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침. 출근을 준비하는 슬비의 방으로 들어오는 엄마가 침대에 걸터앉아서 눈치를 보며 슬쩍 말을 꺼낸다.
"너 청운그룹 들어가고 선자리가 여기저기서..."
"됐어. 일에만 전념할 거야"
"난 안 됐어. 여기 시간이랑 장소 있으니까 망신시키지 말고 나가"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하루의 시작. 연우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또 차마 선을 본다고 말도 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거리다 퇴근을 한다.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가면 혼자 앉아있는 남자의 테이블에 시선을 두고서 주위를 둘러보면 다른 여자나 사람들이 앞에 앉는 모습을 본다.
웨이터의 도움으로 테이블을 찾아가면 훈남이 앉아있지만 말이 너무 많다. 결국 다음에 보자는 말을 예의상 건네고 집까지 바래다 준다는 친절을 거절하고 난 뒤 서둘러 레스토랑을 나와 버스를 타고 동네 입구까지 왔다.
집이 있는 곳을 쳐다보니 한숨만 나오고 머리도 식힐 겸 공원으로 걸음을 옮기는 슬비 그러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 쓰고 비오는 공원의 산책로 길을 혼자서 걷고 있다. 그때 비를 맞으며 걷고 있는 한 남자가 슬비를 향해 걸어온다. 조금 무서운 느낌이 들어 걷던 길을 뒤로 하고 집으로 걸어가려고 할 때 어디선가 많이 듣던 목소리로 슬비를 향해 말을 건넨다.
"아직도 도건우 우산 쓰고 다니니"
그 말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면 비를 맞고 서 있는 건우의 모습이 있다.
"도건우... 너..."
"그 우산 내껀데 다른 사람이 자꾸 쓰고 다니네"
슬비가 비를 맞고 있는 건우에게 달려가 우산을 씌워준다. 비에 흠뻑 젖은 건우의 얼굴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옷으로 얼굴을 닦아준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이게 뭐야 비나 맞고 다녀 왜"
"내가 이렇게 비를 맞고 다니면 꼭 여자들이 먼저 다가와서는 우산을 씌워주더라 이슬비라는 여자 빼고..."
"콕 집어서 이슬비라고 말하고 싶어... 됐지 이렇게 우산 들고 있잖아"
"이 시간에 이렇게 혼자 걷고 있는 것을 보니 아직 혼자구나"
"그럴 일이 좀 있었어"
"설마 날 기다렸어 5년 전 그때 그 말때문에..."
"아니라니깐"
"다행이다 난 또..."
"여기서 이러지 말고 치훈오빠 카페로 가자"
건우와 슬비가 하나의 우산을 쓰고 카페로 들어간다. 치훈이 두 사람의 그 모습을 보고 잠시 멈칫하다가 다가가서 건우에게 인사를 건넨다.
"얼마만이야! 잘 지냈어"
"네 형은 그대로네요"
"그대로긴... 연우는 만났어?"
"아니요 아직... 우리 아빠 회사 이사가 되었다는 건 들었는데"
"그럼 소식 다 아는 거야"
치훈이 커피를 만들기 위해 다시 자리로 돌아가고 테이블에 앉은 두 사람 잠시 말이없다.
"나 결혼해..."
"뭐? 결혼? 누구랑?"
"너도 알지 채린이... 청첩장이 다 젖었다. 다음에 줄게"
"아버지 회사 들어가려고?"
"응 연우형 괜찮은 남자야 알지 꼭 곁에 있어줘 네가... 많이 힘들거야"
"그게 무슨 말인지 설명해줘"
"조망간 알게 될 거야"
건우의 의미심장한 말 때문에 더이상 말이 귓가에 들리지않았다. 커피가 앞에 놓여있지만 마시지 못했다. 떨리는 손을 보이기 싫어서...
그렇게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건우와 슬비가 골목길을 거닐고 있다.
"진짜 오랜만에 너와 단 둘이 이 골목길을 걷는 것 같아"
"그러게..."
다시 둘은 말이 없어지고 슬비의 집 앞 계단에 마주 선 두 사람 그저 미소 지으며 눈을 마주치고 있다.
"나 철들었나 봐 이제 네 눈을 보고 떨리지 않아 내 심장이..."
"잘 됐어. 채린이 보면서 심장이 두근거리면 되지 이제..."
"너무 쉽게 받아 들이는 것 아니야? 아니 결혼도 안 했는데"
"너의 눈에서 장난이 아니라는 걸 읽을 수 있거든"
"그래... 내가 너무 진지해졌나?"
"아마 처음부터 네가 나에게 그런 눈빛을 보여줬다면 이런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 텐데..."
"그래 그땐 내가 너무 철없이 너를 힘들게 했어"
"결혼 축하해 청첩장 꼭 줘 가서 너의 턱시도 입은 모습 보고 싶다"
"그래 잘가"
슬비가 뒷모습을 보이며 걸어가는 것을 보고 건우가 뒤에서 안으며 말없이 서 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