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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마지막 봄
작가 :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9.10.4

(정통소설/피폐)

전 세계의 질서가 무너져내린 이후 매서운 겨울이 찾아왔다.
남아있는 생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흩어졌고, 얼어붙은 세상에 남은 마지막 불씨는 꺼져버렸다.

이 버려진 도시에 홀로 남겨진 소녀는 이제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야만 한다.

 
5.운명의 길
작성일 : 19-11-02 19:04     조회 : 13     추천 : 0     분량 : 3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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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운명의 길

 

  때마침 초인종 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봄이는 천천히 가죽 소파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현관문 손잡이는 아침 햇빛을 받아 옅은 구릿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봄이가 현관문을 열자 바깥에서 내리쬐는 직사광선이 그녀를 따뜻하게 비췄다. 현관문 바깥쪽에는 사람 두 명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렇지만 얼굴은 반사광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현관 안으로 들어온 뒤 봄이가 문을 닫자, 그들의 등 뒤를 강렬히 내리쬐던 반사광이 완전히 걷혔다. 덕분에 봄이는 두 사람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다.

 

  둘 중 한 사람은 키가 큰 남자였고, 다른 한 사람은 키가 작고 머리가 길었다. 봄이는 집 안으로 들어서는 두 사람의 뒷모습만을 가만히 바라보며 서 있었다. 두 사람의 발자국은 현관으로부터 시작해서, 마루를 지나 거실로 이어졌다. 봄이 역시 무엇에 홀린 것처럼 그들을 따라갔다.

 

  그 두 사람은 한참을 가만히 서 있다가, 방금 전까지 봄이가 앉아 있던 가죽 소파에 마주 앉았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대화하기 시작했다. 봄이는 그들의 얼굴을 자세히 보려고 그들이 앉은 가죽 소파 앞으로 걸어갔다.

 

  두 사람의 얼굴은 본 봄이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녀의 눈동자는 이후 몇 초간 계속해서 커지다가, 이내 몇 초에 걸쳐 수축해 버렸다. 두 사람의 얼굴에는 이목구비가 없었다. 아무 것도 없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얼굴이 없었다기보다는, 마치 무엇인가에 의해 얼굴이 지워져 버린 것 같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봄이는 얼굴 없는 사람들의 대화를 알아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지만, 그녀의 귀에는 두런두런하는 숨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이따금씩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소리도 들렸다. 베란다 창문 밖에서는 나무가 흔들릴 정도의 바람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소름끼칠 정도의 정적이 세 사람 사이에서 감돌았다. 얼굴 없는 사람들은 봄이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아니, 아예 그녀의 존재를 자각조차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봄이는 얼굴 없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말을 걸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바깥으로 새어나오기도 전에 성대 깊숙이 자리잡은 어떠한 응어리에 의해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봄이는 얼굴 없는 사람들에게 손을 뻗었다. 봄이의 손이 얼굴 없는 남자의 어깨에까지 닿을 정도로 가까워지자, 손이 닿지 않았다. 얼굴 없는 남자의 형상이 멀어졌다. 어느새 봄이는 현관에 서 있었다. 다시 그에게로 손을 뻗자, 그의 형상이 더욱 멀어졌다. 봄이가 그에게로 한 발자국 다가가자, 그의 형상이 한 발자국 멀어졌다. 봄이는 그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지만, 달릴수록 그의 형상은 점점 멀어져 갈 뿐이었다.

 

 * * *

 

  봄이는 눈을 떴다. 얼음장처럼 차디찬 공기가 봄이의 폐 속으로 파고들었다. 손가락에 감각이 없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귀를 빨갛게 물들일 정도로 날카로운 바람이 봄이의 한 쪽 뺨에 스쳐 지나갔다. 다른 한 쪽 뺨은 감각이 없었다. 봄이는 한 쪽 눈만을 가까스로 뜬 채로 올려다보았다. 한 남자가 그녀의 눈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괜찮아? 다친 덴 없어?”

 

  남자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제서야 봄이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가장 먼저 봄이의 눈에 들어온 것은 눈 앞에 앉아있는 남자의 다리에 난 칼자국이었다. 두 번째로 들어온 것은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시신이었고, 그 다음은 시신의 옆에 굴러 떨어져 있던 피 묻은 칼이었다.

 

  “아저씨, 피.......나잖아요.”

 

  “그러는 너야말로 피 나는데.”

 

  상훈이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봄이는 빨개진 코를 쓸어 보았다. 빨간 피가 엄지손가락 마디부터 손등까지 흥건하게 이어져 있었다.

 

  “아 씨, 코피가 나네. 이 정도야 문제 없어요. 아저씬 괜찮아요?”

 

  “참을 만해.”

 

  상훈이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그의 허벅지 위에서부터 정강이까지 붉은 얼룩이 이어져 있었다. 봄이는 그가 일어나려고 했을 때 무릎을 심하게 떠는 것을 눈치챘다. 봄이도 흙탕물이 흥건한 도로 바닥을 짚고 일어나며 소리쳤다.

 

  “안 괜찮잖아요! 걸을 수 있겠어요?”

 

  “괜찮다니까. 그렇게 아프지도 않아. 네 코가 훨씬 더 아파 보여.”

 

  봄이는 자신이 보기에도 꽤나 심각해 보이는 상처를 입고도 애써 태연한 척 하는 상훈이 답답하다는 듯 쏘아붙였다.

 

  “지금이 농담할 때예요? 그러니까 내가 뭐랬어요? 왜 굳이 감수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나서서 사서 고생을 해요? 내가 경고했잖아요. 분명히 경고했는데.........”

 

  “내가 잘못했으니까 제발 조용히 좀 해. 귀청 떨어질 것 같다니까.”

 

  봄이는 속에서 분노가 치밀었지만 겨우 억눌렀다. 마음 같아서는 이 융통성 없고 쓸데없이 오지랖만 넓은 멍청한 남자의 뒤통수를 손으로 세게 후려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쓸데없는 자존심을 내세우며 이 남자와 다툴 때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봄이는 도로에서 걸어 나가며 떨어져 있는 피 묻은 칼 왼편에 고꾸라져 있는 한 구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그의 등판에서부터 흘러나온 피가 시커먼 흙탕물을 검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봄이는 그 처량한 광경을 그 어떤 감정의 변화도 없는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봄이가 그 자리에 멈춘 채로 움직이지 않자 앞서 가려던 상훈이 그녀를 불렀지만, 봄이는 대답하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여자의 시신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여자의 얼굴은 검붉은 핏물 속에 처박혀 있었다. 봄이가 시신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하지만 봄이는 시신을 지나쳐 그의 왼편으로 향했다. 그리고 몸을 구부려 시신의 옆에 떨어져 있는 깨끗한 칼을 집어들었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것이었다. 봄이는 칼을 집어든 다음 외롭게 쓰러져 있는 시신의 뒤통수를 잠깐 동안 쳐다보고 나서 몸을 돌렸다.

 

  상훈은 근처 도로에 세워진 난간을 버팀목 삼아 붙잡은 채로 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봄이는 자신에게로 천천히 다가오는 그녀를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던 상훈에게 칼자루를 내밀었다. 얼떨결에 선물을 받아든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까먹은 듯 눈을 껌벅이며 봄이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런 그에게 봄이가 말했다.

 

  “뭘 그렇게 멍청하게 쳐다보고 있어요? 받아요.”

 

  얼떨결에 칼자루를 받아든 상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벙찐 얼굴을 쳐다보던 봄이가 한심하다는 듯 다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자기 몸 관리는 자기가 알아서 하세요. 어른이면 어른답게 자기 일은 스스로 해결하란 말이에요. 한 번만 더 내가 나서야만 할 상황이 오면 가만 안 둘 거예요. 아시겠어요?”

 

  그 말을 들은 상훈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칼자루를 한 손에 쥔 채로 바닥만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의 얼굴을 본 봄이는 차마 더 화내지는 못하고 그런 상훈의 눈을 잠깐 동안 더 쳐다보고 있다가 그를 지나쳐갔다.

 

  “이번 일은........ 미안하다. 괜히 너까지 휩쓸리게 했구나.”

 

  봄이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를 향해 휘몰아치던 원망감이 모두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아직까지는 그를 용서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딘가 알 수 없는 감정 속에서 손을 내밀어 주고 싶어졌다. 봄이는 차가운 시선을 보냈던 아까와는 달리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걸으실 수 있겠어요?”

 

  “그래. 내 걱정은 하지 마.”

 

  상훈이 봄이에게서 받은 칼을 가방 속으로 집어넣었다.

 

  “상처가 더 악화되기 전에 어서 통제소를 찾아보자.”

 

  그렇게 말하고 상훈은 난간을 팔꿈치로 밀어내고 구부정한 자세로 봄이의 뒤를 따랐다. 봄이는 그가 따라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 텅 빈 도로를 앞서 나섰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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