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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천사를 위하여
작가 : 그라시아스
작품등록일 : 2019.9.6

운명의 실로 이어진 천사 후보생 동진과 은수. 힘겨운 인간의 삶을 통해 측은지심을 깨달은 그들이 바라보게 된 또다른 세상. 그 곳을 지키기 위한 천사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21화. 운명의 폭풍 속으로
작성일 : 19-10-31 09:17     조회 : 30     추천 : 0     분량 : 4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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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그의 구둣방 근처 공원, 무정하게 돌아서는 그를 부르다 덜덜 떨리는 휠체어 소리를 들으며 쓰러졌던 그녀는 깨어나자마자 냉정한 엄마의 표정 속에 힘없이 돌아간 그의 꺾이고 아픈 심정이 고스란히 짐작 가능해 아린 마음은 이미 한 가득 걱정을 채우고 있었다.

 ​

 

 

 이미 엄마의 굳어지고 찌그러진 표정으로도 짐작 가능했던 말 속에선 조금도 배려가 느껴지지 않아 그에 대해선 더 이상 생각조차 말라는 잔소리로 들려 그녀의 마음을 갈가리 찢어 놓았다.

 ​

 

 

 허나 그녀의 온 마음은 그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찬 엄마의 미간을 무시한 채, 진심을 담아 그를 향해 있었다.

 

 

 ***

 ​

 

 

 떠밀리듯 병원을 나온 그 역시 그녀에 대한 걱정만 가슴에 품은 채, 전동 휠체어에 몸을 싣고 하염없이 길을 나섰다.

 ​

 ​

 가슴속에 피눈물과 함께 그녀에 대한 걱정과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며 향한 곳은 그녀와 함께 산이를 데리고 갈매기들에게 과자를 전하던 바닷가 난간이었다.

 ​

 

 

 전동 휠체어의 전원이 꺼진 이 난간에서 바라본 바다 너머 수평선 사이 어두운 검은 구름들이 잔뜩 성 내며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

 

 

 우르릉 쾅

 ​

 

 

 오늘 아침 뉴스에서 한참이나 떠들어대던 그 폭풍이 그를 향해 매서운 바람을 보내며 웅장히 다가오고 있었다.

 ​

 

 ​

 벌써부터 가슴 울리는 번개 소리에 그는 고개 들어 다가오는 비구름의 무게를 그저 바라만 볼 뿐, 떠날 기미가 없었다

 ​

 

 

 자신에게 떨어질 저 빗방울들과 번쩍이는 굉음 속에 꼼짝없이 갇혀질 것을 그저 느끼면서.

 ​

 

 

 ***

 ​

 

 

 동일한 시각, 이제 막 깨어난 엄마를 걱정해 바라보는 산이를 끌어안으며 등을 쓰다듬던 손길에 느껴지는 한기가 왠지 불길해 마냥 떨리는 그녀였다.

 ​

 

 

 잠시 의식을 잃던 짧은 시간 동안 꾸었던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비현실적인 알 수 없는 꿈.

 

 

 온통 새하얗던 그 방에서의 대화가 도대체 납득이 되지 않는 이 불안하고 이상한 꿈의 느낌이 마음에 남아서 도저히 진정할 수 없고 손의 떨림과 함께 마음까지 흔들리는 것은 무슨 이유일련지.

 ​

 

 

 손끝에 자리 잡고 있는 알싸한 차가움이 그저 낯설어서 이미 땀에 젖어버린 산이의 몸을 끌어안으며 되뇌었다.

 

 

 '수족냉증일 거야.’

 

 

 

 겨우 자신의 생각을 합리화하면서도 한여름임에도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에 불길함을 느끼며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그저 이해하려 노력하였으나 마음 속 심연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두려움에 더욱더 자신의 보물을 힘주어 곁으로 끌어당겼다.

 ​

 ​

 "퇴원하셔도 됩니다."

 ​

 ​

 자신을 향해 무덤덤히 다가와 말하는 의사의 가운을 붙잡고 떨리는 손으로 그녀는 "선생님 손이 차가워요. 손이…,"라고 두려움 가득 담아 말했다.

 ​

 

 

 절박한 그녀의 마음과 달리 고개를 갸웃거리며 차트를 다시 확인하더니 "검사결과 몸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으세요. 혈액 순환에 문제가 있으신가 봐요. 혈액 순환제 우선 처방해드리도록 할게요."라고 말한 의사는 가운을 쥔 불안 가득한 그녀의 손을 가볍게 털어 뿌리치고는 몸을 돌려 나갔다.

 ​

 

 

 한창 더운 여름날이건만, 몸 속 깊은 곳까지 흔들리며 떨리는 이유를 꿈에서 나눈 천사와의 대화에서 밖에 찾을 수 없어 그저 두려운 마음 한가득인 그녀 은수였다.

 

 

 그리고 만류하는 엄마의 말을 뒤로하고 온 마음은 자신을 병원에 데려다놓고 사라진 그에게로 가 있기에 허둥지둥 그를 찾아 나가려는 그녀였다.

 ​

 

 

 정신 나간 여인처럼 비틀거리는 그녀를 끝까지 붙잡기 어렵다고 생각한 엄마는 그녀의 뒤에 대고 이해 못 하겠다는 듯 소리쳤다.

 ​

 

 

 “그럼 산이라도 데려가! 이 망할 것! 왜 그 사람을 찾아가야겠다는 것인지. 또 쓰러지면 어쩌려고 저러는지. 산이 데려가. 누가 연락이라도 해 줘야 할 것 아니냐! 산아! 엄마 따라가렴.그리고 엄마한테 무슨 일있으면 할머니한테 전화해.”

 ​

 ​

 할머니의 말에 쪼르르 달려간 산이는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

 

 

 병실 문 앞에서 멈춰 선 그녀는 고개 돌려 엄마를 잠시 안쓰럽게 바라보고는 그대로 산이의 손을 잡고 밖으로 향했다.

 ​

 

 

 "와! 엄마 손 시원하다."

 ​

 

 

 속없는 산이의 말에 그녀의 두려움은 더욱 커졌다.

 ​

 

 

 그리고 뇌리에 스쳐 지나가는 단 하나, 그녀의 다가올 죽음을 눈물 떨구며 전하던 천사의 전언은 소름이 되어 그녀의 전신을 휘감아 안았다.

 ​

 

 

 "그래. 내 아가야. 너가 그 불길에 타버리고 있을 때, 나는 어쩔 수 없이 지켜보기만 했었다. 이 모든 것은 천사가 견뎌내야 하는 일. 너는 그 경험으로 마음이 아픈 인간들을 헤아려 불행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천사가 될 것이다. 네가 겪었던 고난과 슬픔으로 결국 가슴이 무너지는 사람들을 연민할 수 있는 심장을 지니게 될 것이며 그들을 위해 아파해 주는 것이 바로 네 역할이니. 이를 위해 네게 어쩔 수 없이 그 모든 것을 견디게 하셨으니 얼마나 아팠겠느냐? 나의 마음도 너의 마음과 다르지 않으나 저 높은 분의 뜻을 내 어이 알겠냐만은, 엘리아야. 시간은 다가왔고, 나는 너를 데려가야 하며 거부한 들 거부되지 않을 상황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구나. 서서히 차가워지는 몸에 당황해하지 말거라. 미안하고 또 미안하구나. 이 또한 그분께서 이미 정하신 길. 나 역시 아프구나. 엘리고도 너의 보물 산이도 다 때가 되면 그 큰 배에 실어 다 같이 만날 수 있으니, 너의 아픈 마음을 달래면서 버티고 견뎌 기쁨의 날에 너의 소중한 보물을 직접 마중해 함께 하거라."

 ​

 ​

 너무도 생생하였던 꿈속 천사가 전한 그녀의 죽음.

 ​

 

 

 그녀는 이 믿기 힘든 꿈이 자신의 죽음을 예지한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지만 받아들이고 있었다.

 단지 꿈이라고 치부하기엔 지금 그녀 앞에 펼쳐진 상황이 너무도 비현실적이었다.

 ​

 

 

 병원 밖을 나온 순간, 먹구름 가득한 하늘로 인해 대낮임에도 사위는 칠흑이 내려 무척 어두웠다.

 ​

 

 

 자신의 불안감을 대변하는 이 어둠 속에 갇힌 자신을 유일하게 위로해 줄, 이해해 줄 그를 온 마음으로 바라는 그녀였다.

 ​

 

 

 그때였다.

 ​

 

 

 주변을 뚫고 멀리 서쪽 하늘 아래에서 찬란한 밝음이 어두운 바다에 등댓불 비추듯 일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

 

 

 마치 그곳이 그녀가 가야 할 곳임을 인도하는 양, 반복되는 빛이 그녀를 끌어당겼다.

 ​

 ​

 

 ‘그래! 저곳에 동진 씨가 있어!’

 ​

 

 ​

 확신 가득해 한 발 내딛자, 바닷가 난간에서 전동 휠체어를 탄 동진이 홀로 갈매기들에게 과자를 전하는 모습이 스크린 속 영상을 보듯 그녀 앞에 펼쳐졌다.

 ​

 

 

 그리고 바다 멀리 강한 비를 품은 먹구름들이 동진의 휠체어를 향해 다가오는 것까지 펼쳐지자 그녀의 마음은 조급해졌다.

 ​

 

 “택시!”

 ​

 ​

 산이의 손을 쥐고 여전히 쓰러졌던 여파가 몸에 남았는지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몸을 서둘러 달려가며 멀리서 오는 택시를 불러 세워 탔다.

 ​

 

 ​

 “방파제로 가주세요. 급해요.”

 ​

 

 

 “에? 곧 태풍이 온다던데 거길 가시려고요?”

 ​

 

 

 아이와 함께 태풍이 밀려오는 방파제로 향하려는 여인의 요구에 의아함을 느낀 택시 기사가 되물었으나 그녀의 대답은 여전히 방파제에 홀로 선 그를 향하고 있었다.

 ​

 

 

 ***

 ​

 

 

 그녀가 자신을 향해 오는 줄도 모른 채 동력이 소진된 전동 휠체어 위에서 갈매기들에게 과자를 전하던 동진은 점점 자신의 주위 갈매기들이 사라짐을 느꼈다.

 ​

 

 

 모래를 품은 강한 바람이 얼굴을 더욱더 매섭게 때리자 고개 들어 바람 부는 곳을 바라본 동진은 멀리 있던 먹구름이 비를 뿌리며 점점 가까운 바다로 들어섰음이 보였다.

 ​

 

 

 이제는 눈으로도 보일 정도로 가까워진, 바다를 짙게 물들이던 장대비는 하늘에서 바다로 꽂히는 창이 되었고 이제 그것을 온전히 몸으로 맞게된 그의 마음 속은 두려움까지 일었다.

 ​

 

 

 그녀에게 다가갔던 때처럼 가장 초라한 모습으로 기어서 피하지 않는다면 배터리가 소진된 전동 휠체어로 그가 갈 수 있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

 

 

 그저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들이며 하늘을 덮은 먹구름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거나 먹구름을 이끌고 온 거센 바람에 휩쓸려 바다로 들어가는 길만 있어 보였다.

 ​

 

 

 인적이 사라져 고요한 사위엔 오직 빗소리만 가득했고 거칠게 너울거리는 바다를 벌하듯 내리꽂으며 다가오는 이 비의 웅장함에 압도되어 멍하니 시선을 떼지 못했다.

 ​

 

 

 바다를 때리며 다가오던 빗소리가 더욱 거칠게 변하였다.

 ​

 

 

 갈매기도 떠난 이곳은 더 이상 어디에도 사람의 흔적 따위는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

 

 

 “나도 사라지고 싶은데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없구나. 하하하.”

 ​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비에게 나지막이 넋두리를 건내며 한편으로는 스스로가 생각해도 한심한지 헛웃음을 흘렸다.

 ​

 ​

 ***

 ​

 ​

 “혼자 갈 수 없으면, 함께 가면 되지요.”

 ​

 ​

 

 신의 구원처럼 뒤에서 울려오는 맑은 음성에 고개 돌려 바라보니 언제 왔는지 그녀가 그의 뒤에서 휠체어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곁엔 산이가 해맑게 웃고 있었다.

 ​

 

 ​

 “뭐해요. 곧 비가 퍼부을 것 같은데. 이곳에 있다간 우리 산이 감기 걸려요.”

 ​

 

 ​

 아직도 그녀를 어떻게 밀어내야 할지 고심하며 바라만 보는 그에게 산이를 핑계로 재촉하는 그녀였다.

 ​

 

 

 “아저씨 비 와요.”

 ​

 

 

 엄마를 닮은 빛나는 눈빛의 산이까지 재촉하자 그는 더욱 난처해졌다.

 ​

 

 

 퍼붓던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그들은 전동 휠체어를 밀고 그렇게 한참을 갔다.

 ​

 

 

 이날, 이렇게 다시 만난 그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이 밝으면 그녀는 찾아왔다.

 ​

 

 

 ***

 

 

 그녀가 그의 초라한 구둣방을 찾을 때면 멀리서부터 누가 오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향기가 가득 따랐고 그녀가 걸어온 길은 찬란히 빛났다.

 ​

 

 

 그러나 그녀의 다가옴은 그에게 고민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

 

 

 빗속을 산이와 함께 찾아와 자신의 멈춘 전동 휠체어를 밀어 주었던 그녀를 차마 거절하지 못한 자신이 한심했고 그런 볼상 사나운 모습까지 그녀와 산이에게 보인 자신이 초라하여 끝없는 절망의 밑바닥 인생이 된 것만 같았다.

 

 

 그럴 때마다 자신을 차갑게 바라보며 눈 인사만 한 그녀의 엄마 말이 생각나 밀어내야함이 맞것만, 다가온 그녀가 눈부시고 좋아서 그저 바라보기에 바쁜 그였다.

 ​

 

 

 그녀 옆에서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에 감사하며 또 자신으로 인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찾아오는 그녀에게 생기는 걱정 또한 미안했다.

 ​

 

 욕심을 버려야함이 옳다 생각하며 마음을 단단히 굳히던 그에게 그녀는 빛처럼 감싸 안으며 향기가 되어 그의 닫힌 마음에 스며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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