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우가 도착한 곳은 유나 집 앞.
대문을 열고 나오는 유나가 보이고 생각에 잠겨 있는 건우를 보고 조용히 차에 올라탄다. 아직 유나가 자리에 앉은 사실을 모르고 앉아있는 건우.
결국 참다못한 유나가 볼에 가벼운 뽀뽀를 한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리는 건우.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이 시간에 나를?"
"근처에 약속이 있다가 보고 싶어서"
"그래 약속 빼고 보고 싶어서 달려 왔다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보고 싶어서 달려 왔지"
"엎드려 절 받기다 뭐!"
"어디로 갈까?"
"오늘은 연우씨 마음대로..."
"좋아 간다"
속도를 내고 달리는 연우의 얼굴에서 왠지 모르는 슬픔이 보였다.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웃어 보이지만 연우의 얼굴에서 느껴진 슬픔의 존재가 뭔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다.
"비도 오지 않는데 연우씨 얼굴엔 먹구름만 잔뜩 끼여있어 왜..."
"그래 난 언제나 맑음인데..."
"아니 오늘은 먹구름이야 금방 비라도 내릴 것 같아!"
"그게... 사실은..."
"왜 무슨 일 있었어 나 만나기 전에..."
"이슬비라고 기억나?"
"이슬비? 어제 우리 둘이 같이 쓰고 가던 우산을 빼앗아 바닥에 던져버린 그 당당한 여학생"
"그랬나? 그땐 내가 제정신이 아니어서 그 기억까진 모르겠어"
"그런데 그 여학생은 왜?"
"오늘 내 동생이 어떤 여학생을 만나게 해줬는데 그 여학생이 이슬비였어"
"그래? 이건 또 무슨 장난이래..."
"그런데 건우가 왜 나와 그 여학생을 만나게 해줬는지 모르겠어"
"우리 연우씨 정도면 모든 여자들이 만나고 싶어하지"
"아까 잠깐 들었는데 나에게 무슨 말을 듣고 싶다고 그랬던 것 같은데..."
"뻔하지 여자친구는 있냐? 나는 어떠냐? 뭐 그런 것 아니겠어"
"그렇겠지 그 나이 때는 다 그러니까"
"신경쓰지 말자 우리 둘만의 데이트니까?"
교외로 나와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이야기도 나누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저녁까지 먹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유나를 데려다 주고 집으로 가는 길 이슬비 생각을 한다. 계속...
집으로 들어서니 건우가 서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씩 웃으며 이층으로 올라간다. 뒤따라 올라가는 건우 방안까지 들어가 앉는다.
"무슨 할 말 있어?"
"그 여학생 기억 안 나?"
"도대체 무슨 기억!"
"초등학교 6년 동안 난 형의 우산을 쓰고 집으로 와 본 기억이 없어"
"또 초등학교 6년의 역사를 이야기 하는 거야?"
"내 우산 뺏어서 어디 가나 했더니 내가 아닌 어떤 여자아이를 씌워주더라"
"꼬마 여자아이..."
"그래 그 여자아이가 바로 아까 카페에서 만난 그 여학생이야!"
"뭐!..."
"이슬비... 이슬비라고... 이.슬.비 그래도 기억이 안 나?"
"이슬비... 이슬비..."
"도대체 둘 사이에 6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아니 알고 싶지 않지만 슬비가 만나고 싶어 하니까 형과 오늘 만나게 해준거야!"
"도대체 날 왜 만나고 싶어 하는지 물어 봤어"
"무슨 할 말이 있데... 꼭 듣고 싶은 말이 있데..."
"난 기억이 없어"
"그래 그럼 내일 만나서 슬비한테 말할게 네가 알고 있는 초등학교 6년간 너의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는 연우오빠는 없다고..."
"그래 줄래 부탁이다 제발!"
"쉬어"
"한가지 물어볼게 있어"
"뭔데?"
"그 이슬비라는 여학생 너에게 어떤 존재야?"
"어떤 존재라니..."
"사랑이냐? 우정이냐? 아까 보니까 둘이 안고 있던데..."
"울고 있어서 안아준것 뿐이야!"
"그렇구나"
"그리고 내가 사랑하고 있어 혼자서 짝사랑"
"짝사랑? 그 여학생도 널 좋아하는 것 같던데?"
"아직... 초등학교 6년의 도연우라는 남자를 좋아하고 있어 바보같이..."
그 말을 남기고 나가는 건우.
그 말을 들은 연우는 침대에 털썩 앉는다. 건우가 마지막에 했던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지난 잊고 싶은 기억을 다시 생각해내야 하는 고통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낀 연우는 힘들었다. 슬비와의 기억을 찾기 위해서는 3년 전의 일도 같이 떠올라야 하는 아픔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