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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마지막 봄
작가 :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9.10.4

(정통소설/피폐)

전 세계의 질서가 무너져내린 이후 매서운 겨울이 찾아왔다.
남아있는 생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흩어졌고, 얼어붙은 세상에 남은 마지막 불씨는 꺼져버렸다.

이 버려진 도시에 홀로 남겨진 소녀는 이제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야만 한다.

 
33화
작성일 : 19-11-02 19:06     조회 : 15     추천 : 0     분량 : 4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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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는 얌전히 앉아서 떨고 있었다. 지금 그녀가 앉아있는 곳은 따뜻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눈보라가 몰아치지는 않았다. 날카로운 칼바람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가 앉아있는 곳에서는 무거운 습기가 감돌았으며, 퀴퀴한 가죽 냄새도 났다. 주변 온도가 변화하자 봄이가 입고 있는 분홍색 재킷에 쌓였던 눈이 녹아 흘러내렸다. 흘러내린 물방울들이 봄이가 앉아있는 시트를 금세 축축하게 물들였다.

 

  봄이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머리에 쌓인 눈을 털어낼 생각도 하지 못했다. 봄이가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왼쪽에 앉아 있던 사람도 고개를 돌려 봄이를 쳐다보았다.

 

  “앞이 하나도 안 보이는구먼.”

 

  운전사는 그렇게 말하며 오른손으로 핸들 뒤쪽의 레버를 돌렸다. 자동차 앞유리에서 와이퍼가 힘차게 작동해 앞유리에 쌓여 있던 눈들을 모조리 밀어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봄이는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어깨 둘레에는 담요가 걸쳐져 있었다. 자동차 내부가 한 번 크게 덜컹거리자 봄이는 몸에 둘러진 담요를 더 세게 붙잡았다. 와이퍼가 몇 번 다시 움직인 뒤에야 봄이는 다시 고개를 들어 핸들을 붙잡고 있는 운전사의 쭈글쭈글한 손목을 바라보았다.

 

  운전사의 머리카락은 이미 하얗게 세어 있었고, 그의 얼굴 피부는 주름으로 가득했다. 운전사의 눈은 둥근 테의 안경 뒤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그는 왼손으로 핸들을 고쳐 잡고, 오른손으로 자동차 기어를 이리저리 건드렸다. 그가 입고 있던 가죽 코트 소매가 팔에 밀리며 오른손목에 차고 있던 은빛 시계가 드러났다. 시계는 노랗게 켜진 실내 조명을 받아 잠깐 동안 반짝였다.

 

  “어디로 가는 중이라고 했지?”

 

  운전사는 봄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머리 위 백미러에 걸린 채 이리저리 흔들리는 곰인형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말했다.

 

  “저, 그러니까....... 월계........”

 

  봄이는 목 안에서 꾹 참고 있던 말들이 한꺼번에 뒤섞여 흘러나오려 하자 혀가 꼬여버렸다. 노인이 대답했다.

 

  “참, 그랬지. 요즘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금방 들은 말들도 자주 잊어버리곤 해. 그런데 그 쪽 통제소에 가는데 왜 이쪽 길로 가고 있었니? 이 쪽 방향은 월계 통제소랑은 정반대 방향인데.”

 

  봄이는 노인의 말을 들으니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러고 나서 봄이는 자신의 빨갛게 물든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날이 선 돌멩이에 긁혀 찢어진 피부가 보였다. 조금 쓰라리기는 했지만 아픔은 생각보다 견딜 만했다. 사실 어쩌면 손바닥의 조직 세포들이 모두 얼어붙어 버려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것일지도 몰랐다.

 

  노인이 뭐라고 말을 더 했지만 봄이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노인이 입을 열자 그에게서 특별한 향기가 풍기는 것 같았다. 결코 좋다고 말할 수 있는 향은 아니었지만, 나쁜 향도 아니었다.

 

  와이퍼 작동하는 소리만이 수 초 간격으로 들려왔다. 노인이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나서 말했다.

 

  “아가씨는 운이 정말 좋았어.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아. 만약 다음에 이 이후로 큰 역경이 다시 닥치게 된다면, 그 때는 아가씨에게 남은 평생운을 오늘 다 써버려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 어쩌면 순전히 운이 좋아서가 아닐 지도 모르지만.......”

 

  노인이 안경을 벗어 계기판 위에 올려놓았다. 봄이는 그제서야 노인의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외부의 흔적은 이미 길고 긴 세월이 휩쓸고 지나가 버렸지만, 오직 노인의 눈동자만이 빛을 잃지 않은 채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봄이는 노인의 그런 눈빛에 어딘지 모를 경각심마저 느껴졌다. 노인은 여전히 시선을 곰인형에 고정시킨 채로 말했다.

 

  “그건 그렇고, 뒷자석에 누워 있는 젊은이는 괜찮은 거 맞나?”

 

  “아직은........ 괜찮습니다. 참을 만합니다.”

 

  봄이는 노인의 말과 동시에 고개를 돌려 뒷좌석을 전부 혼자서 차지한 채로 누운 상훈을 바라보았다. 그의 배 위에는 그의 빨간 패딩 재킷이 덮여 있었다. 그는 봄이와 눈이 마주치자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봄이는 그대로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해버렸다.

 

  “아가씨는 그야말로 신이 내린 구원자인 거야. 무슨 뜻인 줄 알아? 하나님께서 아가씨를 직접 보살펴 주고 계신다는 거지. 오늘 이 만남은 절대로 우연이 아니야. 전부 다 하나님께서 예견하셨던, 미리 정해져 있던 운명이라는 것이라고....... 나는 힘들 때마다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곤 해. 순전히 자기위로 차원에서 나온 것이든, 동기부여 차원에서 나온 것이든지 말이야. 어쩌면 정말로 운명의 길이 우릴 인도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사람은 절대 맨몸으로 살아가지 못해. 언제 어디서나 무언가 의지할 것이 필요하다는 거야. 아무리 곧게 잘 뻗어나갈 수 있는 식물이라고 해도, 덩굴이 감고 올라갈 지지대 없이 태풍을 만나면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꺾여 버리는 것처럼 말이야. 관심 있니?”

 

  드디어 노인의 시선이 봄이를 향했다. 봄이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재빨리 시선을 피하고 대충 얼버무렸다.

 

  “관심 없는 모양이구나. 하기야 젊은 아가씨가 이런 것까지 생각하기에는 아직 많이 이를지도 몰라. 나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어렵게 깨달은 사실이니까 말이지. 아가씨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결국 무언가에 의지하지 않는 인간의 삶은 껍데기나 다름없다고 이 늙은이는 생각한단다. 가끔 몇몇 개인주의자들이 이렇게 말하기도 해. 자기 인생은 자신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라고, 누군가에게 기대기만 한 채 오늘내일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미래가 없는 멍청이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말은 번지르르하지만........ 지금 세상은 뒤바뀌고 말았어. 그들이 몇 세기에 걸쳐서 내세우던 개인주의의 이상은 이제 전부 녹슬어 빛바랜 염원이 되어버렸어. 경제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입을 깨끗이 닦고 길거리에서 개인주의의 실현에 대해서 연설하던 연설가들도 전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지. 철저히 자신만을 내세우던, 이 사회에서 더불어 사는 것과 협력을 배제한 채로 이상을 실현시키길 원했던 그 미개인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봄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노인이 그녀를 한 쪽 눈으로 흘기고는 말을 이었다.

 

  “그들이 굳게 믿었던 경제가 무너져내렸고, 세상은 지금 원시시대로 회귀했어. 우리는 질서도 없고, 규칙도 없고, 법도 없는 문명의 보루로 내던져졌지. 이렇게 변해버린 세상에서는 이전 세상에 뿌리내려 버린 개개인 경쟁위주의 쓸데없는 자존심 같은 건 이제 아무런 쓸모가 없어.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세상에서 살아남은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남은 건 오직 하나뿐이야. 남은 사람들, 이미 얼마 남아있지 않은 문명을 지켜내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과 뭉치고, 서로 더불어 살아가는 거지. 그렇게만 한다면, 우리는 충분히 이 버려진 땅에서 살아갈 수 있어. 그게 5년이든, 10년이든, 100년이든. 그 사실만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거야........”

 

  봄이는 창가에 턱을 괸 채로 하얀 설탕이 뒤덮힌 창 밖 세상을 바라보면서 노인의 말뜻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순간적으로 기름통과 함께 휴식을 권했던 중년 여성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파트 단지에서의 일도 떠올랐다. 아주 잠깐 동안이었지만 자신들을 데려가 달라고 애원하던 텅 빈 백화점에서의 말라깽이 부하들도 생각났다. 봄이는 어렴풋이 스치는 이 지나간 기억들의 공통점을 한 번 되뇌어보고는, 노인의 말을 듣는 척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봄이의 그런 모습을 보자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너무 신경 쓸 필요 없단다. 그저 이 늙은이가 자기 신세가 너무 답답해서 한 번 해본 한탄일 뿐이야. 오랜만에 이렇게 너처럼 살기에 물들지 않은 아가씨와 대화를 할 수 있어서 기뻤단다. 사실 사람들과 제대로 대화해볼 기회가 좀처럼 없기도 했고......”

 

  봄이는 지금까지 참아왔던 말을 지금 내뱉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좀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봄이는 왠지 모르게 두근거려서 재킷에 달린 끈을 손가락에 돌돌 말았다. 그리고 곧 용기를 내어 노인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이, 이렇게.........구, 구해........구..........”

 

  봄이는 얼굴이 불타올라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창피해서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봄이는 빨개진 얼굴을 두 손으로 쥐어짜듯이 가렸다. 하지만 노인은 봄이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말했다.

 

  “거의 다 왔구나. 이 늙은이와 만난 게 후회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구나. 이렇게 만나게 되어 정말 다행이야. 내가 우연히 널 구해줄 수 있었다는 사실도 정말 다행이야.”

 

  하지만 봄이는 여전히 품속에 얼굴을 파묻은 채 고개를 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노인이 기어를 돌리고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웠다.

 

  “잠시 여기서 기다리고 있거라. 통제소 상황이 어떤지 좀 보고 올게.”

 

  노인이 그렇게 말하고는 안전벨트를 풀고 밖으로 나갔다. 이제 자동차 안에는 봄이와 상훈 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상훈이 노인이 사라지자 몸을 일으키고 나서 봄이에게 얼굴을 불쑥 들이대며 말했다.

 

  “일단은 한 숨 돌려도 될 것 같아. 나쁜 영감 같지는 않으니........”

 

  봄이가 한심하다는 눈으로 상훈을 노려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걸 본 상훈은 능청스런 얼굴로 봄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데 너, 아까 저 영감한테 뭐라고 하려고 했어?”

 

  봄이는 누군가가 가슴을 세게 찌르는 것 같았다.

 

  “아무 말도 안 하려고 했어요.”

 

  “그래?”

 

  상훈이 얼굴을 더 가깝게 들이밀었다.

 

  “이, 이러케........구......구해.......”

 

  상훈은 봄이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누군가를 따라하는 듯한 흉내를 냈다.

 

  수치심이 머리끝까지 끓어오른 봄이가 그에게 주먹을 날렸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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