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후 성적이 발표가 되고 원서를 넣고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을 보내며 한달이라는 시간은 금방 가버리고 어느덧 졸업시즌.
청운고 엘리트 엄친아답게 깔끔하게 핏이 딱 떨어지는 수트를 입고 학교를 향하는 건우는 마음이 가볍다. 부모님이 원하던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교에 들어가고 자신이 원하던 과에 합격을 했으니 더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슬비는 졸업식날이지만 아직 자고 있다. 학교 다닐 때 버릇 그대로 늦잠을 자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밖을 나선다.
슬비가 거리를 걷고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졸업식을 하는 학교가 아닌 앞으로 자신이 출근을 할 회사 건물 앞에 서 있다. 메모지에 적혀있는 주소 정도로 찾은 건물이지만 회사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회사에 들렀다가 카페로 가는 치훈의 차가 빨간불 신호를 받아서 멈춰있는 상황에 주위를 둘러보다가 자신의 회사가 있는 건물 앞에 슬비가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연우에게 전화를 한다.
"여보세요. 나야 치훈이 지금 회사 건물 앞에 슬비가 서 있는데"
"회사를 못 찾는 건가?"
"당연하지 주소를 보고 찾아왔는데 간판이 없으니 답이 없겠지"
"알았어 내가 나가볼게 넌 빨리 가서 알바생 교육이나 잘 시켜"
"네... 그럼 난 간다"
전화를 끊고 신호가 풀려 도로를 빠른 속도로 달리는 치훈의 차가 어느새 다른 차들 사이로 사라져 버린다.
연우가 사무실에서 나와 건물 밖으로 나오면 슬비가 서 있다. 그 모습을 좀 지켜보다가 소리없이 다가간다.
"이슬비 여기서 뭐해"
"오빠! 어떻게 여기 있어요?"
"나야 출근해서 일하고 있었지"
"그런데 너야말로 왜 여기 서 있어"
"저야 출근 전 미리 회사 구경 좀 하려고 왔어요"
"그래 그럼 나한테 연락을 하지"
"바쁠 것 같아서..."
"바빠도 슬비가 부른다면 언제든지 달려오지"
"ㅋㅋㅋ 역시 연우오빠"
"들어가자 길 잃어버리지 않게 내 손 꼭 잡고 들어가자"
연우가 먼저 슬비의 손을 잡는다. 망설이던 슬비가 건우의 손을 꼭 잡으며 둘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는 사무실로 걸어간다.
사무실 문에 조그맣게 [오아시스 블루] 라는 간판이 붙어있었다. 그것을 본 슬비는 재미있는 듯 소리를 내며 웃는다.
"오아시스 블루 회사 이름이에요?"
"응. 들어가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긴 테이블에 소파가 놓여있고 그 주위로 책상 몇 개가 놓여있다. 그 책상 뒤에는 각종 서류들이 꽃혀있는 케비넷과 서랍들이 놓여있고 정리가 안 되어 눈이 어지러울 정도다.
"어때 정신없지"
"네 그래도 뭔가 일을 열심히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
"너라면 이해하고 좋아할 줄 알았어"
"회사 소개 좀 해주세요"
"여긴 내 자리 저긴 치훈이 자리 나머지 하나는 너의 자리야"
"우와 나도 책상이 있구나"
"좋아?"
"네 뭔가 나도 이 회사의 직원이 된 듯한 소속감이 들어서..."
"아무래도 저 책상을 내 옆 책상으로 옮겨야 겠다."
"왜요. 난 어디라도 좋은데"
"내가 널 가르칠 거야"
"좀 떨리는데요?"
"긴장해 여긴 회사야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네. 잘 부탁 드립니다"
"그러고 보니 정작 잘 부탁 드린다는 건우는 같이 안 왔어?"
"네 제가 여기 온 것 몰라요"
"그래 어디갔어?"
"아마 학교에 갔을 거에요. 오늘 졸업식이라..."
"졸업... 슬비 넌 졸업식에 안 가고 여기 온 거야"
"전 과거에 얽매이지 않아요. 졸업보다 앞으로 다닐 회사가 더 중요하니까"
"그래 잘했다. 이슬비"
하며 슬비의 머리를 쓰담쓰담 해준다. 연우의 손길에 고개를 숙이던 슬비 훌쩍이며 울기 시작했다. 그 울음소리에 말없이 바라보다 안아준다.
"많이 힘들지..."
그 말에 더 큰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하는 슬비 연우 품으로 기댄 체 운다.
"그래 마음껏 울어 더 크게 소리내어 울어 그럼 좀 후련해질 거야"
"오빠..."
"나도 그랬으니까..."
연우의 말에 잠시 멈칫하다 계속 연우의 품에서 울었다. 슬비의 울음소리 가득한 사무실 안에서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하나가 되어 빛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