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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기다림
작가 : joinB
작품등록일 : 2020.9.21

그가 사랑했던 조선의 푸른 하늘과 땅과 바람은 여전했다.
널 잃었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이른 걸음을 걸어가버릴 수밖에 없던 나는 아직도 여전했다.
널 떠났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세상은 우리의 사랑을 항상 다른 이름으로 가로막았다.
널 위한 것이라고 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다.
딱, 그만큼만 나는 너에게 상처주지 않으려 했다.
세상과 멀어진 지금, 멀어지려 하는 지금, 이제야 깨닫는다.
그게, 상처라는 걸.
너를 외롭게 했다는 것을...

나도 너도 기다린다.
사랑에 빠졌던 그 날의 사랑으로부터...

 
47. 피의 명부
작성일 : 22-01-27 13:26     조회 : 29     추천 : 0     분량 : 7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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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늦은 밤. 궐의 담장. 거의 성공했다고 믿었다.

 

 “빈궁, 마마...?”

 

 ‘망했다...’

 

 “뭐해요?!”

 

 반대편 담장 아래의 연실은 어서 넘어가라고 닦달했다. 그러나 유아는 넘어갈 수 없었다. 담장 너머, 동부승지가 된 홍영목이 유아를 발견하고 만 것이었다.

 

 “설마, 도망은 아니죠?”

 “하하...”

 “진짜?”

 “쉿!”

 “네?”

 “좀 도와줄래요?”

 “제가요? 왜요?”

 “싫음 그냥 가시고.”

 “여전하시네요.”

 “내려가서 얘기합시다.”

 

 유아는 담장을 마저 넘었고, 영목은 튕기다가도 얼떨결에 담장 아래로 손을 깍지 끼고 유아의 발판이 되어 주었다.

 

 “고마워요.”

 

 유아는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담장 너머로 파바밧! 하는 소리와 함께 턱! 하고 연실의 모습이 담장 위로 보였다. 영목은 놀란 모습이었다.

 

 “보기완 달리, 좀 날쌔요.”

 “우와...”

 

 그리고 연실은 유아의 도움도 필요없이 담장을 가뿐하게 넘어왔다.

 

 “엄마얏!”

 

 연실은 그제야 영목을 발견하고는 뒷걸음질 쳤다. 하마터면, 하마 같은 엉덩이를 찧을뻔 하였다.

 

 “아니, 동부승지 영감!”

 “쉿!”

 “쉿...”

 

 연실은 자신의 입을 막았고, 영목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유아는 그 모습에 피식 웃었다.

 

 “여전하시군요.”

 “전 많이 변했죠.”

 “그럼에도, 절 도와주셨구요.”

 “사정이 딱해 보이셔서.”

 “일국의 세자빈이?”

 “지금은...”

 “동감.”

 “어찌하시려 이런 일을...”

 “아시면서.”

 “전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알아요. 그냥 동부승지는 산책만 하고 들어가시면 됩니다. 모르는 척. 아무것도 못 본 겁니다.”

 “그게, 아주 큰 도움인지라.”

 “좋아요. 그렇게 생색을 낼 거라면, 거래 받아들이죠. 내가 다음에 그대를 돕죠.”

 “좋습니다. 전 못 본겁니다.”

 “그래요. 그럼.”

 

 유아는 연실의 팔을 잡아끌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간밤에, 대비와 혜빈의 괴롭힘을 참지 못한 세자빈은 탈출을 감행하고 말았다. 이 일은 새벽녘에나 알게 될 엄청난 일이었다.

 

 영목은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왔다. 상소문이 쌓여 할 일도 많아 퇴궐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재미난 일을 목격하고 나니 일할 의욕도 생겼다. 홀로 피식 거리며 다시 상소문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탕탕탕!’

 

 ‘탕탕탕탕!’

 

 “스승님! 스승님!”

 

 늦은 밤. 작은 기와집.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적막을 깨는 소리에, 사랑채에서 아내와 자고 있던 백씨가 잠에서 깼다.

 

 “이게, 무슨 소리예요?”

 

 백씨의 아내가 물었다.

 

 “스승님!”

 

 익숙한 목소리. 백씨는 잠결에도 알 수 있었다. 그의 유일하고, 유일할 예정일 그의 제자의 목소리라는 것을. 백씨의 잠은 순식간에 달아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누구기에 그래요? 아는 사람 목소리예요?”

 “옷! 내 옷!”

 

 백씨는 대강 차려입고 대문을 향해 뛰쳐나갔다. 버선도 채 신지 못한 맨발이었다. 이제 봄이 서서히 찾아오고 있다지만, 아직 밤의 기온은 찼다. 하지만 이 시점에 그걸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문이 열리고, 대문 너머 유아와 연실의 모습이 보였다.

 

 “마마!”

 “스승님.”

 “아니!...”

 

 백씨는 대문 밖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우선, 들어오세요. 어서!”

 

 백씨는 유아와 연실을 집 안으로 들였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십니까? 뭔 일 터졌습니까?”

 “제가 시간이 없어요.”

 “예?”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때, 백씨의 아내가 소복 차림으로 나왔다.

 

 “누가 오셨는데요?”

 “안녕하세요.”

 “어머! 마마.”

 

 유아는 백씨의 아내와도 잘 알았다. 백씨의 아내는 여성스럽다는 말 말고는 형용할 말이 없을 만큼, 단아하고 현명한 사람이었다. 들리는 소문에 판서 댁의 여식이었는데, 백씨와 혼인한 이후 친정이 몰락하여 그나마 백씨 덕에 이렇게라도 지내는 것이라고들 했다. 덕분에 유아는 어린 시절, 여인으로써 배워야할 것들을 기본적으로는 백씨의 아내에게서 배웠다. 물론, 잘 소화하진 못했지만.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 시간에, 여긴 어쩐 일로. 아니, 안채로 드시지요. 방은 금방 데우면 됩니다.”

 “그래. 그럽시다.”

 

 백씨가 동의했고, 백씨는 맨발로 유아를 안채로 안내했다. 안채의 불이 켜지고, 백씨는 그제야 자신의 꼴이 정돈이 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아이고, 내 꼴 보게. 잠시 옷 좀 제대로 입고 오겠습니다.”

 “예, 스승님.”

 

 백씨가 나가고, 유아는 백씨네 안채를 둘러보았다. 옛날 모습 그대로였다. 가구도, 책상도. 그때도 작아보였던 안방이 더 작아보였다.

 

 “마마. 여기 계시면, 들키실 것인데요.”

 “다시 들어가야지.”

 “예?”

 “내일 궐이 어수선 할 거야. 난 그 틈에 입궐할 거고. 우선은 스승님 내외를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켜야 해.”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청씨 아재는 다행히 넘어갔고, 신씨 아재는 너와 혼례 하겠다고 심마니를 자처했으니 한동안은 돌아오지 않을 거고.”

 “이해가 안 됩니다. 왜 다들 피해야 합니까? 무슨 일이라도 생겨요?”

 

 그때, 백씨의 아내가 들어왔다.

 

 “마마.”

 “네.”

 “방은 곧 따스해 질 겁니다. 이 늦은 시간에 오셔서, 대접할 것도 없고요. 우선 차라도 한 잔 하시고 계세요.”

 “예, 감사합니다. 그보다, 제가 지금 차를 마시며 여유를 부릴 때가 없어서. 우선 이것부터 받아주세요.”

 

 유아는 품에서 비단 주머니를 꺼내 건넸다. 백씨의 아내는 그 주머니를 받았는데, 무게가 꽤 되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은입니다. 얼마 되진 않고요. 일부러 쓰기 편하시라고 쪼개어 놓았습니다. 요긴하게 쓰세요.”

 “아니, 뭐 이런 것을-”

 “이것도요.”

 

 이번엔 봉투였는데, 백씨의 아내가 봉투를 열어보니 작은 종이가 접혀 있었다.

 

 “가실 곳입니다. 우선 가 계시면, 필요한 것은 제가 사람들을 통해 보내드릴 겁니다.”

 “예? 당최 무슨 말씀이신지요?”

 

 그리고 백씨가 들어왔다.

 

 “무슨 일입니까?”

 “아니, 마마께서 이걸 제게 주시는데-”

 “스승님. 피하셔야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일이면, 전하께서 김척론자의 수장임을 공포하실 겁니다.”

 “예?”

 “물론, 이제 사라졌죠. 하지만 저들은 아직 그 존재가 남아있다 생각할겁니다. 더군다나, 동부승지 홍영목은 깊이는 알 수 없겠으나, 스승님이 김척론자의 우두머리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전하께서 대체 왜 그런 무모한 결단을 하시는 겁니까?”

 “세자저하를 위해서요. 그리고 전하껜 이제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요.”

 “다 죽이기라도 하겠다고요?”

 “예. 쥐도 궁지에 몰리면 물게 되어 있습니다. 전하께 칼을 들이댈 수도 있지만, 그보다 먼저 쉬운 상대를 찾겠죠. 그러니, 우리 모두를 위해서라도 우선은 피하시는 게 맞습니다. 어서 준비하세요. 지금 가셔야 해요. 내일 날이 밝으면, 세상은 또 변할 겁니다.”

 

 유아의 눈빛은 단호했다. 백씨는 유아의 굳은 의지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혹여 자신이 잡히면, 뒤따라 위험해질 운종가 사람들을 떠올렸다. 말 그대로 떠나는 게 옳았다.

 

 “서신에 쓰여 있는 곳으로 가시면 됩니다. 도착하시면 제가 곧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그러겠습니다.”

 “운종가 사람들은 염려 마세요. 제가 보호할겁니다.”

 “예. 마마.”

 

 그렇게 늦은 밤. 운종가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백씨네 책방은 잠시 휴업을 해야 했고, 백씨는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운종가는 여전히 바쁜 나날을 맞이했다.

 

 ***

 

 같은 시각, 청은 잠들지 않았다. 잠들 수 없었다. 통증으로 더욱 그랬고, 앞으로 잠들 시간이 많은데 잠들 수 없었다. 청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곁에는 일찌감치 있던 채우겸이 앉아 있었다.

 

 “이판.”

 “예, 전하.”

 “그대가 영의정이 되는 건 어떤가?”

 

 우겸이 부채를 좌악 펼치고는 팔랑 부쳤다.

 

 “이 자리도 머리 아픈데, 골머리 썩히는 그 자리에 앉으라 하십니까?”

 “이왕 골머리 아픈 거, 생색이나 낼 수 있는 자리면 좋지 않은가?”

 “그것도 나쁘진 않죠. 허나, 그 자리는 이미 주인이 있잖습니까?”

 “내일이면 없을 것이지 않나?”

 “굳이 그러셔야 합니까? 뭐, 곳간이 좀 넉넉하고, 매관매직 좀 하고, 갑질 좀 한다지만. 그래도 홍보함 그 영감은 탁월한 정치가입니다. 눈 뜨고 코 베일 정치판에 적합한 인재지요.”

 “인재라? 하하하, 인재라?”

 “전하. 꼭 청렴하고 똑똑한 자만이 인재는 아닙니다.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 그것이 인재지요. 영의정, 별거 아니잖습니까? 그 자리가 똑똑하여 앉을 수 있는 자립니까? 똑똑하기란 이제 막 장원급제한 파릇파릇한 젊은 관리들이 제일 똑똑하지요.”

 “듣고 보니, 경은 맞는 말만 골라하는 군.”

 “해서, 제가 세자의 스승 아니겠습니까?”

 “경험에서 비롯되었나?”

 “그럼요. 당쟁에 피바람에, 허조대왕의 칼날에 이렇게 살아남기가 어디 쉬운 줄 아십니까?”

 “그럼, 살아남기 위해 훗날 세자가 보위에 오르고도 그를 배신 할 수도 있나? 그대의 신념에 의하면?”

 “글쎄요. 배신이라기 보단, 내가 죽겠다 싶으면 발을 빼는 거죠. 그걸 남들은 생존이라 합니다.”

 “생존이라...”

 

 우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이런... 공기가 이렇게 탁하니...”

 

 그리고는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찬 공기가 방 안으로 휙 들어왔다. 오늘은 가장 끝 방에 묵기로 결정한 참이라 바깥의 공기가 직접 닿을 수 있었다.

 

 “그대가 나와 독대했다는 것을 사방팔방 알릴 셈인가?”

 “예. 하여, 제가 영의정 자리를 차지했다는 것도 알리고요.”

 “그대가 싫어하는 정쟁에 휘말릴 수도 있는데?”

 

 우겸은 차창 곁에 서서 구름에 가려진 달을 바라보았다. 수려한 옆모습이 어두컴컴한 빛에 더욱 또렷하게 들어왔다.

 

 “제 예상과 다른 일이 딱 하나 벌어진 적이 있지요. 설마, 설마 아니겠지...”

 

 청도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서 섰다. 바람은 찼지만, 꽤 상쾌했기에 기분도 나아지는 것 같았다. 뜨겁고 복잡했던 머릿속도 조금 식어가는 것 같았다.

 

 “저는 변하지 않으려 얼마나 노력했다고요. 남들은 복수를 하겠다고 불나방처럼 달려드는데, 누구는 그걸 막겠다고 칼을 휘두르고. 그 꼴을 강 건너 멀찍이 보고 있자니 참으로 딱하기 그지없었지요. 나는 저 꼴은 되지 않아야지.”

 “그런데요?”

 “아하! 아니 글쎄, 강 위에서 배를 타고 그 광경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어린 아이가 하나 있더란 말입니다. 표정도 변하지 않고, 묵묵히 죽고 죽이는 그 끔찍한 광경을. 어느 어른 하나 그걸 막아주는 이도 없고요. 저도 용기를 내어 그 배에 올라탈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 아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도.”

 “나도 그 강 건너에 있었습니다. 늦었지만, 나는 그 강을 건너려 합니다.”

 

 우겸은 부채를 접었다. 그리고 청을 바라보았다.

 

 “저는, 배에 올라탔습니다. 한 몇 달 전부터요.”

 “아하하하하! 하하하하!”

 “왜 웃으십니까? 전 진지합니다.”

 “해서, 웃깁니다.”

 “하... 이래서 진중하게 있질 못한다니까. 에헴!”

 

 ***

 

 다음날 아침. 유아는 유유히 궐로 걸어오고 있었다. 일부러 운종가를 지나쳤다. 사람들과 일일이 인사하고, 또 인사하며 지나갔다. 연실은 불안했다. 대체 백씨 부부는 왜 떠나게 한 것이며, 담장 너머 도망친 주제에 운종가에 동네방네 소문은 왜 내고 다니는 것인지.

 

 “잘 지내시지요?”

 “아이고~ 우리 빈궁마마 오셨네!”

 “올해는 오징어가 통통하네?”

 “한 점 먹고 가요, 응?”

 

 입에는 떡이며, 오징어며, 손에는 사탕이며, 목에는 목화솜을 채운 새하얀 목도리를 둘러주질 않나. 상인들이 저마다 딸에게 요깃거리 챙겨주듯 유아에게 쥐어주고 씌워주고 먹여주기를 이어갔다. 유아는 행복해보였다. 연실은 염려는 되었지만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던, 잠시 이거면 됐다 싶었다.

 

 “호석아!”

 “마마! 어쩐 일이십니꺼?”

 “도망쳤지.”

 “예?! 우짤라고예?”

 “그래서 다시 들어가는 중이야. 장사는 잘 되고?”

 “하모예. 보이소. 지금 이게 다 오늘 나가는 주문이라예.”

 “우와~. 생각보다 수완이 좋은데?”

 “지가 좀 한다 아입니꺼? 허허허!”

 “다행이다.”

 “근데, 우째 옆집 행님들은 오늘 안나오십니꺼?”

 “다들 유랑갔잖아.”

 “유랑이요?”

 “몰랐어?”

 “옴마야~. 팔자 좋은기라. 오늘 문 열자마자 세책방 언제 오냐꼬 묻는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뭔 일언반구도 없이 가뿌노.”

 “가끔 저렇게 훌쩍 떠나고 그래.”

 “내는 언제쯤 저래 유랑이나 가보겠노.”

 

 유아는 호석의 어깨를 톡톡 쳤다.

 

 “곧 될 거야. 이렇게 수완도 좋은데. 만영 고모 돌아오시면, 그땐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러까예? 그라믄 좋지요~”

 “그래. 바쁜데 나도 이만 가야해서.”

 “예. 근데, 가마도 없이 그냥 걸어가십니꺼? 가마 빌리오라 카까요?”

 “아니야. 걸어가도 돼.”

 “그래도, 귀한 분이 우째 가마도 없이 걸어가십니꺼?”

 “궐에선 하도 걷지 말래서, 지금이라도 좀 걸어야 돼. 살이 쪄서.”

 “아~ 그렇구나.”

 “나, 갈게.”

 “예, 살피가이소~.”

 

 유아는 마지막으로 호석의 비단가게까지 살펴보았다.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유아는 걸음을 멈춰세웠다.

 

 “잠깐만, 호석아?”

 “예?”

 “너, 싸움 좀 할 줄 아니?”

 

 그 말에 호석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팔을 들어 올리고는 팔뚝을 툭툭 쳤다.

 

 “안 보이십니꺼? 아! 과거는 묻지 마이소. 지금은 착하게 살랍니더.”

 “다행이네. 수고해.”

 

 

 그렇게 유아는 궐로 무사히 들어갔다. 유아의 짐작대로 아침부터 궐은 어수선했다. 아니 정신이 없었다. 대전엔 폭탄이 떨어진 듯 난리였다.

 

 “과인은 잠저시절(*세자시절)부터 외척들과 비리 관리들의 뒤를 캐고자 김척론자를 만들었소. 물론, 그 이름은 내가 지은 것이 아니라 그대들이 지어준 것이지만.”

 “전하. 그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김척론자라 하심은-”

 “과인이, 그 조직의 수장이오. 오랜 시간 지금 그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조사하고, 비리의 행적들을 모아왔지. 허나, 내 아바마마의 3년 상이 있는 중에는 밝히지 말아야겠다 생각하였소만. 그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대비는 아직 이냐?”

 

 청의 말에 상선은 고개를 숙였다.

 

 “곧 도착하실 것이옵니다.”

 “그것을 가져오라.”

 

 청이 손을 뻗자, 상선이 책 한 권을 가지고 왔다. 청이 그 책을 들어 올려 보였다.

 

 “자! 이것이 지금 그대들의 목숨을 하나 둘 앗아갈 피의 명부요. 위에서부터 저 아래까지 워낙 많아, 내 한 번에 죽이기는 어려울 것 같고. 우선, 딱, 다섯 장만 넘기리다. 도승지는 나와서 명부를 읽으라.”

 

 청의 말에 도승지가 나와 명부를 받아들었고, 도승지 조중호가 나와서 읽기 시작했다.

 

 “홍보함. 정훈세자의 죽음에 연루되었으며, 호조대왕의 재위 20년부터 시작한 갑질과 매관매직은 횟수를 헤아릴 수 없다. 집안의 노비를 수차례 구타하여 죽인 것이 수차례에 달하며, 능력이 충분치 않은 사람을 관직에 앉힌 사례가 50차례에 이른다. 영의정의 자리에 있음에도 당쟁을 부추기고 있으니 그 죄가 결코 적다 할 수 없다.”

 “하여, 영의정 홍보함을 파직한다. 계속하라.”

 

 그때, 대비인 김성희가 나타났다.

 

 “대비마마 드셨나이다.”

 “드시라 하라.”

 

 성희는 어리둥절해하며 대전에 들어왔다.

 

 “도승지는 계속하라.”

 “김구준. 호조대왕의 곁에서 충직한 신하가 되었으나, 누이를 재물로 삼아 그의 사람들을 관직에 앉혔으며, 당시의 중궁이 후사를 몇 번이나 가졌음에도 아이를 유산하게 하여 왕실과 종묘사직의 균형을 흐트렸다. 그 죄가 중죄이다.”

 “하여, 좌승지 김구준을 파직한다.”

 “뭐라?”

 

 성희는 대전에 들어오자마자 오라버니, 김구준의 파직 소식을 바로 앞에서 들어야 했다.

 

 “주상!”

 “도승지는 끊지 말라.”

 “김청원. 경기도 관찰사까지 돈으로 산 관직이며, 세자빈을 빙자하여 곳간에 재물을 쌓아두고 금붙이 모으기를 일삼았다. 나라의 녹이 결코 적지 아니한데, 과한 부를 쌓아 백성에게 돌려주지 않으니 그 죄가 크다.”

 “호조판서 김청원을 파직한다.”

 “이게 무슨... 나를 이곳에 부른 연유가 뭡니까?”

 

 성희의 말에 대전의 공기는 싸늘해졌다. 웅성거림도 없이 적막이 흘렀다. 청이 입을 열었다.

 

 “기다리세요.”

 

 성희가 등을 돌리려 돌아가려던 때였다.

 

 “아직도! 궐의 법도를 익히지 못하신 겁니까?”

 “뭐라고요?”

 “내가, 과인이! 기다리라면, 기다리는 겁니다.”

 

 그리고 마저 두 사람이 언급되었고, 이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파직되었다.

 

 “당분간 삼정승은 없을 것이오. 대신, 예조판서 채우겸을 영의정으로 하고, 국정을 살피려 하오.”

 

 청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상선에게 손짓했다. 상선의 손에는 작은 단도가 있었다.

 

 “대비께 전하라.”

 “이게 뭐하는 겁니까?”

 “역사가 다 보는 앞에서, 스스로 죄를 씻을 기회를 드리려 합니다. 그것 또한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할 수 있는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나더러, 자결이라도 하라?”

 “명령을 하면, 내가 진짜 나쁜 왕이 되겠지.”

 

 청은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다만, 미소를 지으며 입만 뻥끗 거렸다.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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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41. 내 아내의 남친 2022 / 1 / 27 36 0 6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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