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현과 혁춘, 둘 다 고생한 수빈을 부축하기 위해 옥사 쪽으로 걸어갔다.
사람들의 눈이 다른 곳으로 몰리자 담벼락 그늘에서 한 사람이 슬그머니 기어 나왔다.
오강이였다.
그렇게 도망치면 파옥으로 몰려 평생 추노꾼들의 추적을 받으며 도피행으로 인생을 허비할 것이고 그러다 잡히면 현재의 범죄에 도주의 죄까지 가중 처벌되어 징벌을 받을 것인데 이 생각 없는 도련님은 뒷걱정은 접어놓고 내뺄 생각뿐이었다.
아마도 집으로만 간다면 어찌어찌 해결이 나겠거니 생각하는 모양새 였다.
항현들에게 들키지 않게 까치발을 들고 살금살금 나가고 있었다.
다음 순간.
“콰흥-!”
하늘 무너지는 듯한 포효와 함께 창귀호가 일어났다.
항현들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 오강이 하얀 얼굴로 뻣뻣히 굳어서 나무토막마냥 서있는 것을 보았다.
그 오강에게로 창귀호가 몸을 질질 끌며 다가가고 있었다.
항현이 다시 칼을 빼어 들고 창귀호를 향해 달음 박치려는 찰나!
“꿔오오오오오오오-”
여명을 알리는 닭울음소리가 동헌에 가득 차더니 창귀호의 앞 가슴팍에 깊숙이 꽂혔다.
항현이 놀라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쳐다봤더니 그 곳에 검지가 있었다.
창귀호는 악착같이 굳어 못이 박힌 듯 서있는 오강에게 기어갔다.
“꿔오오오오오오오-”
두 번째 화살이 다시 창귀호의 앞가슴에 꽂혔다.
그런 창귀호가 결국 오강의 앞으로 가 양 앞발로 오강의 양 어깨를 짚고 일어섰다.
검지는 오강이 가려져 더는 창귀호를 쏠 수가 없었다.
“윤오강........”
“으.....어......어어.......”
항현과 검지가 서둘러 뛰어 갔으나 한 발 늦었다.
“콰-------흥------!”
거대한 창귀호의 포효가 오강의 낯 전에서 터졌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범의 포효성과 같이 원귀, 영우의 귀곡성도 터졌다.
어깨에 앞발을 얹은 창귀호와 얼굴을 맞대고 포효성과 귀곡성을 같이 들은 것이다.
항현과 검지는 귀를 막고 뒤로 물러섰다.
멀찌감치 있던 수빈과 혁춘도 귀를 막을 정도로 크고 고약한 소리였다.
여지껏 들었던 그 어떤 포효와 귀곡보다 한층 크고 섬찟한 소리가 멈추자 오강은 바지를 적지고 눈에 흰자를 보이고는 그대로 실신해버렸다.
어깨에 발을 얹고 지탱하던 범도 같이 넘어졌다.
사흘 뒤, 항현과 검지, 혁춘은 여장을 챙겨 일어났다.
“이제 가시는 가?”
현령이 항현에게 반갑게 물었다.
아마 찝찝한 귀신을 다루는 사람들이 고을을 떠난다니 반가운 마음이 드는 것이리라.
“예, 지금 위령제를 지내는 수빈 아가씨가 끝나는 대로 같이 떠날 것입니다.”
“음. 내가 맡은 송사로 억울한 귀신이 나와 그 많은 희생을 치르게 되다니,...... 부끄럽기 짝이 없네.”
“......”
아마도 “괜찮다, 앞으로 잘하면 된다, 별일 아니다, 누가 해도 그만 못할게다” 등의 위로의 말을 듣고자 말 앞을 잡은 모양인데 항현은 입을 열면 잘 알지도 못하는 노인네에게 “다 당신 잘못 맞소이다,”하는 퉁이나 놓을 것 같아서 무언으로 대답했다.
듣고 싶었던 위무를 받지 못하자 현령은 입맛을 다시며 항현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럼, 살펴 가시게. 에헴!”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관아의 문을 나와 동네의 대로를 따라 동구 밖, 영우, 영화 남매가 살았다는 움막으로 가자, 마을사람들이 다 나와 있었다.
그 중에는 창귀호에게 제일 먼저 변을 당한 움튼이의 어머니도 있었다.
그 앞에 맑은 제주와 깨끗한 어포, 몇가지 과자, 하얀 쌀밥과 익히지 않은 쌀 등을 차려 남매의 혼을 위무하는 위령제를 지냈다.
마을 사람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순서를 정해 절하고 제주를 흘리고, 생쌀을 뿌려 새들이 날아와 먹게 했다.
“구우~ 구우~ 새들 따라 가거라~
구우~ 구우~ 하늘로 따라 가거라~
구우~ 구우~ 다 놓고 가거라~
땅에 뭐 하나 남겨놓지 말고 가거라~”
혜수빈이 새소리를 흉내내고 위로의 주를 읊어 제를 모두 마쳤다.
“저승에선 사이좋게 지내렴. 우리 움튼이도 나쁜 아이 아니란다. 어히구우~”
움튼이의 어머니도 울며 죽은 이들의 평안을 빌었다.
제를 마친 수빈도 미리 꾸려 놓은 여장을 챙겼다. 그리고 항현과 검지를 쳐다보았다.
“허가네 일균이란 사람이 죽지 않은 것은 좀 의외요. 많이 다치긴 했지만......”
“아마도 앞에 나서 눈물을 흘리며 사과를 한 것이 손에 사정을 두게 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도 얼굴 절반이 날아가다시피 했으니......”
검지의 말에 항현이 대답을 해주었다. 그리고 바로 항현이 물었다. 묻고는 싶었지만 관아의 귀들이 많아 일부러 그간 입을 다물고 있던 터였다.
“검형, 검형이 쓴 그 활은 사유궁이 아니오? 닭의 해에, 닭의 달에, 닭의 날에, 닭의 시에 만드는 신물, 아니오?”
“맞소. 닭의 년, 월, 일, 시에 만들고 화살은 꽉 찬 수, 열두 대에서 하늘을 겸허히 대하는 의미로 한 대를 빼놓아 열 한 대의 화살로 되어 있소. 내, 산을 다니며 쓰는 산채 하나에 숨겨 두었는데 필요할 듯하여 잠시 다녀 온것이요.”
수빈이 대화에 살짝 껴들어 갔다.
“닭의 해라면 지난 계유년인가요.”
“......”
“계유년이면...... 어머!”
계유년, 정란이 있던 피의 해, 수빈도 더는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그 자리를 맴돌았다.
혁춘이 대화에 딱, 막음질했다.
“큰 얘기면 아예 말을 마세. 듣는 우리도 부담스러우니......”
항현을 바라보자 항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검지는 멋쩍게 웃으며 일행과 작별을 고했다.
“자아~ 난 도호부로는 안 가겠소. 이만 내 갈 길을 가야 하니 여기서 헤어지는 걸로 합시다!”
“도움을 너무 크게 받았는데 보답도 못하고 어쩌나요.....”
수빈의 서운함을 드러낸 말에 항현이 한마디를 보탰다.
“공이 큰데 나라에서 포상이 있지 않겠소? 내 말을 잘해 보리다.”
“아니! 고맙지만 됐소. 관원 형은 사유궁을 쓰는 자를 만났다는 말이나 말아 주시오.”
“그리...... 하시겠소.......”
항현도 더는 권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라에서 출장비로 받은 은자를 갈라 주고 작별을 고했다.
“다시 뵈었으면 좋겠소.”
“연이 되면 만나고, 연이 안되면 못 만나고.”
빙글빙글 웃으며 작별인사를 한 검지는 다른 이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살펴가시오. 누이, 아재도......”
“정말 서운해요. 큰 도움이 돼주셨는데......”
“인연이 꼭 되었으면 좋겠네.”
서로 인사를 다 나눈 후에 검지는 떠나갔다. 그리고 수원부에 다 닿을 무렵, 혁춘도 변덕을 부렸다.
“뭐~ 우리도 다 가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동파, 그 친구한테 보고하는 건 자네만 하면 되는 일이니......”
“다들 조정의 눈에 띠는 걸 싫어하시니 더 권하기도 뭐하고......”
“자네가 별난 거지. 조정의 녹을 받는 기예별자이니, 흐흐흐......”
“알겠습니다. 수빈 아가씨도?”
“예, 서운하지만 저도 조정에 눈에 많이 띠고 싶진 않아서......”
“........옛.......”
결국 혁춘과 수빈도 수원에서 약간의 은자를 항현이 융통해주어 그것을 댓가로 받고 헤어졌다.
항현은 결국 혼자 한양을 돌아와 좌부승지 박동파에게 보고를 하고 사건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