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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뱀파이어 로망스
작가 : 꽃님발
작품등록일 : 2019.9.3

내가 왔어. 너 찾으러 내가 여기까지 왔다고. 네가 발이 묶여 나한테 못 온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 그 발목을 잘라내서라도 널 다시 내 옆에 둘 거야.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겨 버린 뱀파이어 희선. 마지막 순간 돌아온다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그를 찾으러 다시 한국을 찾아온다. 뱀파이어계 모든 사건 사고에 관여하는 그가 제발로 찾아오기를 바라며 인간 흡혈을 저지르는데….

영원을 살아가는 저주받은 존재, 뱀파이어와 인간 그리고 뱀파이어 헌터들 간의 엉켜버린 운명과 사랑이야기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집니다.

 
6화. 당분간 외출 금지야
작성일 : 19-09-09 20:29     조회 : 27     추천 : 0     분량 : 5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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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가에 드리운 아침 햇살은 잔인하리 만치 환하게 부셔져 내리고 있었다. 무거운 눈꺼풀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빛 때문에 하은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들어올린다. 하지만 제 아무리 빛을 가리려 애를 써도 햇살은 더욱 더 진하게 느껴졌다.

 

 " 아악!! "

 

 결국 더 이상 참지 못한 하은은 이불을 확 젖히며 일어나고 만다. 몇 백년 전만 해도 뱀파이어는 말 그대로 밤낮이 바뀌어 생활을 했다. 해가 질 때 쯤, 그러니까 대충 오후 7시 정도면 저절로 떠지는 눈을 비비곤 깊어가는 밤을 느꼈다. 하지만 인간과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명분하에 아침을 12시간이나 당겨버릴 수밖에 없던 뱀파이어들은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다. 처음에 힘들어 하던 이들도 점차 낮 생활에 익숙해졌지만 유독 하은 만은 그렇지 못했다.

 

 " 언니~ 없네? "

 

 우렁차게 부른 주인공은 없다. 텅 빈 거실과 조용한 정적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집이 그리 넓지도 않아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던 하은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하나뿐인 쌍둥이동생 기환의 방문을 연다. 기환은 아침 댓바람부터 컴퓨터를 두드리고 있었다. 집안에 자신과 그뿐인 것을 확인한 하은은 고개를 갸웃한다.

 

 " 야, 언니는? "

 " 몰라. "

 

 기환은 하은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키보드만 치고 있다. 저 새끼는 쳐다도 안봐! 하은이 허공에 주먹을 한번 흔들어 주고서는 문을 닫았다. 나이는 이백이나 쳐 먹고 쪽 팔린다 쪽팔려.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하은이 쇼파로 향한다. 털석, 리모컨을 쥐어들곤 티비를 튼다. 티비에서는 한 시간대별로 하는 지루한 뉴스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일 따위에 관심이 없던 하은은 무슨 뉴스야, 하고서는 지루함에 채널을 돌린다. 그 때,

 

 [ 다음은 긴급속보입니다. 여기는 어젯밤 살인이 일어났던… ]

 

 가만히 티비 화면을 응시하던 그녀는 입을 떡 하니 벌렸다. 화면에서는 어젯밤 살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간의 시체가 비춰졌기 때문이다. 시체는 늑대 정도 되는 동물 여러 마리가 물어 뜯은 듯한 흔적이 있었지만 목 위로는 하나도 훼손 되지 않았다. 더 특이한건 살점은 거의 건들지 않은 채 피만 뽑혔단 점이다. 빨대로 피만 빨아 마신듯 그렇게. 제일 깨끗한 목 언저리를 카메라가 담아내었을 때 하은은 손으로 입가를 막았다. 이 짓은 필시 자신들과 같은 뱀파이어의 짓이 확실했다.

 

 " 야, 김기환!! 김기환!!! "

 

 입가를 손으로 막은 채 한참이나 굳어있던 하은은 후다닥 기환의 방으로 간다. 게임에 심취한 나머지 그는 또 미동도 없다.

 

 "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니까! “

 

 사태가 정말 심각했으므로 하은은 기환이 게임을 하고 있는 컴퓨터 화면을 꺼버린다. 한참 이기고 있던 기환은 벌떡 일어나 눈을 빨갛게 빛내며 하은을 쳐다본다. 뱀파이어는 생명의 위협을 당할 때, 그리고 정말 화가 났을 때 눈이 원래 색, 빨간색으로 빛난다. 지금 기환의 눈이 빨갛게 빛난다는 것은 그가 정말 화가난거다. 단지 한참 이기고 있던 게임을 하지 못하게 컴퓨터 화면을 껐다는 그 이유로. 하지만 그러던 말던 하은이 그의 손을 잡고 거실로 나간다.

 

 " 뱀파이어야! 배… 뱀파이어라고!!! "

 " 뭐어??!!! "

 " 빨리봐, 봐봐! "

 

 마침 타이밍 좋게 시체가 비춰지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안에서 무엇인가 올라올 것만 같은 역겨운 장면이였지만 그런 것 따위는 상관없었다. 시체의 양 손목과 발목, 그리고 목에 스테이 플러로 찍은 듯한 두개의 빨간 구멍이 나있었다. 빠르게 바뀌어 가며 더 자세한 사진들과 영상을 담아내는 화면을 보고 있자니 더더욱 확신이 서갔다.

 

 " 맞지…? 그치?! "

 

 하은이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기환을 쳐다보자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나 왔어- "

 

 장을 보러갔다 온 듯 양손가득 봉지를 들어오는 현경이 보인다. 현경은 넋 놓고 서있는 동생들을 보다가 곧 들려오는 티비 소리에 그 앞으로 달려간다.

 

 " 이…이게 대체… "

 

 믿기 힘들다는 듯 화면을 뚫어져라 응시하던 현경은 절망에 휩싸인다. 딱 봐도 저렇게 시체를 만들 수 있는 종족은 자신의 종족인 뱀파이어 뿐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왜? 갑자기 한대 맞은 것처럼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그러는 와중에 불현듯, 무의식 수면 속에 깊게 잠겨 있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희선.

 

 

 

 이렇게 인간들에게 보란듯이, 그리고 한국에 살고 있는 뱀파이어에게도 같이 죽자고 하는 짓은 원한을 가진 자가 아닌 이상 없을 일이었으니. 원한이라. 만약에라도 정말 혹시나 하는 생각이지만 이일에 배후에 그녀가 있는 것이라면 정말 그건… 그건…. 상상하기도 싫었다.

 

 지금은 친구라는 말이 어울리진 않겠지만 희선과 친구였을 때의 그녀는 자신이 봐도 항상 치밀했고 계획적인 여자였다. 그녀의 짓이라면 분명 현경에게 보란듯 선빵을 날린 것과 같은 이치였다. 즉시 니가, 내가 한 짓을 본다면 긴장하길 바래. 딱 그 이야기였다. 그렇게 생각이 든 현경은 빠르게 현관으로가 신발을 구겨 신는다.

 

 " 당분간 외출 금지야. "

 " 누나! " / " 어디가?! "

 " 너네 집에 박혀있어. 진짜 죽을 수도 있으니까. "

 

 희선은 만약의 경우였고 그녀가 아니라고 해도 미칠 노릇이다. 적어도 한국에 있는 뱀파이어는 다 알고 있다 생각했는데 그들 말고 더 있는 것인가. 아니다. 그녀가 아니라 혹시 그라면.

 

 " 아닐거야… 아닐꺼야. 오면, 나한테 먼저 왔겠지. "

 

 오래전부터 엉켜버린 그들의 실타래는 이미 걷잡을 수 없었다. 최영원과 유현경. 그리고 김희선. 조만간에 끊어지고 말 그 엉킨 실타래가 누군가의 상처를 기다리고 있다.

 

 

 

 

 

 * * *

 

 

 

 

 

 " 아, 형. 진짜 얘네 너무 웃겨!! "

 

 동화와 규민은 티비 화면을 보며 정말로 즐거운 듯이 웃는다. 어젯밤 자신이 벌인 소행이 꽤나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그저 한번 물었다 놓았을 뿐인데 바로 꼬리를 잡아 늘어지는 인간들이 모습이 한마디로 웃겼다. 그런 동화를 보며 희진은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지금 쯤 같은 화면을 보며 당황했을 그녀와 자신을 찾아올 그를 위해.

 

 그들이 있는 이 곳은 초호화 호텔이었다. 테이블 및 가구 모두 호화스럽지 않은 게 없는. 지금 막 나갈 참이지만 그들과 참 잘 어울리는 이곳은 하룻밤 묵고 가기엔 아까운 점이 한둘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옛날 사치스러웠던 좋은 시절이 다 지나가서 더이상 이런 사치를 부릴 수는 없었다.

 

  " 빨랑와, 제이 기다려. "

 

 제이는 자신의 가문과 오래전부터 친해 알고 지낸 친구이다. 희선의 재촉에 규민이 티비를 꺼버린다. 쉴 새 없이 떠들어 대는 티비가 꺼져버린 방은 공허하고 고요했다. 마치 누구도 들어오지 않았던 새 방인 듯한 착각이 들게끔 흔적도 없는 방을 나선다.

 

 " 으아- 얼마나 가야돼? "

 " 바로 앞이야. 주택단지. "

 " 몇 번진데? "

 " 번지는 음… 26 이랬나? “

 

 커다란 호텔 뒤로 돌자 아기자기한 주택들이 있었다. 24, 25, 26번지! 제이가 산다는 번지만 찾던 그들은 익숙한 빨간 장미문양이 새겨진 아름다운 이층집 앞에 멈춰 선다. 로메니족이 좋아하는 붉고 매혹적인 장미가 새겨져있는 하얀 대문은 그야말로 아름다웠다.

 

 " 누나 근데 이거 봐… "

 " 뭔가 좀 이상한데? "

 

 한참 집을 보며 생각에 빠져있는 희선을 부른 규민이 대문 앞에 내팽개친 듯 놓여있는 쓰레기 봉지 두개를 가르킨다. 그러고 보니 정말 이상했다. 대문 안과 밖에 던져진 듯 놓여있는 쓰레기 봉지 와 열려 있던 대문.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불안한 예감이 든 그들은 서로를 한번 씩 쳐다보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 제이야! " / " 누나!! "

 

 집안에는 오래전부터 계속 된 듯한 적막감만이 가득했다. 집안에는 불길한 한기가 맴 돌았고 탁자 위 테이블에 놓인 머그컵에는 한가득 피가 담겨져 굳어 있었다. 누가 마시려고 부어놓았지만 마시지 못하고 시간이 많이 지난 것 처럼.

 

 " 니네 위층 올라가봐! "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들은 단숨에 이층을 뒤졌다. 뱀파이어이기에 더 빨리 뒤질 수 있었던 그들은, 뱀파이어기에 더 빨리 허탈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집에 없다는 사실만 가지고는 죽었다 아니다를 판단할 수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느낌이란 것이 너무 좋지 않았다.

 

 희선은 고개를 가로젓는 동화와 규민을 보고서 입술을 꾹 깨물었다. 분명 제이와 비행기 타기 바로 전까지 연락을 했었다. 그렇다면 어제랑 오늘 사이에 어떻게 되었다는 소린데, 그 사이에 여행 갔을 리는 없고 늦잠 좋아하는 녀석이 외출했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 누나! " / " 어디가!! "

 

 희선은 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총알을 쏘듯 집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렇다고 하는건 웃기게도 죽기라도 했다는 건데. 일단 주변부터 뒤져 그녀의 흔적이라도 찾아야만 했다. 한적한 동네라 그런지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한 규민이 지붕위로 단숨에 점프한다.

 

 " 위에서 찾아볼게. "

 

 구조가 왜 이렇게 복잡한지. 어느덧 신경질적으로 변한 머리 때문에 집들이 조금씩 다 같아 보인다. 희선은 초조해지는 바람에 모든 게 눈에 잘 안 들어오는 것 같아 입술을 꾹 깨물며 눈을 이리저리 굴린다.

 

 " 으악. "

 

 지붕 위를 뛰어다니며 바닥을 훑던 규민은 잠시 한눈을 파는 바람에 발을 헛 딛는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고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뱀파이어 임에도 발을 헛 딛어 주택과 주택사이 아주 좁은 골목에 떨어진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제대로 착지하는 바람에 밟게 된 바닥은 딱딱한 아스팔트가 아닌 그보다 더 부드러운 무언가였다.

 

 

 혹시나 해서 발치를 보니 새까만 잿가루가 소복히 쌓여 있었다. 약간 반짝이는 듯한 검은 잿가루.

 

 " … 제…이…? "

 

 마치 기다리고 있것 처럼 아주 작은 규민의 소리에 반응한 그들이 단숨에 다가온다. 멍하니 잿가루 앞을 막고 서있는 규민을 밀치고 쭈그려 앉아 손을 댄 동화가 조용히 눈을 감더니만 표정이 굳어진다.

 

 " … 맞아. "

 

 모두가 알고 있듯이 뱀파이어는 죽으면 다 잿가루로 변하게 된다. 뛰어내려도 어딘가에 치여도 죽지 못하는 몸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이라곤 사지를 찢는 방법밖에 없는데. 이 좁은 골목길에 네가 왜 있어.

 

 

 그 잿더미를 보고 이게 뱀파이어다, 하는 것은 쉬웠지만 누가 죽었는지 알아내는 것은 힘들다. 인간의 지문처럼 그게 다 다르면 모르겠지만 마지막은 언제나 다 같은 한줌 재가 되는 거니까. 하지만 동화에겐 사물을 만지면 그 사물의 가장 마지막 기억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일명 사이코 메트리. 순수 혈통 뱀파이어에게만 대부분 초능력이 있지만 이상하게도 동화에게는그런 능력이 있었다. 동화가 눈을 감고 잿더미에 손을 댄다.

 

 '지옥에나 가버려.'

 

 놀랍게도 제이의 마지막을 함께한 눈은 헌터였다. 제이를 잔인하게 찢어 죽인 건 브리아족의 뱀파이어도 아닌, 그렇다고 인간도 아닌 자신들의 앙숙, 뱀파이어 헌터였던 것이다.

 

 

 힐끔 희선을 보니 그 큰 눈에 눈물이 잔뜩 고여 있다.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었다. 아니,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다. 그 많고 길기만한 세월동안 눈물 따위는 다 말라버렸을 거라 생각했지만 친구의 죽음 앞에선 소용이 없었다. 그들 사이로 파고든 가벼운 바람은 무거운 기류에 못 이겨 흩어져 버리고 곧 조용한 희선의 울음소리가 좁은 골목길을 울린다.

 

 주인을 잃은 집은 새 주인을 맞이하지만 떠나간 주인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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