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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상처의 노래 1부(부제: 비창)
작가 : 소피스트
작품등록일 : 2019.9.2

청춘들의 사랑과 아픔을 그린 소설입니다.

 
11화 풍물패 동아리, 한울림
작성일 : 19-09-13 22:00     조회 : 31     추천 : 0     분량 : 1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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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풍물패 동아리, 한울림

 

  다시 한 주가 시작됐다. 학교는 새로 한 주를 시작하는 학생들로 활기가 넘쳤다. 풍물패 동아리방에는 스무 명 남짓 되는 회원들이 연습을 준비하기 위해 농민복을 갈아입은 후 북,장구, 꽹과리 징 등 악기를 챙기고 있었다. 하지만 연습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2학년인 회원들 중에 유진, 희연, 민이가 아직 오지 않고 있었다.

  “그만들 가지. 다들 온 거 같은데.”

  한울림의 회장인 김경철이 회원들이 연습준비를 마치자 말을 꺼냈다.

  “아직 몇 사람 안 왔는데요.”

 재수가 말했다.

  “가서 연습하고 있다 보면 오겠지.”

 그 때 유진이와 희연이가 동아리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죄송해요. 저희들이 좀 늦었죠.”

  희연이가 회장을 보며 말했다.

  “아니야. 어서 준비해 가지고 오도록 해. 우린 먼저 가 있을 테니까.”

  “예.”

  “근데, 민이 못 봤어?”

 재수가 희연이에게 물었다.

  “아니. 아직 안 왔어?”

 희연이가 되물었다.

  “하여튼 그 깡패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기장이면 좀 모범을 보여야 할 거 아냐? 그런데 허곤날 지각이니 말야?”

 재수가 또 불평을 터뜨렸다.

  “야, 민이 없을 때만이라도 좀 조용 할 수 없냐? 어째 너희 둘은 맨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냐?”

 준석이가 짜증을 냈다.

  “너 같으면 열 안 받겠네. 다들 와서 기다리는데 기장이라는 녀석이 매일 늦잖아.”

  “희연아, 잠깐만 나가 있을래? 우리 옷 갈아 입어야 해서.”

 유진이가 말했다.

  희연은 동아리 방을 나와 문 앞에 서 있었다. 희연이가 문 앞에서 남학생들이 옷을 다 갈아입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민이가 계단을 뛰어 올라오고 있었다.

  “너 여기서 뭐해? 안 들어가고.”

 민이는 희연이가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나서 물었다.

  “남자 애들 옷 갈아 입고 있어서 잠시 나와 있는 거야.”

 유진은 농민복으로 옷을 다 갈아입고 나서 문을 열었다.

  “됐어, 이제 들어와도 돼.”

  희연이와 민이가 동아리 방 안으로 들어섰다.

  “야, 넌 기장이면 좀 빨리 와야 할 거 아냐? 도대체 어디 있다가 이제 오는 거야?”

 재수는 민이를 보자마자 또 시비를 걸고 넘어졌다.

  “넌, 어째 나만 보면 시비야? 도서관에 좀 있다 왔다. 왜?”

  “민이 니가 웬 일이냐? 도서관에서 공부를 다 하고.”

 이번에는 준석이도 꽤 놀란 눈치였다.

  “쟤가 도서관에서 공부 했겠냐? 보나마나 침 흘리며 잠이나 자다 왔겠지.”

 재수는 끝까지 민이를 물고 늘어졌다.

  “그래. 도서관에서 잠 좀 자다왔다. 도서관에서 잠 좀 자면 안 되냐?”

  민이도 또 맞받아쳤다.

  “도서관이 너 같은 애 잠자라고 있는 데냐? 학생들 공부하라고 있는 데지.”

  “또 시작이군. 아무래도 난 먼저 가야겠다. 여기 있어 봤자 짜증만 느니까.”

 준석은 동아리방을 나갔다.

  “좀 나가 있어줘. 옷 갈아 입어야 하니까.”

 희연이는 두명의 남학생에게 말했다. 희연이의 말대로 두 남학생은 동아리 방을 나가려고 북을 챙긴 후 문쪽으로 걸어갔다.

  “야, 넌 안 나가?”

  문쪽으로 걸어나가던 재수가 민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내가 왜 나가? 나도 옷 갈아 입어야 하는데.”

  “깡패, 너도 여자였어? 누가 널 여자라고 보냐?”

  “머저리, 헛소리는 그만하고 맞기 싫으면 빨리 나가기나 해.”

  “분명히 여자가 아니라니까.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재수는 유진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유진은 할 말을 잃은 듯 고개만 설레설레 흔들었다.

  두 남학생이 동아리 방을 나오자 희연이와 민이는 옷을 벗고 흰 농민복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저 머저리랑 앞으로 어떻게 3년을 더 같이 다니지. 이건 내 생애 최대의 불행이라니까.”

  “3년 동안 같이 다닐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

 희연이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재수, 군대 가야 될 거 아냐?”

  “맞아. 그렇지. 역시 남자는 군대를 가야 한다니까. 보통 2학년 마치고 군대를 가니까 올해만 잘 버티면 될 거 같은데.”

  “그만 나가자.”

 희연이와 민이는 장구를 챙겨 가지고 동아리 방으로 나왔다.

  “무슨 옷 갈아입는데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냐?”

 재수는 두 여학생이 나오자 또 민이에게 핀잔을 주었다.

  “미안해.”

 희연이가 대신 대답을 했다.

  “아니, 희연이 너한테 한 말 아냐. 저 깡패한테 한 말이라고.”

  “야, 머저리 분명히 경고하겠는데 그 주둥아리 좀 그만 놀려라. 나도 참는데 한계가 있어. 그건 그렇고 머저리, 너 군대 갈 생각 없냐? 기왕 어차피 가야하는 군대라면 이번 학기 마치고 가는 게 어때? 나 네 얼굴 좀 안 보고 살아보자.”

 민이가 재수를 보고 물었다.

  “나도 군대에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여기서 널 보느니 차라리 군대에 가 있는 게 훨씬 날 것 같으니까 말이야.”

  “무슨 소리야? 그럼 넌 군대 안 간다는 얘기야?”

 민이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안 가는 게 아니라 못 가는 거다. 고등학교 때 수술 받은 거 때문에 면제 받았거든.”

  “잠깐, 그럼 그 얘기는 난 너하고 꼼짝없이 3년을 같이 다녀야 된다는 거야? 어쩌다 이런 일이? 이건 내 생애 최대의 불행이라니까.”

  “야,. 그건 내가 할 소리야. 내가 군에 못 가는 대신 니가 여군에 지원하면 어때? 그럼 우린 서로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거 같은데.”

  “시끄러.”

  “왜? 넌 군대 체질인데.”

  “시끄럽다고 했지.”

 민이는 주먹으로 재수의 배를 때렸다. 재수는 반사적으로 배를 움켜쥐었다.

  “민아, 너무 심한 거 아냐?”

 옆에서 유진이와 함께 걷고 있던 희연이가 걱정스런 얼굴을 하며 말했다.

  “이 녀석은 맞아도 싸.”

  “야, 깡패. 내가 무슨 동네북이야?”

  “그러게 한 번 말하면 알아 들었어야지.”

  “정말 끝도 없군.”

 유진이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신경쓰지마, 유진아. 어차피, 쟤네들 사랑싸움에 끼어들 필요 없잖아?”

 희연이가 말했다.

  “뭐 사랑싸움?”

 민이가 놀란 얼굴을 하며 희연이를 돌아보았다.

  “아님 말고, 다 온 거 같은데.”

  희연은 가볍게 미소를 띠며 또 능청스럽게 말했다.

 

  네 명의 학생은 이미 풍물패 회원들이 둥그렇게 자리를 잡고 앉은 잔디밭에 들어가서 빈자리에 앉았다.

  “자 그럼 다들 모였으니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검은 색 옷에 노랑색 띠와 빨간 색 띠를 어깨너머로 두른 회장이 꽹꽈리를 쳤다. 회원들은 회장의 지휘에 맞춰 장단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연습은 언제나 이렇게 장단연습으로 시작해서 다음에는 문선연습,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단과 문선을 어울려서 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북, 장구, 꽹과리, 징 등 풍물 악기들이 어우러진 장단이 교정내에 울려퍼졌다. 회원들의 이마에는 어느새 땀방울이 맺혔으나 그들은 자신의 연주하는 장단에 도취되어 전혀 힘든 줄을 몰랐다.

  1시간 반이 지난 후 회장은 장단연습을 끝냈다. 그리고는 10분 정도의 휴식시간을 갖고 나서 문선연습으로 들어갔다. 회장이 먼저 스텝을 맞추며 돌면서 크게 원을 그리는 동작을 보여주었다. 회장의 시범이 끝난 후 회원들은 차례대로 회장의 한 행동대로 따라 했다. 회장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을 보며 틀린 부분을 지적해 주었다. 그들은 몇 번의 연습을 거듭하고 난 후에 앞에 배웠던 장단을 연주하면서 문선연습으로 들어갔다. 날은 이미 어두워져서 주위는 완전히 컴컴했다. 그나마 그들이 서서 연습을 하고 있는 곳만이 옆에 있는 가로등의 불빛 때문에 조금 환할 뿐이였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지.”

 연습을 시작한 지 3시간이 지난 후에 회장이 말을 꺼냈다.

  “휴, 이제야 끝났네.”

 준석은 숨을 고르고 나더니 회장에게로 걸어갔다.

 “짱님, 저 먼저 가 볼게요. 약속이 있어서.”

 “그래, 그럼. 오늘 수고했어.”

 “그럼 갈게요.”

 준석은 회장한테 인사를 하고 나서 동아리 방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쟤는 요즘 뭐가 저렇게 바쁘냐?”

 민이는 급하게 뛰어가는 준석이를 보며 말했다.

  “요즘 한창 연애 사업 중이잖아.”

 희연이가 대꾸를 했다.

  “연애 사업?”

 민이가 의아한 눈으로 희연이를 돌아보았다.

  “혹시, 니가 저번에 소개시켜 준 여자 아이 말하는 거야?”

 재수가 끼어들며 물었다.

  희연은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 눈 높은 녀석이 반했단 말이야? 그 아이 한 번 보고 싶군. 얼마나 이쁜지.”

  민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보나마나 너보단 훨씬 이쁘겠지.”

 재수가 또 끼어 들었다.

  “넌 그 입 좀 닥쳐라.”

 민이가 또 목소리를 높이며 맞받아쳤다.

 

  준석은 동아리 방에 들어오더니 재빨리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나서 시계를 보았다. 8시 40분이었다. 8시 30분에 커피숍에서 마리와 만나기로 했었는데 벌써 10분이나 지나 있었다. 준석은 문을 열고 나와 재빨리 뛰어갔다.

 

  동아리 방에는 회장인 김경철과 회원들이 긴 탁자를 가운데에 놓고 둘러앉아 있었다. 그들은 오늘 연습에 대한 총평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민이와 재수가 아직 동아리 방에 나타나질 않고 있었다.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둘이 말썽이었다.

  “도대체 이 녀석들은 또 어디 있는 거야?”

 회장인 경철이 불만이 담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방금 전에 수돗가에서 저랑 같이 씻고 있었는데요.”

 유진이가 대답을 했다.

 “그럼 아마 또 둘이 말싸움이나 하고 있을 거에요”

 희연이가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

 “하여튼 이 녀석들은 허곤날 말썽이라니까.”

 

  재수와 민이는 수돗가에서 세수를 하며 땀을 씻고 있었다. 누군가 민이의 어깨를 건드렸다. 민이는 어깨에 살짝 와 닿는 촉감 때문에 고개를 돌렸다. 혜진이였다.

  “연습 이제 끝난 거야?”

  혜진이가 물었다.

  “응, 넌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지금 가는 거야?”

  “응.”

  “조금만 기다릴래. 그러면 같이 갈 수 있는데.”

  “그만 가 봐야 해.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시거든.”

  “그래. 그럼 하는 수 없지.”

  “미안해.”

  “미안하긴. 다음에 보자.”

  “응. 그럼 먼저 갈게.”

 혜진은 자리를 떴다.

  옆에서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재수는 멀어져 가는 혜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뭘 그렇게 넋이 빠져 가지고 보냐? 하여튼 이쁜 여자라면 사족을 못 써요. 지까짓 것도 남자라고 말야.”

 민이는 손으로 재수의 뒷통수를 때렸다.

  “야, 남의 머리는 왜 때리고 그래?”

 재수가 성을 내며 말했다.

  “정신 좀 차리라고 그런다. 저 요조숙녀는 너하고 안 맞는다고.”

  “넌 도대체 왜 그 모양이냐? 네 친구들은 다 이쁘고 착한데. 얼굴이 못났으면 마음이라도 고와야지. 이건 얼굴은 될 대로 생겨가지고 성질까지 괴팍......”

 재수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민이가 주먹으로 재수의 배를 때렸다. 재수는 약하게 터져나오는 비명을 내며 반사적으로 배를 감쌌다.

  “내가 매번 말하잖아. 말조심하라고.”

  “게다가 너무 폭력적이야.”

  재수는 상체를 일으켰다.

 둘은 그렇게 티격태격 싸우며 동아리 방으로 향했다. 당하는 것은 언제나 재수쪽이었지만.

 

  연습에 대한 총평이 끝났다. 각자 나름대로 자기들의 의견을 냈지만 오늘 연습이 훌륭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 동의를 하고 있었다. 회원들은 이제 각자의 갈 길로 흩어졌다.

  재수와 민이는 학교 앞 길을 걷고 있었다.

  “술 한 잔 하는 게 어때?”

 민이가 물었다.

  “넌 또 술타령이냐? 무슨 여자가 밤낮 술만 마실려고 드냐? 이 다음에 뭐가 될려고?”

  “대통령.”

  “뭐? 너 지금 뭐라고 했냐?”

  “대통령이 될 거라니까. 남북통일국가 초대 대통령이 될 거라고.”

  “거 봐라. 그렇게 자꾸 술만 마시니까 알콜중독증 걸리잖아? 넌 하루 빨리 흰 집(정신병원)에 가 봐야 할 거 같다.”

  “난 흰 집(백악관)은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아. 미 대통령은 싫거든. 청와대가 나한테 적격이라고.”

  “넌 시시각각 증세가 점점 더 무서워지는 거 같다. 한시 바삐 치료하는 게 좋을거야.”

 

  나연은 도로가에 승용차를 세워놓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안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는데 재수 오빠가 걸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 옆에는 또 민이 언니가 있었다.

  ‘또 같이 있군.’

 나연은 차를 돌렸다.

 

  재수와 민이는 단골 술집으로 들어가 빈자리에 가서 앉았다.

  “오늘은 니가 사는 거냐?”

 재수가 물었다.

  “내가 돈이 어딨냐? 니가 사야지?”

  “야, 나도 오늘은 돈이 없다고.”

  “그럼, 학생증 맡기면 되지. 뭐가 그렇게 걱정이냐?”

 민이는 소주하고 안주를 시켰다. 곧 소주하고 김치찌개가 나왔다.

  “받아.”

 민이는 소주병을 따더니 재수의 술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재수의 술잔에 술이 다 차자 이번엔 재수가 소주병을 건네받아 민이의 술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너 근데 몸은 괜찮냐?”

 민이가 물었다.

 “무슨 소리야?”

 “고등학교 때 수술 했었다며. 이젠 괜찮은 거야?”

 “너, 지금 나 걱정하는 거냐?”

 “내가 니 걱정을 왜 해?”

 민이는 앙칼진 목소리로 받아쳤다.

 “그렇지. 내가 잘못 생각한 거지. 암, 니가 내 걱정을 할 리가 있나?”

 “술이나 마셔. 이 머저리야.”

 “좋지. 원 샷이야.”

 둘의 잔이 부딪혔다. 둘은 잔을 깨끗이 비웠고 다시 둘의 잔에 술이 채워졌다.

 “정말 괜찮긴 한 거야?”

 “이 봐, 깡패. 암만 생각해도 날 걱정하는 거 같은데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방학 때 기흉이란 병에 걸려서 수술했을 뿐이야. 솔직히 이젠 군대가도 끄덕없는 몸인데 왜 면제를 시키는지 모르겠어. 난 너 같은 깡패랑 같이 학교 다니기 싫은데 말야.”

 “어이구, 착각도 자유셔. 누가 너 걱정해서 그런 소리 한 줄 알아? 나도 네 꼴 좀 안 보게 니가 군대에나 갔으면 아주 속이 시원하겠다.”

 “그러니까 아까 내가 너한테 나를 안 볼 수 있는 방법을 말해줬잖아?”

 “무슨 방법?”

 “여군에 지원하라니까.”

 민이가 재수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아얏, 야, 너 진짜 깡패야? 왜 자꾸 사람을 때려?”

 “그 주둥아리 좀 닥치라고 그런다, 왜?”

 “어휴, 뭐 마음 넓은 내가 이해 해야지.”

 재수는 앞에 놓인 술잔을 들어 술을 마셨다.

 

 

  유진과 희연은 지하철역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유진이는 연습 때부터 쓰라렸던 자신의 오른 손을 펴 보았다.

  “왜 그래? 어디 다쳤어?”

 희연이가 유진이의 손바닥을 보며 말했다. 유진이의 오른손 손바닥은 살갗이 조금 심하게 벗겨져 있었다.

  “세상에. 안 아파?”

 희연이는 무척 놀라서 눈이 크게 떠졌다.

  “괜찮아. 이 정도 가지고 뭘? 근데 너도 작년에 북 배울 때 이렇게 살갗 벗겨졌었어?”

 사실 유진은 같은 학년인 친구들과 달리 풍물패에 가입한지 얼마 되지 않아 북을 배우고 있었다.

  “북 배울 땐 누구나 다 그렇게 돼. 여기 잠깐만 있어. 내가 금방 대일밴드 사 가지고 올게.”

  “괜찮다니까.”

 하지만 희연이는 유진이의 말을 듣지 않고 약국으로 갔다. 조금 후 희연이는 대일밴드를 사 가지고 유진이한테로 돌아 왔다.

  “손 펴 봐. 내가 붙여줄게.”

 유진은 손바닥을 폈고 희연이가 살갗이 벗겨진 곳에 조심스럽게 밴드를 붙여주었다.

  “이런 손으로 계속 연습한 거야? 짱한테 말하고 나서 좀 쉬지 않고.”

  “별로 아프지도 않던데 뭐.”

 유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둘은 다시 지하철역으로 걸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회색 벤츠 한 대가 둘의 앞에 와서 멈추었다.

  “타. 언니, 그리고 오빠도요.”

 나연이가 창문을 내리고 나서 말했다.

  둘은 뒷좌석 문을 열고 차에 올라탔다.

  “이거 우연인데, 이렇게 만나다니 말야.”

 유진이가 말했다.

  “우연이 아니에요.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기다렸다고? 근데 누굴 기다린 거야? 나야, 희연이야?”

  “둘 다 아니에요.”

  “그럼 누구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유진이가 궁금해 하며 말했다.

  “있어요. 근데 못 만났어요. 그래서 언니랑 같이 갈려고 언니 기다리고 있던 중이에요.”

  “너 또 아버지 차 훔쳐 타고 나왔지?”

 희연이가 물었다.

  “그러니까 언니 기다렸지. 언니가 아버지한테 말씀 좀 잘 드리라니까.”

  “넌 정말 언제 철들려고 그러냐? 이제 말썽 그만 부릴 때도 됐지 않냐?”

  “언니, 언니 정말 치매 걸렸어?”

  “뭐?”

  “나한테 철은 이미 들어 있다고 저 번에도, 저 저번에도 말했잖아. 원소 기호로는 Fe 라고. 근데 어떻게 잊어 버릴 수가 있어?”

  “어휴, 내가 이런 걸 동생이라고.”

  나연이 엑셀을 밟자 승용차가 네온싸인이 빛나는 밤거리를 쏜살같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준석과 마리는 극장에서 나왔다. 어둔 밤 도로를 달리는 차들의 소음이 간간이 들려오고 있었다.

  “어때 영화 재미 있었어?”

  준석이가 물었다.

  “그런대로 볼 만 했어.”

  “왜 재미 없었어?”

  “난 영화 별로 안 좋아해서.”

  .“그럼 괜히 오자고 했나 보네.”

  “아니야. 괜찮았어. 뭘 하든 난 너랑 같이 있는 게 좋으니까.”

 준석은 마리의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는 이제야 드디어 자신한테 맞는 짝을 찾았다는 생각을 했다. 둘은 버스 정류장에 와서 버스를 기다렸다. 곧 준석의 집으로 가는 버스가 왔다.

  “그만 들어가 봐.”

 마리가 말했다.

  “응.”

 준석은 버스에 올라탔다.

 

  나연이는 유진이네 집 앞에서 유진이를 내려주고 집으로 방향을 돌렸다.

  “너 재수 기다리고 있었지?”

  “아...... 아니야.”

 나연은 아무한테도 자신의 속마음을 말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언니가 알고 있는 것인지 당황을 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다 티나는 구만. 근데 어쩔려고 그러냐?”

  “뭘?”

  “재수는 민이 좋아하잖아?”

  “그러게 말야. 그 오빠는 왜 그 깡패 같은 언니를 좋아해 가지고. 솔직히 내가 더 이쁘지 않아?”

  희연은 잠깐 어이 없다는 얼굴로 나연이를 보다가 대답했다.

  “그렇게 자신 있으면 재수한테 고백해 보던가? 솔직히 너 이쁘지, 머리 좋지, 집안배경 빵빵하지. 재수도 단번에 싫다고는 하지 않을 거 같던데. 아니 오히려 부담돼서 거절하려냐?”

  “언니, 언니는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난 민이 언니랑 싸우고 싶은 생각 없어. 남자 한 명을 두고 여자 둘이 싸우다니 완전 꼴불견이라고.”

  “그럼 앞으로 어떡할 건데? 계속 그렇게 짝사랑 하는 채로 있을 거야?”

  “몰라. 그건.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니까.”

  “그럼 뭐가 중요한데?”

  “집에 가면 언니가 아버지한테 말 좀 잘 해 주라고. 안 그러면 오늘 내 다리가 부러질 거라고.”

  “또 나한테 아부하는 거니?”

  “아부는 무슨? 서로 돕고 살자는 거지. 그럼 약속한 거야?”

  “그래봤자 이번에는 소용없을 거야. 니가 말썽을 부린 적이 어디 한 두 번이어야지.”

  “아무튼 난 언니만 믿겠어.”

  나연이는 집 앞에 도착하자 차를 세웠다. 둘은 차에서 내렸다. 희연이가 벨을 눌렀고 곧 문이 열렸다. 자매는 잔디정원 사이로 길게 뻗은 통로를 걸어가서는 현관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섰다.

  거실 한가운데 있는 소파에는 아버지인 한 장관과 큰아버지인 한 원장이 함께 앉아 과일을 드시고 계셨다. 숨을 죽이며 언니만을 믿고 현관으로 들어서던 나연이는 큰아버지가 와 계신 것을 보자 안도의 한숨을 쉬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자애병원 원장인 큰아버지는 전적으로 나연이의 아군이었다. 큰아버지가 있다면 오늘은 아버지한테 혼나지 않고 무사히 넘어갈 수가 있었다.

  “넌 또 누가 차를 훔쳐 타고 나가랬어?”

 한 장관이 조금은 성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해라. 여지껏 공부하고 와서 피곤할 텐데. 이제 자야 될 거 아니니?”

 한 원장은 또 나연이를 변호하고 나섰다.

  “늦었는데 그만들 올라가서 자거라.”

 한 장관은 하는 수 없이 형님의 뜻을 따랐다.

  “예, 아버지.”

  희연이와 나연이는 인사를 하고 나서 2층으로 올라갔다.

  “형님이 늘 감싸고 도니까 애가 늘 저 모양이라고요. 언니 반도 못 따라가고 매번 말썽만 부리고 다닌다구요.”

  “감싸고 도는 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난 나연이가 옳다고 생각하니까.”

  “나연이가요?”

 한 장관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형님을 보았다.

  “물론이지.”

  “전 지금 형님이 무슨 얘기를 하는 줄 모르겠어요? 나연이는 허곤날 제 속만 썩인다고요.”

  “바로 그래서 하는 말이야.”

  “예?”

  “나연이도 니가 자기를 걱정한다는 거 잘 알고 있어. 그걸 모를 아이는 아니잖아? 하지만 그래도 자식들은 어렸을 때 아무 이유없이 부모들한테 반항도 해 보고 그러는 거야. 그게 정상이라고.. 하지만 희연이는 너한테 한 번도 반항한 적이 없잖아. 난 그래서 희연이 보단 나연이가 좋아. 희연이는 어딘가 좀 삐뚤어졌거든.”

  “형님도, 참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희연이가 삐뚤어졌다뇨? 공부도 잘하고 집안에서 전혀 말썽 한 번 일으킨 적 없는 아인데 그런 악담이 어디 있어요?”

  “글쎄, 니 말대로 내 생각이 기우였으면 좋으련만. 하지만 희연이는 어딘가 느낌이 안 좋아. 어렸을 때부터 너무 침착하고 냉정했다고. 왠지 사람 같지가 않아.”

 한 장관은 근심이 가득 담긴 얼굴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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