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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기다림
작가 : joinB
작품등록일 : 2020.9.21

그가 사랑했던 조선의 푸른 하늘과 땅과 바람은 여전했다.
널 잃었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이른 걸음을 걸어가버릴 수밖에 없던 나는 아직도 여전했다.
널 떠났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세상은 우리의 사랑을 항상 다른 이름으로 가로막았다.
널 위한 것이라고 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다.
딱, 그만큼만 나는 너에게 상처주지 않으려 했다.
세상과 멀어진 지금, 멀어지려 하는 지금, 이제야 깨닫는다.
그게, 상처라는 걸.
너를 외롭게 했다는 것을...

나도 너도 기다린다.
사랑에 빠졌던 그 날의 사랑으로부터...

 
70. 마르지 않는 그리움
작성일 : 22-01-27 13:38     조회 : 59     추천 : 0     분량 : 9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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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시로 설치된 검안실. 그곳엔 죽은 성씨의 시신이 있었다. 시신을 담담히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 유아였다. 검안을 맡은 의원이 유아의 옆으로 다가왔다.

 

 “중전마마, 납시셨나이까?”

 “사인은?”

 “어의들의 말이 맞사옵니다.”

 “참인가?”

 “예.”

 “운이 없었다? 단지 그것뿐이다?”

 “송구하옵니다.”

 “수고했네. 곧 사가에서 장례준비를 하겠다고 올 걸세.”

 “잘 정리하겠나이다.”

 

 성씨의 소식은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대전으로 보고되었다.

 

 “죽다니! 성소용이 죽었단 말이냐?”

 “예, 전하. 금방 중궁전에서 연통을-”

 “언제?”

 “어제...”

 “뭐라?!”

 

 성은 즉시 유아에게로 갔다.

 

 “전하?”

 “성소용이 죽었다고?”

 “예.”

 “어제?”

 “예.”

 “헌데! 나에게 왜 이제야 알린 것이오?!”

 

 유아는 마치 성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덤덤했다.

 

 “모두 물러가있게.”

 

 단 둘만 남은 방 안. 성은 여전히 화가 나 있었다.

 

 “대체 왜 그 아이의 죽음을 숨긴 것이오?”

 “조사가 필요했습니다.”

 “심장이 멈췄다던데?”

 “정황이 너무 이상해서요. 아직 조사 중이니, 다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뱃속의 아이도?”

 “죽었습니다.”

 “그렇군...”

 

 성은 상당히 실망한 듯 보였다. 유아는 그 모습이 너무 슬펐다. 자신의 뱃속에 더 이상 자신의 핏줄이 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저 얼굴보다 더 실망한 얼굴을 보이겠다 싶었다. 때문에 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성은 그 표정으로 대답을 들었다는 듯, 유아에게 등을 돌렸다.

 

 ***

 

 성이 화를 내며 대전으로 돌아왔을 때, 그 자리엔 박귀인의 아버지인 이조판서 박철을 비롯한 대소신료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 파직을 당한 사람들이었다.

 

 “명을 즉시 이행하라는 명을 듣지 못하였는가?”

 

 박철이 눈을 부라리며 성을 쳐다보았다.

 

 “전하! 우리가 목숨을 걸고 허조대왕을 지켜냈습니다. 대왕의 명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전하가 어찌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정훈세자는 불효를 저지른 것이지, 정파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찌 선왕의 유지를 어기신단 말입니까!”

 “이보세요!”

 

 그때, 좌의정 채우겸이 나타났다.

 

 “정훈세자가 죄인이라면 전하 역시 죄인이 되옵니다. 비록 선왕이 그렇게 했다 하더라도, 잘못된 처분이 있다면 되돌리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정훈세자를 재평가 해야 하옵니다.”

 

 박철과 파직당한 신료들은 바닥에 엎드렸다.

 

 “선왕의 유훈을 지키지 않으시렵니까? 정말 불효자가 되려 하십니까? 막말을 지껄인 저 채우겸을 당장 파직하소서! 파직당하고 벌을 받을 것은 우리가 아니라, 채우겸입니다!”

 

 성은 눈을 감았다.

 

 “채우겸을 파직하소서!”

 “영남의 선비들이 만인소를 통해 쉴 새 없이 정훈세자의 권위를 복권하길 원하고 있사옵니다. 성균관의 유생들도 상소를 올렸나이다. 전하! 결자해지라 하였습니다. 선왕께서 풀지 못한 매듭이라면 응당 전하께서 푸셔야 하옵니다.”

 “주상전하를 불효자로 만들 셈이오! 어찌 전하의 치세에 먹칠을 하려 하는가!”

 “정신들 차리시오! 반성의 기미라도 보여야지. 염치도 없는가?”

 “뭐라?! 지금 말 다했소?”

 성은 미간을 찌푸렸다. 물론, 우겸의 뜻은 성의 뜻이기도 했다. 그 칼을 홍영목이 먼저 뽑았고, 우겸이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전쟁은 확률이 낮았다. 아직 성을 보필할 세력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만~. 그만하라. 모두 물러가라!”

 “전하!”

 “승지는 의금부에 명하여 당장 명을 시행하라 이르라!”

 “저언~하!!!”

 

 성의 두통이 다시 도졌다. 곁에 있던 차봉수가 걱정이 된 듯 다가왔다.

 

 “전하. 또 머리가 아프시옵니까?”

 “괜찮다.”

 “용안이 좋지 않으시옵니다.”

 “서재로 가자.”

 “예? 쉬시는 것이 어떠하시온 지.”

 “잠이 오겠느냐?”

 

 성은 자리를 떠났다. 그가 향한 곳은 그의 전용 사고였다. 봉수는 은밀히 뒤를 따르던 내관을 손짓해 불러 속삭였다.

 

 “중전마마를 모셔와.”

 “예? 금방 싸우셨는데...”

 “이틀째 침소에 들지 못하셨어. 이러다 일 난다.”

 “예, 어르신.”

 

 젊은 내관이 오기 전, 중궁전을 앞서 찾은 사람이 있었다. 도승지 홍영목의 동생, 홍미령이었다.

 

 “홍귀인. 무슨 일인가?”

 “마마. 궐에 기이한 소문이 돌고 있어, 고할까 하여 왔나이다.”

 “무슨 소문인가?”

 “중전마마께오서 거짓회임을 하셨다는...?”

 “뭐라?”

 

 중전이 궁중에서 맡은 바는 많았지만, 애초에 후사를 생산하지 못하는 몸으로 중궁전의 주인이 되었다는 것은 대역죄와 맞물릴 수 있었다. 어떻게 몰고 가느냐에 따라, 폐비가 될 수도 있었다. 왕실을 기만한 중죄였다.

 

 “누가 그런 소문을 퍼트린단 말인가?”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깜~짝! 놀랐지 뭡니까? 듣기 민망해서, 원.”

 

 미령은 불경한 말을 하면서도, 미소를 띠었다. 위로인지, 안도인지 모를 말투로 유아를 자극했다. 유아가 궐 생활을 하면서 익힌 것이 여럿 있었다. 그 중 하나가 표정을 숨기는 것이었다. 연극, 연기. 그것이 때론 성이 하는 일을 숨기기에도 적절했고, 성을 지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그래서, 자네는 그런 불경한 말을 입에 올리는 자들을 내버려뒀단 말인가?”

 “예?”

 

 미령은 피식 웃다가 되레 당했다.

 

 “감히 그런 말을 옮기는 자를 가만히 뒀단 말인가!”

 “아, 그것이... 저도 멀리서 듣기만 해서-”

 “듣기만 했다?”

 

 유아는 연실을 쳐다보았다.

 

 “김상궁. 이번 후궁 교육은 누가 맡았는가?! 대체 누가 맡았기에 귀인 둘이 죄다 엉망이냔 말일세.”

 

 연실은 일부러 매우 큰 죄를 지은 듯 과하게 행동했다. 벌벌 떨며 바닥에 엎드렸다.

 

 “송구하옵니다, 중전마마. 이번 귀인들의 교육을 맡은 궁인은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나이다.”

 “아니다. 내가 직접 관리하겠다. 모든 궁인들이 보는 앞에서 엄히 다스릴 것이다. 준비하라.”

 “마마! 그것만은-”

 “준비하라!”

 “예, 마마! 명 받잡겠나이다.”

 

 미령은 어리둥절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모든 궁인들이 벌벌 떨었다. 대관절 어떤 것이 펼쳐질 예정이기에, 그녀가 붙인 폭탄의 심지는 빠른 속도로 불탔다. 미령은 즉시 윤희에게 달려갔다.

 

 “고모님! 고모님~!”

 “조심! 나비처럼 우아하게 움직이라 하지 않았느냐?”

 “중전이 궁인들을 모두 새벽에 모이라 했습니다.”

 “뭐라?!”

 

 윤희의 반응에 미령의 두려움은 더 커졌다.

 

 “심각한 것이옵니까?”

 “중전이 정말?”

 “대관절 무엇이옵니까? 대체 무엇이기에 이리들 벌벌 떨고 있는지...”

 “시구문으로 궁녀 몇이 나가는 것이지.”

 “예?!”

 

 시구문. 말 그대로 시체가 나가는 문. 궁인은 한번 들어오면 이곳의 귀신이 된다 했다. 그만큼 궐에 발을 들인 궁녀들은 나이가 들지 않고는 좀처럼 궐 밖을 나가지 않았다. 그런 운명의 궁녀가 죽어서 나간다는 것은 정말 큰일이 있을 때만 간혹 있었다. 나이든 궁녀들은 궁말이라는 곳에서 지냈기에, 나이가 들어 죽는다는 것도 맞지 않았다.

 

 “허면, 절 교육했던 궁녀들이 다 죽는 겁니까? 중전이 죄다 죽입니까?”

 “왜 널 교육한 궁녀들이 죽느냐? 중궁전에서 무슨 실수를 한 게야?”

 “아니... 그냥...”

 “어서 이실직고하지 못할까?!”

 “궐에 궁녀들이 중전이 본래 석녀라기에. 그걸 알려주려다가.”

 “놀리러 갔다가,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쯧쯧쯧... 어리석은지고.”

 “어찌하옵니까?”

 “석고대죄라도 하려느냐?”

 “석고대죄요?”

 “하기 싫으면 어쩔 수 없지. 박귀인도 버릇이 없더구나. 함께 석고대죄를 하거라. 그럼 그 궁녀들은 살 수 있겠지.”

 

 미령은 선뜻 답하지 못했다. 윤희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서책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깟 궁녀 때문에 홍귀인의 무릎이 상해서야 쓰나?”

 

 윤희는 눈꼬리를 살짝 올리며 미령을 쳐다보았다. 미령은 고민하는 듯 보였지만, 윤희의 말에 동조하는 것 같았다.

 

 “그렇..겠죠?”

 

 윤희는 피식 콧방귀를 뀌었다.

 

 “어디 보자고. 우리 중전이 궁녀에게 큰 벌을 주는 건 처음일 텐데.”

 “구경 가시려고요?”

 “내가? 내명부 수장의 일에 어르신이 나서면, 재미가 없지. 너나 구경 가 보거라.”

 “그래도 될까요?”

 “안될게 뭐야. 그리고 아마, 중전이 오라 할 텐데?”

 

 ***

 

 중궁전으로 대전의 내관이 도착했다.

 

 “중전마마. 대전내관이 뵙기를 청하옵니다.”

 “들라.”

 

 대전내관이 유아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무슨 일인가?”

 “상선영감께서 서둘러 마마께 청하라 하시어 왔습니다.”

 “상선이?”

 “전하께오서 이틀째 잠을 청하지 못하시옵니다. 하여, 서재로 급히 가주시면 아니 되옵니까?”

 “이틀이나?”

 “예. 요즘 더 잠을 이루지 못하시옵니다.”

 

 유아는 당장에 달려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이 없었다. 성에게 감추고 있는 비밀이, 서로에게 감추는 비밀이 너무 많아졌기에 떳떳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애써 외면했다.

 

 “귀인들도 있지 않은가?”

 “마마! 귀인 마마들의 처소에선 단 한숨도 주무시지 않았사옵니다.”

 

 그리고 생각이 났다.

 

 “성소용의 품에선, 주무셨지...”

 

 내관은 미안하고 민망한 듯 고개를 숙였다.

 

 “자네들이 하는 말을 들었네. 성소용을 내가 질투심에 죽였다지?”

 “아, 아니옵니다. 마마! 누가 그런 불경한 말을...”

 “혹... 전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실까?”

 “아니옵니다! 그런 소문은 절대 모르시옵니다.”

 “난 갈 수 없네. 오늘 일정도 많고, 새벽까지 깨어있어야 하네.”

 “마마!”

 “페데르선생을 찾으시게. 잠이 오는 약을 처방 해주실 게야.”

 “마마. 어찌 그러시옵니까?”

 “자신이 없어. 내가 간다고 그분이 내 품에서 잠이 드실 것 같지가 않아.”

 “마마...”

 “처방 받으시게. 오늘은 잠이 드셔야 하지 않겠나?”

 “예. 그럼, 소인은 이만 물러가겠나이다.”

 

 성의 개인 서재. 성은 백선생이 새로 들여보낸 서책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이상하리만큼 책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봉수가 곁에서 불편함을 느끼고는 물었다.

 

 “전하. 서책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옵니까?”

 “아니다. 이번에도 귀한 책들을 구했구나.”

 “헌데, 어찌 불편한 기색이시옵니까?”

 “그러게 말이다. 이 귀한 보물을 앞에 두고...”

 “저기... 중전마마께 가보심이-”

 “백선생에게 소설은 들이지 말라 하라. 나는 평생 이런 책을 읽어 본 적이 없으니.”

 “예...”

 

 성은 유아에 관한 것은 듣고 싶지 않았다. 잠시 외면하고 싶었다. 어느 순간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가 점점 궐 생활에 물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가 유아에게 원했던 것은 딱 하나 뿐이었다. 처음처럼, 그대로 남아주기를. 하지만 역시나 역부족이었다. 그럴수록 그것을 막지 못한 자신을 탓하게 되었다. 오늘도 그랬다.

 

 “성소용이 죽은 것이 병사가 맞느냐?”

 “예. 어의들이 모두 확인을 하였습니다.”

 “그래... 장례는 후하게 잘 치러주어라.”

 “중전마마께오서 이미 그리하라 하셨습니다.”

 “그렇구나...”

 

 성은 다시 새로운 책을 집어 들었다. 그가 평생 짚지 않았던 소설책이었다.

 

 “그대가 그립고, 그립다...?”

 

 ***

 

 새벽. 이제 막 자정을 지난 시각이었다. 조용하던 궐에 사부작거리는 발걸음 소리들이 떼로 들리기 시작했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궐에서 가장 안쪽에 위치한 한 공터였다. 중전의 자리와 두 후궁들의 자리, 그리고 상궁들이 앉을 자리가 깔려 있었다. 궐의 모든 궁녀들이 속속들이 자리를 잡고 앉고, 섰다. 빙 둘러, 앉은 그들의 가운데 공간은 오늘의 무대였다. 그리고 박귀인과 홍귀인, 두 후궁이 도착했다. 박귀인은 무슨 영문인지 여유로웠다. 마치, 이번이 처음이 아닌 것 같은 행동이었다.

 

 “중전마마는?”

 “아직.”

 

 감찰상궁은 매서운 눈썹을 가지고 있었다. 웃음기라고는 단 하나도 없는 얼굴로 후궁들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유아가 나타났다. 다소 굳은 표정이었다.

 

 “중전마마.”

 

 모든 궁인들이 일제히 일어나 유아를 맞이했다. 덩달아 박귀인과 홍귀인이 유아를 맞이했다. 유아가 자리에 앉고, 감찰상궁이 유아의 앞에 나섰다.

 

 “모든 궁녀들은 자리하였는가?”

 “예!”

 

 감찰상궁은 유아에게 몸을 돌려 고개를 숙였다.

 

 “시작하겠나이다.”

 “그리하라.”

 

 감찰상궁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렸다.

 

 “죄인을 들라하라!”

 

 감찰상궁의 말에 다른 감찰궁녀들에게 끌려오는 두 명의 상궁과 다섯의 나인들. 그들이 마당 한 가운데 무릎이 꿀린 채 떨고 있었다.

 

 “죄가 무엇이냐?”

 “귀, 귀인들의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은 죄이옵니다.”

 “죄가 무엇이냐?!”

 “궁인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죄이옵니다!”

 

 유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오른쪽의 상궁을 보며 말했다.

 

 “너는, 누구의 교육을 맡았느냐?”

 “박귀인마마의 교육을 맡았습니다.”

 “무슨 교육을 어떻게 했느냐?”

 “정해진 대로... 교육을...”

 “충실히 하였다? 숙지가 될 때까지?”

 “그, 그것이... 급히 정해진 터라-”

 “충실히 하지 못하였단 말이냐?”

 “송구하옵니다! 살려주시옵소서! 소인은 그저 힘이 없는 상궁 나부랭이일 뿐이옵니다! 박귀인이 계속 대비마마를 들먹이며 겁박을 하여...”

 

 그 말에 박귀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바, 박귀인?”

 

 유아가 박귀인을 노려보았다.

 

 “어딜 나서?”

 

 감찰상궁은 유아의 말에 박귀인을 강제로 앉혔다.

 

 “하여, 저 꼴을 만들었단 거구나.”

 “송구하옵니다. 중전마마! 살려주십시오. 지금이라도 단단히 교육할 수 있습니다! 시켜만 주시면-”

 “이미 벌써 귀인인데, 누굴 교육하겠느냐? 본인이 의지가 없으니 소용없다.”

 “마마!”

 “너는 홍귀인이겠구나?”

 “예... 마마... 흑...”

 “왜 벌써 우는 것이냐? 너도 억울한 것이냐?”

 “홍귀인이 이 자리에 있어야 하옵니다! 툭하면 기절하고, 툭하면 기운 없고, 회임도 못하는 석녀가 어찌 후궁이 되었단 말입니까!”

 

 그 말에 궁녀 모두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홍귀인, 미령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치욕스러웠다.

 

 “교육은커녕, 목숨이라도 잃을까 그것을 전전긍긍하였습니다. 저는 죄가 없습니다, 마마!”

 “허나, 그 문제라면 응당 나에게 보고라도 했어야 했다. 일언반구도 없지 않았느냐?”

 “힘없는 소인들이 어찌 그것을 보고하겠나이까?”

 “허면! 내명부의 수장인 내가! 국모인 내가 너희들의 목숨 줄 하나 지켜주지 못할 정도로 힘이 없어보였느냐?! 중전 따위가 어찌, 대비와 혜빈의 뒷배를 이길 수 있겠느냐? 그리 생각했단 것이냐?!”

 “중전마마! 그것이 아니오라-”

 “그것이 너희들의 죄다! 감히 내명부의 수장을 우습게 본 죄! 이미 감찰부를 통해 다 들었다. 교육을 했다는 이유로 받아먹은 패물이 꽤 된다지?”

 

 나인들은 반발했다.

 

 “상궁마마들만 받았습니다! 저희는 억울합니다!”

 “오냐. 그럼. 상궁들만 벌을 줘야겠구나?”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이 년들 모두 사가로 쌀가마며 비단이 몇 필이 들어갔는데요!”

 “모두 누구에게서 받았느냐?”

 “박귀인과 홍귀인입니다!”

 

 박귀인과 홍귀인은 궁지에 몰렸다. 이곳에 오면 안 되었다는 후회를 하기엔 늦었다.

 

 “감찰최고상궁은, 규율에 따라 죄인을 엄벌하라.”

 “예!”

 

 유아가 자리에 다시 앉았다. 그리고 그들의 앞엔 온갖 고문 물품들이 나열되었다.

 

 “박귀인! 네 이녀~언!!!”

 “내 죽어서 귀신이 되어서라도 네년을 죽여주마!”

 “그 뱃속에서 후사도 없게 저주할 것이다!”

 

 궁녀들이 두 귀인들을 죽일 듯이 악다구니로 달려들었다. 두 귀인 모두 겁에 질렸으나, 감찰 궁녀들은 두 후궁의 고개도 돌리지 못하도록 꽉 잡고 있었다.

 

 “시작하라.”

 

 유아의 말에 감찰 궁녀들이 모두 매질을 시작했다. 한 쪽에선 멍석말이로 마구 두들겨 팼고, 한 쪽에선 그냥 채찍질을 시작했다. 다른 한 쪽에선 유리 위를 걷게 만들었고, 손을 지지기도 했다. 참으로 끔찍한 형벌이 이어졌다. 눈을 감고 싶어도 두 귀인은 감을 수 없었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놔! 놔!”

 

 귀인들의 발버둥에도 궁녀들은 이들을 놓아주지 않았다.

 

 “두 귀인들이 내가 아끼는 궁녀 일곱을 모조리 이렇게 만들었다. 명심하라! 귀인은 한낱 후궁일 뿐이다. 그리고 너희들은 주상전하께 충성을 해야 하는 궁녀다! 왕실에 화가 되는 것은 만들지 말라. 의무와 본분을 다하라. 알겠느냐?”

 “예! 중전마마!”

 

 그렇게 일곱의 궁녀들은 고통스러운 벌을 받고 모두 혼절했다. 이미 셋 정도는 숨이 끊겼다.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간 후, 날이 밝아왔다. 나머지 벌을 받은 궁녀들 모두가 시구문 밖으로 나갔다.

 

 “봉분과 비석을 세워주어라. 남은 가족에겐 봉급의 다섯 배를 보내.”

 “예, 중전마마.”

 

 ***

 

 아침이 되어도 성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탕약도 거부하고 마치 시위라도 하듯 셋째 날의 무박일이 계속되었다. 평소와는 다른 기운이 느껴짐에 성은 갸웃했다.

 

 “봉수야. 궐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

 “예?”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어? 궁인들의 분위기가 좀 다르구나.”

 “아... 그것이...”

 “말해.”

 “중전마마께오서 어제 궁인들의 단속을 하셨습니다.”

 “갑자기?”

 “박귀인과 홍귀인께서 궁중법도를 전혀 지키질 않으시어. 교육을 맡았던 궁녀 일곱이 벌을 받았다 하옵니다.”

 “법도를 지키지 않는다고? 그랬나?”

 “중전마마께 아침 문후를 든 적이 없사옵니다.”

 “뭐라?!”

 “잘 되었지요. 한 번은 그리 하셔야 했사옵니다. 내명부의 일이오니, 모르는 척 하소서.”

 “하여, 궁녀 일곱은 어찌 되었느냐?”

 

 봉수는 차마 말을 할 수 없었다.

 

 “전하...”

 “설마, 죽였느냐?”

 “내명부의 규율이 상당히 엄격하옵니다. 그러니-”

 “죽였다고? 중전이? 일곱을?”

 

 봉수는 자신의 입을 탓했다. 그리고 좋지 않은 타이밍에 유아가 찾아왔다.

 

 “전하. 중전마마께오서 듭시었나이다.”

 “들라.”

 

 편하지 않은 공기. 그 안에 유아가 들어왔다.

 

 “전하.”

 “중전.”

 “용안이 어두워 보이십니다. 또 침소에 들지 못하셨나이까?”

 “무슨 일이오? 아침부터?”

 “신첩이 일이 있어야 오겠습니까?”

 “온 김에 물을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궁녀를 죽였소?”

 

 그제야 유아는 성의 표정이 왜 좋지 않았는지 알았다. 봉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예.”

 

 덤덤하게 답하는 유아에게 성은 실망했다.

 

 “부인, 요즘 대체 왜 그러오?”

 “제가 무엇을 말입니까?”

 “변해도 너무 변했소. 성소용의 일도, 이번 궁녀들의 일도. 또 무엇을 숨기시오?”

 “전하께선 저에게 무엇을 숨기십니까?”

 “뭐라?”

 “예. 숨기고 있는 것 많습니다. 허나, 전하께 알려드려 좋을 것은 아닙니다. 하여, 숨겼습니다. 앞으로도 숨길 겁니다.”

 “부인!”

 “하여, 전하께서도 숨기셨습니까? 내 아버지의 죽음이 왜, 어찌 된 것인지 빤히 알면서, 모르는 척 그냥 넘겼습니까?! 왜요? 난 이미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당신은 왜... 여전히 날 지켜주지 않는 거야...”

 

 유아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마치 성의 몸이 칼에 주욱 베인 느낌이었다.

 

 “내가 널 이렇게 만들었다는 거야?”

 “어... 네가 날 이렇게 만들었어. 난 괴물이야...”

 “널 잃어버린 것 같다. 내가.”

 “난 당신이 그리워. 매일이 그립고 그리워... 나도 당신을 잃어버린 걸까? 아니면, 내가 보던 당신은 원래 이런 사람이었던 걸까?”

 “더는 보고 싶지 않으니, 상선은 중전을 배웅하라.”

 

 성은 유아에게서 등을 돌렸다. 성의 말에 울음이 가득했던 유아의 표정은 사라졌다. 혼이 빠진 사람처럼 유아는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려 성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눈빛에 힘이 없었다. 유아는 주저 안고 싶었다. 그리고 펑펑 울고 싶었다.

 

 “당신도 나도,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세상에 와 버린 거야. 적어도 난, 그래.”

 

 유아도 성에게 등을 돌렸다. 터벅터벅 걸어가는 유아도, 그 모습을 보지 않으며 병풍만 바라보는 성도 상처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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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69. 당신만이 2022 / 1 / 27 37 0 7780   
68 68. 배반 2022 / 1 / 27 32 0 6401   
67 67. 원대한 계획 2022 / 1 / 27 32 0 7083   
66 66. 죄인 2022 / 1 / 27 30 0 7116   
65 65. 흑화 2022 / 1 / 27 31 0 8818   
64 64. 적에게 적을 보내다 2022 / 1 / 27 34 0 7750   
63 63. 부친 전상서 2022 / 1 / 27 30 0 9068   
62 62. 아찔하다 2022 / 1 / 27 30 0 9166   
61 61. 그림자의 커밍아웃 2022 / 1 / 27 29 0 5463   
60 60. 왕비의 한 2022 / 1 / 27 29 0 8531   
59 59. 피가 모자라 2022 / 1 / 27 31 0 8066   
58 58. 과인은 정훈세자의 아들이다 2022 / 1 / 27 31 0 5373   
57 57. 새 왕 2022 / 1 / 27 32 0 6842   
56 56. 범인은 누구인가 2022 / 1 / 27 33 0 7060   
55 55. 걱정 2022 / 1 / 27 35 0 5912   
54 54. 태양을 삼켜라 2022 / 1 / 27 32 0 5370   
53 53. 적은 가장 가까이에 있다 2022 / 1 / 27 30 0 6099   
52 52. 금등의 존재 2022 / 1 / 27 28 0 5319   
51 51. 떡밥 2022 / 1 / 27 29 0 6124   
50 50. 왕의 유언(2) 2022 / 1 / 27 32 0 6343   
49 49. 왕의 유언(1) 2022 / 1 / 27 30 0 6031   
48 48. WANT 2022 / 1 / 27 33 0 6919   
47 47. 피의 명부 2022 / 1 / 27 31 0 7949   
46 46. 가면을 벗다 2022 / 1 / 27 29 0 5448   
45 45. 제발 내버려 둬 2022 / 1 / 27 28 0 7325   
44 44. 일장춘몽 2022 / 1 / 27 32 0 7467   
43 43. 온 몸이 부서지는 2022 / 1 / 27 37 0 4986   
42 41. 미치도록 2022 / 1 / 27 33 0 7834   
41 41. 내 아내의 남친 2022 / 1 / 27 36 0 6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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