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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기다림
작가 : joinB
작품등록일 : 2020.9.21

그가 사랑했던 조선의 푸른 하늘과 땅과 바람은 여전했다.
널 잃었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이른 걸음을 걸어가버릴 수밖에 없던 나는 아직도 여전했다.
널 떠났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세상은 우리의 사랑을 항상 다른 이름으로 가로막았다.
널 위한 것이라고 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다.
딱, 그만큼만 나는 너에게 상처주지 않으려 했다.
세상과 멀어진 지금, 멀어지려 하는 지금, 이제야 깨닫는다.
그게, 상처라는 걸.
너를 외롭게 했다는 것을...

나도 너도 기다린다.
사랑에 빠졌던 그 날의 사랑으로부터...

 
41. 미치도록
작성일 : 22-01-27 13:24     조회 : 31     추천 : 0     분량 : 7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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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목은 친구 성을 위해 페데르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젠 수가 보아도 제법 잘 숨어 다녔다. 설마, 한 나라의 세손이 자신을 뒷조사 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페데르는 평소처럼 행동했다. 만영의 포목점(*비단 상점)에서 한참을 나오지 않았다.

 

 “오! 오우!”

 

 페데르는 최근 키에 꽂혀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콩이나 팥을 고르는 상단의 아낙들이 쭉정이를 골라내는 모습에 푹 빠진 것이었다.

 

 “와우!”

 “얘가 아직도 여기 이러고 있네.”

 “또, 또.”

 “그래. 또 하자.”

 

 솨-아, 하는 소리와 함께 콩이 키 위로 폴짝 나란히 뛰어서는 일제히 내려왔다. 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먼지 같은 쭉정이들이 훅 날아가거나 바닥으로 떨어졌다. 날리는 먼지에 곁에 있던 페데르는 눈이 맵고 따가웠지만, 시선을 거두진 않았다. 이렇게 사소한 것으로 그는 며칠에 한 번 꼴로 조선의 어떤 것에 미쳐있었다.

 

 “이상합니다.”

 

 궐. 성의 처소 안. 영목은 눈을 게슴츠레 뜨며 성에게 말했다.

 

 “뭐가?”

 “그 양인 말입니다. 상단으로 들어가서는 한참을 나오지 않다가, 해가 지니까 나오더란 말입니다.”

 “그 안에서 무엇을 하더냐?”

 “그걸 모르겠습니다.”

 “일 똑바로 하자, 응?”

 “거긴 분명히, 노비들이 있는 방이거든요. 특히 여종들이요.”

 “그래?”

 “예. 메주도 띄우고, 곡식들을 거기서 거른다고 합니다. 그 양인이 거기서 한참을 머물며 할 일이 뭐가 있을는지요?”

 “이상한 놈이구나. 그런 놈이 감히, 빈궁과.”

 

 성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러실 바엔 그냥 입궐하라 하시지요?”

 “안 돼.”

 “저, 관직 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습니다. 벌써부터 요상한 소문도 돌고, 미운털 단단히 박혀서 청금록에서 삭제될 판입니다.”

 “그건 내가... 책임지지는 못하겠구나.”

 “우와~. 세손이라 때릴 수도 없고. 양인 뒤를 쫓거나, 빈궁마마 관찰하는 일은 그 호위무관에게 맡기시고요.”

 “말이 요상하다?”

 “저는 왕족이 아닙니다, 저하.”

 “알았다. 다른 건 할 수 있지?”

 “어쩜 부탁하는 일마다 제 살만 깎입니다. 일도 못하게 하고, 우리 집안 뒷조사나 하게 만들고.”

 “보상할게.”

 “안하시려 했습니까?”

 “에헴. 가져오기나 해. 너도 좋고, 나도 좋은 일이니까.”

 

 성은 영목에게 홍씨 외척의 비리 조사를 맡겼다. 영목의 관직이 아직 낮기에 누군가가 쉽게 관심을 끌지도 않았다. 더불어, 영목은 윤희와는 육촌 친척 관계였다. 외척의 비리를 조사한다는 것은 자신의 집안을 캐야한다는 의미였다.

 

 ***

 

 대왕은 세자, 청을 불렀다. 둘만이 마주보던 때가 참 오랜만이었다.

 

 “세자의 건강이 좋아졌다하니, 기분이 참으로 좋다.”

 “심려를 끼쳐 송구합니다, 아바마마.”

 “세자.”

 “예, 아바마마.”

 “내 기억이 하루가 다르게 섞여간다. 오늘은 아침 수라를 먹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늙은 국왕의 추태가 늘어가니, 내 면목이 없다.”

 “괜찮아 지실 것이옵니다.”

 “아니다. 내 몸은 내가 아느니라. 그러니 내 기억이 또 다시 사라지기 전에, 이 자리를 너에게 넘기고자 한다.”

 

 청은 무릎을 꿇고 조아렸다.

 

 “아바마마! 천부당만부당 하옵니다! 그런 말씀 마소서. 거두어 주소서!”

 “정녕, 아비의 추태를 이대로 지켜볼 셈이냐?”

 “아바마마. 소자는 아직 그럴 자격이 되지 못합니다. 혹여 아바마마의 치세에 누를 끼칠까 염려되오니, 부디 거두어주소서.”

 “청아. 아비는 진심이니라.”

 “그리 말씀하시면, 소자는 죽습니다. 소자를 살리시려거든, 부디, 옥체를 보존하소서.”

 “어허. 아비를 겁박할 셈이냐?”

 “알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가 얼마나 무서운 지.”

 

 대왕은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승하하신 형님전하는 이 자리에서 공사가 다망함에도, 매일 같이 허술하고 못난 아우를 돌보고 보호하셨습니다. 허나 저는 형님을 위해 세손을 보호하고 돌보아야 함에도, 아바마마께 아침 문후를 들지 못하는 날이 많을 정도가 아니옵니까?”

 “정훈세자의 이야기는 거론치 말라.”

 “못난 소자를 위해서라도, 강녕하셔야 하옵니다. 소자를 지켜주소서. 아직 배울 것이 많습니다.”

 “참으로 못났다. 참으로 못난 국본(*세자)이로다!”

 “예. 제가 진짜 못난 국본이옵니다. 제가.”

 

 청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곁에 서 있던 상선을 쳐다보았다.

 

 “잠시 모두들 물리라.”

 

 대왕이 끄덕였고, 상선은 궁인들을 모두 방에서 나가게 했다.

 

 “아바마마. 소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저승사자와 함께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지 마라. 아비를 아프게 하지 마라.”

 “어쩌면, 소자가 불효를 할지도 모릅니다.”

 

 대왕은 심장이 털썩 주저앉는 것 같았다. 온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아...”

 

 청의 눈시울이 뜨거워졌고, 이내 눈물이 채 식지 않고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아버지...”

 “내가... 너마저 잃어 무엇을 희망으로 살겠느냐. 안 된다. 너만은 반드시 살릴 것이다.”

 “희망이 없는 소자가 아니라, 세손을 지켜야 합니다.”

 “너는 너의 세상을 만들면 된다. 네 형에게 빚을 진 것이라 생각 마라.”

 “그것이 아닙니다. 저는 봤습니다. 지금도 보고 있지요. 그 아이의 힘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세손에게서 무엇을 봤다는 것이냐?”

 “곧 아시게 될 것입니다. 머지않았습니다.”

 

 ***

 

 성의 사가로 말순아비가 찾아왔다. 유아는 말순아비를 반겼다.

 

 “말순아비가 웬일이야?”

 “마마. 여기.”

 

 말순아비는 두둑한 보자기를 유아에게 내밀었다. 연실이 그것을 받아들고는 냄새를 킁킁 맡아보았다.

 

 “먹을 거네?”

 “응. 마님께서 싸셨어.”

 

 유아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누구 먹으라고?”

 “그거야 당연히 마마 드시라고-”

 “가져가서, 말순이나 먹여.”

 “아이고, 그러다가 지들 맞아 죽지유. 마마 드시라고 준비한 것인디.”

 “알아서 처리해.”

 

 유아는 휙 돌아서 방으로 들어 가버렸다.

 

 “마마! 아이고, 아가씨~이! 지 가유?”

 “한 번만 더 그딴 걸로 아부 떨면 다 엎어버릴 줄 알아!”

 

 말순아비는 한숨을 쉬었다. 연실은 보자기를 말순아비에게 건넸다.

 

 “아재는 다 알면서.”

 “그래도 어쩌냐, 가라고 그렇게 등을 떠미는디.”

 “이제 와서.”

 “그것이 사람이제. 더군다나 마님은 더 그렇제. 주인마님 돌아가시는 날만 기다린 양반 아니여.”

 “계속 이러겠네. 이럴 바엔 돌아가면서 와요. 얼굴이나 보게.”

 “근디, 아가씨 상태는 워뗘? 괜찮은 겨?”

 “궐에서 나오니까 조금 나아지는 것 같기도 한데, 다시 잠을 못 주무세요.”

 “또 밤새 앓고, 그려?”

 “네.”

 “우짜스까. 아이고...”

 “식구들 얼굴 보면, 괜찮아 질 거예요. 그래서 운종가는 자주 나가요.”

 “그려. 혹시... 세손저하께서 막 때리고, 읍박지르고, 그런 건 아니제?”

 “반대죠. 두 사람, 방에 들어가면 나오질 않아요. 닭살이 돋아서 보질 못해.”

 “오메~. 왕족은 그런 거 없는 줄 알아드만. 야하네.”

 “엄청 야해요.”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며 키득거렸다.

 

 “아이고. 그렇게 애정을 주신다니께, 맴이 놓이네. 다행이여.”

 “걱정 마요. 제가 옆에 있잖아요.”

 “그려. 네가 잘 살펴보고. 내일은 말순어매 보낼텡께. 난 가.”

 “네.”

 

 말순아비는 유아가 들어간 방 마당 앞에 서있었다. 이젠 나이를 먹기 시작해서인지, 예전보다 허리도 조금 더 굽었고, 팔다리는 더 앙상해졌고, 피부는 더 검게 그을렸다. 연실은 그런 말순아비가 무거운 보자기를 들고 있는 모습이 애잔해 보였다.

 

 “마마. 지 갈게유. 몸 잘 추스르세유. 지 가유~”

 

 유아는 자리에 앉아 마음을 추스르고 있었다. 계모의 행동에 화가 나서 씩씩 거리면서도 동공은 이리저리 흔들렸다. 막상 말순아비의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흔들린 것이었다. 시킨 계모가 잘못이지, 곧이 곧대로 따라야 하는 착한 말순아비는 무슨 죄이겠는가?

 

 “또 올게유.”

 

 말순아비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살펴가요, 아재.”

 “잉, 그려.”

 

 말순아비의 굽은 등을 뒤로, 유아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얼굴도 안 보고 그냥 가? 얼마나 오랜만인데.”

 

 말순아비는 그 와중에 가지런한 치아를 빛내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요로코롬 하면, 당연히 나오실 줄 알았지유.”

 “못됐어.”

 

 유아는 버선발로 계단을 내려와 말순아비에게 안겼다.

 

 “아이고~ 우리 아가씨 힘이 장사여.”

 “보고 싶었어.”

 “지도 목 빠지는 줄 알았슈. 궐을 나왔다는 소식은 들리는디, 어째 얼굴은 안 뵈고.”

 “저하께서 내가 자라온 이야기를 알고 계셔.”

 “난 또. 귀한 분이라 친정에서 지내는 것이 안 되는 줄 알았슈.”

 

 말순아비는 유아의 등을 토닥였다.

 

 “힘들지유? 어른이 된다는 것이.”

 “응. 그렇네.”

 “다 컸네. 우리 아가씨. 다 컸어...”

 

 말순아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유아는 이미 울고 있었다. 지켜보던 연실도 몰래 눈물을 훔쳤다.

 

 “우째, 또 아프고 그런데유. 키운 애비 맘 아프게.”

 “그러게. 내가 우리 아비 마음 아프게 하네. 불효야.”

 “이번에는 꼭 다 나아지. 잉?”

 “응. 꼭.”

 

 말순아비를 시작으로 유아에게는 매일같이 친정 식구들이 찾아왔다. 진짜 혈육만 빼고. 운종가 식구들은 언제나처럼 유아를 반겨주었고, 유아는 다시 옛날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동안 페데르와의 우정도 깊어졌다. 페데르는 유아에게 바다 건너의 세상을 알려주었고, 유아는 조선의 생활과 말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

 

 “오늘도 책방이라?”

 

 늦은 밤의 중궁전. 성희는 내관에게서 보고를 받고 있었다.

 

 “예, 마마. 빈궁이 오늘 아침부터 또 책방을 들러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체 그 세책방에 꿀이라도 발랐나. 하루 종일 그 안에서 뭘 하는 게야?”

 “서책을 읽기도 하고, 책을 빌리러 온 사람들을 안내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책방 주인이 백씨라는 사내인데, 그 자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었습니다.”

 “스승? 한낱 세책방 장사꾼을 스승이라? 한 나라의 세손빈이?”

 “주위에 물어보니, 운종가 사람 치고 빈궁마마를 모르는 이가 없다 합니다.”

 “허튼짓을 해도, 충분히 숨길 수가 있단 말이구나.”

 “그리 볼수도-”

 “알았다. 나가 봐.”

 

 내관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멈칫했다.

 

 “세자의 동태는?”

 “별 다른 것이 있겠느냐.”

 “예. 뭐, 그렇지요.”

 “나가.”

 “예, 마마.”

 

 내관이 나가고, 편상궁이 성희를 마주보고 앉았다.

 

 “마마. 어찌 빈궁의 동태마저 살피시옵니까?”

 “네가 보았다 하지 않았느냐? 세손과 오라버니의 만남을.”

 “허나, 우연히 본 것일 수도 있지요.”

 “아니. 오라버니는 세자 대신 세손을 택하려는 것이다.”

 “허면, 마마께선 어찌 하시려고요?”

 “난 우선, 세자를 택해야겠지?”

 “맞서시려고요?”

 “아니. 맞서게 만들려고.”

 

 성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

 

 성의 처소. 아침. 성은 서신을 읽고 있었다. 백선생이 보낸 것이었다.

 

 -오늘 빈궁마마께오서는 김만영의 상단으로 가시었다가 다시 책방으로 돌아오셨나이다. 듣기로는 마마의 친정에서 사람을 보내어 음식을 보낸다 하던데, 음식은 돌려보내고 식구들과 만나는 것에만 만족하신다 하옵니다. 연실이의 말로는 밤새 앓는 것이 많이 좋아졌다 합니다. 문제는 매일 같이 오는 어의의 진단이온데, 어찌 진맥하는 것부터 허술하다 하옵니다. 아무래도 중궁전에서 손을 써 놓은 것이 아닌지. 하여, 침을 놓는 것은 거부하고, 탕약은 오는 즉시 버리고 있다 합니다.-

 

 성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켜보던 봉수가 물었다.

 

 “저하. 서신의 내용이 좋지 못하옵니까?”

 “좋지 못하다.”

 “무슨 일이 있다 합니까?”

 

 성은 대답하지 않고, 영목이 보낸 서신을 읽기 시작했다.

 

 -저하. 빈궁마마께오서는 궐 밖의 생활이 아주 좋으신가봅니다. 요즘은 주막에 들르시는 날이 잦으십니다. 최근 전하께오서 금주령을 잠시 풀어주신 덕에, 주막에 자리가 없을 지경인데. 매일같이 들르시니, 주모도 빈궁마마를 반깁니다. 회복이 되시어 돌아가실 날이 머지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성은 서신을 내려놓았다.

 

 “저하?”

 “이게 대체!”

 “저하. 무슨 일입니까?”

 “오늘 일과는 모두 취소하라. 내 출궁할 것이다.”

 “예?!”

 “수는 나를 따르라. 봉수 너는 정리하고 따라오너라.”

 “아니, 저, 저하! 저하!”

 

 성은 즉시 옷을 갈아입고는 말을 타고 궐을 나가버렸다. 한편, 유아는 만영과 아침부터 만나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만영과 유아가 도착한 곳은 그때의 그 역병마을이었다. 마을의 아이들이 유아를 보자마자 반갑게 인사했다.

 

 “어?! 전에 그 예쁜 누이다!”

 “날 기억해?”

 “응! 그럼요. 누이 덕에 지금도 튼튼한걸요? 헌데, 그 형님은 어디 있습니까?”

 “형님?”

 “누이 짝이요.”

 “지금 아주 바빠. 일을 해야 해서.”

 “아~. 높은 분이었구나?”

 “어?”

 

 마을 사람들은 유아가 걸음 하는 곳마다 그녀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유아가 만영에게 속삭였다.

 

 “내가 올 거라고 미리 소문이라도 내셨어요?”

 “아니. 그럴 리가. 네가 누군지도 모르잖니.”

 

 사람들은 집에서 삶은 감자며 주먹밥을 내밀며 유아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이가 있었으니. 백선생의 도움으로 길이 엇갈리지 않은 성과 수였다. 성은 말 위에서 유아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의 눈은 황홀함이 가득이었다.

 

 “일상을 잘 살고 있구나.”

 “역병마을 아닙니까?”

 “그래. 그랬지.”

 “빈궁마마를 알아보는 것 같습니다.”

 “저 여인이, 빈궁이라는 것은 모를 게다. 그럼에도 참으로 빛나는 사람이 아니냐.”

 “예, 예.”

 “그 대답, 옳지 않다.”

 “소인은 차내관처럼 아부에는 젬병인지라.”

 “칼만 닦지 말고, 그 능력도 좀 닦는 것이 어떠냐?”

 “싫다하면, 저 짤립니까?”

 “말을 말자. 너, 그런 마음으로 연모하는 여인이라도 있느냐? 그렇게 딱딱해서야, 여인이 좋아할 리 만무하겠다만.”

 “있거든요?!”

 “거짓말 마라. 딱! 봐도, 넌 없어. 영원히!”

 “저주하시는 겁니까?”

 “거 봐. 없지? 없어.”

 

 수는 성을 노려보았다.

 

 “어쭈? 세손을 째려봐? 겁을 상실했구나.”

 “억울하면 저하도 째려보십시오.”

 

 졸지에 두 사람은 눈싸움을 시작했다. 그리고 눈이 시리기 시작한 수가 눈을 깜빡이자 성은 아이처럼 좋아했다.

 

 “헤헤!”

 “그럼 뭐합니까? 바로 앞에 있는 빈궁마마께 가지도 못하시면서.”

 “뭐! 뭐!”

 “왜 못가십니까?”

 

 티격태격 하던 것도 잠시, 유아가 시선을 돌리자 성과 수는 일제히 말고삐를 잡고 고개를 돌렸다.

 

 “봤어? 봤겠느냐?”

 “보진 못하신 듯합니다.”

 “말을 두고 움직여야겠구나.”

 “헌데요, 저하. 우린 왜 몰래 다니는 겁니까?”

 “그야... 그러게. 우리 왜 숨어 다니지?”

 “일단 말부터 치우시지요.”

 

 수가 말을 먼저 앞장 세워 움직였다.

 

 “그 말이 내 말은 아니지? 어? 말해봐.”

 

 마을사람들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기분이 좋아진 유아는 만영과 연실, 백씨와 청씨, 신씨와 함께 주막으로 향했다. 기분이 좋아 신나게 술을 먹던 유아가 점점 알딸딸해지기 시작하고, 모두들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이미 주위에 있던 손님들도 하나 둘 자리를 뜬 시간. 밤은 뉘엿뉘엿 더 시커먼 하늘로 별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이 나타났다. 유아는 성이 나타난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가. 얼마나 기다린 줄 알아요? 날 그 큰 처소에 혼자 두고, 지는 서고에서. 참내!”

 

 유아는 술을 벌컥 들이켰다.

 

 “가끔은 이 사람이 날 연모하긴 하나. 날 그냥 노리개로 여기는 것인가, 그 생각도 했습니다. 야속해요. 내가 보고 싶을 땐 매일 바빠...”

 

 성은 천천히 유아에게 다가왔고, 백씨와 청씨부터 성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쉿!”

 

 이내 유아를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성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고개를 푹 숙이고 바닥을 보며 하소연을 하는 유아를 내버려두고 하나 둘 조심스레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유아의 푸념은 계속 되었다.

 

 “바빠서...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잖아. 그래서 확 나와 버렸어요. 이 성!”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성이 순간 얼어 멈칫했다.

 

 “이래도 나 보러 안 올 거야? 그러고. 근데 한 달이 되어도 보여주질 않네요. 그 귀한 얼굴을. 내가 매일 본다고 닳아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지는, 필요하면 아파도 놓아주지도 않으면서... 나쁜 놈!”

 

 유아는 남은 술을 몽땅 털어놓고는 옆으로 스르르 쓰러졌다. 성은 재빨리 유아의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다행히 유아는 성의 무릎 위로 누웠다.

 

 “오랜만이지.”

 “응...”

 “미안해. 보고 싶은데, 오질 않아서.”

 “흠...”

 “다들 눈치가 빠르네. 우리 둘만 두고.”

 “흠냐, 흠냐...”

 “너, 술 잘 마신다? 나랑 있던 건, 내숭이야?”

 

 유아는 성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이제 보고 싶다고 하면, 열일 제쳐두고 달려올게. 옆으로. 약속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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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약혼자가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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