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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미래에서 온 신녀
작가 : 시엔시엔
작품등록일 : 2019.9.21

걸쭉한 입담을 가졌다는 것 외에는 평범한 취준생이던 한미리. 혼자만의 여행 중 갑자기 백제로 이동했다? 현대로 돌아갈 단서를 찾지도 못한 채 백제궁으로 가게 된 미리. 그곳에서 엄청난 일에 휘말리게 되는데... 치열한 궁에서 살아남기 위한 미리의 생존기가 시작된다. 잠깐, 그런데 여기에 로맨스가 빠지면 또 서운하지. 백제의 남자들은 또 왜 이렇게 멋진 거야. 과연 미리는 휘말린 위험도 극복하고 사랑도 쟁취할 수 있을까?

 
14화-사건의 실마리
작성일 : 19-09-30 21:05     조회 : 31     추천 : 0     분량 : 6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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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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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집었다.

 

  ‘사밀의 밀서…!’

 

  깜빡 잠든 사이에 누가 내게 이것을 놓고 갔다.

 

  고개를 홱 돌리며 등불의 빛이 미처 닿지 못한 구석을 쏘아보았다.

 

  하지만 등불이 타들어가는 소리와 창문으로 바람과 함께 스며드는 부엉이 울음소리 뿐 사람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도대체 누가 이걸….”

 

  난 시한폭탄이라도 되는 양 불안한 눈으로 밀서를 바라봤다.

 

  앞선 밀서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번엔 겉면에 작은 글씨로 내가 이것을 은밀히 숨겨놓아야 할 장소를 적어놓았다.

 

  내 손가락이 밀서의 한 귀퉁이를 만지작거리다 그것을 펼치려고 했다.

 

  ‘안의 내용은 절대로 보지 말게. 감당할 수 없는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면 말일세.’

 

  사밀이 내게 보낸 밀서에서 그가 이렇게 경고했었다.

 

  감당 할 수 없는 일?

 

  사밀이 말한 감당 할 수 없는 일이란 것에 대해 궁금증이 일자 내 머릿속에 다른 목소리가 떠올랐다.

 

  ‘내두좌평이란 나라의 재정을 관장하는 최고위직이다.’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그가 꾸미고 있는 일….

 

  분명 하찮은 것이 아닐 것이다. 과연 그의 말처럼 내가 내용을 본다면 난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아니, 애초부터 난 여기에 눌러 앉으려는 것이 아니라 빨리 현대로 넘어가는 방법에 대한 실마리를 찾으러 왔다.

 

  이런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도, 목숨을 바치고 싶지도 않았다.

 

  밀서의 귀퉁이를 만지작거리던 내 손이 그것을 펼치는 대신 차곡차곡 접어 허리띠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건 그렇고…. 몰래 내게 밀서를 전하는 대신 그 심부름꾼한테 직접 그 장소에 숨겨놓으라고 하면 되잖아?’

 

  왕이 사는 전각까지 소리 없이 밀서를 전달할 수 있는 자를 고용할만한 재력이 있는 사밀이 대체 왜 일을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하여간 있는 사람들이 더 돈지랄한다니까?’

 

  난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아니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

 

 

 

  야간 당번이 끝나고 내가 처소로 돌아왔을 땐 처소의 모든 궁녀들이 각자의 일터로 떠난 뒤였다.

 

  천근만근 같은 몸을 이끌고 처소로 돌아와 난 대충 이불을 펴고 골아떨어졌다.

 

  “미리야, 일어나. 오늘 하루 종일 잔거야?”

 

  정신없이 꿈속을 헤매고 있던 난 누가 몸을 흔들자 힘겹게 눈을 떴다.

 

  “으음…. 뭐야. 벌써 새벽이야?”

 

  “저녁이야. 너 어제 야간 당번이었잖아.”

 

  날 흔들어 깨운 사람은 다름 아닌 미화인이었다.

 

  이미 밖은 해가 졌는지 어두컴컴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온 화인이 계속 자고 있던 날 깨운 것이었다.

 

  “아, 맞다. 으… 간만에 늘어지게 잤네.”

 

  내가 앓는 소리를 내며 허리를 접어 쭉 기지개를 켜자 화인이 옆에 앉아 오늘도 어김없이 가져온 바느질거리를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너 그 얘기 들었어?”

 

  “무슨 얘기?”

 

  “세답방의 지련 있잖아…. 걔 어제 빨래터에서 발을 헛디뎌 크게 넘어졌대.”

 

  화인의 목소리에 내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흥, 벌을 받은 게지. 걔가 날 좀 괴롭혔니? 아주 그냥 속이 다 시원하다.”

 

  “다리가 부러져서 오늘 출궁했다나봐.”

 

  “출궁?”

 

  “응. 근데 괜찮다면서 안 나가겠다고 난리를 쳤다나봐.”

 

  참, 다시 봐도 독한 계집애다.

 

  나 같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얼른 나갈 텐데 굳이 안 나겠다고 버틸 건 또 뭐람?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나 같으면 얼씨구나 할 텐데.”

 

  “일월전에 들어가고 싶어서 그런 것일 테지.”

 

  “리타야, 어서와. 여기 앉아.”

 

  방금 처소로 들어온 고리타가 구석 대신 나와 화인 옆에 앉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내 물음에 리타는 날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말 그대로야. 자기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일월전에서 나인을 뽑기라도 한다면 자신은 후보에서 제외되니까.”

 

  “참나. 아니 걔는 뭐 일월전에 꿀이라도 발라놨대? 그리고 다음에 지가 뽑힐지 말지 어떻게 알아?”

 

  “사실 네가 들어오기 전에 일월전에 갈 궁녀로 지련이 내정되어 있었어.”

 

  리타의 목소리에 내가 일월전 나인으로 뽑히던 날, 지련이 날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말이 생각났다.

 

  ‘거긴 내 자리라고! 이번 내정자는 나였다고! 네가 뭔데 내 자리를 뺏는데!’

 

  분명 지련이 이번 내정자는 자신이라고 했었다.

 

  그리고 뒤늦게 알게 됐지만 사밀의 입김으로 지련 대신 내가 뽑혔다.

 

  “흥. 그렇다고 해도 다음에도 지가 뽑히라는 법 있어?”

 

  내 말에 화인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 말이 맞아. 든든한 뒷배가 있지 않고서는 힘들지 않을까?”

 

  화인의 말에 도리어 내가 뜨끔했지만 난 애써 태연한 척을 했다.

 

  “백제궁의 궁녀들은 처음 들어오면 세답방이나 침방 같은 곳에서 허드렛일을 배우고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왕족들이 사는 전각 등으로 배치돼. 원래 지련은 이미 한참 전에 다른 곳으로 배치되었어야 했어. 그런데 걔가 하도 일월전만 고집하니까 좀 늦춰진 거지. 항간에는 걔의 고모가 백제궁의 고마인이란 소문도 있어. 그래서 걔가 원하는 곳에 넣어주기 위해 배치를 일부로 늦추는 거라고….”

 

  리타의 말을 들으니 그동안 기고만장했던 지련의 행동이 이해되었다.

 

  뒤에 자신의 고모인 고마인이 있었으니 세답방의 다른 궁녀들보다 일을 적게 하고 감독이라는 핑계로 앉아 입만 놀리던 것이었구나!

 

  그리고 일월전에 갈 나인을 발표하던 날 오만방자하던 그 태도 역시 설명이 되었다.

 

  그런 든든한 뒷배가 있으니 그녀의 성격 상 그러고도 남았다.

 

  “그런데… 사실 이번에만 뽑히지 못한 것이 아니야.”

 

  리타는 비밀스러운 말을 하듯 허리를 숙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와 화인은 괜한 긴장감에 침을 꼴깍 삼키며 리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맞아…. 생각해보니 저번에도 저저번에도 저저저번에도 지련은 항상 자신이 내정자라고 말했지만 일월전 나인으로 정작 엉뚱한 아이가 뽑혔었어. 주로 미리 너처럼 들어 온지 얼마 안 된 아이들이 말이야.”

 

  화인의 동조에 리타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왜? 걔 고모가 고마인이라면서?”

 

  “그 궁녀들 뒤에 걔 고모보다 더 힘센 자들이 있었던 모양이지.”

 

  리타의 말에 화인이 작게 손뼉을 쳤다.

 

  “지련이 어떻게 알아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을 제치고 일월전에 배치된 아이들이 하나같이 다 어마어마한 귀족의 후원을 받고 있었대. 저번에 세답방에 바느질감을 찾으러 갔다가 우연히 들었거든.”

 

  화인의 말에 나는 생각에 잠겼다.

 

  나처럼 궁에 들어 온지 얼마 안 된 궁녀들이 내정자를 제치고 일월전에 배치되었다?

 

  그리고… 사밀은 연고가 없는 여인들을 주기적으로 데려와 어디론가 보냈다?

 

  이거… 설마….

 

  “…리야, 미리야! 왜 그래? 얼굴이 안 좋아.”

 

  넋을 놓고 있던 내 어깨를 흔들며 화인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것보다 아까 뭐라고 했어? 딴생각하느라 못 들었어.”

 

  “아니, 지련 말대로 너도 진짜로 귀족의 후원을 받고 있냐고 물어봤어.”

 

  순수한 호기심으로 묻는 화인의 말에 내 손에선 차가운 식은땀이 맺혔다.

 

  “아닌데?! 내가 그런 어마어마한 사람들을 알 리가 있어? 아, 고단하다. 나 먼저 누울게.”

 

  화인의 말에 적당히 얼버무리며 자리를 털고 일어날 때까지 리타는 말없이 날 쳐다봤다.

 

  날 꿰뚫는 것 같은 그 눈빛이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아 난 그녀들을 등지고 누워 이불을 덮었다.

 

 

 

 ***

 

 

 

  일찌감치 이불을 덮고 누운 난 모두가 잠든 시각까지 잠들 수 없었다.

 

  여자들을 거둬 궁녀로 입궁시켰다.

 

  그리고 왕이 사는 전각에 배치시켰다.

 

  그것이 다 밀서를 운반시키기 위한 일이었다?

 

  뭔가 이상했다.

 

  중요한 무언가가 빠진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상하더라도 일단 난 그 영감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해. 그래야 의심을 피할 수 있어.’

 

  모두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난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손전등을 챙겨 처소를 빠져나왔다.

 

  밀서의 앞면에 명시된 장소는 다행히 처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빨래터로 향하는 쪽문 옆 오른쪽 담벼락의 8번째 돌 밑에 밀서를 숨겼다.

 

  그리고 손전등을 끄고 문 뒤에 숨어 누가 오는지 지켜보았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밀서를 찾으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어쩌면 오늘 찾아가지 않을지도 모르지.’

 

  조금 더 기다린 후에 나는 손전등을 켜고 처소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처소로 향하던 내 걸음이 중간에 다른 길로 샜다.

 

  내 걸음이 다다른 곳은 귀택전이었다.

 

  요새 이런저런 핑계로 한자공부를 게을리 한 탓에 더 이상 공부를 미룰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컴컴한 어둠속에 흉물스런 전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손전등을 끄고 난 천천히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발을 디딜 때마다 낡은 마룻바닥이 부서질 듯 삐걱대는 소리는 이제 익숙하다 못해 정겹기까지 했다.

 

  손을 뻗어 더듬거리며 집무실로 향하던 그때였다.

 

  ‘툭’

 

  묵직한 무언가가 내 바로 앞에 툭하고 떨어졌는데 그것은 완전히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천장에 매달린 채 덜렁거렸다.

 

  나는 놀란 탓에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그것을 주먹으로 사정없이 때렸다.

 

  “이 못된 악귀 같으니라고! 너 오늘 내 손에 성불하자!”

 

  ‘퍽! 퍽!’

 

  그것을 때릴 때마다 귀에 착착 감기는 찰진 소리가 들려왔다.

 

  “아야! 아야! 미리 궁녀! 그만 하시오! 일부로 그러는 것이오?!”

 

  낯익은 목소리에 난 주먹질을 멈췄다.

 

  “뭐야… 변태나리?”

 

  목소리의 주인공은 며칠 전 홀연히 사라졌던 목마지였다.

 

  그임을 확인한 내 눈빛이 더욱 날카로워지며 다시 사정없이 그를 향해 주먹질을 했다.

 

  “공부 도와준다고 해놓고 소리도 없이 사라졌다가 이제 와서 나타나요?! 내가 뭐 심심하면 갖고 놀았다가 싫증나면 버리는 장난감인 줄 알아요?!”

 

  “작별인사라면 제대로 했소. 아! 그리고 뭔 여자가 이렇게 힘이 장사요?”

 

  내 야무진 주먹에 실컷 얻어맞은 그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바닥에 쿵하고 떨어졌다.

 

  “헤헤, 떨어져버렸네.”

 

  그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손 좀 잡아주시오. 내가 허리를 삐끗해서 말이오.”

 

  “허리를 다친 사람이 대관절 왜 천장에 매달려있어요?”

 

  내가 투덜거리며 손을 뻗자 그는 내 손을 잡고 끙 하는 소리를 내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미리 궁녀 놀라게 해주려고 그런 것 아니오. 역시나 성공했지만 말이오. 물론 조금의 희생을 치르긴 했지만.”

 

  “치, 그게 뭐예요?”

 

  “어, 드디어 웃는 구려. 아까 표정 되게 살벌했던 것 아시오?”

 

  “나리가 이상한 장난이나 치니까 그러죠. 그리고 다음에 절 놀리려면 미리 관하나 짜놓고 하셔야 할 거예요.”

 

  내 말에 목마지는 피식 웃으며 내 어깨에 팔을 턱하고 걸치고 몸을 기댔다.

 

  “또 무슨 꿍꿍이에요?”

 

  “보다시피 허리를 좀 다쳐서 부축 좀 해주시오. 아까 보니까 힘세던데….”

 

  “참 뻔뻔하시네요.”

 

  목마지가 내 어깨에 팔을 두르자 난 팔을 뻗어 그의 허리를 잡은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뻔뻔하다니. 미리 궁녀가 이렇게 잘생긴 남자를 또 언제 부축해보겠소, 안 그렇소? 내 잘생긴 얼굴을 제대로 보는 여자들이 자꾸만 혼절을 하니 어쩔 수 없이 캄캄한 밤에만 활동하게 되었다는 슬픈 운명을 가진 남자라오.”

 

  “아, 예. 참 대단한 메두사 납셨네요.”

 

  “메두사가 뭐요?”

 

  “머리카락이 뱀으로 된 요괴인데 그 얼굴을 보는 사람들은 모두 죽을 만큼 눈빛이 매섭다고 해요.”

 

  “크큭. 딱 미리 궁녀로군. 그 메두사라는 요괴… 아악!”

 

  내가 실수인 척 체중을 실어 그의 발을 지그시 즈려 밟았다.

 

  “헛소리 그만하고… 이제 좀 떨어져요. 무거워 죽겠네.”

 

  목마지를 밀어내고 의자에 털썩 앉았다.

 

  허리가 삐었다는 목마지는 그의 말과 다르게 혼자서도 잘만 움직였다.

 

  또 그에게 놀아난 나는 불만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내가 그렇게 많이 보고 싶었소?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는군. 아, 이해하오. 목마지라는 덫에 걸려버린 게로군. 언제였소? 그때가?”

 

  내가 불평의 말을 하려고 입술을 달싹 거리자 그가 종이를 챙겨 다급하게 다가와 손가락으로 내 입술을 눌렀다.

 

  “알겠소, 알겠소. 말 하지 않아도…. 분명 내가 미리 궁녀를 위해 멋지게 겉옷을 벗어 어깨에 걸쳐줬던 그때겠지. 여인을 위해 겉옷을 벗어주고 홀로 추위와 견디며 그 옆에서 밤을 지새웠을 그 모습….”

 

  도취된 듯 눈을 감고 줄기차게 헛소리를 늘어놓는 목마지의 모습에 내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냥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내 생각이 틀렸다.

 

  저 사람은 제대로 미친 게 틀림없다.

 

  난 입을 벌려 내 입술을 누르던 그의 손가락을 앙하고 물었다.

 

  “아이고오! 내 손가락!”

 

  목마지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겨우 내 입에서 손가락을 빼냈다.

 

  “멋대로 누가 나리한테 반했다고 그래요? 그리고…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한여름에 겉옷을 덮어주냐고요. 땀띠 나서 엿 먹으라고 작정한 거라면 모를까….”

 

  “쳇, 사내의 마음을 그렇게 모독하다니…. 자, 어디까지 공부 했나 좀 봅시다. 스승이 자리를 비웠다고 소홀히 했다면 아주 따끔하게 혼날 줄 아시오.”

 

  좀 전의 앙갚음인지 목마지가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여간 남자가 저리 소갈머리가 좁아서야, 쯧쯧쯧.

 

  “여기까지 공부했어요.”

 

  내가 두툼한 천자문의 중간정도 되는 지점을 펼치자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참말이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의심스런 눈으로 날 보더니 천자문 책을 넘겨 무작위로 한자를 불러주었다.

 

  난 붓을 잡고 막힘없이 그가 불러준 글자를 써내려갔다.

 

  “오… 제법인데?”

 

  목마지의 감탄에 난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누구냐, 대한민국의 숨 막히는 교육과정을 모두 견뎌낸 의지의 한국인 아니던가?

 

  한자 몇 자 외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지.

 

  팔짱을 끼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그를 보던 내 눈에 빨갛게 된 그의 손가락이 들어왔다.

 

  “손 좀 줘 봐요.”

 

  내 말에 목마지는 손을 내밀었다.

 

  아까 내게 물려 이빨자국이 난 손가락에 호랑이기름 연고를 살살 발라주었다.

 

  “…그래도 잘 쓰고 있구려.”

 

  “네? 뭐라고 했어요?”

 

  작게 중얼거리는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내가 반문했다.

 

  “아니오. 아무 말도 안했소.”

 

  목마지는 그렇게 말하며 어딘가 수상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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