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가온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내를 감추지 못하고 이를 갈았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의 눈앞에는 머리를 변기에 박고 있는 귀가 살려달라며 버둥거리고 있었다. 이미 죽은 만큼 숨은 충분히 쉴 수 있어 구조시간은 넉넉했지만 워낙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귀 때문에 가온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팔을 걷어 올리고 귀를 꽉 붙잡았다.
“내가 왜!!!!”
그리고는 놀라울 정도의 괴력으로 귀를 잡아당겼다. ‘뽁!’하는 청량한 소리와 함께 변기에서 귀의 머리가 빠져나왔다. 뒤로 나뒹군 가온은 변기에서 빠져나와 행복해하고 있는 귀를 노려보았다.
“아~ 역시 사람은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살아야 해.”
너는 죽어서 사람이 아닌 귀라고 정정해 주고 싶었지만 피곤이 가득해진 가온은 왼쪽 손목에 차고 있는 ‘헤븐 워치’에 대고 이를 갈며 말했다.
“여기는 가온. 여고 화장실 귀신 변기통 사건 해결됐습니다.”
“옹~ 알았어~ 수고 많이 했쪙! 오는 길에 맛난 거 사와~”
가온은 머리에 핏대가 서는 것이 생생히 느껴졌다. 자신과 통화하고 있는 이 생명체에게 당장이라도 한 대 날리고 싶었다.
“제가 지금 맛난 거 살 기분이겠습니까?”
이를 박박 가는 가온을 향해 상대방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상대방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다음 일거리는~’이라고 웅얼거렸다. 가온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20년 인생을 살면서 이렇게 얄미운 인간도 없었다. 아마 이 인간을 만나지 않았으면 사람이 이렇게 얄미울 수도 있고 반 죽여 놓고 싶을 정도로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자신에게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고 살아갔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전화기 너머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가온의 상관은 이 상황을 즐기는지 연신 약올리듯 말했다.
“너무해~ 나에 대한 사랑이 식은 거야?”
“아, 쫌!”
가온은 신경질적으로 ‘헤븐 워치’의 ‘끊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는 한숨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계속해서 변기에서 머리가 빠진 것에 대하여 기쁨의 춤을 추고 있는 귀를 쳐다보았다. 가온은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다음부터는 조심하세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고마워~”
대단히 큰돈을 버는 일도 아닌데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꿍얼거리며 가온은 화장실을 나섰다.
“변기 뚫렸어요?”
“네. 이제 콸콸 잘 내려갈 거예요.”
가온은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 그는 눈속임으로 챙겨온 공구를 집어넣으며 ‘휴지가 많이 걸려있더라고요.’하고 고객에게 말했다. 귀와 사람을 모두 상대해야 하는 업무에 슬슬 지쳤다. 폼 나는 일이라는 말에 넘어간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스러웠다. 화장실 변기통에 머리가 낀 귀를 빼내는 것이 폼 나는 일이라고 한다면 할 말 없지만.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며 밖으로 나오며 가온은 꾹꾹 눌러 담았던 한숨을 푹 내쉬었다. 볼품없는 검은색 스쿠터에 걸쳐놓은 헬멧을 뒤집어 쓴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뒤에 넙죽 올라타는 소년을 돌아보았다. 시동을 거는 가온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왜 그렇게 또 저기압이야?”
“왜긴.”
‘무엇이든 도와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스쿠터의 시동을 걸며 가온은 입을 삐죽였다.
“방년 20세, 변기에 머리 낀 귀신 뒤치다꺼리 하러 다니는 내 신세가 가련해서 그렇지.”
가온의 말에 소년은 키득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일을 시작할 때 분명 ‘굉장히 멋진 일’이라고 들었다. 가온과 마찬가지로 소년 역시 그렇게 믿었고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폼 나는 일, 멋진 일’은 3년 동안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들이 한 일은 기껏해야 처녀귀신 엉킨 머리카락 풀어주기, 망태할아버지 망태자루 수선하기, 공동묘지 비석 닦아주기 등등 저승에서 경찰로 활약하는 ‘화랑’보다도 더 많고 방대한 잡일을 하는 일이었다. 화랑은 그래도 불법적인 일들을 저지르는 귀들을 잡거나 사업자 등록증, 자격증이 없이 영업을 하는 귀들을 잡는 등의 그나마 ‘멋있는 일’을 하지만 자신들은 심부름센터에서 여고생 귀신 구두를 닦는 일을 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래도 우리가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게 평화롭다는 거잖아.”
“그건 그렇지만.”
소년의 말에 가온은 수긍했다. 소년의 말대로 그들이 심부름센터에서 이런 잡일을 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평화롭다는 이야기다. 그들이 정말로 그들의 일을 한다면 세상이 얼마나 어지러운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뚫어뻥도 아니고 도대체 변기에 머리 낀 귀들만 몇이야.”
이건 아니라며 툴툴거리는 가온의 말에 소년은 피식- 웃었다. 가온은 그런 소년을 살짝 돌아보았다. 오토바이를 운전하며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에 기분이 풀어지길 바라며 가온은 살짝 속력을 냈다. 그리고 입을 삐죽이며 중얼거렸다.
“이래봬도 암행어사인데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