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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기다림
작가 : joinB
작품등록일 : 2020.9.21

그가 사랑했던 조선의 푸른 하늘과 땅과 바람은 여전했다.
널 잃었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이른 걸음을 걸어가버릴 수밖에 없던 나는 아직도 여전했다.
널 떠났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세상은 우리의 사랑을 항상 다른 이름으로 가로막았다.
널 위한 것이라고 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다.
딱, 그만큼만 나는 너에게 상처주지 않으려 했다.
세상과 멀어진 지금, 멀어지려 하는 지금, 이제야 깨닫는다.
그게, 상처라는 걸.
너를 외롭게 했다는 것을...

나도 너도 기다린다.
사랑에 빠졌던 그 날의 사랑으로부터...

 
18. 쉿
작성일 : 20-09-21 18:05     조회 : 130     추천 : 0     분량 : 7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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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셨습니까?”

 “그리 웃으니, 못났다.”

 “치!”

 

 유아는 성에게 슬쩍 다가가 속삭였다.

 

 “자주 오시면, 곤란합니다. 비밀, 보안이 최우선인 것 아시지요?”

 “글 읽는 선비가 책방을 매일 들린다고 하여, 이상하게 볼 이는 또 누구인고?”

 “그도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조심을-”

 “염려마라.”

 “아, 예. 그러시지요.”

 

 유아가 성에게서 떨어지려하자, 성은 유아의 팔을 낚아채 당겼다.

 

 “그보다, 내가 운종가가 익숙지 않아 그러하니, 안내를 좀 해주어야겠다.”

 “제가요?”

 “그럼?”

 “남녀가 유별한데-”

 “어허~. 이러다가 비상사태에 피할 곳도 몰라 잡히기라도 하면 곤란한데. 이를 어쩐다?”

 

 성이 곤란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유아가 화들짝 놀라 손을 휘휘 저었다.

 

 “아, 아닙니다. 그럼, 소녀가 안내를 하겠습니다. 어디부터 가시렵니까?”

 

 성이 애써 미소를 감추며 답했다.

 

 “여기, 약방이 어디에 있을꼬?”

 “약방이요? 바로 앞에 있잖습니까?”

 “저기 말고. 내가 듣기론 아주 용한 의원이 있다고 하던데?”

 “저기도 용합니다.”

 “허면...”

 

 성이 유아의 귓가로 입을 가져가 귓속말을 속삭였다.

 

 “사람을 죽일 맹독이나, 해독제도 있느냐?”

 

 성의 말에 유아가 화들짝 놀랐다. 얼굴이 발그레해졌는데, 그것이 놀라서인지, 성의 기운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곳이라면, 반촌으로 가져야합니다.”

 “안내해다오.”

 “위험한데...”

 “내가 무예에도 능하니라.”

 

 유아는 성의 성화에 쭈뼛쭈뼛 책방을 나섰다. 뒤를 따르던 성은 멀리서 다가오는 봉수에 눈이 커졌다. 봉수는 성을 발견했고, 성도 봉수를 발견했으나. 봉수가 성에게 다가온다면 정체가 탄로 날 것이었다. 성은 일부러 얼굴을 부채로 가리고 봉수에게 오지 말라 입을 벙끗거렸다.

 

 “뭐라는 거지? 예?”

 

 ‘가! 오지 마!’

 

 봉수는 성을 보고 갸웃했다.

 

 “아니, 저하-”

 

 유아의 뒤에 서 있던 연실이 멀리서 자신의 쪽을 바라보던 봉수를 보고 고개를 돌렸다. 성은 부채로 겨우 얼굴을 가려,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을 숨겼다.

 

 “아는 분입니까?”

 “누구?”

 “저기, 저분 말입니다.”

 

 성은 인파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두리번거렸다.

 

 “누굴 말하는 것이냐?”

 “아, 아닌가보네요.”

 

 봉수는 그제야 성의 뜻을 알아차리고는 성을 지나쳐 걸어갔다. 그때였다. 유아와 성의 사이를 지나가는 수레꾼으로 인해 사이가 벌어졌다. 그 틈새를 타고 봉수가 성에게 다시 걸음을 돌려 말했다.

 

 “대체, 언제까지 숨기실 겁니까?”

 “곧. 곧!”

 “저하!”

 “저리 가, 들켜.”

 “홀로 움직이시면 위험하십니다. 어딜 가시는 지나 알려주십시오.”

 “반촌 약방.”

 “예?”

 “변씨네 약방. 저리 가!”

 

 수레꾼이 지나가고, 성과 봉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흩어졌다.

 

 “환장하겠네.”

 

 봉수는 곳곳에 숨어있던 호위무사들에게 손짓했다. 그때, 길 저 멀리에서 봉수를 발견한 또 다른 이가 그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이보게, 차내관. 차내관?”

 

 운종가 거리엔 사람이 많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이는 있게 마련이었다. 홍영목에게 내관, 차봉수가 그랬다. 익숙한 얼굴은 한 눈에 들어왔다.

 

 “차내관! 차내관!”

 

 봉수는 정신이 없었다. 영목은 그런 봉수의 뒤를 따랐다.

 

 “아니, 세손은 어딜 가고 분주해?”

 

 봉수는 네 명의 호위무사들과 함께 성의 뒤를 쫓고 있었다. 그때, 호위무사 중 한 사람이 뒤를 따르는 영목의 기운을 눈치 채고 멈췄다.

 

 “누구냐!”

 

 호위무사의 부름에 영목도, 봉수를 비롯한 나머지 호위무사들도 멈칫했다.

 

 “나와라!”

 “차내관. 나일세.”

 “어? 홍장의(*성균관 학생회장) 아니십니까? 어찌 여기에...?”

 “나야 말로 묻고 싶네. 뭐가 그리 급해서 부름에 답도 못하시나?”

 “송구합니다.”

 “무슨 일인가? 혹시, 저하께 무슨 일이 있는가?”

 “아닙니다. 뭐, 큰일은...”

 “저하도 없이, 자네가 호위를 받을 리는 만무하고?”

 “모른 척 넘어가주시면 아니 되겠습니까?”

 “어허~”

 “장의. 제발...”

 

 ***

 

 봉수가 식은땀을 흘리며 뒤를 따르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성은 유아의 안내로 반촌 약방을 향하고 있었다. 성은 그저 유아와 함께 반촌으로 향하는 것이 좋았다. 10년 전에도 함께 걸었던 길이었다. 그가 원하는 곳은 유아와 함께했던 곳들이었다.

 

 “아직 멀었느냐?”

 “예.”

 “그래?”

 

 성은 흐뭇했다.

 

 “저기는 어딘가?”

 “저곳은 아닙니다.”

 “저기, 저곳은?”

 “백정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여기는?”

 “반촌 행수의 집입니다.”

 “오호~”

 “나리.”

 

 유아는 성의 호기심이 귀찮아졌다. 기운이 빠지는 것 같았다. 대체 반촌 약방을 왜 오자고 했으며, 이곳에서 독을 구해 어쩌겠다는 것인가? 유아는 홱 돌아 성을 노려보았다.

 

 “도대체 맹독을 구해 어쩌시려는 겁니까?”

 “뭐?”

 “누굴 죽이기라도 합니까? 우린 그런 임무는 받은 적이 없잖습니까?”

 “쉿! 누가 듣겠구나.”

 “이유가 뭡니까? 지금 일부러 이러시는 거지요?”

 “대관절 내가 왜? 어째서?”

 

 유아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성에게 다가갔다. 점점 다가올수록 성의 심장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살짝 식은땀도 나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추파, 십니까?”

 “뭐?”

 “소녀가, 마음에 있으시어 이러시냔 말입니다.”

 “풋! 푸하하하하!”

 

 성은 노골적인 유아의 발언에 웃음이 터졌다. 유아는 자신이 잘못 짚은 것인가 싶어 머쓱해졌다.

 

 “왜 웃으십니까?”

 “정곡을 찔려서 말이지.”

 “네?”

 

 그 말이 유아는 더 당혹스러웠다. 성은 유아에게 한 발 짝 다가섰다.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유아는 긴장했다.

 

 “찾았다.”

 “응?”

 “기특하구나.”

 

 성의 시선은 유아에게 향하지 않았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유아의 등 뒤로 보이는 반촌 약방 현판이었다. 유아는 허탈했다. 그러자 성은 유아를 내려다보고 시익 웃었다.

 

 “무엇이라도 기대한 것이냐?”

 “무슨!”

 “가자.”

 “혼자 가십시오. 저는 급한 용무가 있다는 것이 깜빡했습니다.”

 

 유아가 휙 돌아 되돌아가려했다. 성은 삐쳐서 등을 돌리는 유아의 팔을 잡아 세웠다.

 

 “여기 나 혼자 두고?”

 “그쪽 사정이고.”

 “그쪽?”

 “이만.”

 

 유아는 성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되돌아갔다. 성은 멀어지는 유아를 붙잡지 못했다. 그 사이 성의 앞에 봉수와 수행원들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성의 얼굴에 짜증이 가득했다.

 

 “거, 참!”

 “저하. 이리 돌아다니시면 안 됩니다.”

 “왜?”

 “그림자가 서찰을 보내왔습니다.”

 

 성은 궁에 있는 동안 그림자의 서찰이 궁금해 봉수에게 매일같이 사가로 심부름을 보냈다. 덕분에 봉수도 그림자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드디어 성이 출궁하자 다시 그림자가 그에게 연락을 해 온 것이었다.

 

 “가지고 왔느냐?”

 “여기.”

 

 성은 그림자의 서찰을 읽어보았다.

 

 -김척론자와 당분간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좋겠소. 정체가 드러나는 것은 시간문제이니-

 

 “이 자는 대체, 내가 뭘 하는지 어찌 알까?”

 “뭐라 합니까?”

 “아니다.”

 

 성은 그림자와 나눈 대화는 봉수에게도 비밀로 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아는 사람. 그림자의 이런 소식은 곁에 있는 사람부터 조심하라는 경고이기도 했으니까. 이상하긴 해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림자는 다른 건 몰라도 성의 목숨을 걱정하는 사람이라는 것.

 

 “돌아가야겠구나.”

 “안 잡으시고요?”

 “이미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구나!”

 

 성은 씩씩거리며 다시 사가로 돌아갔다. 그리고 집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처소 밖으로도 나서지 않았다. 덕분에 조바심이 난 것은 화를 내고 돌아간 유아였다. 한편, 다른 이유로 조바심이 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백선생이었다. 아침부터 책방 안을 서성이는 백선생의 모습에 방물장수 청씨는 어리둥절했다.

 

 “어이, 백씨.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아침부터 왜 그래?”

 “그럴 일이 좀 있네.”

 “왜? 마누라 또 애 들어섰대?”

 “아니야.”

 “그럼? 그것 말고 이렇게 정신 놓을 일이 뭐가 있어?”

 “지금 시각이 얼마나 되었나?”

 “사정시(*오전 10시)쯤? 아가씨 올 때 됐구만.”

 “벌써?”

 “아가씨를 기다리는 건가?”

 

 백선생은 돌아다니는 것도 이젠 지친 것인지 자리에 털썩 앉았다.

 

 “왜 저래?”

 

 부채장수 신씨는 양 어깨 가득 가방을 메고 나타났다. 장사를 할 시간도 한참 지났는데 이제야 나타난 것이었다. 청씨는 신씨의 가방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저긴 또 왜 저래?”

 

 신씨는 그저 신이나서 싱글벙글이었다. 좌판 앞에 가방을 내려놓으니, 안에는 먹을 것이 한 가득이었다.

 

 “이보게. 부채 말고, 이걸 팔 요량인가?”

 

 청씨가 물었다.

 

 “아니. 우리 연실이 먹을 것일세.”

 “이게, 이게. 며칠이나 먹이려고.”

 “하루.”

 “사람이?”

 “그럼. 이것도 부족할까봐 걱정인걸.”

 

 청씨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유아가 빠른 걸음으로 나타났다.

 

 “아저씨!”

 “오셨습니까?”

 

 유아는 오자마자 책방을 순식간에 둘러보았다. 백선생은 책방을 둘러보는 유아의 모습에 더 긴장한 듯 보였다. 그리고 자신의 책상 위에 있던 서찰을 슬그머니 옷 안으로 숨겨버렸다.

 

 “스승님!”

 “... 네!”

 “그 사람 안 왔습니까?”

 “누굴 말씀하시는지?”

 “그 왕족이요.”

 “아! 그분. 아니요. 오늘도...”

 “뭐하는 양반이 바깥출입을 3일이나 안 한답니까?”

 “그, 그러게요.”

 

 유아는 한숨을 푹 내쉬며 의자에 앉았다. 백선생은 조마조마했다. 얼굴에 식은 땀도 조금 났다. 좋지 않은 백선생의 모습을 본 유아는 갸웃했다.

 

 “스승님.”

 “예?!”

 

 백선생은 유아의 부름에 과민반응을 보였다.

 

 “어디, 편찮으십니까?”

 “아, 아니요. 멀쩡합니다. 하하...”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무슨 귀신이라도 보신 것 마냥.”

 “아, 그, 그게. 어제 꿈자리가 영 뒤숭숭해서...”

 “무슨 꿈이었기에 그러십니까?”

 “별 거 아닙니다. 개꿈입니다, 개꿈.”

 

 유아는 백선생의 반응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오로지 신경은 성이 걸어올 길에 있었다. 그리고 가게 앞에서 깨소금 볶는 연인에 김이 샜다.

 

 “아웅~ 뭘 이런 걸 다 가져오고 그래요.”

 “우리 연실이 며칠 새 얼굴이 반쪽이 됐잖아. 내가 아주 속상해.”

 “어머! 정말?”

 “이거 먹고 나의 건강한 연실이로 돌아와.”

 “알았어요. 자, 오라버니도 아~”

 “아~ 음~. 연실이가 주니까 개떡이 꿀떡이네.”

 

 유아는 신씨와 연실을 노려보았다.

 

 “누군 좋겠네.”

 

 그런 유아를 바라보던 청씨가 물었다.

 

 “싸우셨어?”

 “네?”

 “그 사내 말입니다. 잘생긴. 한동안 문지방 닳듯이 오더니, 요즘은 뜸하네?”

 “오든지 말든지.”

 “왜요? 연정이 아니랍디까?”

 “연정은 무슨! 그런 거 아닙니다!”

 “그랬군. 사내가 박력이 부족하다 싶었어. 기생오라비과라 그런가?”

 “그래가지고는 기생들 후리기는 글렀지요.”

 “무슨일이 있긴 있었구만.”

 “몰라요!”

 

 백선생은 유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가 숨긴 것은 김척론자 수장에게서 온 서찰이었다.

 

 -운종가 대장에게 전한다. ‘경대’가 만났다는 사람은 ‘옥새’가 맞다. 그러나 더 이상 ‘옥새’와 ‘경대’가 만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옥새’는 누구에게도 노출되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발각이 된다면 우리 동지들 모두의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그리고 우리는 곧 또 다른 김씨를 척결해야한다. 때문에 ‘경대’에게 곧 선택의 순간이 올 것이다. 자신의 집안을 버릴지, 죽음을 택할지. 스승인 그대가 전하라. 답을 기다리겠다.-

 

 여기서 경대는 유아를 뜻하는 것이었고, 옥새는 성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들이 이청이라고 알고 있는 성의 존재를 김척론자 수장이 확인한 것이었다. 동시에 수장은 백선생에게 아주 어려운 임무를 주었다. 유아에게 삶과 죽음을 선택하게 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임무였다.

 

 “스승님.”

 “네.”

 “아무래도 오늘은 좀 쉬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증세가 어떤지 말씀하시면, 탕약이라도-”

 “탕약은 됐습니다. 아무래도 잠을 설쳐 그러니 청씨, 오늘 자네가 책방을 좀 맡아주겠나?”

 “그래. 그러지. 내가 봐도 오늘 아침부터 안색이 영 못쓰겠더라고.”

 “고맙네.”

 

 백선생은 애써 유아의 시선을 피했고, 오늘의 임무를 외면했다. 하지만 언제든 해야 하는 임무였고, 유아에게 닥칠 시련이었다.

 

 “백씨도 이제 나이가 드나보네.”

 “무슨 일이 있으신 것 같은데, 아저씨는 모르세요?”

 “그러게요. 나한테도 한마디도 안 하네?”

 

 유아는 여전히 성이 올 거리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또 일주일이 흘러갔다.

 

 그날 밤, 성의 집에는 늦은 시간 사가를 방문한 손님이 있었다.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중전마마!”

 

 화려한 가마를 타고 나타난 중전, 성희였다. 사가의 노비는 즉시 안채로 달려가 윤희에게 이를 알렸다.

 

 “마마! 중전마마께서 납시셨나이다.”

 “중전마마라니? 여길?”

 “예. 지금 대문 앞에...”

 

 윤희는 불안했다.

 

 “어서 뫼셔라.”

 

 윤희는 몸이 단정한 지를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손은? 세손은 어디 있느냐?”

 

 성은 영목과 말 타기 시합을 하고 기분 좋게 한 잔하고 사가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리고 사가 앞에 서 있는 가마를 발견했다.

 

 “웬 가마지?”

 “그러게. 찾아 올 사람이 없는데.”

 

 성과 영목은 사가로 들어섰다. 그리고 보지 말아야 할 장면을 목격했다. 성희와 함께 온 궁녀들이 집을 이 잡듯이 뒤지고 있었고, 윤희는 마당 한 가운데 무릎을 꿇고 있었다.

 

 “찾았습니다!”

 

 목소리와 함께 상궁이 손에 들고 나온 것은 윤희의 방에 있던 정훈세자의 위패였다. 그 위패는 성희의 손에 전달되었다.

 

 “혜빈! 네 죄를 네가 알렸다!”

 

 문 앞에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성은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리고 나서려 움직이자 영목이 그를 붙잡아 세웠다. 나서면 안 된다는 눈빛으로 그를 잡았다. 성의 숨이 거칠어졌다. 이를 악 물었고, 어머니의 수모를 모두 지켜보아야만 했다. 성의 모습은 윤희도 보았다. 윤희 또한 시선으로 성을 밀어냈다.

 

 “혜빈! 이게 무엇인지 설명해보겠느냐?”

 “송구합니다, 중전마마.”

 “송구? 이것이 그것으로 넘어 갈 일이냐? 이건 역모다, 역모!”

 “마마! 제 지아비의 위패이옵니다. 그것이 어찌 역모라 하십니까?”

 “정훈세자는 죄인이다! 해서, 너희 모자가 이리 궐에서 살지도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

 “허나, 마마께오서 가르침을 주시지 않았나이까? 무슨 일이 있어도 지어미는 지아비를 죽는 날까지 섬겨야 한다고요. 제 지아비는 비록 불미스럽게 승하하셨으나, 지어미의 도리를 다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마마의 가르침을 따르고 싶었을 뿐입니다.”

 

 자신의 가르침을 핑계 대니 성희는 말문이 막혔다. 이 늦은 시간에 위패 하나를 꼬투리 잡고자 온 보람이 없었다. 그 핑계거리가 사라지자 심술만 남은 성희는 들고 있던 위패를 윤희의 앞으로 던졌다.

 

 “이를 주상전하께서 아시면 너희 모자도 이 위패 꼴이 될 것이다. 어찌 행동을 했으면, 이런 이야기가 내 귀에까지 들어와?!”

 “송구합니다. 자중하고, 또 자중하겠나이다.”

 

 성희는 윤희를 한 번 더 노려보고는 홱 돌아 집을 나섰다. 그리고 부들부들 떨고 있던 성과 마주했다. 성은 성희의 눈을 보지 않고 그저 고개 숙여 길을 터 줄 뿐이었다. 성희는 성도 한 번 노려보고는 도도하게 집을 빠져나갔다. 성은 분노를 어찌할 수가 없었다. 윤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런 비참한 모습을 아들에게 보여 더 비참했기 때문이었다.

 

 “마마-”

 

 윤희는 상궁의 부축도 거절하고 위패를 들고 스스로 일어났다. 위패의 먼지를 털고 윤희는 안채로 들어갔다.

 

 “어머니!”

 “이 분노도 드러내시면 안 됩니다.”

 

 안채 문 너머로 들리는 윤희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러나 그녀의 심장은 이미 문드러지고 있었다.

 

 “분노하세요. 단, 이 분노는 궁에 들어가신 후에 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어머니!”

 “세손은 자중하세요. 우리 모자가 이렇게 무사히-”

 “대체! 아버지가 잘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대관절 무엇이 그리도 죄이기에 어머니는 이렇게까지 수모를 겪어야 합니까? 백성이 잘 사는 것을 바란 것이 죄입니까? 부모에게 효를 다하려 했던 것이 죄입니까?”

 “... 살아있는 것이 죄였습니다.”

 

 성은 머리를 한 대 크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성이 느끼는 분노는 문 앞에서 듣고 있던 영목도 마찬가지였다. 윤희는 자신의 고모였으니까. 그리고 홍씨 가문의 남자로서 그는 정훈세자가 왜 죽어야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의 윤희가 성에게 하려는 말도 무슨 심정인지 헤아릴 수 있었다.

 

 “그러니 우린 살아야죠. 우리가 숨 쉬는 것만으로도 저들은 두렵습니다. 그러니 버텨야죠. 무슨 수를 써도 우린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보여야합니다. 그래야 갚아줄 수 있습니다.”

 

 ***

 

 다음 날 아침, 성은 책방에 나타났다. 유아도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간에 성은 비장한 얼굴을 하고 백선생에게 다가갔다.

 

 “다음 계획이 왔소?”

 “아, 예...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오질 않으시고.”

 “중요한 일이 있어서.”

 

 보던 청씨가 말을 덧붙였다.

 

 “유아 아가씨가 성이 많이 나셨던데. 그건 어찌 해결 하시고?”

 “도와주겠소?”

 “내가? 왜?”

 “난 아직 그 아이를 잘 모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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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3. 후회 2020 / 9 / 21 138 0 3343   
12 12. 단오 2020 / 9 / 21 132 0 4000   
11 11. 사랑 2020 / 9 / 21 141 0 4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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