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근황을 물으면서 이야기는 계속되고 밤이 깊어지자 부모님은 먼저 안방으로 들어가 주무시고 거실에 남은 연우와 건우는 자리를 옮겨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다.
건우가 연우방 문을 열고 들어온다. 한 손에는 맥주캔을 들고 하나는 연우에게 건네며 침대에 걸터앉는다.
둘은 나란히 맥주 캔을 따서 한 모금 마시고 빗소리를 들으며 앉아있다. 그 상황에서 연우의 눈치를 보는 건우. 그 눈빛을 읽고 건우가 입을 열었다.
"뭐야!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말해봐"
"이제 병은 다 고친거야"
"갑자기 무슨 소리야"
"형 비오는 날 빗소리 비 맞는 것 다 싫어하잖아"
"아직도 별로 반갑진 않지"
"그런데 비오는 날 슬비한테 달려와서 같이 우산을 쓰고 걷는데 우산을 다 넘겨주면서 걸어?"
"너도 카페에 왔었구나 다 봤어?"
"슬비가 비 맞을까봐 카페로 달려가니깐 그 앞에 슬비와 형이 같이 우산을 쓰고 걸어가더라"
"그랬어 그냥 어릴 적 추억이 생각나서"
"정말 추억 그 뿐인거야?"
"그럼 뭐가 더 있을 것 같아?"
"모르겠어 형의 마음을 아니 슬비에 대한 형의 진심을"
"지금 돌직구 날리는 거야 다이렉트로 묻는 거지 술을 핑계로..."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솔직하게 대답해 줘 슬비에게 형은 어떤 사람이야"
"네가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 모르겠지만 솔직하게 말할까?"
"응 대답해줘 그 어떤 말이라도 진심을 말해줘"
"나 아직 슬비를 잊지 못하고 있어"
"잊지 못한다는 말이 곧 아직도 사랑하는 마음이 존재한다는 거야"
"그렇게 되는 건가?"
"그럼 형과 싸워야 하는 거야 고작 슬비때문에"
"너에게 슬비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전부야"
"조금 섭섭하다 가족도 아니고 슬비가 형에게 전부라니"
"내가 왜 그 고통을 참으면서 병을 이겨냈는데"
"그게 다 슬비 때문이라는 거야"
"응 비오는 날 슬비 옆에서 같이 우산을 쓰며 걷고 싶어 다 이겨냈어"
"슬비한테 고마워해야 하는건지 미워해야하는 건지"
그 말을 남기고 건우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간다. 연우는 혼자서 남은 맥주캔을 다 마시고 침대에 대자로 뻗어 누워있다. 생각을 하는 듯이 눈을 감지만 잠은 오지않고 창가에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누워있다.
한편 방으로 돌아온 건우는 뭔가 분한 듯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앉아있다. 왠지 이 싸움은 이길 수 없는 전쟁에 모든 것을 다 쏟아내고 있는 것처럼 더 힘들고 아프다.
다음날 아침 부엌에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엄마의 칼이 도마에 부딪치면서 나는 소리가 부엌을 가득 메우고 집안을 채워갔다. 그 소리에 잠에서 깬 듯 건우가 얼굴을 찡그리면서 내려온다.
"엄마 왜 이렇게 시끄러워 새벽부터"
"우리 연우한테 맛있는 음식을 좀 해주려고"
"그렇겠지 또 연우형 때문에 그렇구나"
"잘 됐다. 연우 좀 깨워"
"알았어"
힘없이 이층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고 연우 방문 앞에서 망설이다가 천천히 문을 열자 침대에 대자로 누워있을 것 같던 연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당황해 문을 열고 욕실과 베란다로 나가 연우를 찾지만 보이지 않고 결국 거실로 내려와 집안을 다 뒤져보아도 연우는 보이지 않았다.
"엄마 형이 안 보여"
"그게 무슨 소리야 어제 여기서 자는 것 봤는데"
"글쎄 없다니깐 다 찾아봐도 없어"
요리를 멈추고 부엌에서 나온 엄마도 찾아보지만 보이지 않는다. 그때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빠를 보고 두 사람이 달려가 묻는다.
"혹시 연우 못 봤어요?"
"못 봤는데 왜 연우가 없어"
"네."
"어서 연락해 봐"
"번호를 몰라요"
"그럼 오피스텔은..."
"그것도 몰라요. 회사도 어디있는지 모르는데"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치훈형은 알고 있을텐데"
"그럼 전화해 봐"
"몰라요. 슬비는 알고 있을텐데"
건우는 방으로 가서 슬비에게 전화를 걸어 치훈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지만 전화를 했지만 최근에 폰을 바꿔서 번호가 바뀌는 바람에 모른다는 말들만 들려왔다.
힘없이 거실로 내려오고 그런 건우의 모습을 바라보고 서 있는 부모님들은 무슨 말을 하지 않아도 대충 눈치를 챌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