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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마지막 봄
작가 :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9.10.4

(정통소설/피폐)

전 세계의 질서가 무너져내린 이후 매서운 겨울이 찾아왔다.
남아있는 생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흩어졌고, 얼어붙은 세상에 남은 마지막 불씨는 꺼져버렸다.

이 버려진 도시에 홀로 남겨진 소녀는 이제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야만 한다.

 
25화
작성일 : 19-11-02 18:59     조회 : 9     추천 : 0     분량 : 4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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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소리야, 난 병에 걸리지 않았어!”

 

  봄이와 거리를 두고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있었던 사람들 몇몇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그 광경을 떨어져서 보고 있던 사람들까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군중들이 정신없이 외치며 소란스럽게 하던 모닥불 사이에서 한 사람이 난처한 표정을 지은 채로 서 있었다. 그 남자를 본 군중들은 술렁거리며 그에게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봄이는 가만히 앉은 채로 소란을 일으키는 그들을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녀뿐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그 누구도 나서려는 사람은 없었다.

 

  “잘 들어, 하수도에 있다가 돌아온 녀석들 모두가 흑사병에 걸렸어. 너만 빼고. 너희는 그곳에 한 달씩이나 머물러 있었다고 했는데, 그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돼. 한 달은커녕 일 주일만 처박혀 있어도 미쳐버린 식인 쥐들한테 공격당해서 죽을 게 뻔해. 설사 죽지 않더라도 그 역병 쥐들의 몸에 들끓는 세균들에게 반드시 병이 옮게 돼. 그러니까 방금 네가 한 말들은 모두 개소리야. 알아듣겠어?”

 

  털 코트를 껴입고 있는 장발의 남자가 대머리에게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도대체 무슨 개소리야, 그래서 나만 가까스로 돌아왔다고 했잖아. 민혁이도 죽고, 그 녀석 옆에 있던 이름 모를 친구도 죽었어. 겉으로는 남을 위하는 일이라느니,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총대 메는 일이라느니 포장해 놓고서는, 지금 와서 뭐라고? 병자라고? 누구는 남은 사람들을 위해서 흑사병에 걸리는 위험마저 감수하면서 물자를 얻기 위해 나선 건데, 너희들이 내세운 그 희생정신과 사념이라는 게 고작 이런 거였어?”

 

  대머리가 반쯤 울 듯한 눈을 하고서는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하지만 코트를 입은 남자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5초 줄 테니 지금 당장 네 짐 모조리 싸서 꺼져. 놓고 가면 더 좋고. 이렇게 말했는데도 나가지 않겠다는 건 우리 모두를 그 망할 흑사병에 옮기겠다는 뜻으로 간주하고 가만두지 않겠어.”

 

  “너희들....... 내가 얼마나 너흴 위해서 힘썼는데, 아무도 굶기지 않으려고, 누구도 얼어죽게 놔두지 않으려고 밤낮 안 가리고 먹을 것들, 조금이라도 싸맬 것들을 찾아왔는데. 내 것까지도 얼마나 나눠줬는데....... 너희들이 정말 이럴 수 있어?”

 

  대머리가 울먹거리며 군중들에게로 비틀거리며 걸어왔다. 하지만 군중들은 그가 다가오자 그에게서 슬금슬금 떨어졌다. 그러다가 코트를 입은 남자가 플랫폼에 굴러다니던 술병을 거꾸로 집어 들고 대머리를 향해 위협하듯 치켜들었다.

 

  “그 이상 한 발자국이라도 더 다가오면 죽여버리겠어.”

 

  코트를 입은 남자가 위협하자 한 발짝씩 그들에게로 다가오던 대머리가 멈춰섰다. 그가 멈칫한 순간 봄이는 그의 낡은 바지 사이로 보이는 붉게 부어오른 정강이를 볼 수 있었다. 그걸 본 순간 봄이는 자신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네가 멀쩡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으면 그 다리를 걷어 봐. 왜 그러지 않지? 무언가 찔리는 게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닌가? 난 이미 봤어. 터질 듯이 부어오른 네 허벅지를 말이야. 어서 바지를 걷어서 네가 깨끗하다는 걸 증명해 봐.”

 

  대머리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머뭇거리기만 하자 군중들도 덩달아 그를 향해 소리쳤다.

 

  “다리를 걷어 봐!”

 

  “결백하다면 옷을 벗어 봐!”

 

  자신을 향해 끝없이 쇄도하는 비난을 듣고 있던 대머리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듯한 얼굴이었다. 그러는 도중에도 봄이와 남자들은 그 누구도 일어서지 않고 있었다.

 

  “이 나쁜 새끼들!”

 

  대머리는 그렇게 소리치며 맨손으로 코트를 입은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는 얼마 가지 못하고 술병에 후두부를 직격으로 얻어맞고 쓰러졌다. 유리 술병이 깨지는 날카로운 소리와 대머리가 쓰러지는 둔탁한 소리가 온 터널에 울려 퍼졌다. 검붉은 피가 플랫폼 보도로 흘러나왔다.

 

  코트 입은 남자는 깨진 술병을 선로에다 던져버리고 자신이 입고 있던 가죽 코트를 손바닥으로 툭툭 털어냈다. 그리고 나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군중들에게로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이건 쓰레기장에 버려. 남은 식량 체크하고 다음 탐색조 구성해. 그러고보니 물자를 찾으러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녀석들이 많아서 그런지 여기 사람 수도 확 줄어버렸군. 다음 탐색조는 누가 갈 거야?”

 

  봄이는 모닥불 빛을 꺼뜨릴 정도로 거세게 깨지는 술병을 보았을 때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틀어막았지만, 그 후유증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분명히 자신의 눈앞에서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고 생각했지만, 봄이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다른 생각들이 그녀가 방금 본 광경에 의한 충격을 꽉 막아버렸다. 봄이는 다시 시선을 모닥불 쪽으로 돌리려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왜 자신은 방금 전의 그 불쌍한 대머리 남자를 도와주지 않았는가?

 

  그가 처한 상황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너무나도 비슷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모종의 이유로 적대시당해 버렸고, 자신이 믿던 사람들에게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 광경을 모두 지켜본 봄이의 뇌리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온갖 감정이 스쳐갔다.

 

  “저, 미안한데 담배 하나만 주시겠소? 손가락이 떨려서.”

 

  정씨가 말했다. 상훈은 자신의 종이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그에게 주었다.

 

  봄이는 문득 저 남자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신이 나서지 않았다는 사실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봄이는 한동안 거의 꺼져가는 모닥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느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봄이는 가슴 한구석에 피어오르는 듯한 불덩이의 의미를 사건이 모두 정리되고 나서 한참이 지난 후에도 이해하지 못했다.

 

  가슴이 답답해진 봄이는 후드 모자를 벗어제꼈다. 그리고 방금 자신이 보았던 광경을 잊기 위해 다른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무런 감정조차도 남아있지 않았다.

 

 * * *

 

  검게 탄 옷가지 더미에서 점차 불길이 수그러들었다. 봄이는 생기없는 표정으로 타 버린 옷들을 내려다보았다. 더 이상 그 잿더미는 따뜻한 온기를 내뿜지 않았다. 봄이는 재가 되어 버린 옷더미들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았다. 그 때 마침 상훈이 말을 꺼내지 않았다면 봄이는 아마 아침이 밝을 때까지 그 잿더미들만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오늘 안으로 비가 그칠 것 같지는 않아. 오늘은 여기서 쉬고 내일 출발하는 게 좋겠어.”

 

  봄이가 반대하려는데 정씨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러는 게 좋겠군요. 자리는 피해 드리죠. 그럼 이만.”

 

  정씨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그러자 봄이는 참고 있기라도 했다는 듯 상훈에게 쏘아붙였다.

 

  “바로 앞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그 옆에서 자리 깔고 누워 자자구요?”

 

  “저 녀석들이 우리한테 해코지를 할 것 같지는 않아.”

 

  비가 쏟아지는 창 밖을 바라보던 상훈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그걸 말하는 게 아니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저 놈들은 사람을 죽였다고요. 이렇게 공공연하게 말이에요. 그런 놈들을 코앞에 두고 어떻게.......”

 

  “그러는 넌, 만약 그 녀석이 진짜로 병에 걸렸고 너한테 다가온다고 치자. 너라면 어떻게 할래?”

 

  딱히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봄이는 말끝을 흐렸다.

 

  “그래도, 죽일 것까지는 없었잖아요.”

 

  “최소한 자신과 동료들을 살리기 위한 조치라고는 할 수 있겠지. 이럴 때일수록 냉정하게 판단해야 해. 저 녀석들 입장에선 현명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야.”

 

  봄이는 짜증을 내면서도 일부는 수긍하고 있었다. 사실 무엇보다 지금 봄이는 아까 전에 졸음을 방해받아서 피곤해 미칠 지경이었다.

 

  “마음대로 해요. 난 최대한 떨어져서 잘 거니까.”

 

  “우리가 딱히 저 녀석들 신경을 건드린 것도 아니고.”

 

  “아침까지 살아 계셨으면 좋겠네요.”

 

  봄이는 단호하게 내뱉고는 인적이 드문 한 쪽 구석으로 들어갔다. 그나마 인적이 드문 가장자리에 오자 약간은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전과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치마폭에서 권총을 꺼내 가방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차가운 플랫폼 바닥에 털썩 앉아 벽에 등을 기댄 채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마자 아까 전의 끔찍한 기억이 생각날 틈도 없이 몰려오는 피곤함을 이기지 못한 봄이는 금세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가방을 품 속에 꼭 껴안은 채로.

 
작가의 말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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