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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비망록
작가 : 추워요추워
작품등록일 : 2017.11.6

서울의 음악잡지 기자 서진명은 우연히 어느 음악프로를 보고 난 후 그 프로그램에서 언급한, 요절한 천재 음악가 고 유재하의 뮤즈이자 연인을 찾아 부산부터 대륙 끝 에스토니아 탈린까지의 긴 여정을 떠난다. 그 머나먼 과정에서 '연인 후보' 중 한 명의 딸 이효은과 스며들 듯 스치는 로맨스를 만들어 나아간다. 실화를 바탕으로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인연, 그리고 흐릿하게 사라져 가는 기억의 저편을 가장 익숙한 장소에서부터 조금은 낯선 곳까지의 느리지만 뜻 있는 걸음 속에서 진명은 음악가의 옛 여인을 찾는 일이 단순한 가십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파악하게 되는데...

 
3-3. 가리워진 길 (3)
작성일 : 17-11-06 17:18     조회 : 46     추천 : 0     분량 : 3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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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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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은이 한껏 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진명을 향해 손짓하고, 진명은 못 이긴 척 효은의 맞은편에 앉았다. 효은이 스테인리스 컵에 능숙하게 소주를 따랐지만 진명은 선뜻 마시고 싶지 않았다. 성인이 된지 7년이 지났지만 소주를 마셔 보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한, 진명은 솔직히 효은이 걱정스러웠다. 컵에 들어 있던 소주를 한꺼번에 털어 삼키는 것하며, 삼키고 난 뒤 캬- 하는 추임새를 내지르면서 마시는 솜씨를 보니 보통내기는 아닌 것 같은데 자꾸 습관적으로 그러다 몸이 안 좋아지거나 간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라는 불안감 같은 것이 효은이 마시는 소주와 함께 진명의 뇌리 안으로 들어왔다. 게다가 효은은 젊은, 아직 앞 날이 창창한 젊은 여자이지 않나.

 

 “저, 효은 씨. 효은 씨 야구 보다가 좋아하는 야구 팀이 지고 있어서 화 나고 스트레스 받는 건 아는데…… 스트레스는 이런 데다 풀면 안 돼요. 차라리 친구와 수다를 떨거나 그러는 게 최소한 건강에는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아, 그건 그렇다 치고 솔직히 효은 씨 이러면 안 돼요. 아직 앞길도 창창한 아가씨인데……”

 

 진명의 말이 끝나자마자, 효은은 입 꼬리를 올려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고 나서, 효은은 너털웃음을 호탕한 고대 중국의 떠돌이 무사마냥 내지른 뒤 진명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마치 진명이 동생인 듯 어르는 목소리로 말했다. 효은의 오른쪽 눈이 취기로 인해 감겨질 듯 말 듯 했지만, 그건 효은에게 전혀 개의치 않은 듯 했다.

 

 “……술 못 묵나?”

 

 몇 분이 지났나. 어느 새 안주 그릇은 다 비워지고, 소주 한 병도 똑같이 비워졌다. 그리고, 조금씩 취기가 오르는 듯 벌개진 볼과 흥분된 목소리로 채워진 진명과 효은, 둘만의 갑작스럽고 즉흥적이며 뜬금 없는 술자리는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캬, 술 맛 좋네. 서울 건 아닌 거 같은데.”

 

 “하모, 하모! 이기이 부산 소주 ‘좋은~데이’다! 좋은~데이 말이다 좋은데이! 이기 우째 여기 있었네, 당최 갱북에서는 안 판다 하는데. 아무튼 따라 해라. 마, 살아 있네!”

 

 어느 새 모두가 떠나 버린 파티장에서 김빠진 콜라를 마시는 것마냥 어색하기만 했던 두 사람의 사이가 분위기 때문인지 저절로 말을 놓는 사이가 되어 가는 것을 불감한 채, 새색시마냥 볼이 혈기로 붉어진 효은이 오른손으로 소주가 담긴 스테인리스 컵을 별안간 번쩍 들고 그렇게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했다. 평소 같으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버리며 아무 대답 하지 않을 진명이었지만, 술기운 탓이었을까, 그도 조금 머뭇대기는 했지만 마찬가지로 큰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하기에 이르렀다.

 

 “……마, 살아 있네!”

 

 “이기이 소주 묵으며 맨날 들읐든 말이다 아이가.”

 

 그렇게 효은은 대꾸를 끝냈고, 잠시 동안의 침묵과 웃음소리, 그리고 꼼장어 구이를 먹는 순간순간이 오간 뒤에 효은이 딸꾹질을 한 다음 취기가 한껏 오른 목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 어디서~ 내 생각~ 잊겠는가~ 꽃처럼 어여쁜~ 그 이름도~ 고왔던~ 순이~ 순이야~”

 

 “……좋다!”

 

 ‘부산 갈매기’였다. 진명이 그렇게도 ‘귀로 듣는 고문’이라고 생각했던, 효은의 차 안에서 반 강제로 이틀 연속 듣게 된 그 노래였다. 그러나, 이에 무던하게 익숙해진 건지 아니면 술이 몸 안에 들어가서 노래가 들려오는 데 무감각해진 건지 진명은 어느 순간 미소를 지으며 효은의 노래에 추임새를 맞추고 있었다.

 

 “파도 치는~ 부둣가에~ 지나간 일들이 가슴이 남았는데~ 부산~ 갈매기~ 부산~ 갈매기~ 너는 정녕~ 나를 잊었나~”

 

 “잘한다!”

 

 그렇게 진명의 난데없는 추임새와 함께 노래를 끝내 버린 효은은, 또 한 번 소주를 스테인리스 컵에 따르며 이렇게 말을 꺼냈다.

 

 “그럼 내는 부산 노래 불렀으니카 오빠도 걍 카수맹키루 콱 서울 노래 함 불러 봐라. 내 듣고 싶다 아이가.”

 

 뜬금 없는 효은의 취중부탁에 다시금 머쓱해져만 가는 진명이었다. 자신이 평소에 그런 것을 부탁 받으면 어떡해 해서든 ‘치사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걸 진명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진명은 또 다시 술기운에 온 정신을 맡기고 홧김인 척 오래된 노래를 부르고 말았다.

 

 “서울의 거리는 태양의 거리~ 태양의 거리에는 희망이 솟네~”

 

 “살아 있네~!”

 

 “타이프 소리로 해가 저무는~ 빌딩가 에서는 웃음이 솟네~ 너도~ 나도~ 부르자~ 희망의 노래~ 다~같이~ 부르자~ 서울의 노래~”

 

 “므찌다!”

 

 그렇게 만난 지 일주일이 채 안 되는 두 사람은 노래를 부르며 서로에 대한 벽을 허물어 가고 있었다. 아니, 그 ‘벽’은 효은의 탓이라기보다는 진명이 효은을 향해 가지고 있었던 막연한 낯섦과 두려움이 쌓아낸 벽이었다. 그러나, 술을 마시면서 그것이 술기운 때문이든, 이성적인 판단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 때문이든 아니면 그냥 단순히 늦은 밤 이들이 단 둘이 산골 민박집에 있었기 때문이든, 몇 분 동안 허물없이 이야기를 주고받고 나서 다시 한 번 바라 본 효은은 그렇게 낯설어할 필요도 없었고, 두려워할 필요는 더더욱 없었던 사람이었다. 다만 좀 엉뚱하고 예측하지 못할 행동들을 하더라도, 그건 효은 자신의 원래 모습이지 절대로 진명을 골탕먹이거나 그러려고 하는 일이 아니었다는 걸 진명은 효은의 힘이 풀렸지만 그래도 아스라하게 웃음짓고 있는 눈빛을 보면서 알 수 있었다. 그리하여 효은이 그 다음 날들에 어떤 돌발행동들을 저지르더라도, 아니면 다른 문제가 생겨도 진명은 이 난관들을 모두 포용하고 함께 해결할 마음이 생겼다. 그녀는 바로 그의 ‘동행자’였으니까.

 

 “고맙다. 내가 술 따라 줄 테니까 마셔. 이거 백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야!”

 

 그 말을 하자마자 더 붉어진 볼을 한 효은이, 녹색으로 빛나는 소주병을 뺏더니 자신의 스테인리스 컵에 콸콸 따랐다.

 

 “인자 고마해라. 내 마이 뭇다 아이가. 내는 내 술 내가 따라 묵는다.”

 

 그리고 효은은 선뜻 진명의 스테인리스 컵에도 소주를 따라 준 뒤, 조금 전 ‘살아 있네’를 외칠 때처럼 컵을 불현듯 높이 들었다. 이에 가득 담긴 소주가 거의 흘러 넘칠 뻔했지만 효은은 그래도 개의치 않았다.

 

 “아, 앞으로 우리 말 놓자.”

 

 “지금도 놓고 있잖아.”

 

 진명이 의아한 표정으로 효은을 쳐다 보며 그렇게 물었지만, 소주를 한두 모금 삼키며 효은은 이렇게 대답했을 뿐이었다.

 

 “아니, 내일부터도 술 안 묵을 때도 이케 말 놓자고. 아, 그니카 앞으로 우리가 다시넌 몬 만날 때꺼정 요로코름 쭉! 말 놓재이. 으차피 우리 두 살밖에 차이 안 난다 아이가.”

 

 “너 설마, 술 깼냐?”

 

 진명의 갑작스럽게 진지해진 표정이 왠지 영 우스꽝스러웠는지, 효은은 풉, 하고 외마디 웃음을 내뱉었다. 그리고 얼굴에 장난기 어린 미소를 한껏 지으며 컵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라믄 말 놓은 기념으루 우리 한 잔 더 하재이. 건배!”

 

 “건배!”

 

 두 사람의 컵이 맞닿았을 때 술이 거의 넘쳐 흐를 뻔했지만, 그 소리는 마치 종소리와도 같이 은은하고 맑게 민박집 방 안에 가득히 울려 퍼졌다. 텔레비전 위에 있던 시계가 정확히 자정을 가리키며 초침이 드디어 12라는 큼지막하기만 하고 멋 없는 숫자를 스친 순간, 마치 태엽을 일정하게 감겨 놓은 두 개의 인형들마냥 진명과 효은은 나무가 쓰러지듯 그 자리에 벌렁 쓰러져 드러누워 버렸다. 밤은 점점 더 깊어만 갔고, 두 사람은 어느 새 그렇게 친구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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