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거울을 본 행동은 단순히 눈 밑에 적힌 숫자를 보기 위함인가 싶었다. 자신의 이름을 ‘5’라고 주장하는 그녀. 누가 들어도 이상할 법한 소리에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아니, 이름이 5일 리가 없잖아..”
그러한 부정적인 대답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살피더니 말했다.
“5 맞는데?”
“아니..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야?”
“... 나 5 맞는데..”
나의 말에 상처를 받았는지 그녀는 급격하게 시무룩해져가지고는 그 자리에 쭈그려앉은 채 입이 튀어나왔다. 저렇게만 보면 적어도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진 않다. 오히려 바보여서 그런지, 아니면 어디 한구석이 모자란 것같이 보이기에 대화할수록 머리가 복잡해졌다. 별 소득을 얻지는 못했지만 포기하고 다른 걸 물어보기로 했다.
“그러면 여기는 어디야?”
그러자 삐졌다는 듯이 쭈그리던 그녀가 힘차게 일어서더니 바로 대답했다.
“내 방!”
“아니, 이곳이 어디냐고..”
“내 방안이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확고하게 말대답하는 그녀 때문에 속이 타들어간다.
‘환장하겠네’
어떻게 대화할수록 내가 궁금해서 묻고 싶은 게 과연 이건가 싶을 정도로 혼란이 왔다. 답답함에 크게 심호흡을 하고 차분하게 그녀에게 다시 물어봤다.
“이 방 말고 우리가 왜 여기 있는 건지 혹시 아는 거 있어?”
“나야 모르지, 넌 알아?”
그녀의 모든 대화는 생각을 거쳐서 말하는 게 아니라 반사적으로 대답하는 것 같다. 아무런 생각 없이 말하는 그녀였지만, 내 입장에선 조롱하는 거나 마찬가지기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내가 화낼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어찌 보면 도움을 받고 있는 거나 다름없기에 이번 질문도 별 수확을 거두지 못한 채 포기하고 다른 것을 물어봤다.
“혹시 나한테 반갑다고 한 말 기억나? 왜 그런 거야?”
이 질문을 던지고는 곧바로 후회했다. 말을 듣자마자 밝아지는 그녀. 여태껏 보여줬던 행동들을 떠올리고 나서야 표정을 보고 말하지 않아도 무슨 대답이 나올지 감이 왔다.
‘그럴 리가..’
확신까지는 아니더라도 미미하게나마 아닐 거라고 속으로 부정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대답했다.
“나랑 닮았잖아!”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그녀. 주체할 수 없다는 듯이 정신없이 사방팔방을 뛰어다녔다. 이제 우리의 대화는 나아지기는커녕 물어보는 나만 답답해져 감을 다시 느꼈다. 말이 안 통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대화의 방식인가? 아니면 내가 너무 어려운 것을 물어봤나? 아니면 질문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좀처럼 대화가 이어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대화조차 통하지 않자 설마 그런 사소한 이유로 처음 보는 나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와 이렇게 대하는 걸까 싶었다.
‘혹시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다른 목적을 가지고 안심시키기 위해 일부로 이러는 걸까 했다.
“단지 그뿐?”
하지만 혼자서 앞서나간 생각과는 다르게 단순명료한 대답만 돌아왔다.
“응! 너도 ‘우리’와 닮았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사고가 멈췄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대답이 나옴과 동시에 정보를 줬다. ‘나’가 아닌 ‘우리’라고 말한 그녀의 대답. 6을 보는 순간 얼추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그 대답은 추측을 확신으로 바꿔줬다. 분명히 나 말고도 비슷한 사람이 더 있다는 소리나 다름없다. 처음으로 중요한 정보를 얻었는데 그 기회를 허무하게 날릴 순 없었기에 기회를 놓칠세라 여태껏 자신을 5라고 주장한 그녀의 말에 처음으로 귀를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