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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미래에서 온 신녀
작가 : 시엔시엔
작품등록일 : 2019.9.21

걸쭉한 입담을 가졌다는 것 외에는 평범한 취준생이던 한미리. 혼자만의 여행 중 갑자기 백제로 이동했다? 현대로 돌아갈 단서를 찾지도 못한 채 백제궁으로 가게 된 미리. 그곳에서 엄청난 일에 휘말리게 되는데... 치열한 궁에서 살아남기 위한 미리의 생존기가 시작된다. 잠깐, 그런데 여기에 로맨스가 빠지면 또 서운하지. 백제의 남자들은 또 왜 이렇게 멋진 거야. 과연 미리는 휘말린 위험도 극복하고 사랑도 쟁취할 수 있을까?

 
15화-곰이 아니라 호랑이
작성일 : 19-10-01 20:55     조회 : 26     추천 : 0     분량 : 7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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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여름햇살이 강하게 내리쬐는 여름, 나무둥치 여기저기에선 매미들이 저마다 짝을 찾기 위해 쉴 새 없이 맴맴 댔고 매미 소리에 화음을 넣듯 난 힘겹게 헉헉 거렸다.

 

  “아오…. 나 죽네.”

 

  지게 양 쪽 통엔 더위를 식혀줄 차가운 우물물이 듣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철퍽거리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지독히도 무거운 물통이 담긴 지게를 내가 멨다는 것이었다.

 

  아침밥을 먹은 지 1시간도 안 된 것 같은데 이미 내 뱃속은 텅 빈 것 같았다.

 

  “허억… 허억… 좀만 더 가자…!”

 

  손에 잡힐 듯 조금 떨어진 곳에 목적지인 일월전 소주방이 눈에 들어오자 난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떴다.

 

  “미리 궁녀, 수고했소.”

 

  내가 물통을 다소 거칠게 내려놓고 그대로 주저앉자 일월전에서의 단짝인 은임이 그릇으로 내가 길어온 물을 퍼서 내밀었다.

 

  “캬아! 아, 시원하다! 나… 오늘 더 이상 물은 못 길어오겠소.”

 

  “다음엔 내가 길어 올 테니 너무 걱정 마시오.”

 

  땀으로 흥건해진 얼굴을 소매로 대충 닦고 주변을 살펴보니 다른 궁녀들은 삼삼오오 앉아 쉬고 있었다.

 

  다만 고리타만 다른 궁녀들과 동떨어진 채 홀로 앉아 있었다.

 

  며칠 지내보니 일월전에서 고리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 것 같았다.

 

  말을 걸어도 냉기서린 차가운 말만 해대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연속 세 번 물을 길어 오라고 하다니… 아무래도 소이 궁녀는 날 죽이려고 작정한 모양이오.”

 

  그릇을 은임에게 건네며 난 가져온 물통을 들어 구석에 옮겨놓았다.

 

  그리고 고리타 옆에 철퍼덕 앉았다.

 

  내가 리타 옆에 앉자 은임도 내 옆으로 쪼르르 따라와 앉았다.

 

  “너 너무 친구 없는 거 티내는 거 아니냐?”

 

  “뭐? 내가 친구가 있든 말든, 네가 뭔 상관인데? 그리고… 여기선 경어 써야하는 거 몰라?”

 

  “야, 우리끼리 있을 땐 좀 편하게 하자. 넌 뭐가 그렇게 매사에 깐깐하냐? 그치, 은임아?”

 

  평소 리타를 무서워하는 은임은 괜히 리타의 눈치를 보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근데 은임아. 나 궁금한 게 있는데… 나 처음 왔을 때 소이 궁녀가 나보고 내기했잖아. 진짜로 여기 궁녀들이 힘들어서 막 도망치고 그래?”

 

  내 물음에 은임은 괜히 리타의 눈치를 한 번 쓱 보고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나도 자세한 건 잘 모르는데…. 요 근래 일월전에 온 궁녀들이 1년도 안 돼서 많이 나가서 그런가봐. 걔네들이 진짜 힘들어서 도망친 건지는 모르겠어.”

 

  “도망치진 않았겠지. 그랬다면 궁이 발칵 뒤집어졌을 테니까. 한두 명도 아니고 몇 명이나 연달아 도망쳤다면…. 안 그래? 내가 듣기론 각자 사정이 있어 그만두고 출궁했다고 들었어.”

 

  우리의 대화를 가만히 듣던 리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흐음…. 그래? 그래도 최근에 일월전에 들어온 궁녀는 남아있겠지?”

 

  “워낙 몸이 약한 아이라 들어 온지 얼마 안 되어 앓아누웠다고 들었어. 근데 그건 대체 왜 묻는 거야?”

 

  “아… 아니, 들어 온지 얼마 안 된 애랑 좀 친해지고 싶어서! 그 뭐냐… 노하우도 전수받고 그런 거 있잖아.”

 

  둘러대는 내 말에도 리타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날 흘겨봤다.

 

  “흥, 어디 모여 있나 했더니… 여기들 있었구나? 너네 또 뭉쳐서 무슨 사고를 칠지 논의하는 거니?”

 

  구석에 앉아 속닥거리던 우리에게 다가온 사람은 다름 아닌 상급궁녀 소이였다.

 

  오늘도 좌우에 그녀의 똘마니 둘을 달고 귀한 몸을 이끌고 친히 행사하셨다.

 

  그녀는 모여 앉은 우리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암, 그렇고말고요. 저는 하루라도 사고를 안치면 겨드랑이에서 가시가 돋거들랑요.”

 

  내가 그녀의 말에 비아냥거리자 잔뜩 겁을 먹을 은임이 조용히 내 소매를 잡아끌었다.

 

  “하하, 이것 봐라? 기고만장한 게 아주 귀여워 죽겠네?”

 

  “후배를 이리도 귀여워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내 말에 소이 궁녀 패거리가 요란하게 까르륵 웃었다.

 

  내 소매를 붙잡은 은임은 이제 사시나무 떨 듯 몸을 떨었다.

 

  “그래, 그렇다고 하니 우리가 저 앙큼한 아이들을 보듬어 줘야하지 않겠소?”

 

  “암요. 아, 마침 저기 오시는 군요.”

 

  “우리가 너희를 위해 준비한 것이 있으니 잠자코 기다려 보거라.”

 

  그녀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일월전 소주방 담당 고마인이 들어와 이목을 집중시켰다.

 

  “모두 주목하거라. 오늘 전하께서 대신들과 만정각에서 정사를 논하신다고 한다. 만정각에서 대신들과 친히 식사도 하신다고 하니 우리 소주방에서도 몇 명을 뽑아야 하느니라.”

 

  고마인의 말에 궁녀들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아무래도 이번 일은 누구나 꺼리고 싶은 힘든 것임이 틀림없었다.

 

  그때 여우처럼 눈꼬리를 흘기며 미소 짓던 소이가 번쩍 손을 들었다.

 

  “고마인님, 상급궁녀로서 지켜보건대 여기 이 세 아이가 평소에도 일을 성실히 하고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으니 이 아이들을 감히 추천하옵니다.”

 

  그녀의 말에 고마인은 날카로운 눈으로 우리를 훑어보았다.

 

  “흠, 그래 좋다. 키도 크고 강단도 있어 보이는구나. 너희 셋은 날 따라오너라.”

 

  “잘 다녀오시게, 후배님들.”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어깨가 축 쳐진 채 고마인의 뒤를 따라 걷는 우리 뒤로 얄미운 소이 궁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마인 뒤를 따라 소주방 앞마당으로 나가니 우리 말고도 상급 궁녀 몇몇과 미리 차출된 하급궁녀 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마인을 선두로 짚에 줄줄이 꿰인 굴비처럼 차출된 궁녀들이 종종 걸음을 옮겼다.

 

 

 

 ***

 

 

 

  고마인을 따라 도착한 만정각은 근사한 누각이었다.

 

  웅장한 누각 기둥마다 햇빛을 가리기 위한 아름다운 색의 비단 천이 걸렸고 우리와 같이 차출되어 온 것 같은 궁인들이 잰 걸음을 놀리며 바쁘게 돌아다녔다.

 

  군졸들은 왕과 대신들이 먹을 고기와 다른 식재료들을 실은 수레를 끌었고 다소 직급이 낮은 관리들은 정사를 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두루마리를 양손가득 들고 날랐다.

 

  우리는 이런 진풍경에 감탄할 여유도 없이 누각 뒤에 마련된 작은 소주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일월전에서도 그러하듯이 이곳에서도 주로 잡일을 했다.

 

  불 피울 장작과 불쏘시개를 나르고 물을 길어 나르고 재료를 손질했다.

 

  왜 일월전의 궁녀들이 이곳에 오길 꺼려했는지 알 수 있었다.

 

  왕이 혼자 먹을 음식을 차리는 것도 손이 많이 가는데, 거기에 대신들이 먹을 음식까지 준비하자니 그야말로 전쟁터가 다름없었다.

 

  길어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아 물이 떨어지고 지게로 한가득 실어 나른 땔감은 벌써 동이 났다.

 

  난 벌써 네 번째 텅 빈 물통을 메고 우물가로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바쁜 내 걸음을 붙잡은 것이 있었다.

 

  “어…? 저건?”

 

  우물가로 가는 외진 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귀족으로 보이는 남자 두어 셋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자주색의 비단옷을 입고 옷과 비슷한 자주색의 허리띠를 하고 머리에 저마다 화려한 꽃문양이 새겨진 은제관식으로 장식된 모자를 쓴 남자들이었다.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남자들의 화려한 행색보다는 남자들 사이에 섞여 있는 한 사람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발소리를 죽이고 남자들과 가까운 전각 기둥에 몸을 숨겼다.

 

  남자들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듯 목소리를 죽이고 속닥거렸다.

 

  “…영감탱이 아니야?”

 

  내 눈길을 사로잡은 사람은 바로 내두좌평 사밀이었다.

 

  ‘망할 노인네가 또 무슨 꿍꿍이를 벌이고 있는 거야?’

 

  난 그들의 대화를 잘 듣기 위해 기둥 뒤에 몸을 바짝 붙이고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거리도 멀고 그들의 목소리가 하도 작아 도무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내가 온 신경을 집중해 그들의 대화를 엿들으려고 노력하고 있을 때였다.

 

  “지금 뭐하는 거요?”

 

  누군가가 내게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난 귀족들의 대화에 집중하느라 내게 귓속말을 한 사람의 존재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쉿. 조용히 해요. 가뜩이나 안 들리는데…에?!”

 

  그 사람의 물음에 무심코 대답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화들짝 놀라며 말끝을 올려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다행히 그 사람이 소리가 새어나오기 전에 내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이러다 들키겠소. 미리 궁녀.”

 

  내 입을 손으로 틀어막은 사람은 귀택전의 변태 귀족 목마지였다.

 

  그가 장난스런 눈빛으로 내게 윙크를 했다.

 

  ‘아니, 이 양반은 또 왜 여기 있어?!’

 

  내가 눈빛으로 항의를 하자 그제야 그는 내 입을 막았던 손을 떼었다.

 

  “여긴 도대체 어쩐 일이에요?”

 

  “잊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귀. 족. 이라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진지한 얼굴로 괜히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터는 시늉을 해보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매번 귀택전에서 보던 모습과 사뭇 달랐다.

 

  고려청자의 은은한 푸른빛과 비슷한 색의 옷에 은은한 붉은색의 허리띠를 매고 허리띠와 같은 색의 모자를 단정하게 쓴 모습은 나무랄 데 없는 귀족의 모습이었다.

 

  “그럼, 나리도 오늘 전하와 함께 정사를 논하는 자리에 참석하러 오신 거예요?”

 

  “에이~ 내가 그런 중요한 자리에 낄 수 있겠소? 그나저나 아까 뭘 그렇게 훔쳐보고 있었소?”

 

  목마지의 물음에 난 퍼뜩 의문의 귀족들과 대화를 나누던 사밀이 생각나 얼른 전각 기둥 뒤에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아…. 가버렸네.”

 

  내가 어깨를 늘어트리며 실망한 목소리로 말하자 목마지가 허리를 숙여 내 얼굴을 들여다봤다.

 

  “잠깐 보니까 엄청난 귀족 어르신들이던데… 혹시 그 중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는 것이오?”

 

  “아뇨! 없는데요?!”

 

  “흐음…. 수상한데….”

 

  목마지는 마치 방금 아주 마음에 드는 짓궂은 장난을 생각해낸 개구쟁이와 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건 그렇고 나리야 말로 더 수상한 거 아니에요? 백제의 왕과 어마어마한 귀족들이 참석하는 엄청난 곳에 이렇게 놀러온 사람 마냥 어슬렁거리는 것이. 그것도 하급 관리가 말이죠?”

 

  내가 눈을 치켜뜨며 목마지의 앞에 다가가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자 그는 곤란한 얼굴로 내 시선을 회피했다.

 

  “아하하하…. 이야, 오늘 날씨 한 번 더-럽게 덥구먼! 하하, 안 그렇소? 미리 궁녀.”

 

  그는 뒷걸음질을 치며 화제를 돌리려고 했으나 나는 그를 향한 집요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어디서 구린내가 나는 거 같은데?”

 

  나는 의심 가득한 표정으로 그에게 한 걸음씩 다가가며 코를 킁킁거렸다.

 

  “아니?! 저… 저 것은!”

 

  그가 요란하게 말하며 우물가로 향하는 쪽문을 손가락을 가리키자 내가 무심코 그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그에게 또다시 속았다는 것을 알아챔과 동시에 은임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리야, 무슨 일 있어? 네가 하도 안 오기에.”

 

  갑작스런 은임의 등장에 당황한 내가 다급하게 목마지가 서 있던 곳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그 찰나에 그는 이미 기척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아… 발에 걸려 넘어져서.”

 

  “다치지는 않았어? 내가 물통 대신 들어줄게.”

 

  “응. 고마워.”

 

  물통을 들고 우물가로 향하는 은임의 뒤를 따라가면서 난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하여간 알면 알수록 이상한 사람이야….’

 

 

 

 ***

 

 

 

  시간이 흐를수록 만정각 주변으로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회의에 참여하기 위해 온 대신들과 그들을 수행하는 궁인들이 한데 섞여 복잡했다.

 

  백제궁의 모든 대신들을 긁어모은 듯 많은 수의 사람들이 만정각으로 속속들이 발을 들여놓았다.

 

  하지만 그들에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복색. 아까 내가 우물가근처에서 봤던 귀족들처럼 그들은 하나같이 자주색 옷을 입고 허리에 자주색 띠를 둘렀으며 머리에는 반짝이는 은제관식으로 장식된 모자를 썼다.

 

  아마도 저 복장은 일정 계급의 관복인 것 같았다.

 

  리타에게 듣기론 좌평은 총 6명인데 저 많은 사람들이 전부 좌평일리는 없을 테니까….

 

  그래도 그들이 어마어마한 귀족들인 건 분명했다.

 

  누각 가장 안쪽에 마련된 왕의 자리 옆에는 상대적으로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귀족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왕이 앉을 자리 옆에 앉은 백발의 노인이었다.

 

  대신들 중 가장 고령이었지만 그에게는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꼿꼿이 세운 허리와 당당하게 쫙 편 어깨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힘이 넘쳤고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도 그의 꼬장꼬장함이 잘 전달될 정도였다.

 

  “저 사람은 병관좌평이자 상좌평인 사택지적이다.”

 

  멍하니 넋을 놓고 귀족들을 훔쳐보던 내게 리타가 다가와 속삭였다.

 

  “상좌평? 그럼, 백제의 2인자란 소리야? 저 노인네가?”

 

  “그래. 선왕이 좌평 사택적덕의 딸을 왕후로 맏이하면서 사택가문은 반백년동안 백제에서 제일가는 명문가가 됐지. 그는 태후의 사촌이야.”

 

  오호라, 저 꼬장꼬장한 노인이 태후를 등에 업은 외척세력이렷다.

 

  그런데 리타 요것은 어찌도 이리 높으신 귀족 나리들에 대해 빠삭한 거지?

 

  혹시 일월전에서 이런 걸 주기적으로 시험 보나?

 

  그나저나 사택적덕… 사택적덕…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전하의 행차시다!”

 

  내가 백발의 상좌평 사택지적을 관찰할 때 저 멀리서 왕의 행렬을 알리는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만정각에 앉아있던 대신들이 일제히 일어나 왕의 행렬을 향해 돌아섰다.

 

  나와 리타도 얼른 허리를 굽히고 예를 표했다.

 

  방금까지 분주했던 만정각은 왕의 등장으로 바람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해졌다.

 

  어마어마한 귀족들마저 고개를 조아리게 하는 백제의 왕. 난 왕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슬쩍 고개를 들어 곁눈질을 했다.

 

  내 시야에 만정각으로 올라서는 왕의 발과 옷자락이 들어왔다.

 

  성큼성큼 거침없는 발걸음은 위용이 넘쳤다.

 

  왕이 만정각에 올라 마련된 상석에 앉자 대신들이 각자의 자리에 착석했다.

 

  누각에 있는 모두가 착석하자 주변의 궁인들은 다시 부지런히 움직였다.

 

  ‘저 남자가 바로 백제의 왕.’

 

  난 허리를 펴고 까치발을 들고 왕의 모습을 눈에 담으려 애를 썼다.

 

  흑단처럼 검은 머리카락은 윤기가 자르르 흘렀고 그 위에 자리 잡은 금관은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났다.

 

  또 그의 귀에는 언젠가 한국사 교재에서 봤을 법한 치렁치렁하면서도 화려한 금 귀걸이가 걸려있었고 그의 몸에 둘러진 옷은 내가 백제에서 봤던 그 어떤 옷보다도 화려하면서도 위엄이 넘쳤다.

 

  하지만 대신들과 비단 천에 가려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정사를 논의하기에 앞서 대신들과 왕은 인사치레로 몇 마디 말을 주고받는 것 같았다.

 

  훈훈해 보이는 이 풍경에서 난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렸다.

 

  쾌활하게 웃는 귀족들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는 것.

 

  마치 짐승들이 숲속의 왕, 호랑이 앞에서 몸을 움츠리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들 중 몇 몇은 경직된 얼굴로 왕의 눈치를 보는 자도 있었다.

 

  ‘내가 잘못 봤다. 백제의 왕은 곰이 아니라 호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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