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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안녕하세요, 검은머리 아가씨
작가 : 김뎃뎅
작품등록일 : 2019.3.18

교역이 끊긴 동 제국의 사람들을 노예로 부리는 서 제국의 티보치나 백작가 둘째 딸로 입양된 로사의 이야기.

유일하게 동방문화를 배울 수 있는 제국학교에 입학한 로사. 모범생으로 학교 생활을 하지만 언제 들킬지 모르는 본 모습 때문에 속은 초조하다.

하지만 곁엔 본래의 모습까지 아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감추지마, 로사. 머리색이 검든 아니든 눈이 검은 색이든 아니든 로사 넌 예뻐. 그러니까 숨기지마. 네가 예쁜 건 다른 뭐도 아닌 로사라서 예쁜 거야."

조금씩 자존감을 회복하는 로사에게 내려온 황제의 명.

"동방과의 교역을 위해 네 스승이 들고 도망간 동 제국 시황제의 인장을 찾아오라. "

[아카데미물/ 여주성장물/ 동서양 혼합 배경/ 일편단심 남주/ 세계최강 든든한 언니/ 유일하게 서방에서 동양 문화를 공부한 동양인/ 스승을 찾는 과정에서 만난 진짜 가족]


매주 월화수목 한편씩 차근차근 업로드 예정입니다.

 
4. 세이지 모닝라이트(3)
작성일 : 19-04-08 10:39     조회 : 28     추천 : 1     분량 : 4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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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가 소란스러웠다.

 

 웅성웅성하는 말소리가 아침부터 귓가에 들렸다.

 

 뭔가 온다고 했는데, 아니, 누가 온다는 이야기였던가.

 

 로사가 별 흥미 없단 얼굴로 교과서를 챙겨 들었다.

 

 수업이 끝난 교실엔 남아있는 학생들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교실을 나온 로사는 문을 잠그고 열쇠를 돌려주려 담당 교사의 방으로 향했다.

 

 로사의 발걸음에 맞춰 열쇠 더미가 짤랑짤랑 춤을 췄다.

 

 해가 질 무렵이어서, 하늘색이 짙었다. 그라그포드 제국학교는 작은 성처럼 생겼다.

 

 네모난 모양으로 생긴 건물의 앞은 높았고 뒤 건물은 작았다.

 

 앞의 큰 건물이 학생들을 위한 건물이었고 회랑을 걸으면 나오는 작은 건물은 교사들을 위한 곳으로, 모든 교사와 학교 관리인의 방이 있었다.

 

 그 뒤편에 학생들의 기숙사가 세로로 높게 두 채. 각각 남학생들과 여학생들이 생활함에 불편함이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

 

 딸랑.

 

 교사들의 건물에 들어서는 로사의 귀에 문에 달아놓은 종이 달랑달랑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기분 좋은 음이었다.

 

 입구에 있는 작은 홀을 지나 계단을 올랐다. 담당 교사의 방이 2층이었던 걸로 기억했다.

 

 붉은 벨벳 카펫을 밟는 느낌이 기분 좋았다.

 

 유서 있는 학교답게 복도에 장식된 오래된 물건들을 보는 것도 좋았다. 로사는 자박자박 앞으로 나아갔다.

 

 “어?”

 

 담당 교사의 방이 잠겨있었다.

 

 노크해도 답이 없기에 손잡이를 돌려봤는데, 덜컥거리며 문고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그제야 로사는 문 가운데 적힌 외출한다는 글을 눈치챌 수 있었다.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했던 교사가 없자 손에 든 열쇠 꾸러미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얼른 돌려주고 박물관으로 갈 예정이었는데…….

 

 

 “어떡하지.”

 

 

 로사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옆방에 다른 교사가 있다면 부탁하고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단체로 어딜 갔는지 다른 방도 모두 비어있어, 로사는 열쇠를 만지작거리며 눈을 굴렸다.

 

 하는 수 없이 가방에서 종이를 꺼내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메모를 남기려는 순간, 2층 맨 끝 방이 열리며 사람이 나왔다.

 

 선생님인가 싶어 로사는 반색하며 돌아봤다.

 

 

 “어…….”

 

 

 학생이었다.

 

 2층 맨 끝 방인 총장실에서 나온 학생이 빨간 벨벳 카펫을 부드럽게 밟으며 로사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발걸음 소리를 따라 로사의 시선이 이동했다.

 

 점점 커지는 사람의 형상에 로사는 시선을 뗄 줄 몰랐다.

 

 상당한 장신, 바른 걸음걸이, 자신의 체형에 맞게 맞춘 교복. 재킷의 노란색 라인.

 

 은은한 해질녘 빛에 반짝이는 머리칼. 성격을 알려주는 것 같은 구불구불한 금발.

 

 소년과 성인 사이의 상큼함과 성숙함의 사이.

 

 살짝 그을린 피부. 보라색 눈.

 

 

 “……!”

 

 

 눈이 마주쳤다.

 

 로사가 깜짝 놀라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무의식중에 일어난 행동이었다.

 

 발을 옮기고 나서야 피한다는 인상을 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싶었다. 너무 뻣뻣하지 않게.

 

 로사는 그가 지나갈 수 있게 창문 쪽으로 몸을 옮겼다.

 

 

 “여기서 뭐 해요?”

 

 

 하지만 그는 지나가지 않았다.

 

 로사 앞에 서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로사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보석 같은 보라색 눈동자가 로사를 부드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열쇠를 가져다드리려고 하는데, 안 계셔서요.”

 

 “1학년, 로사 티보치나?”

 

 

 그가 물었다.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그를 보며 로사가 놀란 표정을 짓자, 그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께를 가리켰다.

 

 아, 로사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재킷 위에 이름이 수놓아져 있었다.

 

 학생들의 교복에는 교내에 있을 때 서로의 이름이 보이도록 마법이 걸려있었다.

 

 동시에 학생이 교문을 빠져나가는 순간, 이름이 지워졌다.

 

 과거에는 마법 없이 직접 수를 놓았다가, 이름을 보고 범죄의 표적이 되는 사례가 있어, 그 이후 방침을 바꿨다고 입학식 때 들었었다.

 

 

 “세이지 모닝라이트……선배님?”

 

 

 로사가 세이지가 가리킨 이름표를 읽으며 물었다.

 

 재킷에 노란색이면 분명 졸업반이니, 선배가 맞으리라. 로사의 말에 세이지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1학년이면 아직 모르겠네요. 이 선생님 자주 자리를 비워서……. 여기, 눌러봐요.”

 

 

 세이지가 교사의 방 앞에서 로사에게 손짓했다.

 

 로사는 멀뚱한 얼굴로 세이지가 시키는 대로 다가갔다. 세이지가 교사의 외출 메모를 떼어내자, 그곳엔 작은 서랍 함이 있었다.

 

 이런 곳에 숨겨진 공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로사가 놀라며 세이지를 올려다봤다.

 

 세이지가 손짓으로 로사에게 서랍을 두 번 톡톡 건드리라 표현했다.

 

 약간 어색하게 로사가 그 모습을 따라 서랍을 톡톡 두드렸다.

 

 그러자 철컥 소리가 나더니 작은 서랍이 앞으로 툭 튀어나왔다.

 

 

 “여기에 넣으면 되나요?”

 

 

 로사가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세이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넣고 다시 두 번 두드리면 잠길 거예요.”

 

 

 세이지의 말에 로사가 서랍 속으로 열쇠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서랍을 닫으려는데, 뭔가 생각난 듯 세이지를 돌아봤다.

 

 

 “이렇게 쉽게 열리는 거면 누가 훔쳐가지 않을까요?”

 

 

 걱정스럽게 말하는 로사를 보며 세이지가 괜찮으니 일단 넣어보라 했다.

 

 미심쩍은 얼굴로 로사는 세이지가 이른 대로 열쇠를 넣고 서랍을 닫은 후 두 번 두드렸다.

 

 그러자 세이지가 다시 서랍을 두 번 두드렸고, 또 서랍이 열렸다. 아무것도 없었다.

 

 

 “어?”

 

 

 신기한 마술장치를 본 아이 마냥 로사가 서랍 안을 꼼꼼히 살폈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어리둥절해 하는 로사를 보며 세이지가 다시 웃었다.

 

 

 “이게 선생님의주머니에 연결이 되어있어서 넣으면 바로 그쪽으로 들어간다나 봐요.”

 

 “말로만 들었지 이런 게 진짜 있는 줄은 몰랐어요.”

 

 

 로사가 서랍에서 떨어지며 말했다.

 

 

 “버지니아가 보여주지 않던가요?”

 

 

 세이지가 서랍을 닫고 다시 메모로 덮으며 말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서 언니의 이름이 나오자 로사는 또 한 번 놀랐다.

 

 

 “언니를 아세요?”

 

 “이 학교에서 버지니아를 모르면 안 되죠. 학교를 얼마나 주름잡았는데.”

 

 

 로사가 떨떠름하게 웃었다.

 

 입학한 이래 누구를 만나든 언니가 대단했다는 이야기를 먼저 꺼내니, 조금씩 부담감이 생겼다.

 

 누구의 동생이라며 수군거리는 목소리를 듣는 게 불편했다.

 

 세이지가 로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정식으로 인사하죠. 세이지 모닝라이트입니다. 버지니아완 입학 때부터 친하게 지냈어요. 살몬과도 친하고요.

 

 아, 버지니아가 학생회장인 건 알고 있죠? 내가 부회장이어서 친하게 됐어요.”

 

 

 언니를 언급하는 순간 표정이 굳었던 로사였지만,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가 진짜 친분이 있었다고 이야기 하자 마음이 좀 누그러졌다.

 

 언니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와서 버지니아에 대해 말을 하고 싶어 했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로사가 세이지의 손을 맞잡았다.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로사 티보치나입니다.”

 

 

 로사의 자기소개를 들은 세이지가 함박웃음을 보이며, 로사가 맞잡은 손을 부드럽게 그러쥐었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버지니아에게 말 많이 들었어요. 다음에 살몬이랑…….”

 

 “여기 있네! 세이지!”

 

 

 세이지가 로사에게 말을 하는데, 재킷에 세이지와 같은 노란색 줄이 선명한 남학생이 그들에게로 달려왔다.

 

 그는 엄청 반가운 듯, 훌쩍 뛰어 팔로 세이지의 목을 감쌌다.

 

 그 바람에 세이지가 로사의 손을 놓쳤는데, 따뜻했던 그의 손이 쑥 빠지자 로사는 손이 시려 두 손을 모아 잡았다.

 

 이윽고 계단을 따라,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노란색 졸업반을 필두로 파란색인 3학년이 세이지에게로 다가왔다.

 

 세이지가 유학 간 동안 함께 학교에 있지 않은 초록색인 2학년과 빨간색인 1학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다 모인 것 같았다.

 

 엄청난 숫자에 놀란 로사가 사람들을 피해 벽으로 붙었다.

 

 그걸 본 세이지가 로사를 잡아주려 했지만, 사람 수에 밀려 손이 닿지 않았다.

 

 갑자기 세이지의 몸이 쑥 솟아올랐다.

 

 아래에서 마법을 쓸 줄 아는 학생이 세이지를 공중에 둥둥 띄우느라 손을 움직이는 게 보였다.

 

 

 “뭐 하는 짓이야!”

 

 

 갑자기 집에서의 독수리 놀이가 떠오른 세이지가 기겁하며 비명을 질렀다.

 

 

 “이게 다 같이 움직이지 편하니까.”

 

 

 마법 전공 학생이 무심하게 말했다. 당황한 세이지가 버둥거리다 황급히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로사가 보는 앞에서 이런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왜 집에서나 자기를 날리지 못해서 안달이냔 말이다!

 

 내리라고 아우성을 지르던 세이지가 화들짝 놀라 로사를 돌아봤다.

 

 이런 모습에 혐오감을 느끼면 어쩌나.

 

 로사는, 이 분위기에 상당히 당황한 것 같아보였다.

 

 다행히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자세히 보진 않은 모양이다. 세이지가 아주 잠깐 안도했다.

 

 그도 잠시, “알겠어, 내려줄게.” 라는 말이 들리더니 덩치가 거대한 학생 중 하나가 세이지를 어깨에 걸치고 그 주위를 학생들이 에워싸서 한 무더기로 이동을 시작했다.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모습에 로사는 여전히 벽에 붙어 서서 멀뚱하게 보기만 했다.

 

 신기하면서 웃긴 광경이었다.

 

 멀쩡한 남자가 보쌈 당한 상황.

 

 이 상황이 황당한 듯 정신을 빼고 있던 세이지가 정신을 차리고, 점점 멀어지는 로사의 모습에 당황한 듯, 서둘러 아까 하려다 만 말을 내뱉었다.

 

 

 “로사……!”

 

 

 세이지의 부름에 로사가 세이지를 바라봤다.

 

 다급한 표정으로 세이지가 유일하게 자유로운 손을 휘저으며 열심히 자신의 의사를 전했다.

 

 

 “다음에 살몬이랑……!”

 

 

 학생들 무리가 멀어진 만큼 그의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아니, 아마 세이지 혼자였다면 들렸을 음성이지만, 많은 학생들이 세이지에게 하고 싶은 말을 계속 하고 있어서 말이 뒤섞여 들렸다.

 

 

 “같이……!”

 

 

 세이지를 들쳐 맨 학생 무리가 복도 끝에 다다르자, 세이지가 서둘러 마지막 말을 내질렀다.

 

 

 “ㄸ…ㅓ……ㄱ……먹어요!”

 

 

 그 말을 끝으로 학생 무리는 로사가 있는 복도에서 모습을 감췄다.

 

 건물 밖에서 세이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건물을 빠져나간 학생들이 우르르 기숙사 쪽으로 향하는 게 보였다.

 

 로사는 창문으로 버둥거리는 세이지를 내려다봤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세이지의 말을 되뇌었다.

 

 

 “다음에 살몬이랑 같이…….”

 

 

 로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똥 먹어요?”

 

 

 이상한 사람이었다.

 

 로사가 고개를 저었다.

 

 좋았던 첫인상이 단박에 무너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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