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계속 될 것 같았던 밤이 지나 새벽이 되어 아침이 밝아오는데 번쩍 눈을 뜬 슬비가 출근 준비를 하기 위해 거실로 나온다. 역시나 학교에 가기 위해 준비를 하던 슬주와 마주친다. 둘은 말없이 눈빛교환을 하면서 각자 길로 걸어간다. 그 사실을 모르는 엄마는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한다.
근래에 보기 드문 다정한 어깨동무를 하고 대문을 나서는 슬비와 슬주의 그 모습에 적응을 못하는 엄마 어이가 없다는 듯 보고있다가 방으로 간다. 대문을 벗어나는 순간 어깨동무는 사라지고 서로 거리를 두고 앞 뒤로 걸어가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사무실에 도착했지만 아직 문이 열리지 않아 들어가지 못하고 벽에 기대어 아무나 와서 문을 열어주길 바랬다. 그때 복도에 치훈이 걸어오고 있다.
"왜 거기 서 있어"
"문이 닫혀 있어서 못 들어가고 있었어요"
"그래? 비번 몰라?"
"네..."
"전화를 하지 그랬어"
"그럴까하다가 사장님이 보여서..."
"우리 사무실 비밀번호는...."
비밀번호를 누르는 치훈의 손가락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머릿속에 기억을 하려고 입으로 주문을 외우는 듯 중얼거리고 있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자 치훈은 자리에 앉아서 밤새 온 메일을 확인하면서 일을 시작하고 눈치를 보다가 책상 앞에 앉아보지만 계속 문만 보고있다.
우연히 그 모습을 보게 된 치훈이 하던 일을 그만 두고 묻는다.
"연우 기다려 왜 그렇게 문만 쳐다보고 있어"
"걱정이 되서"
"왜 어제 집에 못 찾아갔을까 봐?"
"그렇게 되는 건가?"
"하룻밤 사이에 둘이 뭔가 많이 애틋해졌는데"
"네? 아... 아니..에요"
"왜 말을 더듬고 그래"
"아닙니다"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연우의 모습은 거의 폐인모드였다. 아직 제대로 눈 조차 뜨지 못하고 좀비걸음으로 걸어오는 연우를 보고 걱정 된 슬비가 다가가 부축을 해서 소파에 앉힌다.
"슬비야 나 물 한잔만 부탁해"
"알았어요. 더 필요한 건 없어요?"
"음 일단은..."
"아직 술이 덜 깬 거야 도대체 얼마나 마셨길래"
"너 가고 나서 얼마 안 마셨는데"
"그런데 왜 폐인모드야"
"잠을 제대로 못 잤어"
"왜 술이 아쉬워서"
"아니..."
"슬비도 너 오나 안 오나 문만 바라보고 있더니 둘이 뭐야"
그때 슬비가 컵을 내밀며 연우에게 건네준다. 그 물을 시원하게 원샷하며 슬비를 쳐다보고 둘은 사인을 보낸다.
"분명히 둘 사이에 뭔가 있었어 도대체 무슨 일이지 혹시 설마 너희 둘..."
"자 일하자 슬비야 내 책상 옆으로 와~"
"네"
슬비는 연우 책상이 놓인 옆으로 의자를 끌고 가서 앉는다. 연우와 슬비가 다정하게 책상에 앉아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치훈이 부러운 듯 본다.
그것을 눈치 챈 연우가 자연스럽게 슬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과시한다.
한편 본격적인 대학 신입생 생활을 하게 된 건우는 학교에 들어가서도 그 놈의 인기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들어간 첫 날부터 여자들을 줄을 세워서 따라 다니게 하는 진풍경을 펼칠 정도로 건우는 잘나가는 신입생이었다.
하지만 남자선배들에겐 미운 털이 콕콕 박혀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금은 괴롭힘을 당하지만 건우의 집안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수그러졌다. 아니 오히려 건우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에 취직을 하기 위해 건우를 왕처럼 떠받들며 대하는 선배들이 있을 정도로 건우는 아무 어려움이 없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혼자있는 공간을 찾아 헤매며 사람들을 피한다.
빈 강의실이나 건물들 사이에 아무도 모르는 공간을 찾아 다니면서 혼자만 있으려고 했다. 그 시간에 문득 떠오르는 슬비를 생각하며 힘들어 한다.
사진첩에 있는 슬비의 사진을 보고 웃어 보이지만 어느새 슬비의 얼굴과 형 연우의 얼굴이 겹쳐지면서 둘이 사무실에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더이상 참을 수가 없을 정도로 괴롭다.
찾아가고 싶은데 자존심 때문에 찾아가지 못한다. 하지만 하루에 한번쯤은 슬비가 살고 있는 동네 입구까지 오지만 더이상 걸음을 옮기지 못해 그냥 돌아서서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