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음악 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왔다. 솔직히 클래식에 관심이 없는 상규는 이 음악이 무슨 음악인지 몰랐지만 듣기에는 편안한 음악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인이 말하고자 하는 대화의 내용을 들은 상규는 이 자리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규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놀라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된 거야.. 어때?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음.. 어.. 그야.. 다...당연하지!!
상규는 애써 괜찮은 척을 하려 했다. 예인 앞에서만큼은 자신 있어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자신감은커녕 놀라는 모습만을 보이고야 말았다.
그런데 이제부터 뭘 해야 하지?
일단 “임철진”이라는 사람을 찾아야 할 것 같아. 그리고 너 원무과에 친한 친구 있다 했지?
응.
그러면 바로 알아봐야 할 게 있어. 이 부분에 있어서 너의 역할이 커. 있다가 저녁에 보자.
대화를 마친 예인은 지친 몸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상규에게 “잘 가”라고 인사를 한 뒤 예인은 상규의 눈앞에서 빠르게 사라져 갔다.
상규는 집에 돌아와 씻지도 않고 침대에 누웠다. 상규는 예인을 만나기 전 설렜던 감정을 생각했다. 분명 예인을 위로하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며 분위기 좋게 커피를 마실 거라고 생각 했지만 상규의 지나친 망상에 불과했다.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해야 할 말만 하고 돌아간 예인의 모습을 본 상규는 씁쓸했다. 상규는 힘이 빠져 옷도 안 갈아 입은 채 그대로 잠에 들었다.
야간에 출근한 예인은 옷을 갈아입자마자 바로 상규를 찾았다. 마침 상규는 뾰로통해져 있는 모습으로 앞에 나타났다.
야!! 너 표정이 왜 그래?
몰라!
뭐야 너 왜 출근하자마자 삐져있는데
안 삐졌거든.
야 알겠으니까 일단 원무과로 가자.
원무과는 왜?
예인은 상규에게 자신의 작전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우선 상규의 원무과 친구인 준석을 담배나 피우자고 밖으로 불러낸다. 그다음 예인은 원무과로 들어가 병원 컴퓨터에 저장돼있는 환자 정보가 담긴 원무과 파일을 열어 상혁의 사진과 정보를 예인의 핸드폰으로 찍어 오는 게 예인의 작전이었다.
야 그게 말이 돼?
야 넌 충분히 할 수 있어!!
아씨...
상규는 결구 원무과에 가 준석에게 말을 걸었다.
야 뭐해?
뭐 하긴 그냥 공상. 아..! 야간근무는 왜 이리 시간이 안 가는 거야?? 짜증 나게.
야 담배나 피자 나와!
뭔 소리야. 내가 자리를 비우면 환자 접수는 누가 받아?
야! 잠깐 3분 피우고 오는데 누가 오겠냐? 오더라도 흡연실에서 피다가 누가 찾으면 바로 오면 되지!
아.. 고민되네. 에이 몰라 걸리면 네가 대신 혼나라.
알겠다니까~~
상규는 준석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예인은 나가는 걸 확인한 순간 바로 원무과 안에 있는 컴퓨터로 환자 정보가 담긴 파일을 열었다. 곧바로 예인은 얼마 전에 진료받은 상혁을 금방 찾을 수 있었고 상혁의 사진과 신상정보를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상규와 준석의 대화 소리를 듣자마자 예인은 도망치듯 원무과에서 나와 자신이 속한 병동으로 돌아왔다.
현욱은 형사들이 돌아가자 속이 매스꺼워 화장실에서 헛구역질을 했다. 화장실을 나온 현욱은 자신의 휴대폰을 집어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은 얼마 안가 상대방의 목소리로 연결 됐다.
여보세요
목소리를 들어보니 번호가 그대로군. 자네 철진 맞나??
맞는데 누구신지...? 설마 현욱인가??
그렇네
아.. 오랜만이야 어쩐 일인가?
자네 상혁이가 죽었어. 누군가한테
음.. 그렇군
자네 놀라지도 않는군.
놀랄 게 뭐 있나?? 요즘 세상에
설마 저네가 관련돼 있는 건 아니겠지?
무슨 이상한 소리를!! 이상한 헛소리할 꺼면 전화 끊게.
상혁이 휴대폰에 예인이라는 이름이 나왔어. 자네 말은 일단 믿겠네. 근데 나한테도 이렇게 행동한 이유가 있다는 걸 알아두게나
현욱은 일방적으로 말을 내뱉고 전화를 끊었다. 현욱은 지나간 끔찍한 과거가 다시 돌아오는 게 아닌가 생각하며 불안이 다시 몰려왔다. 진실을 말하고 싶었으며 끔찍한 악몽과도 같은 기억 속에서 벗어나고자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