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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비망록
작가 : 추워요추워
작품등록일 : 2017.11.6

서울의 음악잡지 기자 서진명은 우연히 어느 음악프로를 보고 난 후 그 프로그램에서 언급한, 요절한 천재 음악가 고 유재하의 뮤즈이자 연인을 찾아 부산부터 대륙 끝 에스토니아 탈린까지의 긴 여정을 떠난다. 그 머나먼 과정에서 '연인 후보' 중 한 명의 딸 이효은과 스며들 듯 스치는 로맨스를 만들어 나아간다. 실화를 바탕으로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인연, 그리고 흐릿하게 사라져 가는 기억의 저편을 가장 익숙한 장소에서부터 조금은 낯선 곳까지의 느리지만 뜻 있는 걸음 속에서 진명은 음악가의 옛 여인을 찾는 일이 단순한 가십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파악하게 되는데...

 
2-4. 지난 날 (4)
작성일 : 17-11-06 17:08     조회 : 17     추천 : 1     분량 : 2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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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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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은은 간밤에 이불을 덮고 잠을 자면서, 자신의 어머니와 진명이 나누었던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한 가지씩은 재능이 있다고 한다면, 효은의 ‘재능’은 한 번에 두 가지는 물론이고 ‘머리 식히기’로 서너 가지 이상의 일을 해 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학교 다닐 적, 효은은 한 손에 연필을 쥐고 수업 시간에 선생의 말을 들으며 태연하게 문제를 풀고, 한 손에는 핸드폰을 숨겨 두고 친구와 문자를 주고받으며 이를 들킨 적이 없었다. 깜지를 쓸 때도 다른 아이들이 한 장 쓰느라 낑낑대는 동안 양 손에 연필을 들고, 한 번에 두 세 장씩을 쓰면서 제일 먼저 집으로 갈 수 있었다.

 

 그 시절 단행본으로 펼쳐진 인터넷 소설이 얼마나 유행을 했고, 수 많은 복사본들이 전국 여학생들의 책상 구석 자리를 박탈당한 채 수업 시간에 여지없이 선생의 손으로 들어가게 되었는가? 그러나, 여기서도 비슷한 방법을 쓴 효은에게 그런 일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인턴 시절엔 커피를 타고 문서를 복사하며 화분에 물을 주고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이와 동시에 당일 저녁에 벌어질 야구 경기에 나올 선수의 라인업을 체크하는 게 가능했다.

 

 그 날 저녁에도 효은은, 텔레비전으로 야구 경기를 보면서 목청껏 응원을 빙자한 괴성을 지르면서도 그 사이에 안방에서 하던 얘기를 다 들음으로써 재능의 일부분을 활용했다. 전설이 된 한 음악가와, 효은 본인의 어머니와의 관계. 음악가와 교제를 했던 다른 두 여인. 행방 불명, 영국 유학. 어머니가 진명에게 준 물건. 그리고……불현듯 다른 이유가 불쑥 떠올랐지만, 그 ‘이유’는 전광석화로 효은의 뇌리를 거쳐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효은은 그 단어들을 머리 속에서 반복하며 잠이 들려고 했지만, 이리저리 뒤척이며 몸에서 뼈 소리가 나도록 움직일수록 그 단어의 나열을 뇌리에서 벗어나게 할 수는 없었다. 그제서야 효은은, 그 순간 강렬하게 느껴지는 갈망을 인정했다. 진명만 괜찮다면야 효은도 진명의 여행에 동참하고 싶었다. 다니고 있는 회사를 며칠 정도 빠져야 하겠지만, 어쨌거나 효은도 그것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일상으로부터의 탈피라면, 어차피 인생 한 번에 딱 한 번쯤은 해 볼 만하지 않을까? 효은은 결국, 진명을 따라 나서기로 마음 먹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간단한 검정 트레일러를 왼손에 들고, 진명이 비장한 표정으로 302호를 나선 시간은 오후 여섯 시 반 무렵이었다. 이미 퇴근해 있던 효은은, 핸드폰으로 카카오톡을 하던지 인터넷에 접속하거나 텔레비전을 보곤 했던 평소와는 달리 진지하고도 애잔한 표정을 짓고서 소파 위에 가방처럼 앉아 있었다. 사실, 그녀도 짐을 싸서 연보라색 여행 가방에 넣고 그것의 손잡이를 꼭 쥐고 있었다. 이를 발견하지 못한 채, 은성은 역시 비장한 표정과 ‘인터뷰’ 때 지었던 우아한 포커페이스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은성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가 선천적인 것인지 아니면 소위 말하는 ‘보여 주기 위한 가면’인 건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안녕히 가세요. 몸 조심 하시고.”

 

 어머니가 공손하게 답례를 하고, 진명이 돌아 서려는 순간 효은은 이것이 다시는 찾아 오지 못할 기회라는 걸 깨달았다. 빈 택시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듯, 효은은 소파에서 일어나 재빠르게 가방을 들고 현관 앞에 따라 섰다. 이에 진명과 은성이 짓고 있던 표정으로 인한 무안함으로 효은의 볼이 괜히 후끈거렸다.

 

 “저, 진명 씨. 그 취재, 지도 따라가고 싶어요. 무에든 다 할게요.그니카……그니카 데려가 주이소.”

 

 그 말을 겨우 끝마치고, 효은과 은성은 묘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진명은 솔직한 심정을 드러내며 뜬금없고 의아한 표정으로 효은을 쳐다보았지만, 곧 그녀가 일단 어머니와는 얘기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분명, 자신의 직장이나 자신의 일상에 관련된 모든 일을 잠시 놓고, 일상에서 탈출하여 자신을 따라가기 위해 진명의 예상을 가뿐히 뛰어 넘을 만큼 철저한, 그야말로 만만의 준비를 한 것이 분명했다. 연보라색 여행 가방을 보고 진명은 그 직감을 확신했다. 솔직히, 진명이 그녀의 진지함과 갈망, 그리고 그것에 대한 현실적인 대처 능력에 놀라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몇 가지 문제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효은이 자신을 도와 줄 든든한 조력자가 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지나치게 외향적인 유형은 아니라지만 천성적으로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했던 탓이었을까, 진명은 동료가 필요했다. 무던하게 길을 함께 떠나며 심심하지도 않고, 취재 중에 생길 여러 위험한 일들에 함께 대처할 것이다. 진명은 잠시 생각해 본 후,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만만한 취재가 아닐지도 몰라요.”

 

 “그 정도넌 저도 다 감안했어요.”

 

 효은의 강아지 같은 눈망울이 결심과 책임감으로 가득 채워진 모습을 보며, 좀 망설이는 듯 하다가, 잠시 후 진명은 대답했다.

 

 “가방이나 이리 주세요. 제가 들고 가겠습니다.”

 

 “...가, 가는 깁니까?”

 

 “네, 효은 씨도 가는 겁니다.”

 

 그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효은은 다시 유쾌하고 밝은 표정으로 지으며, 현관에서 신발장으로 한달음에 달려 나와 단숨에 편해 보이는 감색 운동화를 신었다. 가방은 여전히 효은의 자존심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듯 그녀의 왼손에 들려 있었다. 은성의 짧지만 여운 있는 인사 후, 진명과 효은은 전날 화신아파트 302호에 같이 들어갔듯 회색 여백을 넘어 같은 곳을 나섰다. 햇살은 여전히 따사로웠고 어쨌거나 이 두 사람은 길동무가 되어 길을 떠나게 되었다.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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