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젠 계급의 두 번째 가문은 서부 대륙의 중앙에서 조금 동북쪽에 위치한 ‘롤랜드 가문’이었다. 그 가문은 기마를 육성하여 파는 식의 목마장 운영과 용병들을 운용하는 일로 큰 돈을 벌었다. 통일이 된 후에도 산적이나 몬스터들은 넓은 시오데란드 대륙에 넘치도록 있었고 이들을 상대하기 위한 용병은 10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규모가 줄지 않고 있었다.
이런 롤랜드 가문의 현 가주는 ‘알파테온 엘 롤랜드’로 ‘용병왕’이라고 불리기까지 하는 존재였다. 용병왕으로서의 무력과 함께 계산도 뛰어난 이였다.
아이젠 계급의 세 번째 가문은 ‘세이버 가문’이었다. 이들은 베른할트 가문과 함께 상업으로 일어선 신흥 명문 가문이었다. 그들이 베른할트 가문과 다른 점이 있다면 세이버 가문은 검과 갑주 등 무기만 만든다는 것이었다.
이는 상업의 폭에서 베른할트 가문보다 좁았지만 한 가지 분야에만 집중한 덕분에 그 분야에 있어서는 최고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덕분에 세이버 가문의 무기와 갑주는 품질 면에서 디스카이온 왕국 최고급으로 불리는 상태였다.
현 세이버 가문의 가주는 아이젠 계급 이상의 10대 가문 중에서 유일하게 여성인 ‘크리샤오르 엘 세이버’였다. 그녀는 4대 가주 자리를 놓고 벌어진 가문 내의 암투에서 형제 자매들을 모두 누르고 지금의 위치에 오른 야심이 강한 인물이었다.
그녀는 ‘힘’을 가장 숭상하고 그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또한 매우 영특하였으며 자신의 사람들에게는 최선을 다하는 면도 가지고 있었다.
아이젠 계급의 네 번째 가문은 동부 대륙의 남동쪽, 즉, 과거 에이미르 제국이 있던 땅에 위치한 ‘아론다이트 가문’이었다. 에이미르 제국이 있던 당시 백작 규모에 지나지 않았던 그들은 제국의 내전과 이후 디스카이온 왕국과의 전쟁에 모두 참여하지 않는 기회주의자적인 길을 걸었고 제국 멸망 후 무너져버린 에이미르 령의 경제력을 장악하면서 빠르게 아이젠 계급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처음에는 디스카이온 왕실에 대단히 협조적으로 나섰지만 지금의 확고한 자리를 잡은 후에는 완전히 돌변하여 지방의 호족으로서 군림하였다. 중앙의 지시에는 전혀 따르지 않는 편이었고 구 에이미르 령의 주민들을 착취하며 여러 부정을 저지르고 있었다.
현 가주인 ‘아스카인 엘 아론다이트’는 빈센트 가문의 가주와 비슷한 성향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중이었다.
아이젠 계급의 마지막 가문은 ‘파르네제 가문’이었다. 이들은 디스카이온 왕국의 대 가문 중에서 가장 미스테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앞서 소개한 9개 가문은 모두가 기존 15개국들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지금의 높은 위치에 올라설 수 있었다.
반면 파르네제 가문은 동부 대륙에서도 중앙 최동부에 있었으며 본래 규모도 남작 가문 수준의 크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탓에 통일 후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를 때까지 별 볼일 없는 위치에 있다가 최근에 급성장하였다.
급성장의 원인은 기존 시오데란드 대륙에서 본 적이 없던 독특한 약재를 판매하였기 때문이었는데 이것들은 대단히 신묘할 정도의 효능이 있어 귀족이나 왕족들 사이에서 엄청난 고가에 거래가 되었다.
그 덕분에 파르네제 가문은 3년 전에 아이젠 계급에 오를 수 있었다.
현 가주는 ‘다리오드 엘 파르네제’로 상인 출신의 귀족이었는데 이렇게 단기간에 가세를 크게 상승시킨 인물이라기에는 대단히 순진하고 신의가 있는 인물이었다.
이렇게 ‘라’의 한 가문과 ‘비올레’의 네 가문, 그리고 ‘아이젠’의 다섯 가문은 통틀어 디스카이온 10대 명문 가문으로 불리었고 그들은 왕실의 허락을 받을 시에는 성과 이름 사이에 ‘엘’이라는 중간 성을 쓸 수 있었다.
아이젠 다음은 제라셀 계급이었다. 10만 호 이상의 영주민들을 거느리고 있으면 오를 수 있었고 과거 계급으로 치면 후작에 가까운 규모였다.
다섯 번째는 차크로드 계급으로 5만 호 이상의 영주민들이 있으면 될 수 있었다.
여섯 번째는 타피아 계급으로 1만 호 이상의 소 영주들이 해당하였다.
일곱 번째는 프로마스로 영지가 없는 일반 귀족들이 이에 해당하였다.
여덟 번째는 하넨으로 귀족 가문의 미성년 아이들이 해당하였다.
이렇게 귀족 체계를 개편하였고 완성시킨 클레이브 왕은 그와 동시에 종교에 대해서도 손을 쓰게 되었다. 무신론자인 클레이브 왕이었지만 그래도 그는 종교의 필요성을 통감하고 있었고 그래서 기존의 3대 교단이었던 미르 교단과 하와크 교단을 동시에 국교로 지정하였다.
프로스트 교단은 그간의 부패가 낱낱이 공개되면서 신도들 모두가 떠나게 되었고 그 맥은 끊어지고 말았다. 한 나라를 멸망시킬 정도로 부패한 교단이었으니 이런 결말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함께 국교로 지정된 미르 교단과 하와크 교단이었지만 사실 클레이브 왕이 밀어준 것은 하와크 교단이었다. 클레이브 왕이 아끼는 ‘8성’ 중 일인인 하이젠드가 성황으로 있는 교단이기도 하였고 또한 클레이브 왕은 하와크 교단의 교리를 더 높게 치는 편도 있었다.
이렇게 왕실의 지지 속에서 하와크 교단은 일시적으로 미르 교단을 제치고 왕국 최대의 교단으로서 교세를 떨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하였다. 올리비에 교황 사후 미르 교단의 다음 교황으로 임명된 ‘안드리스’ 교황은 교세 확장에 노골적으로 야망을 드러내고 있었고 주변 명문 가문들과 협력하면서 서부 대륙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민중 구제와 구도에 전념하는 하와크 교단과는 달리 매우 세속적으로 변하며 행동하는 미르 교단은 여러 교인들의 비판을 받기도 하였지만 어찌 되었든 다시 왕국 최대의 교단으로 우뚝 서게 되었고 그 영향력은 서부 대륙에서 하나의 왕실과도 같은 수준에 이르는 편이었다.
이렇게 디스카이온 왕국은 수도의 왕실과 10개의 대 가문, 그리고 2개의 교단을 주축으로 하여 돌아가는 형국이었고 이 이야기는 세계 최고의 교단인 미르 교단의 한 지방 분교인 ‘성 리넨우드 성당’에서 시작하게 된다.
<클라우드의 등장>
UT(통일력).1년... 미르 교단의 분교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규모를 자랑하는 성 리넨우드 성당에서는 한창 신학 수업이 이어지고 있었다.
한 사제가 교단에 서서 아이들에게 열심히 강의를 하고 있었고 의자에 앉은 여러 견습 사제들은 눈을 빛내면서 수업을 듣고 있었다.
사제는 모두의 그런 눈을 하나하나 맞추면서 입을 움직여갔다.
“우리는 세계적으로 발을 넓히면서 많은 민중을 구제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미르 교단의 사제들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께서는 열심히 공부하셔서 향후 사제가 된 후에 미르 교단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항시 모범적인 삶을 살아가셔야 합니다.”
“선생님. 모범적인 삶이란 것이 어떤 것인가요?”
사제의 말에 볼살이 통통한 귀여운 남자 아이가 손을 들고 돌연 질문을 하였다. 이에 인자한 인상의 사제는 씨익 웃으면서 답해주었다.
“간단합니다. 모두에게 친절하고... 또한 헌신적이면서 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미르 교단이 섬기는 미네르바 여신의 가르침이지요.”
“그렇다면... 오크 족이나 마족 등 타 종족들에게도 그리 해야 하나요?”
그 답에 이번에는 다른 남자 아이가 손을 들며 물었다. 장난기가 많아 보이는 외모를 한 개구쟁이 상의 그 아이는 낄낄 웃으면서 그리 말하였고 이에 사제는 표정을 조금 굳히면서 답하였다.
“그것은 다른 이야기랍니다. 오크 족과 마족 등은 미네르바 여신의 창조물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미네르바 여신에 배치되는 다크사이즈의 피조물들... 고로 잘못된 생명체들이랍니다.
그들은 그래서 잘못된 교리를 믿고 있으며 그것을 위하여 우리 휴먼 족들과 대립하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몬스터라고 규정되어 사살의 대상이 된 것이지요.
우리 미르 교단은 휴먼 족을 해하는 그들을 처단하는 길에도 앞장서고 있습니다. 여러분들께서는 비록 고결한 사제가 되겠지만 그런 몬스터들을 치는 것에는 손속을 아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잘 아시겠죠?“
“네에~!”
사제는 마지막으로 눈웃음을 지으면서 물었고 이에 순진한 표정의 견습 사제들을 끝을 늘이면서 신나게 답하였다.
그리고 이를 가장 끝자락 구석의 자리에서 듣고 있던 한 소년은 인상을 쓴 채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소년은 상당히 특이한 백발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는데 사제의 강의에 상당히 혼란을 느끼는 듯 하였다.
이에 그 소년은 수업이 끝난 후 그 사제에게 가서 질문을 할까 하다가 몸을 돌려 다른 교수실로 향하였다. 그곳은 성 리넨우드 성당의 수석 사제인 ‘데르도우’의 방이었다.
평소 모두에게 친절하게 낮은 자세로 대하는 편이지만 그 소년에 대해서는 더욱 사랑을 베푸는 편인 데르도우라면 자신의 의문점을 풀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그 소년은 그 방문을 노크하였고 마침 안에 있던 데르도우는 소년을 보며 환하게 웃어 주었다.
“음? 클라우드가 아니냐. 하하. 어서 들어오거라.”
“안녕하십니까. 수석 사제님.”
클라우드란 이름의 소년은 15세라는 나이에 맞지 않게 매우 의젓한 자세로 90도 인사를 하여 예를 갖춘 후 방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에 데르도우는 약간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 손을 내저었다.
“되었다. 우리 사이에 무슨 그런 과한 인사를 하는 것이냐. 그냥 삼촌 대하듯이 하라니까. 하하.”
“저는 삼촌이 무슨 존재인지 잘 모릅니다. 그리고 누구를 대하든지 예를 갖춰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무심코 단어를 뱉었던 데르도우는 곧 클라우드가 고아 출신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의 손을 잡고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는 푸근한 미소로 그에게 물었다.
“하하. 내가 잘못했다. 아무튼 우리 클라우드는 정말 뭘 먹고 이렇게 의젓한지 모르겠네. 나는 상당히 난잡하게 가르쳤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말이야. 그래. 오늘은 또 무슨 고민이 생겨서 나를 찾아왔을까?”
“오늘 들은 수업 내용에 대하여 의문이 생겨서 오게 되었습니다.”
“음! 클라우드에게 의문이 생기게 하다니... 보통 어려운 주제가 아닌 모양이군. 하하. 클라우드와 토론을 하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기는 하다만 이거 상당히 부담이 되는데? 그래. 어서 말해보거라.”
데르도우는 또래의 다른 학생들과 달리 무슨 일에든 그 근본과 원리를 생각하면서 의문을 품고 따져보는 클라우드를 매우 대견하게 보았다. 그러면서 이 아이가 잘 성장한다면 지금 옳지 못하게 흘러가고 있는 미르 교단을 크게 바꿀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