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함께 했던 어린 날의 추억 중 바람이 불던 겨울이면 연을 만들어 날리던 추위도 잊을 그 순간이 가장 또렷한 그였다.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날 연에 대한 기대감에 아버지 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턱을 괸 손에 땀까지 차며 흥분을 감출 수 없었던 산이만큼 자가마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이 너무도 생생해 산이에게도 그 기쁨과 흥분을 가르쳐 주고자 연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드론과는 또다른 즐거움, 손끝을 타고 온몸으로 느껴질 팽팽한 연실의 감촉은 산이도 잊지 못하리라 생각하며 그의 몸은 바빠졌다.
연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상당히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단순히 얇은 종이와 가벼운 대나무, 실과 풀만 있으면 뚝딱 만들 수 있는 그런 물건은 아니었기에, 오랜만에 만들 그것의 재료를 찾기 위해 인터넷 검색하는 그의 눈은 바빴다.
연을 구성하는 재료 중 잘 휘어지는 대나무를 구하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웠다.
시중에 판매하는 연 만드는 재료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그는 인터넷으로 대나무를 구할 수 있는 곳도 알아보고 얇고 가벼우면서도 질긴 한지도 알아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서울 근교, 용인에 대나무 공예점이 있었고 반대 방향인 김포에 한지 공예점을 찾을 수 있어, 산이의 하교 후 함께 만들기 위해 구둣방도 열지 않고 새벽 일찍 그녀, 은수에게 다녀간 뒤 부지런히 움직였다.
이른 아침, 공예점을 열자마자 찾아온 전동 휠체어 위의 그가 무척이나 의아한 노인은 “뭐 구할 거라도?”라고 짧게 물었고 “제 아이에게 연을 만들어 주려고요.”라며 무엇을 상상하는지 웃음 가득한 얼굴로 답하는 그였다.
그의 대답에 노인은 차갑게 시린 늦가을로 접어든 하늘을 바라보며 “연 날리기 참 좋은 하늘이네”라 답하고는 대나무 몇 개를 가져와 일정한 크기로 자르고는 서로 맞대어 크기를 다시 비교해 보았다.
세심한 노인의 손 놀림을 지켜보며 돌아다닐 곳이 많아 마음이 조급한 그는 답답함을 느껴 조심스레 물었다.
“잘 맞을 크기 같습니다. 어떠신가요?”
물건을 구매할 그가 재촉하기보다 오히려 의견을 묻자 노인이 주름진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잘 맞지 않으면 다시 오기 번거롭지 않겠나? 준비할 때 잘 준비해야 결과도 좋겠지. 기다려 보게나. 아이가 무척 좋아할 걸세.”
노인의 대답이 마음이 따뜻해지며 하늘 위로 높이 오른 연에 좋아할 산이 생각에 어린 시절 아버지의 연을 기다리던 아이로 잠시 돌아간 그였다.
한참 동안 대나무를 고른 노인은 그제야 크기가 마음에 드는지 그를 바라보었고 그 역시 노인이 깎은 대나무가 마음에 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환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의 말없는 화답에 노인은 대나무를 가르고 쪼개 얇고 길게 만들고는 매끄럽게 다듬어 전혀 멋스럽지 않으나 그가 가져가기 쉽도록 투박한 신문지에 싸더니 줄로 묶은 후 그의 전동 휠체어 뒤에 놓아 주었다.
주머니에서 지갑을 찾는 그의 부지런한 손길에 손사래치며 담배를 꺼내무는 노인은 담담히 그에게 말을 이었다.
“돈은 됐고, 그냥 가시게. 아이가 연 잘 날리면 된 거여. 고생하고. 좋은 추억이 되면 좋겠구먼."
연신 감사해하는 그에게 노인은 한지는 근처 지물포에 가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으니 멀리 갈 필요 없다는 충고도 해주었다.
노인의 도움으로 생각보다 쉽게 재료를 구한 그는 산이의 하교 시간보다 여유있게 돌아올 수 있었다.
"오늘은 아찌랑 연을 만드는 거야. 엄마가 볼 수 있게 편지써서 높게 높게 날리자."라며 약속했던 날이기에, 온종일 학교에서 들떠 있었던 산이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곧장 교문으로 부리나케 달려와 전동 휠체어에서 손을 흔들며 "산이야" 부르는 미소띤 그에게 달려와 제 작은 가슴에 안았다.
그의 전동 휠체어를 타고 왔음에도 땀투성이의 어린 것에게 그의 어머니는 친손자를 맞이하시듯 반겨 웃으며 땀을 식혀 주셨고 평상에 연 만드는 재료를 올려 놓고 산이를 올려다보는 조금은 불편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서도 행복을 엿볼 수 있었다.
“아찌는 이런 거 어떻게 다 알아요?”
연을 만드는 그의 모습이 마냥 신기한 산이의 물음에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답하는 그의 마음도 왠지 뿌듯하며 뭉클하였다.
“아저씨의 아버지께서 산이만큼 아저씨가 어릴 때, 겨울이면 종종 연을 만들어 주셨는데 연 만드는 과정이 꽤 시간이 걸려서 한참을 지켜보면서 배우게 되었지요. 우리 산이도 아저씨가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면 나중에 산이의 아이에게 연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거야.”
왜인지 자신의 이야기에 스스로도 조금은 떨려 더 부드럽고 자상히 말한 그의 음색에 산이도 흥분어리고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진지하게 연 만드는 작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대나무도 살짝 구부리고는 라이터로 지져 고정하고 자로 재어 중심을 잡고 구멍뚫은 그곳에 실을 넣어 균형을 맞추는 그와 산이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대나무 살을 풀로 한지에 붙여가는 그들의 모습에 그의 어머니의 입가에 장난꾸러기 아이들을 마주하는 미소가 번지셨다.
멋지게 산이가 태극 무늬까지 그려넣자, 몇 시간을 고생해 만든 연은 제법 제 모양을 갖추고 늠름하니 자신의 존재를 뽐내고 있었다.
얼마나 집중했던 것인지, 시간 가는 몰랐던 그들이 창 너머를 바라보자 밖은 해가 저물어 붉은 석양이 곱게 내려오고 있었기에 아쉬움 가득한 탄식이 그와 산이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아쉬움에 투덜거리는 산이를 달래며 토요일인 내일 오전에 그들의 첫 작품을 날리기로 계획을 세웠다.
자기 키의 절반 정도나 되는 크고 멋드러지게 생긴 방패연을 두고 집으로 가는 길이 못내 아쉬운 산이였기에, 전동휠체어를 타고 가는 내내 내일 꼭 일찍 연을 날리자고 몇번이고 그에게 다짐을 받아냈다.
산이와의 약속 때문에 다음 날도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준비를 하고는 은수를 찾아갔다.
따뜻한 유리방, 언제나처럼 어제의 꽃을 떼고 새로운 꽃을 달아주며 여전히 익숙한 향내 가득한 그녀의 미소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미소로 가득차 있었다.
“아, 이 연? 산이와 함께 만든 건데요. 오늘 날리기로 했어요. 아침 일찍 날리자고 산이가 보채서 여기까지 가지고 왔네요. 당신 보고 산이 만나러 가야 해요. 당신과 함께 했던 그 공원에서 연을 날릴 거예요. 어때요? 꽤 잘 만들었죠? 이 태극 문양은 산이가 그린 건데 그림에 소질이 있어요. 내가 좀 더 곁에 있을 수 있다면 산이의 그림을 당신에게 자세히 이야기 들려 줄 건데. 아, 당신 곁에서 함께 산이를 지켜보면 되겠군요. 그 역시도 행복이겠어요. 사랑해요. 은수 씨.”
작은 유리방 안에서 그의 이야기를 듣는 그녀의 눈가도 붉어보이는 기분이 들어 미안한 생각에 서둘러 밖으로 나온 그의 머리 위로 예쁜 배 모양의 구름이 두둥실 떠 있었다.
산이는 아침 일찍 찾아온 그를 반기며 환호와 함께 무릎 위로 올라 공원으로 향했다.
바람도 좋고 하늘도 푸르러 연 날리기 참 좋은 날이었다.
연을 들고 바람을 탈 때까지 달려야 한다는 것을 산이에게 가르쳐 주고는 스스로 해보기를 권하자 신이난 산이는 연을 들고 공원을 앞뒤로 뛰어다녔다.
자신의 키 반쯤 되는 연을 들어 바람 태우기 위해 뛰어다니는 산이의 모습이 너무도 귀엽기만해 전동 휠체어를 몰며 뒤따르는 그의 얼굴은 밝기만 했다.
연은 처음 만져보는 물건이라 바람 태우는 것은 산이에게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대신 바람을 태울 수도 없기에 연은 달리는 산이 뒤에서 뱅글뱅글 돌며 따를 뿐 조금도 바람에 몸을 맡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른 아침 공원에 산책 나온 사람들은 이 둘의 연 날리기 모습이 마냥 신기해 하나 둘 걸음을 멈추더니 구경하기 시작했고 산이는 오히려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의 연을 부러워 보는 것이라 생각하며 더 열심히 뛰었다.
산이가 열심히 뛰자 화이팅을 외치며 응원 보내는 할아버지도 있었고 박수쳐 주는 아저씨도 있었으며 엄마 손을 잡고 나온 아이는 산이의 뒤를 따라 뛰며 연이 떠오르기를 함께 응원했다.
처음 해보는 연을 바람 태우는 것은 쉽지는 않았으나 사람들의 격려에 고무 되어 쉬지 않고 부지런히 뛰어다닌 산이의 노력 덕분에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힐 때 쯤, 연줄이 팽팽해지더니 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산아 연줄을 살살 풀면서 연을 위로 올려!”
멀리서 팽팽해지는 연줄을 보며 전동 휠체어를 몰아 산이에게 다가오며 그가 소리쳤다.
“우와! 연이 떠요!”
연이 두둥실 하늘 위로 오르자 공원 여기저기서 박수와 감탄이 나왔고 산이와 함께 뛰던 아이는 너무 신나 깡총깡총 뛰며 산이와 그보다 더 좋아했다.
하늘로 높이 오른 연은 이제 공원 어디에서도 볼 수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하늘 위로 더 높이 곧게 날아오르는 연에 기뻐 산이 역시 소리치며 흥분어린 목소리로 신나게 방방 뛰고 있었다.
하늘 위로 오르는 연 위로 푸른 하늘이 낮게 내려오며 멀리서 예쁜 배 모양의 구름도 두둥실 떠서 바람결에 연 곁으로 실려 오고 있었다.
그는 연줄의 팽팽함과 얼래질에 푹 빠진 산이를 바라보며 행복하면서도 울적해진 복잡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어느 순간, 흐르는 눈물에 깜짝 놀라 손으로 훔쳐내며 "와! 대박 완전 높게 올라갔어요."라고 신나하는 산이를 향해 시선을 고정하는 그였다.
"우리 산이 엄마에게 뭐라고 썼어요?"
연 날리기 전, 그에게도 비밀이라며 손으로 가리고 쓴 편지 내용이 궁금해진 그는 살짝 흥분되어 마음 열린 아이의 빈 틈을 발견하고는 질문을 던져 넣어보기 시작했다.
이미 기분이 좋아질만큼 좋아진 산이는 술술 비밀을 폭로하고 있었다.
"엄마 사랑한다고요. 보고 싶다고요. 그런데 엄마 외로울까 봐 걱정했는데 이제는…, 걱정 안 한다고 썼어요. 동진 아찌 고마워요."
살짝 떨리는 작은 어깨가 안쓰러워 그는 전동 휠체어를 움직여 사랑스런 아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우리 산이 연 날리기 선수다. 선수"라고 말하며 애써 밝게 웃어주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 하루가 신이났던 산이는 그의 품에서 무척이나 한기 가득한 그의 손을 따스한 자신의 손으로 감싸며 ‘동진 아찌에게 장갑을 사 줘야겠다.’란 생각을 해 보았다.
그에게 잘 어울리는 커다란 벙어리 장갑을 위해, 산이의 통통한 아기 돼지 저금통은 오늘 수난을 겪을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