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슬비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말도 없이 그곳을 떠났다고 해도 연우와 치훈은 다 이해했다. 건우를 사랑했던 아니 사랑하지 않았던 어쨋든 지금 슬비에겐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다. 그 사실을 알기에 둘은 전화도 하지 않고 사무실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말없이 사무실을 나온 슬비는 거리를 걸었다. 그 걸음의 끝은 자신이 다닌 학교 교문 앞에 서 있다. 졸업식 현수막이 아직 걸려있고 축제의 흔적들이 남아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아쉬운 듯 걸음을 돌린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온 슬비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그 뒤로 엄마가 들어와 침대에 놓여있는 졸업장과 물건들을 보고 이야기 한다.
"이게 왜 여기에 있어"
"너 졸업식 안 갔어"
"응 가기 싫어서"
"지금 대학 안 보내준다고 시위하는 거야 왜 졸업식에 안 갔어"
"이거 누가 갖다준거야"
"건우가..."
"뭐 건우가 우리 집에 왔었어"
"응 기다렸다가 너 만나고 가라니깐 그냥 가던데 둘이 싸웠어"
"앞으로 건우 이야기 하지마"
"유치하게 애들도 아니고 싸웠구나"
"엄마 제발 나가줘"
엄마를 밀어내고 방문을 잠가 버린다. 혼자 침대에 앉아 졸업장을 보면서 애써 눈물을 참는다.
한편 연우는 저녁식사 초대를 받고 집으로 간다. 건우가 졸업을 했다면서 같이 식사나 하자는 제안을 거절 할 수가 없어서 불편했지만 집으로 간다.
여전히 연우를 반기는 엄마와 아빠, 부엌으로 들어가니 먼저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건우를 보자 어깨를 툭 치며
"졸업 축하해 오늘 상 많이 받았다며 엄마가 무척 자랑스러워 하더라"
"형한테 그런 인사 받고 싶지 않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을 나가 계단을 오르며 이층으로 간다. 두 사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을 한 부모님들은 못 보고 못 들은 척 하면서 식사를 한다. 주인공이 빠진 식사는 빨리 끝이나고 연우가 이층으로 간다.
연우가 방문을 열자 침대에 누워있던 건우는 눈을 감고 잠든 척을 하는데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연우는 옆에 앉아서 건우를 보고 있다.
"슬비가 잠시 시간을 갖자고 했다며"
"........."
"그래 잘 됐어 두 사람 뭔지 모르겠지만 여유가 없어 보였거든..."
"형이 나타나기 전까지 안 그랬어"
"그럼 지금 둘 사이가 나 때문이라는 거야"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
"그래서 날 원망하는 거야"
"차라리 형이 계속 아프길 바랬어 영원히 그 병이 고쳐지지 않길 바랬어"
"내가 그 병을 이기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알아 다시 슬비 앞에 나타나기 위한 노력 그 이유가 마음에 안 들어"
"내가 그 사고만 나지 않았으면 슬비와 난 계속 만났을 거야"
"슬비도 그걸 원했겠지 괜히 내가 중간에 나타나서 미안해 하지만 슬비는 형을 사랑하는게 아니야 단지 그 사고가 일어난 것이 자신 때문이라는 그 죄책감 때문에 형의 곁에 머물고 싶은 거야 바보같이 그걸 사랑이라 믿고 있는 슬비같으니..."
"이유가 무엇이든 슬비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어"
"둘이 잘 해봐 동생이 어떻게 되든 말든..."
건우가 이불을 뒤집어 쓰고 더이상의 대화는 끝이났다. 연우는 무거운 마음으로 다시 거실로 내려왔다.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가까이 다가가 살며시 안아준다.
"별 일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졸업도 하고 대학에 들어가려니까 뭔가 마음이 심란한가봐요"
"그래 네가 자주 만나서 위로 좀 해줘"
"그럴 필요도 없을 것 같아요. 건우 못 본 사이에 많이 컸어요. 내가 도와 줄 일도 없지만 엄마가 원한다면 그렇게 해 드릴게요"
하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와 오피스텔로 향하는 차안에서 생각들이 많아졌다. 잠시 도로 옆길에 차를 세우고 생각을 정리한다.
폰을 보며 연락처를 뒤져보지만 딱히 연락을 할 사람이 없었다. 결국 혼자 맥주캔을 들고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간다. 테이블에 안주도 없이 티비보며 맥주를 마시다 보니 캔이 여기저기 널려있고 한쪽 구석에 쌓여갔다.
그렇게 외로운 밤을 보내며 눈물을 흘린다. 그동안 참고 있던 눈물이 결국 흘러내리고 말았다. 무엇이 연우를 외롭게 만들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