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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마지막 봄
작가 :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9.10.4

(정통소설/피폐)

전 세계의 질서가 무너져내린 이후 매서운 겨울이 찾아왔다.
남아있는 생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흩어졌고, 얼어붙은 세상에 남은 마지막 불씨는 꺼져버렸다.

이 버려진 도시에 홀로 남겨진 소녀는 이제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야만 한다.

 
7.착한 아이
작성일 : 19-11-03 23:04     조회 : 9     추천 : 0     분량 : 7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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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착한 아이

 

  조심스럽게 눈꺼풀을 열자 희미한 바깥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봄이는 방금 전까지 자신이 했던 행동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깜빡 졸았던 모양이었다. 차량은 계속 달리고 있었고, 눈 앞에 보였던 바깥 풍경은 봄이의 시야 밖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녀가 앉아 있던 좌석 시트의 등받이는 상당히 뒤쪽으로 눕혀져 있었다. 봄이는 천천히 부스럭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봄이는 잠이 덜 깬 눈으로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제대로 된 난방 수단이 없어서인지 잠에서 깨자마자 몸이 오들오들 떨려왔다. 목도 뻐근했다. 봄이는 자신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러자 봄이의 몸 위에 덮여있던 가죽 망토가 그녀의 발밑으로 흘러져 내렸다.

 

  봄이가 밑으로 떨어진 망토를 다시 주워 몸에 둘둘 감으려고 하는 것을 본 상훈이 입을 열었다.

 

  “속 편한 녀석.”

 

  봄이는 잠에서 깨고 나서 처음으로 듣는 사람의 목소리가 그렇게 정겨울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얼마나 지났죠?”

 

  봄이는 그렇게 말하며 창 밖을 내다보았다. 유리창은 습기가 차서 뿌옇게 덮여 있었다. 어젯밤에 창을 타고 흘러내리던 물방울은 창틀 구석에서 완전히 얼어붙은 채 서리가 되어 있었다. 봄이가 바깥을 더 자세히 내다보려고 손바닥으로 습기 찬 유리창을 뽀득뽀득 문지르자 선명한 바깥 세상이 점차 눈에 하나둘씩 비치기 시작했다.

 

  대강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바깥 세상은 햇빛을 받아 환했다. 동이 튼 지 몇 시간이나 지난 모양이었다. 하지만 차량 계기판에 점멸하는 전자시계가 터무니없는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에 직접 시각을 예측해야만 했다. 태양이 지평선으로부터 한참 위에 위치하고 있어서 봄이는 오후 한 시에서 두 시 사이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빛을 반사시키는 새하얀 바깥세상을 자꾸만 보고 있자니 눈이 아파왔다. 봄이는 유리창에서 고개를 치우고 아무 말도 없이 운전대를 잡고 있는 상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차량 안에 햇빛이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있어서인지 어젯밤과는 달리 상훈의 인상과 하는 행동이 눈에 뚜렷하게 보였다.

 

  그는 애써 태연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의 눈은 어딘가 피로에 젖어 있었다. 새벽 내내 잠을 자지 못한 모양이었다. 물론 확실하지는 않았고 봄이의 예측일 뿐이었지만 그럴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봄이의 마음 속을 은근히 흔들어 놓았다. 괜히 자신 때문에 그가 고생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누적된 피로를 견디지 못한 상훈이 실수로 졸음운전이라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왠지 모를 불안감마저 감돌았다.

 

  그러지 않으려면 계속해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 주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봄이가 입을 열려는 순간 상훈이 그녀의 예전 질문에 대답했다. 그러나 대답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시간이 많이 흐른 후였다.

 

  “네가 잠든 지 얼마나 되었느냐고? 글쎄, 난 네가 언제부터 곯아떨어졌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아마 다섯 시간은 되었을 거야. 내가 다섯 시간 동안이나 같은 장소를 빙빙 돌았는데도 네가 아무 말이 없었으니까. 사실 이곳에 와 본 적도 없기는 하지만 이렇게 복잡하게 엉킨 길은 처음 봐. 짐작이 가는 길은 철조망에 칭칭 감겨있고, 우회로라도 찾으려고 했을 때는 산처럼 쌓인 눈더미가 가로막고 있었어. 어떤 길은 사고 난 차들이 길을 꽉 막고 있기도 했어.”

 

  상훈이 말을 끊고는 봄이가 자기 말을 잘 듣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모양인지 고개를 힐끗 돌렸다. 그러나 그녀가 자신의 말에 제대로 귀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자 다시 시선을 운전대로 향했다.

 

  “그렇게 노력한 끝에 결국 길을 찾았어. 만약 네가 깨어 있었다면 정말 골치아팠을 텐데 다행이야. 여기서부터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 예상이 맞다면 앞으로 몇 시간 안에 도착할 거야.”

 

  “내가 깨어 있었으면 골치 아팠을 거라구요? 무슨 뜻이죠?”

 

  상훈이 흡족한 어조로 이야기하자 그의 말이 왠지 모르게 거슬린 봄이가 맞받아쳤다.

 

  “별다른 뜻은 없어. 그것보다 지금 신경쓰이는 게 있는데.......”

 

  금방이라도 그의 멱살을 움켜잡을 기세로 노려보던 봄이는 난데없이 어두워진 그의 목소리를 듣자 흥분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상훈이 엑셀을 밟고 있는 발에서 힘을 뺀 다음 손가락으로 운전대 옆의 계기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처음부터 별로 없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다섯 시간이나 방황하느라 연료가 금방 바닥나 버렸어. 이 근처에 주유소가 있기는 하지만 과연 가솔린이 남아있을지 의문이야. 어떻게 생각해?”

 

  그렇게 말하는 상훈의 말투는 의외로 덤덤했다. 그는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지만 봄이가 대답하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봄이도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밑져야 본전이니 한 번 들러요.”

 

  “그럴까? 그럼 준비해. 거의 다 왔어.”

 

  상훈이 다시 엑셀을 밟은 발에 힘을 줬다. 봄이가 창 밖을 내다볼 때마다 눈 쌓인 녹색 표지판들이 지나쳐갔다. 도시에서 꽤나 떨어진 한적한 도로인 것 같았다. 봄이는 자기 발밑에 놓아둔 가방을 열고 물건들을 꾸렸다. 한 발밖에 남지 않은 권총을 치마폭에 꽂아넣는 건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았다. 이윽고 상훈이 차량을 주유소 왼편의 빈 공간에 대자 봄이는 차량의 시동이 꺼지기도 전에 차문을 열고 바깥 세상의 땅을 밟았다.

 

  차에서 내린 봄이가 몸에 대충 두른 가죽 망토를 부여잡자 그에 상응하듯 찬 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망토자락을 펄럭였다. 오랜만이라면 오랜만에 맡아 보는 바깥 공기였다. 하늘은 이상하리만치 새파랬고, 어젯밤 쏟아붓던 눈은 이미 그쳐 있었다. 바람은 불어왔지만 발을 내딛은 바깥 세상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젯밤 질리도록 들려왔던 군중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나 자동차 엔진 소리 같은 건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공기의 흐름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정말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서 봄이는 순간적으로 자신이 밟고 선 이 세계가 마치 그대로 정지하기라도 한 것처럼 느껴졌다.

 

  온 세상이 고요했다. 바람 소리만이 들렸다. 눈 덮힌 황량한 양갈래 도로에는 사람의 그림자가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다. 다른 자동차의 바퀴자국조차 찍혀 있지 않았다. 인적 없는 도로치고는 드물게 양갈래 길을 따라 가로수들이 심어져 있었지만 그 나무들에게도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의 눈 앞에는 그저 시설 크기의 두 배는 되어보일 법한 천장을 가진 커다란 주유소 한 채만이 간만의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넓직한 주유소 천장은 시설 주위를 둘러싼 네 개의 기둥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주유소 옆에도 작은 건물들이 꽤나 있었는데 편의점으로 보이는 한 곳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셔터가 굳게 내려와 있어서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봄이는 왼손으로는 망토를 단단히 붙잡고, 오른손은 언제라도 권총을 뽑을 수 있도록 무릎께에 늘어뜨려 놓았다. 상훈이 뒤에서 차량을 뒷정비하는 동안 봄이는 그보다 먼저 주유소에 한 발자국을 들여놓으려 움직였다.

 

  예상대로 주유소 역시 텅 비어 있었다. 그 누구도 이미 멈춰버린 주유 계량기를 지키려고 하지 않았다. 마구 어지럽혀진 주유 시설 근처에는 빈 깡통만 굴러다녔다. 사실 지금 봄이의 귀에 들어오는 소리는 바람 소리를 따라 제멋대로 울리는 요란한 깡통 소리뿐이었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주유소 시설 창문에는 신문지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걸 본 봄이는 거센 추위로 인해 유리창이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런 조치를 취해놓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그쪽으로 가까이 갈수록 신문지 종잇자락이 펄럭거리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어찌나 꼼꼼하게 붙여 놓았는지 실내가 조금도 들여다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주유소 내부를 빙 둘러본 봄이는 건질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돌아서며 외쳤다.

 

  “아저씨, 아무래도 여긴 글른 것 같아요.”

 

  봄이는 그렇게 말하고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했다. 그녀의 등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분명히 자신의 뒤를 따라오고 있어야 할 상훈의 모습이 온데간데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

 

 * * *

 

  봄이는 순간 눈을 가늘게 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왔던 길을 되돌아보았지만 타고 온 차량은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차량에서부터 이어지는 발자국은 한 개뿐이었다. 그 사실을 안 봄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차량으로 향했다.

 

  차량 유리는 선탠이 짙지는 않았지만 흐릿한 시야 때문인지 안이 잘 보이지 않았다.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봄이는 그대로 차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안에 있던 남성은 하던 일을 멈추고 태연하게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친 봄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잠깐, 아저씨가 뭔데 내 가방을 뒤져요?”

 

  당황한 봄이가 재빨리 그에게 달려들어 가방을 빼앗았다. 하던 일을 끝마치지 못한 상훈이 그녀에게서 다시 빼앗으려 손을 내저었지만 봄이가 가방을 품 속에 껴안은 채 으르렁대며 그를 노려보는 바람에 그만두고 말았다.

 

  “몰래 봐서 미안한데,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어. 다른 게 아니라 남은 식량 때문인데...... 우리가 가진 식량이 거의 다 바닥났어. 혹시 숨겨 놓은 식량이라도 있다면 솔직하게 말해 줘.”

 

  그를 째려보던 봄이의 표정이 어리둥절하게 바뀌었다. 그런 그녀를 이해시키기라도 하려는 듯 상훈이 재빨리 덧붙였다.

 

  “아, 당연히 의심하는 건 아니야. 남은 물건을 재분배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혹시나 몰라서 계산이 어긋나면 큰일이잖아.”

 

  상훈은 사실대로 말하기가 좀 그랬는지 그의 목소리는 마치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점점 기어들어갔다. 그런 그를 애석하다는 눈으로 쳐다보던 봄이는 이내 깊게 한숨을 내쉬고 나서 말했다.

 

  “그런 거 없어요. 내가 아저씨한테 왜 그런 걸 숨겨요.”

 

  “봄아, 잠깐만.”

 

  봄이가 다시 등을 돌리려는 순간 상훈이 그녀를 불러세웠다. 방금 전까지와는 다르게 걱정스러움이 묻어나오는 목소리였다. 봄이가 뒤돌아보자 상훈은 곧장 그녀에게 가까이 성큼성큼 다가갔다.

 

  봄이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갑작스런 상훈의 행동에 봄이는 하마터면 반사적으로 그를 밀쳐버릴 뻔했다. 당황함에 짓눌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봄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슬그머니 뒷걸음질쳤다. 아주 짧은 거리였지만.

 

  상훈은 그대로 몸을 구부려 봄이의 얼굴로 손바닥을 뻗었다. 봄이는 화들짝 놀란 나머지 반사적으로 반응해 자신의 얼굴로 향하는 그의 손목을 왼손으로 세게 움켜잡았다. 그 때문에 상훈의 손바닥은 봄이의 얼굴에 닿지 못했다.

 

  “뭐, 뭐야. 갑자기 왜 이래요?”

 

  그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너무나도 당황한 봄이는 호흡마저 가빠졌다. 혼란스러운 그녀의 머릿속에서 오만가지 생각이 마구 엉켜 들었다. 봄이가 한동안 상훈의 손목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자 그가 말했다.

 

  “가만히 있어 봐. 너 다쳤잖아.”

 

  상훈이 그렇게 말하며 잡힌 손목에 힘을 주었지만 봄이에게는 그의 손목을 놓아줄 기색이 없었다. 봄이는 왼손으로는 그가 손목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단단히 붙잡은 채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이리저리 짚어 보았다.

 

  봄이의 오른손은 그녀의 관자놀이와 뺨 사이에서 멈췄다. 손가락 끝에서부터 따끔한 감각이 전해졌다. 끈적끈적한 감촉도 전해졌다. 뺨에서 피가 흐르다가 그대로 굳어버린 모양이었다. 오래 된 상처는 아닌 것 같았다. 지금까지 상처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던 봄이는 상처가 났다는 걸 알게 되자마자 뺨이 후끈거리며 쓰라려오는 것 같았다.

 

  봄이는 상처를 손바닥으로 감싸 쥐었다. 상훈의 손목을 움켜쥐고 있던 왼손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힘이 빠져나갔다. 그런 봄이를 지켜보던 상훈이 옅은 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분명히 어젯밤에 생긴 상처일 거야. 망할 놈들. 잠깐 기다려.”

 

  상훈이 그렇게 말하며 차량으로 돌아가 가방들을 가지고 왔다. 그는 가지고 온 가방을 잠깐 동안 뒤지더니 이내 가방 속에서 조그마한 통을 꺼냈다. 봄이의 작은 손바닥에도 전부 들어올 만한 크기의 작은 상자였다. 그 순간까지도 봄이는 넋 놓은 사람처럼 멍청하게 서서 상훈이 하는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상훈은 들고 있던 작은 통 속에서 또다시 무엇인가를 꺼냈다. 검지손가락 길이 정도 되어 보이는 크기의 작고 귀여운 반창고였다. 멍하니 그를 바라보기만 하던 봄이는 그가 꺼내 든 반창고를 보자마자 뒤로 도망치듯 몇 걸음 물러났다.

 

  “어, 그거 혹시 내 얼굴에 붙이겠다는 건 아니죠?”

 

  봄이가 뜨악하니 물었지만 상훈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태연하게 그녀에게다가왔다. 봄이는 한 걸음 더 내빼고는 손을 휘휘 저으며 만류했다.

 

  “됐어요, 됐어. 그런 거 쓸모도 없고 딱히 바라지도 않아요. 이런 사소한 일에 신세 졌다고 나중에 들들 볶을 걸 생각하니 소름이 다 끼친다구요. 필요 없으니까 얼른 저리 가버려요.”

 

  그녀의 말을 들은 상훈의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

 

  “얼굴 한가운데에 큼지막한 상처가 있으니까 보기 싫잖아. 아무것도 안 할 테니까 걱정 말고 이리 와. 그러다 곪는다.”

 

  상훈이 그렇게 말하며 손을 내밀었지만 봄이는 기겁을 하며 피하기만 했다.

 

  “나한테 왜 이래요? 필요 없다니까.”

 

  봄이는 그렇게 말은 했지만 그와의 거리가 좁아드는 것을 느꼈다. 자꾸만 뒷걸음치던 다리도 점차 느려졌다. 봄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더 이상 그를 밀쳐내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상훈은 이렇다 할 판단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채로 머뭇거리기만 하는 봄이의 턱을 붙잡고 그녀의 상처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봄이는 저항할 의지조차 완전히 상실한 채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녀는 자신이 왜 그러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렸다. 당장이라도 그의 손을 뿌리치고 싶기는 했지만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차분한 감정이 그녀의 머릿속을 완전히 막아버렸다. 지금까지 상훈의 얼굴을 그렇게 가까이 쳐다보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살아생전 처음 느끼는 묘한 기분에 봄이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릴 정도였다.

 

  봄이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목구멍에서는 마른 침이 자꾸만 넘어갔다. 상훈은 그런 봄이의 감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런 말도 없이 그녀의 뺨에 작은 반창고를 붙이는 데에만 집중했다. 반창고가 붙고 나서도 상훈은 봄이의 얼굴을 몇 번씩이고 살펴보고 나서 만족한 얼굴을 짓더니 피식 웃었다.

 

  “이제 됐다. 흉한 상처 때문에 예쁜 얼굴이 가려졌었네.”

 

  상훈은 그렇게 말하며 도무지 입을 다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봄이의 양쪽 뺨을 톡톡 건드렸다. 그의 말뜻을 반도 알아듣지 못한 봄이는 수치심을 느끼긴커녕 얼떨떨한 얼굴로 가만히 허공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멍하니 서 있었다. 마치 무엇인가에 홀린 것만 같았다. 마법에 걸린 듯한 기분이었다. 봄이는 원래 마법사를 믿지 않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 시시한 이야기들이 완전히 허위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뒤돌아 걸어가려는 상훈에게 봄이는 그의 등 뒤에다 대고 쏘아붙였다.

 

  “고맙다고는 안 할 거예요. 아니, 아예 보답 같은 걸 바라지 않는 편이 좋을 걸요.”

 

  “보답이라면 벌써 받았어.”

 

  상훈이 그렇게 말하며 가져온 가방 중 한 개를 봄이에게 건넸다.

 

  “가보자. 쓸만한 게 있나 살펴봐야지.”

 

 
작가의 말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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