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나와 건물을 위로 쳐다보며 건우의 두 주먹은 다시 불끈 쥐고서 걸어가는 뒷모습은 지금껏 보던 건우가 아니었다.
한편 건우가 가고 건우아버지는 폰을 꺼내 연우 이름을 누르고 통화버튼을 누른다. 신호가 가고 몇 초가 지난 뒤 연우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
"나야 연우야 아버지..."
그 말을 하면서 떨리는 건우아버지의 음성이 폰으로 전해졌는지 연우는 그 폰을 바라보다가 말을 이어갔다.
"어떻게 이 시간에 전화를 다 하셨어요"
"집에는 언제 올 거야"
"아마 당분간 못 갈 것 같아요"
"그럼 내가 찾아갈테니 시간 좀 내주렴"
"왜 그러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아버지가 아들 얼굴 보고 싶다는데 이유가 있나?"
"알겠어요. 제가 찾아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한참동안 폰을 바라보고 있다. 그 모습을 치훈과 슬비가 보고 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것인지 연우가 시선을 돌리는데 바로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두 사람.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면서
"왜 그래 왜 내 눈치를 보고 그래"
"난 눈치 안 봤는데 슬비야 넌 눈치 봤어?"
"아... 아니요... 전..."
"또 말 더듬는다 거짓말도 보여요."
"언제적 유행어를... 그러니까 슬비가 널 싫어하지"
"슬비야 내가 싫어?"
"아니요"
"야! 슬비도 인간인데 대놓고 싫다고 말하겠냐"
"그럼 내가 좋아?"
"네..."
"부탁이 있는데"
"무슨 부탁이요?"
"오늘 저녁 나랑 갈 곳이 있는데 같이 가줄래?"
"네. 오빠가 괜찮다면..."
그렇게 슬비와 약속을 잡고 다시 일을 하기 시작한다. 어느새 퇴근시간이 되고 치훈이 카페를 가기 위해 먼저 자리에서 정리를 하고 일어난다.
"내일보자 난 먼저 간다. 데이트 잘해"
"데이트는 무슨..."
"안녕히 가세요."
치훈이 나가고 난 뒤, 둘만 남은 사무실 안에서 정적이 흐르고 이내 연우가 일어나서 슬비 곁으로 간다. 슬비의 손을 잡고 둘은 사무실을 나와서 차를 탄다. 연우가 운전하며 도착한 곳은 어디서 많이 본 집들이 있는 동네.
차가 어느 집 대문 앞에 서고 연우가 옷을 정리한다. 슬비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연우를 붙잡는다.
"여기는..."
"우리 부모님이 살고 있는 집"
"그럼 건우가 사는 집이잖아요"
"그렇게 되는 건가? 이제 건우랑 형 동생 사이 안하기로 했거든..."
"그런데 나를 왜 데리고 온 거에요?"
"궁금해?"
"네"
"그럼 들어가보면 알 거야"
연우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차에서 내려 슬비 손을 잡고 대문 앞에 선다. 초인종을 누르고 문이 열리자 안으로 들어간다. 다시 옷을 정리하고 현관 앞에 서서 문을 열었다. 안에는 부모님이 연우를 맞이하기 위해 서 있다.
"우리 아들..."
"어서 들어와라"
"건우친구 슬비 아시죠? 같이 왔어요"
"왜 네가 슬비와 같이 와"
"일단 들어가서 말씀 드릴게요"
소파에 건우의 부모님이 자리에 앉고 연우가 자연스럽게 리드하며 슬비와 같이 앉는다. 준비한 선물을 테이블 위에 놓고 아무도 먼저 말을 하지 못한 채로 시간이 가고 있었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면서 건우가 들어온다. 거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냥 들어가려고 하다가 연우 옆에 앉은 사람이 슬비라는 것을 알고 바로 다가가 슬비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운다.
"네가 왜 건우형과 같이 앉아있는 거야"
"난 그냥..."
"건우야 그 손 놔줘 내 손님이야"
"아니 그 전에 내 여자야!"
하면서 슬비를 데리고 이층으로 올라간다. 건우의 힘에 어쩔수없이 이층에 올라가게 된 슬비는 건우의 방으로 같이 들어가게 된다. 문이 잠그고 둘은 눈을 마주하며 서 있다. 문고리를 잡고 기대 서 있는 건우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서 있는 슬비가 먼저 침대에 걸터앉는다. 그제서야 건우도 뭔가 안심이 되는 듯 문고리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 깊은 한숨을 내쉰다.
한편 일층에서는 그전에는 느낄 수 없는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누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길 바라는 듯 눈치만 보고 앉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