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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붓을 들 것이다.
작가 : 번트엄버
작품등록일 : 2020.9.29

평범했던 주인공이 한여자를 만나 화가를 꿈꾸며 겪는 인생 스토리 입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에서 화가로 살아남기 위한 생존기 입니다.

 
14화. 화실 이사 가는 날.
작성일 : 20-09-29 14:07     조회 : 54     추천 : 2     분량 : 9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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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화. 화실 이사 가는 날.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화실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 어. 유 선수. 어디십니까?”

 

  수화기 저편엔 어제 마신 술이 덜 깬 선생님이 계신다. 선생님의 입을 떠난 술 냄새가 수화기로 전해지는 듯했다.

 

  “ 네. 학교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에요.”

 

  “ 어. 그랬구나. 유 선수 의논할 것이 있는데 화실로 와줄 수 있어?”

 

  뭔 일인가 싶었다.

 

  “ 네. 지금 여기 화서역이니까요. 한 30분 정도 걸리겠네요.”

 

  그제도 선생님과 늦게 까지 술을 마셨었다. 요즘 화실에 신철이 아저씨라는 분이 최근 들어 나오시기 시작하셨는데 의류업계에 종사하시다가 최근에 정리해고되신 분이다. 화실에 나오신 지는 2주 정도 되신 거 같았다.

 

  선생님과는 연배가 비슷하시고 죽이 잘 맞아 최근 들어 선생님은 신철이 아저씨와 술 마실 일이 잦아지셨다.

 

  최근에 미술세계 대상 전에서 특선을 받으신 선생님은 요즘 기분이 좋다. 다음번 공모전으로 대한민국 미술대전에 출품할 작품을 하시느라 바빴던 시절이었다.

 

  화실 상황은 최근 수강생들이 많이 늘었다고 했다. 입시 미술 강사가 화실에 나온다는 입 소문을 타고 화실의 인기는 날로 상승해 가고 있었다.

 

  선생님과 약속을 한 나는 안양역에서 내렸다. 오늘 나는 다시 휴학계를 내고 오는 길이었다. 내년에 입영을 하 기 위한 포석이었다. 나는 군대 가기 전까지 그림이나 열심히 그려야겠다는 마음속의 다짐을 했던 터였다.

 

  얼마 전에 외갓집에 다녀오는 길에 시골 풍광을 담은 장면을 필름 한통에 가득 담아왔다. 풍경 수채화를 시작으로 작품 구상에 들어가 봐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화실을 향해 길을 걷고 있다. 입시도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또다시 입시지옥은 시작되고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채워져 있다 보니 어떻게 화실에 도착을 했는지도 모르게 도착을 했다.

 

  “ 선생님. 무슨 일 있으세요?”

 

  나는 소파에 앉으며 물었다.

 

  “ 그게 말이야. 화실 이사 가야 할 것 같다.”

 

  한참 먼 산을 바라보던 선생님이 입을 떼셨다.

 

  “ 화실 이사요? 갑자기 왜요?”

 

  놀라며 내가 물었다. 선생님은 천천히 말을 이어 가셨는데 사건은 며칠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술세계 대상전에서 특선을 받으신 선생님께서 그날 한 턱 내신다고 신이 나 계셨다. 학교에서 연락을 받은 나는 수업을 마치고 화실에 늦게 도착했었다. 이미 취기가 오르신 선생님은 신철이 아저씨와 술을 드시고 계셨다. 그도 그럴 것이 특선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상을 받고 나니 미술계에서 드디어 자기를 인정해 주는 기분이었을 터다.

 

  그렇게 기분이 좋은 선생님은 밖으로 나가서 술을 한 잔 더 하자는 말을 하셨다. 다음 날 학원에 수업을 가야 하는 나는 오랜 시간을 선생님과 술을 마시며 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적당히 마시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화실을 나선 뒤, 선생님과 신철이 아저씨는 포장마차로 자리를 옮겼다. 이미 거나하게 취한 상태였지만 그 길로 집에 들어가시기는 아쉬우셨던 모양이었다. 포장마차로 자리를 옮긴 선생님 일행은 술을 마시던 중 옆에 앉아서 혼자 술을 마시던 사람과 시비가 붙게 되었는데 술을 너무 많이 마셔 비틀거리던 중 신철이 아저씨가 물 잔을 떨어뜨리면서 옆에서 혼 술을 하시는 아저씨의 신발이 젖게 만드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본인의 실수에 놀란 신철이 아저씨는 연신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며 빌고 계셨는데 신철이 아저씨가 너무 저 자세로 나오니까 이 사람이 신철이 아저씨를 우습게 본 모양이었는지 언성을 높이면서 신철이 아저씨 멱살을 잡은 것이었다.

 

  신철이 아저씨가 멱살을 붙잡힌 채 갖은 욕을 먹는 모습을 본 선생님은 조용히 다가가 왼손 주먹을 그 사람 얼굴에 꽂아 주었단다. 뒤로 발랑 넘어지며 고통을 호소하며 혼술 하던 아저씨와 그 사람에게 달려드는 선생님. 그리고 선생님을 말리는 신철이 아저씨. 그렇게 포장마차는 아수라장이 됐다. 잽싸게 112에 포장마차 사장님이 신고한 덕에 소란은 오래가지 못했단다. 파출소에 끌려간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합의하고 무탈하게 풀려나는 듯 보였지만 합의금과 벌금이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선생님을 도와줄 사람은 선생님 아버지뿐이었다. 6.25 참전 유공자인 선생님 부친께서는 선생님을 아픈 손가락으로 여기셨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탓이다. 이참에 더 넓은 곳으로 이사를 가라며 거금 1000만 원을 내어 주셨단다. 사람을 때리고 벌금에 합의금까지 물어야 했던 굉장히 난감했던 상황에서 갑자기 전세가 역전이 된 것이다.

 

  “ 그래서 주민아.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진짜 괜찮은 곳이 나와 있더라.”

 

  한번 같이 가보자며 나서신다.

 

  천천히 안양 일 번가 쪽으로 선생님을 따라 걸어간다.

 

  ‘ 어? 이 정도면 위치 너무 좋은데?’

 

  라고 생각하며 따라가는데 선생님이 사거리에서 창박골 쪽으로 올라가신다. 안양 중앙시장 골목을 지나 4층짜리 건물로 들어선다. 어제 보신 곳은 3층이라 했다. 그렇게 우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직전까지 만화방을 했던 곳인가 보다. 유리창 선팅에 만화라고 쓰여 있었다. 가만히 내부를 둘러보니 20평 남짓 되어 보였다. 창이 양쪽으로 나있고 왼쪽으로는 발코니 형태로 공간이 분할되어 있었는데 그곳에 작은 크기의 싱크대가 있었다. 이쪽으로 이사를 온다면 식사 후에 불편했던 설거지가 편해지겠다 싶었다.

 

  지금 쓰고 있는 화실은 여럿이 쓰기에 너무 작았다. 선생님이 100호 작업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던 중이어서 다른 사람들은 작은 크기의 그림만 그릴 수 있었는데 이곳으로 이사를 온다면 여러 명이 100호 작업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100호를 해야 하는 이유는 당연히 공모전에 그림을 내기 위해서다. 선생님의 귄 유로 다들 하고 싶었던 터였다.

 

  “ 넓어서 좋은데 비싼 거 아니에요?”

 

  “ 수강생 수가 늘어서 감당할 수 있겠어. 그리고 이쪽으로 옮기면 광고도 내보려고.”

 

  실제로 지금 화실에 다니는 사람은 열댓 명 정도였고 수강비를 10만 원으로 올리면 된다고 했다. 싸도 너무 싼 수강료는 손보는 것이 맞다.

 

  “ 주민이 마음에 들면 선생님 확 계약해 버린다.”

 

  내 마음에 들고 안 들고 의 문제는 아니었다. 수강생 수의 비해 너무 비좁은 화실은 언제부턴가 너무 좁게 느껴졌었다. 지금이라도 넓은 곳으로 옮기면 얼마나 좋겠는가?

 

  해가 갈수록 크리스마스 카드와 연하장의 인기는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카드 디자인으로 입에 풀칠을 하던 안 실장님은 캐드를 배우겠다며 얼마 전부터 화실에 안 나오시고 계셨고 인테리어 디자인의 공부하며 화실을 많은 면적을 쓰던 동욱이 형도 건축을 공부한다며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예상할 수 없었던 고정 멤버의 이탈도 화실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았다. 공동 작업실로 시작한 화실은 어느덧 많은 수의 수강생들을 가르치는 문화 센터같이 변해가고 있었는데 근래에 일어난 변수들도 화실의 변화를 종용하는 듯했다.

 

 

 

  “ 홍선아. 밑에 짐 얼마나 남았어?”

 

  홍선이는 제자였던 녀석인데 이제는 우리를 형이라고 부른다. 이 녀석도 화실 생활을 하고 있다. 다니던 학교를 휴학한 뒤로 말이다.

 

  “ 한 열개 정도.”

 

  이 녀석은 말할 때 보면 끝에 말을 흐린다.

 

  “ 내가 반 말하지 말라고 했지.”

 

  “ 그게 무슨 반 말이에요. 적당한 선에서 말을 끝낸 거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말이 짧은 녀석을 틈만 나면 나는 이렇게 갈군다. 두 살밖에 나이 차이가 나지 않다 보니 제자 녀석들이 졸업을 하고 나니까 형. 형 한다. 우리는 아직도 우 샘, 배샘 하는데 말이다. 한 번 선생은 영원한 선생이다. 이 녀석들아.

 

  “ 3층까지 들고 올라오지 말고 2층에 놔둬.”

 

  물건을 3층까지 들고 올까 봐 한 말이었다.

 

  “ 네. 아 이제 다리 풀린다.”

 

  “ 얘들아. 조금만 더 고생하자. 선생님이 삼겹살 쏠게.”

 

  “ 고지가 보인다.”

 

  충재가 1층에서 외쳤다.

 

  그렇다. 우리 친구 녀석들이 모두 화실 이사를 돕고 있다.

 

  이사를 편하게 하 기 위해서 우리는 분업을 해서 일을 하고 있었다. 충재가 화물 기사님이 내려주는 짐을 1층 계단 앞에 옮겨 놓는다. 그 옮겨놓은 짐을 홍선이가 2층까지 옮기고 마지막으로 2층에서 3층으로 내가 옮긴다. 그리고 올려진 짐을 정리하는 것은 세종이와 선생님의 몫이다. 이렇게 분업을 해야 이삿짐 옮기는 일이 수월하다.

 

  짐을 옮기기 전에 새로운 화실에는 작은 공사가 있었다. 선생님의 배려로 벽에다가 합판으로 다이를 짜주신 것. 다이의 높이는 50센티 정도였고 길이는 2미터 정도 됐다. 다이의 밑은 네 군대로 공간을 분할하여 그림 재료를 보관하는 함으로 쓰기 적당했다.

 

  화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넓은 벽이 보인다. 화실 공간에는 보가 4개 있는데 벽과 선생님이 짜준 다이를 이용해 이젤 같은 것이 없이 큰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총 4명이 동시에 100호 작업을 할 수 있게 된 셈이었다.

 

  “ 끝! 다 내렸다.”

 

  일 층에서 외친 충재의 목소리가 귀에 박혔다.

 

  충재 녀석은 화실에 한 번도 수강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친구들 대부분이 화실에 다니다 보니 언제부턴가 술자리에 충재는 존재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오늘 이사도 도와주게 된 것이었다.

 

  “ 주민아. 선생님 내려가서 기사님 돈 주고 있을 테니까, 장 보러 가게 너도 좀 씻고 내려와.”

 

  선생님이 터벅터벅 내려가신다. 이삿짐 옮기느라 땀을 많이 흘린 터라 세수를 안 할 수가 없다. 세수를 하고 나도 후다닥 내려갔다.

 

  “ 홍선아. 충재야. 올라가서 좀 쉬고 있어. 삼겹살이랑 먹을 것 좀 사 올게.”

 

  내려와 보니 화물차 기사님은 벌써 가시고 없다.

 

  “ 수고했다. 주민아. 너희가 일 다 했다.”

 

  오른손이 불편하신 선생님은 큰 짐은 옮길 수가 없었다. 3층 화실에서 잔짐을 옮기시고 세종이와 정리를 주로 하셨다

 

  “ 먼지 많이 들 마셨을 테니까. 삼겹살 기름으로 훑어 내려가게 해야지.”

 

  새로 이사한 화실은 안양 중앙시장이 지척이라 장보기는 수월했다. 이번 화실을 얻는 데에 시장이 가까운 것도 작용을 많이 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인심 좋은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목공소도 있었다. 시장 못지않게 목공소가 가까운 것은 화실 입지 선정에 매우 중요하다. 합판으로 직접 짠 패널에 장지를 배접 해서 작업을 하시기에 목공소가 가까울수록 좋은데 이번에는 바로 옆이 목공소라니 정말 최고의 입지 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제 장을 보러 가보자.

 

  화실을 나와 오른쪽으로 돌아 시장으로 향하다 보면 익숙한 떡볶이를 파는 좌판이 나온다.

 

  “ 안녕하세요. 사장님.”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 손을 붙잡고 중앙시장에 장을 보러 오면 언제나 들리던 떡볶이 집이다. 이 떡볶이 집과 화실이 너무 가깝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

 

  안양 중앙시장 떡볶이의 맛은 단연 일품이다. 중앙시장에 위치한 떡볶이 집은 대체로 맛은 다 비슷한데 다른 지역 떡볶이와의 차별 점이 분명하다. 가래떡보다는 다소 가는 쌀떡을 쓰는데 이 쌀떡은 극 강의 쫄깃함을 자랑한다. 떡볶이에 들어가는 어묵도 떡볶이 굵기의 어묵이 들어가는 것도 특이점이다. 밀떡과 다르게 떡 안에 간이 많이 베이지 않는 쌀떡이다 보니 떡볶이 국물의 간이 강하다. 간이 센 국물을 왕창 무쳐서 먹는 떡의 식감은 예술이다. 극적인 쫄깃함과 적당히 매운 양념의 조합 때문에 한 번 먹어본 사람이라면 떡볶이 집을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떡볶이 집을 지나 계속해서 걷는다. 50미터 정도 더 가다 보면 정육점이 나온다. 여기가 좋겠다. 행사가 한창이다. 삼겹살이 세근에 만원이다. 넉넉하게 먹으려면 다섯 근 정도면 충분하겠다. 값을 지불하고 정육점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 쭉 걸어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 지하에 큰 마트가 있다. 이곳에서 술이며 음료수, 상추와 깻잎 따위를 사면된다.

 

  요즈음 들어 마트를 한 곳을 정하면 그곳만 가게 되는 이유가 하나 생겼다. 포도 알 모양의 스티커를 모으기 위해서다. 오천 원어치를 사면 스티커를 하나 준다. 한 장 가득 모으고 나면 휴지 같은 상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한 군데를 공략해야 한다.

 

  마트를 나와 위로 바로 올라오면 중앙시장의 명물 녹두전을 파는 좌판이 있는데 이것도 사가야 한다. 녹두전 2장을 사고 시장을 나오는 길에 보면 만두집이 있는데 이것도 사야 한다. 고기를 먹으면서 같이 즐길 수 있는 사이드 메뉴로 좋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장 한 바퀴를 돌며 장을 보고 화실로 향한다. 화실에는 이사하느라 진이 빠진 녀석들이 땀을 식히며 삼겹살을 기다리고 있을 게다.

 

  화실에 도착했다. 센스 있는 녀석들은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불판이며 버너를 꺼내 세팅을 해놓고 있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다 보니 종종 화실에는 이렇게 삼겹살을 구워 먹곤 한다.

 

  고기만 먹다 보면 밥이 아쉬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마트에서 사 온 떡국 떡을 고기와 함께 같이 구워 먹는다. 밥을 먹는 것과는 다른 매력을 느낄 수가 있다.

 

 너무 바싹 구우면 딱딱해져서 먹기에 불편을 겪을 수도 있다. 적당히 구어 부풀어 오를 때 고기와 함께 상추에 싸서 먹으면 일품이다. 허기진 배를 달래며 삼겹살을 구워 먹고 있는 중이다.

 

  “ 나 영장 나왔다.”

 

  갑자기 뱉은 말에 모두가 놀랐다. 세종이었다.

 

  “ 어! 벌써. 입영 날짜가 언젠데?”

 

  내년 오월이라고 했다.

 

  ‘ 드디어 우리 친구 중에도 군대 가는 사람이 생기는 건가?’

 

  일반적인 친구들에 비하면 우리는 이미 1년에서 2년은 늦어진 입영이었다.

 

  화실 문이 열린다. 효민이가 왔다. 효민이는 얼마 전에 수능도 보고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세종이와 철이가 다니는 노량진 학원에서 입시를 준비하게 됐는데 나도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것이었다

 

  “ 효민이 왔어? 오랜만이구나.”

 

  선생님이 반기신다. 효민이도 한국예술 종합학교 시험 준비한다고 화실에 다녔던 터라 선생님과 잘 아는 사이다.

 

  “ 어서 앉아. 술 한 잔 해야지.”

 

  충재도 반긴다. 충재랑도 학원 동기 시절부터 잘 알고 지내는 사이라 막역하다. 그렇다. 효민이는 세종이와는 사귀는 사이지만 우리들한테는 여자 사람 친구다. 주량도 만만치 않아 언제나 술자리가 파할 때까지나 일어나지 않는 녀석이다. 말하자면 주당이다.

 

  “ 야. 너 세종이 군대 입영 날짜 나온 거 알고 있었어?”

 

  “ 영장 어제 나왔다고 나도 어제 들었어.”

 

  입을 떼는데 힘이 없다. 평소 같으면 반갑다고 한 녀석. 한 녀석 눈 맞추며 인사해 주는데 오늘은 영 기분이 아닌가 보다.

 

  “ 야. 마셔. 마셔. 다가는 군대 내가 먼저 갈 뿐이라고.”

 

  너스레를 떨지만 세종이 녀석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을 것이다.

 

  나도 10월이면 군대를 가는데 그전 8월에 대한민국 미술대전 구상전에 한 번 그림을 그려 내볼 참이었다. 지금은 학원 입시가 끝나지 않아 아직 시작은 못했지만 입시만 마치고 나면 학원도 이제 그만두고 작품에만 매진해 볼 참이었다.

 

  효민이도 자리를 잡고 술을 마시고 있다.

 

  “ 침울해 있지 말자. 화실 이사도 했고 이제 더 밝은 미래만 있을 거야.”

 

  인생에서 한 번 하는 군대 경험이지만 창창한 청춘을 그곳에서 2년 2개월을 보내야 하 기에 깜깜하긴 했다.

 

  갑자기 영장이 나온 것은 아니었다. 나는 현재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입영을 자연스럽게 연기되면서 병무청에 따로 입영 신청을 한 상태였고, 세종이는 얼마 전에 구청에 가서 입영신청을 마쳤었다.

 

  그때 우연히 동안 구청에서 학교 동기를 잠깐 만났었다.

 

  “ 야. 너 주민이 아냐?”

 

  누군가가 멀리서 소리쳤다.

 

  ‘누구지?’ 동안 구청에서 만날 만한 사람은 없었다. 뒤를 돌아보니 경찰 제복을 입은 사람이 나를 보고 반기는 것이 아닌가?

 

  “ 누구세요?”

 

  당황한 나는 되물었다.

 

  “ 나야. 나 명관이. 서명관.”

 

  서명관? 아.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누군지 알겠다 싶었다.

 

  “ 어. 명관이. 아! 기억난다.”

 

  녀석은 삭발을 한 상태였다. 모자를 벗으니까 정확하게 기억이 났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도 삭발을 한 채로 학교에 온 녀석이었다. 과 깃발을 들고 웃통을 벗고 뛰는 그 녀석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 여긴 어쩐 일이야?”

 

  “ 어. 친구 입영신청하는데 같이 왔어.”

 

  “ 그래. 너는 군대 안 가냐?”

 

  “ 나도. 내년에는 영장 나오겠지.”

 

  명관이는 재수를 하고 학교에 들어온 녀석이었다. 1학기 마치고 바로 지원해서 의경에 왔다고 했다. 남은 복무 기간이 6개월 남짓 남았다고 하는데 세상 부러웠다.

 

  “ 저쪽으로 가면 신청할 수 있을 거야.”

 

  손이 가르치는 방향으로 세종이와 같이 걸었다. 그러고 보니 세종이는 명관이를 형이라고 불러야 하는 상황이구나.

 

  “ 그래 명관아. 고맙다.”

 

  빠르게 인사를 했었다.

 

 

 

  “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

 

  충재가 술잔을 들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 어 그냥 이것. 저것.”

 

  “ 충재 너는 영장 아직 안 나왔지?”

 

  “ 그러게. 나도 내년에는 나오겠지.”

 

  “ 야. 군대 얘기 그만해. 이제.”

 

  세종이가 언성을 높였다.

 

  “ 오랜만에 다들 모였는데 2차로 노래방이나 가자.”

 

  선생님이 벌떡 일어나며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노래방을 참 좋아하신다. 물론 우리들도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는 것을 대체로 다들 좋아하는 편이다. 세종이야 뭐 당연히 음악 하는 녀석이니까 더 설명이 필요 없는 녀석이고 충재는 음악에 맞춰 춤추는 것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춤을 곧잘 추는 녀석이었는지라 여학생들한테 꽃다발과 초콜릿도 많이 받아본 녀석이다. 나 역시 노래 부르는 것을 녀석들 못지않게 좋아한다.

 

  “ 그래. 갑시다. 노래방.”

 

  노래방을 가기 전에 먹으려고 펼쳐놓은 자리를 정리해야 한다. 만약 귀찮다고 내일로 미루면 내일 공포의 설거지를 맛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삼겹살 기름이 사방으로 튀어서 바로 하는 것이 상책이다. 두 녀석이 설거지를 하면 다른 사람은 먹었던 자리에 신문지에 쓰레기를 모두 집어넣어 쓰레기봉투에 정리를 한다. 다른 한 녀석은 봉걸레를 빨아 와서 물청소를 한 번 한다. 홍선이가 들어온 이후 설거지는 홍선이 몫이 되었다. 홍선이를 돕는 일은 효민이가 하고 있다. 설거지는 확실히 쉬워 보였다. 바닥에 좁은 개수대에서 쪼그려 앉아서 했었는데 집처럼 서서 싱크대 앞에서 설거지를 하니 편해 보였다. 식기 건조대가 필요하겠다 싶었다.

 

  근대 꼭 정리할 때 보면 충재는 안보이더라.

 

  노래방에서의 선생님의 선곡은 세종이와 우리를 울렸다.

 

  [이등병의 편지] 김광석의 노래.

 

  선생님은 원래부터 김광석 음악, 들국화 같은 음악들을 좋아하셨다. 같은 공간에서 그림을 그리며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음악들을 벌써 일 년 가까이 듣다 보니 어느덧 나도 이 음악들이 좋아지게 되었었다. 조용히 읊조리는 김광석을 목소리는 마치 그의 성품을 짐작하게 하 듯, 조용히 이야기해주는 거 같았다. 마치 10살 정도 많은 동내 형이 10살 어린 동생들한테 이야기하듯이 말이다.

 

  ‘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는 날.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

 

  가슴속에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풀 한 포기 친구 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친구들아 군대 가면 펀지 꼭 해다오.

 

  그대들과 즐거웠던 날들을 잊지 않게.

 

  열차시간 다가올 때 두 손잡던 뜨거움.

 

  기적소리 멀어지면 작아지는 모습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짧게 잘린 내 머리가 처음에는 우습다가.

 

  거울 속에 비친 매 모습이 굳어진다. 마음까지.

 

  뒷동산에 올라서면 우리 마을 보일는지.

 

  나팔소리 고요하게 밤하늘에 퍼지면.

 

  이등병의 편지 한 장 고이 접어 보내오.’

 

 

 

  ‘ 이재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노래는 끝났는데 여운이 남았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각자의 크고 작은 꿈들이 여물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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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0화. 그녀와 소고기. 2020 / 9 / 29 49 2 12471   
29 29화. 2002년 월드컵. 2020 / 9 / 29 49 2 6299   
28 28화. 재회. 2020 / 9 / 29 49 2 6026   
27 27화. 100일 휴가. 2020 / 9 / 29 53 2 10805   
26 26화. 신병. 2020 / 9 / 29 50 2 5681   
25 25화. 군대. 2020 / 9 / 29 44 2 3959   
24 24화. 입선. 2020 / 9 / 29 42 2 4934   
23 23화. 고기부페. 2020 / 9 / 29 46 2 10747   
22 22화. 국전. 2020 / 9 / 29 51 2 7129   
21 21화. 신철이 아저씨. 2020 / 9 / 29 50 2 7979   
20 20화. 시화집. 2020 / 9 / 29 49 2 3678   
19 19화. 세종이 군대 가다. 2020 / 9 / 29 53 2 4161   
18 18화. 인사동. 2020 / 9 / 29 51 2 3568   
17 17화. 하얀 캔버스 앞에 서다. 2020 / 9 / 29 56 2 6678   
16 16화. 액자공장. 2020 / 9 / 29 55 2 11885   
15 15화. 작품을 하라. 2020 / 9 / 29 56 2 5044   
14 14화. 화실 이사 가는 날. 2020 / 9 / 29 55 2 9588   
13 13화. 다시 만난 그녀. 2020 / 9 / 29 56 2 7258   
12 12화. 뼈 해장국. 2020 / 9 / 29 58 2 4799   
11 11화. 헤비메탈. 2020 / 9 / 29 59 2 7312   
10 10화. 화실생활. 2020 / 9 / 29 61 2 5332   
9 9화. 노량진 학원가. 2020 / 9 / 29 59 2 4840   
8 8화. 화실가는 길. 2020 / 9 / 29 62 2 4407   
7 7화. 해부학수업. 2020 / 9 / 29 68 2 5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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