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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마지막 봄
작가 :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9.10.4

(정통소설/피폐)

전 세계의 질서가 무너져내린 이후 매서운 겨울이 찾아왔다.
남아있는 생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흩어졌고, 얼어붙은 세상에 남은 마지막 불씨는 꺼져버렸다.

이 버려진 도시에 홀로 남겨진 소녀는 이제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야만 한다.

 
24화
작성일 : 19-11-02 18:58     조회 : 10     추천 : 0     분량 : 4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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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는 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슬그머니 옆으로 비켜났다. 별다른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지만,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 남자를 노려보고만 있었다. 봄이는 남자에게서 최대한 멀어지려다가 상훈의 옆에 바짝 붙게 되었다. 상훈은 자신 옆으로 바짝 붙은 봄이를 한 번 힐끗 쳐다보고는 그 남자와 시선을 교환했다.

 

  수염 난 남자는 그들의 의심어린 시선을 보고 무언가 눈치챘는지 두 팔을 좌우로 크게 펼쳐 보였다.

 

  “아, 그것 때문이라면 괜찮습니다. 저는 건강합니다. 그게 점점 퍼지기 시작할 때 저는 거기에 없었거든요. 잠깐 불을 쬐고 싶은데 제가 지금 불을 피울 만한 게 없어서 말입니다. 웬만해서는 저도 눈치껏 비켜드리는데, 지금은 저 쪽 사람들 무리는 지금 분위기가 영 좋지 않아 보여서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부랑자들 무리가 모여 있는 모닥불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모두 심오한 표정을 지은 채로 얼굴 변화 하나 없이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었다. 그 부랑자 무리들 중에는 여자들도 몇 명 보였다. 그들 주위로 노랗게 그을은 모닥불 빛 때문에 그들의 얼굴은 더욱 암울해 보였다. 그들이 무어라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 목소리는 봄이의 귀에 닿기도 전에 흩어져버렸다.

 

  그 모닥불이 사람이 가장 많이 몰려있는 장소였는데, 무리의 왼편에 세워진 두 번째 기둥 구석에는 무언가 알 수 없는 물체들이 쌓여있는 것이 보였다. 봄이는 그 구석에 무엇이 있는지 쳐다보려고 눈을 찡그렸지만 그 가장자리는 지상으로 향하는 계단의 아래쪽에 있던 터라 그늘이 져서 무엇이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퍼지다니, 뭐가 말입니까?”

 

  “모르시는 모양이군요.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들려 드릴까요?”

 

  영양이 부족해서인지 야윌 대로 야윈 그의 얼굴은, 그가 미소짓자 그의 관자놀이가 쏙 들어가고 빈약한 광대뼈가 튀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 남자는 상훈과 바짝 붙은 봄이의 맞은편에서 불을 마주본 채 자리를 잡고 털썩 앉았다.

 

  “그 전에 초면인데 통성명부터 할까요, 예전에는 정확한 이름이 있었지만 지금은 뭐라고 불려도 딱히 상관 없습니다........ 아니지, 그래도 예의에 어긋나겠지.

 

  그가 혼자서 중얼거리는 것을 보고 봄이는 눈살을 찌푸렸다.

 

  “정영수입니다. 그냥 정씨라고 불러주십시오.”

 

  남자가 그렇게 말하자 그들이 각자 대답했다.

 

  “난 유상훈이고, 이 꼬마는.......”

 

  “알 필요 없어요.”

 

  남자가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보았다. 거기에는 후드를 뒤집어쓴 소녀가 시선을 저 멀리 허공으로 향한 채로 앉아 있었다. 남자는 봄이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재미있다는 듯이 상훈에게 말했다.

 

  “꽤나 성깔 있는 꼬마군요. 혹시 따님이십니까?”

 

  “그럴 수도 있고요.”

 

  “아니지. 부녀관계인 것 치고는 나이차도 별로 안 나시는 것 같은데...... 여동생이십니까?”

 

  “어이, 아저씨. 그런 쓸데없는 말씀만 하실 거면 돌아가시죠.”

 

  듣다 못한 봄이가 짜증을 내며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러자 아까부터 무표정으로 대답하던 상훈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아까 하던 이야기 마저 합시다. 퍼지다니 도대체 뭐가 퍼졌단 소립니까? 부랑자들 사이에서 무엇인가가 돌기라도 하는 겁니까?”

 

  남자가 봄이에게 뭐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상훈의 말을 듣고 자세를 돌려앉으며 이야기했다.

 

  “무언가가 도냐고요? 그럼, 돌고말고. 최근 갑자기 심각해져서 내 머리도 돌 지경입니다.”

 

  “도대체 뭐가 말입니까?”

 

  “흑사병. 페스트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고서 정씨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른 부랑자들의 눈치를 보는 듯했다. 아무런 일도 없자, 그가 계속 이야기했다.

 

  “흑사병을 알고 계십니까? 시궁쥐들이 주로 사는 이런 터널에서 최근 돌기 시작한 병이죠. 흑사병으로 죽은 사람이 내 주위에서만 다섯 명이 넘는데, 그 중 두 명이 내 친구였소. 그 녀석들이 흑사병에 왜 걸렸는지 아시오? 글쎄 먹을 게 없다보니까 쥐를 잡아먹었다지 뭡니까. 제대로 조리도 안 한 상태의 시궁쥐를 말이오. 이 얼마나 멍청한 녀석인지. 내가 마지막으로 그 녀석을 봤을 때가 반 년 전인데, 녀석은 내 눈앞에서 반쯤 썩어들어간 몸을 이끌고 걸어와서 나에게 마지막으로 부탁을 하나 했었소. 자길 죽여달라고 말이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상훈이 묻자 정씨가 눈동자를 굴렸다.

 

  “죽여버렸지. 아니지, 죽여줬다고 하는 게 더 맞겠군. 꽤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고통에 몸부림치는 친구를 보고서도 외면할 수는 없지 않소. 오히려 내 손으로 편하게 해주는 게 친구로서 해야 할 도리지. 난 그렇게 생각해요.”

 

  봄이는 관심 없는 척 하면서도 사실인지 허구인지도 모를 남자의 이야기를 은근히 즐기며 침을 꿀꺽 삼켰다. 봄이는 지금까지 외부인들과 접촉한 적이 많지 않아서 지금 남자가 떠들어대는 전염병인 흑사병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전염병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마음 같아서는 지금 눈 앞에서 이야기를 푸는 남자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산더미 같았지만 그냥 곰곰이 듣고 있기로 했다. 남자는 신이 나서 떠들어대다가 자신의 무릎을 탁 하고 내려치며 말끝을 강조했다.

 

  “아무튼, 중요한 건 이겁니다. 쥐랑 가깝게 놀지 말아요. 아무리 춥고 배고파도 쥐는 먹지 말라는 뜻이오. 비둘기도 먹지 말아요. 나는 쥐같은 걸 먹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그 녀석은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그런 정신나간 짓을 한 건지. 쥐보다는 차라리 인육이 낫죠. 그건 그래도 전문적으로 다루는 전문가들이.......”

 

  남자는 말을 멈추었다. 봄이는 두 눈을 크게 치켜뜬 채로 다리를 움찔거렸고, 상훈의 눈썹이 꿈틀거리고 이마에 힘줄이 섰다.

 

  “이거, 제가 괜한 말을....... 실례했습니다. 나도 먹어본 적은 없소. 비싸서.”

 

  봄이는 예전에 우연히 엿들었던, 부랑자들 중 하나가 인육을 먹었던 경험담을 늘어놓았던 일을 기억했다. 그 때 봄이는 몰려오는 혐오감에 곧바로 자리를 떠버렸었지만 말이다. 지금 다시 그 때의 감정이 되살아나려고 했다. 지난번에 암시장에서 보았던 새빨간 고깃덩이가 혹시.......

 

  “어쨌든, 당신들도 조심해야 합니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요즘에는 쥐가 그렇게 많이 보이지 않는 것 같기는 한데 그저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위험하니까. 혹시 여기서 쥐와 접촉하셨다거나 하시는 분은 설마 없으시겠지요?”

 

  봄이는 순간적으로 빈 아파트 단지에서 생수통 사이에 숨어있던 쥐를 보았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곧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접촉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겨울이라 쥐 개체수는 그렇게 많지 않소. 중요한 건 사람이지요. 흑사병이나 다른 전염병이 제일 무서운 이유가 뭔지 알아요? 쥐도 새도 모르게 자신한테 옮겨져 있는다는 거요. 내 친구 두 명 중 하나는 쥐 같은 건 먹지도 않았는데도 다른 멍청한 친구랑 조금 접촉했던 것 만으로도 흑사병에 걸리고 말았소. 그리고 나는 그들을 떠날 수밖에 없었지요.”

 

  그는 잠시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내가 본 또 어떤 사람은 오염된 물을 마시고 흑사병에 걸렸어요. 얘가 잘못한 게 뭐냐면, 이 녀석이 혼자서 썩은 물을 마시고 죽었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마실 물을 찾았다면서 주위 동료들한테까지 기쁘게 알리는 바람에 모조리 싹 감염시킨 거요. 결국 그들은 치료조차 받지 못한 채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엔 대부분이 죽었소. 사실 제대로 된 항생제도 구하기 힘든 지금 흑사병에 한 번 감염되면 그냥 죽었다고 보는 게 속 편해요.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남자가 그렇게 말하고는 상훈에게로 고개를 들이밀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누구도 믿지 말아요. 설령 자신 옆에 있는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일지라도. 절망적인 병세에 대한 공포는 그 누구든지 미치게 할 수 있소. 당신이라고 예외는 아니지. 당연하지만 저 꼬마한테도 말이지요. 절망이라는 건 사람을 갉아먹는 흑사병과 다를 게 없어요. 금방 미쳐버리고, 이성의 끈을 놓고 말지. 명심하시오.”

 

  남자가 봄이를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상훈은 여전히 무표정으로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하지만 봄이는 남자가 그런 행동을 취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저 더러운 남자가 왜 자신을 가리키며 그런 오싹한 말을 했던 것일까?

 

  봄이가 남자의 행동을 곰곰이 곱씹어보던 중, 갑자기 난데없이 옆 자리 모닥불 주위에 앉아있던 사람 몇 명이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나는 소리를 들었다.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도 들렸다.

 

  “흑사병이다!”

 
작가의 말
 

 갑ㅁ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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