 얼룩을 잠깐 남기고는 금새 사라져 버렸다.

 

 구둣방의 열기가 바닥에 떨어진 그녀의 눈물을 그렇게 빨리 증발시키리라 생각되지 않아 의아해진 그가 고개를 들자 그녀의 파래진 입술 사이로 한기를 담은 입김이 연기처럼 피어 나오다 어느새 안개가 되어 흩날리더니 사라지는 것이 시선에 들어왔다.

 

 그제야 그도 그녀의 말을 모두 이해하진 못하였으나 그녀의 몸이 생각보다 더 심각함을 조금씩 깨닫고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그와의 이별을 맞이할 수 없어 절망을 담아 자신의 사정을 그가 이해해 주길 바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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