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점이 있다면 바닥에 붉은색으로 무언가 지나간 흔적이 있단 점이었다. 얼추 짚이는 게 있었지만 왠지 그건 아닐 것만 같았다. 끌고 다녔다면 소리가 안 났을 리가 없었기에. 그리고 처음 왔을 때와는 다르게 장소가 오히려 넓어 보이기까지 했다. 넓은 곳에 왜 아무것도 없는 건가 했지만 귀찮음에 그저 생각으로 그쳤다.
7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바닥을 내려다보더니 흔적이 이어지는 곳을 되짚어갔다. 하지만 얼마 가지도 못하고 중간에 끊기자 그 주변을 둘러보고는 5에게 물었다.
“여기로 가는 게 재밌을까?”
5의 옆에서 조용히 그 말을 듣자 위험하다고 느껴 빠르게 고개를 저었지만, 5는 주변을 대충 훑어보고는 대답했다.
“아마도?”
속으로 ‘맙소사’거리고 두 눈을 감은 채 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머리가 욱신거려왔다. 장난치는 거겠거니 싶어 한쪽 눈만 뜨고 7을 쳐다보자 눈이 마주쳤다. 7은 시선을 피하기보다는 지긋이 쳐다보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급할 건 없으니 천천히 가자고?”
말할 틈도 안 주고 여기까지 끌고 온 게 누구 때문인데 그래놓고 천천히 가자니 어이가 없다.
“그럼 대체 왜 달린 거야?”
“그냥?”
넌지시 대답하고는 쿡쿡거리며 7은 혼자 앞으로 나아갔다. 혼자 가는 7을 보다 못한 5는 같이 가자며 뒤따라갔다. 결국 선택의 여지없이 혼자 덩그러니 남았다.
‘매번 이런 식인 건가..’
혼자가 되고 나니 넓은 공간에 혼자 서있자 괜히 위화감이 생겨 어쩔 수 없이 둘을 뒤따라갔다. 빠르게 뛰어가자 얼마 가지 않고 따라잡아 속도를 줄여 같이 나란히 걸어갔다.
하염없이 길을 걷다 보니 중간중간에 형체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니, 모습을 보였다가 맞는 걸 수도 있다. 5는 그런 형체들 하나하나에게 “안녕”이라고 인사를 걸었지만 그들은 고개만 좌우로 움직여 우리를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질 않았다.
5가 왜 반응도 없는 그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네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6이라 불리는 그녀는 형체들에게 신경조차 쓰지도 않다가 가면을 쓴 형체가 나타나자 왜 쫓아가 죽인 것일까.
궁금한 나머지 7에게 물었다.
“저기…”
물어보기 위해 말을 거는 동시에 7이 걸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기다려”라고 말한 뒤 가만히 서있었다. 무슨 연유에서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7은 무언가를 알아차린 것만 같았다.
“숨어있지 말고 나와”
7이 단호하게 내뱉은 말은 천천히 곳곳에 울려 퍼졌다. 그러자 바로 앞 구석에서 누군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두려운 나머지 5의 등 뒤에 숨어서 쳐다보니 사진으로 보던 어릴 적 내 모습과 닮은 꼬마가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양 갈래머리에 토끼 모양의 크로스백을 맨 꼬마의 왼쪽 눈 밑에도 5와 7같이 로마숫자로 1(Ⅰ)이라 적혀 있었다.
꼬마는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디며 다가오다가 그만 발이 꼬여서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러고는 울먹울먹 거리더니 빠르게 눈물이 맺히는 동시에 이내 울기 시작했다.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당황해서 멍하게 있는 사이에 5가 앞으로 나섰다.
“1, 괜찮아?”
5가 일으켜 세워주기 위해 다가가려고 하자 7이 순식간에 5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5에게 안된다고 제스처를 보내고는 넘어진 꼬마에게 7이 물었다.
“너, 왜 거기 숨어있었어?”
그 말을 들은 꼬마는 울음을 멈추더니 그 자리에 일어나고는 다시 자세를 고쳐앉았다. 그러고는 눈물을 닦고 나서야 대답했다.
“언니들 재밌게 노는 거 같아서 구경하려고...”
꼬마의 말이 끝나자 알 수 없는 귀여움이 느껴졌다. 무언가 아기자기한 애가 이런 곳에 혼자 있다는 것이 불쌍하게 느껴져 나도 모르게 “그럼 같이 놀자”라고 말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