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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천사를 위하여
작가 : 그라시아스
작품등록일 : 2019.9.6

운명의 실로 이어진 천사 후보생 동진과 은수. 힘겨운 인간의 삶을 통해 측은지심을 깨달은 그들이 바라보게 된 또다른 세상. 그 곳을 지키기 위한 천사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24화. 바람에게 전해진 기도
작성일 : 19-10-31 09:19     조회 : 23     추천 : 0     분량 : 4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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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뜨거운 국물이 전해지고 정성스레 발라진 살들이 몸속을 채우니 어느새 따뜻해진 몸에 기분이 좋아진 그녀였다.

 ​

 

 

 자신을 바라보지도 않음에 내심 서운하여 더더욱 그의 곁에 머물렀지만, 이런 사소한 배려에 그 역시 억지로 자신을 밀어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우고 있어서 너무나 가슴이 기쁨에 벅차면서도 아렸다.

 ​

 

 

 자신이 떠난 세상에 외로이 남아 슬퍼할 그와 산이를 위해 이제는 꿈 속 천사의 말이 사실일 것이라고 거의 받아들이게 된 죽음을 체념으로 인정하면서 얼마의 시간일지 모르나 매 순간 즐거운 추억만 남기기 위해 살고 싶었다.

 ​

 

 

 어느새 다먹었는지 뚝배기를 기울여 국물을 수저로 뜨고 있는 그를 향해 한 그릇의 갈비탕일 뿐이지만, 그의 배려가 담긴 행동 덕분에 생기 어린 발랄한 빨간 입술로 반짝이며 말하는 그녀였다.

 ​

 

 

 "동진 씨. 우리 동물원 가요. 저 동물원 가고 싶어요. 산이도 가고 싶대요."

 ​

 

 

 혹시 모를 거절에 재빠르게 산이까지 끌여들였지만, 듣는지 마는지 그저 국물만 뜨던 그는 대답을 망설였고 그런 그의 대답을 그녀가 두근거림으로 기다리자, 어느새 별이 되어 빛나는 그녀의 눈빛에 냉정히 거절하기 어색함이 느껴진 그는 말도 못하고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

 

 

 그리고는 수저를 내려놓더니, 그녀의 손등에 손가락을 살며시 대보기 시작했다.

 ​

 

 

 ***

 ​

 

 

 싸늘함이 가신 그녀의 손등에 한시름 놓여 그제야 굳었던 얼굴이 펴지는 그의 마음은 따스함이었다.

 ​

 

 

 파랬던 입술도 언제 그랬냐는 듯 예전에 그 생기어린 붉은 주단으로 곱게 돌아와있었다.

 ​

 

 

 한여름의 무더위 속에서 이해 불가한 추위로 벌벌 떨던 그 몸짓도 많이 가라앉아 표정까지 따스해진 그녀가 너무도 사랑스럽고 고마우며 또다시 고작 이 정도가 최선인 초라한 자신이 미안해지고 있었다.

 ​

 

 

 동물원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 했지만, 그녀를 위해 과연 맞는 것인지 판단이 헷갈리던 그는 언제 다가왔는지 자신의 손가락을 부드러이 잡고 있는 그녀의 환한 미소를 억지로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

 

 

 그러나 이미 그녀의 미소에 정신 나간 심장은 벌써 그녀의 미소에 화답하려는 듯 경주를 마친 말의 미친 박동 수를 선사하고 있었건만, 그는 여전히 자신이 옳은 결정을 내린 것인지 두려운 심정으로 이성적으로 판단 못한 고갯짓의 못난 반응을 그저 자책하고 있었다.

 ​

 

 

 여전히 바보, 천치.

 ​

 

 

 등신 같은 자신이 뭐가 좋은 것인지, 눈앞에 그녀는 탐하고 싶을 정도로 붉게 물들어 곱게 달아오른 입술로 세상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그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

 

 

 사랑하기에 사랑할 수 없는 자신이 답답하여 그저 잡힌 손가락을 빼고자 서서히 힘을 주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쉽게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

 

 

 여전히 자신을 향해 사랑하고 있음을 온 마음으로 외치는 터라, 소리가 없음에도 떨리는 고막 너머, 가슴으로 그녀의 사랑 고백을 알 수 있었다.

 ​

 

 

 그녀의 별이 되어 반짝이는 눈빛에 갇혀, 그 역시 떨리는 눈빛으로 온 마음을 자신도 모르게 전하고 있었다.

 ​

 

 

 ***

 ​

 

 

 자신의 손등에 다가온 손가락.

 ​

 

 

 그 작은 행동이 아직도 자신의 몸이 차가운 건 아닌지 걱정하는 마음이 담겨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기에 묵묵히 다가온 그 따스함을 놓칠세라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못하도록 꽉 붙들었다.

 ​

 

 

 잡힌 손가락은 다시 주인에게 돌아가려 힘을 주었지만, 그것 정도의 온기라도 느끼고 싶은 욕심 때문에 그녀는 손가락의 귀환을 감히 허락하지 않았다.

 ​

 

 

 그러다 마주친 눈빛.

 ​

 

 

 그 누구보다 복잡해진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애잔함이 서러워 쓰리고 아린 감정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그녀였다.

 ​

 

 

 그리고 그의 떨리는 눈빛에 마음이 그만 흔들려 바보처럼 온통 사랑하고 있음을 티내고 있었다.

 ​

 

 

 그 역시 그렇게 떨고 있으면서 어쩜 그리 냉정할 수 있는지.

 ​

 

 

 이 상황이 서글퍼서 그리고 후회할 그가 안쓰러워서 그녀는 손가락을 놓지 못 하였다.

 ​

 ​

 ***

 ​

 

 

 마침 8월의 유일한 국경일, 크고 큰 복이 이 땅에 내린 날.

 ​

 

 

 그와 그녀는 산이의 손을 흔들며 함께 동물원을 향했다.

 ​

 

 

 지하철역에서 만나 신나게 "동진 아찌 무릎은 내 자리"라며 그의 전동 휠체어로 냉큼 올라탄 산이를 말리는 그녀의 걱정과 괜찮다면서 산이를 번쩍 안아 무릎에 앉히는 그의 실랑이가 벌써부터 정겨웠다.

 ​

 

 

 그녀는 마지막 죄로 생긴 산이로 인해 또 그는 그녀의 죄에 대한 징벌이 인연의 끈으로 연결된 자신에게도 내려져 받은 가장 큰 불행의 원인도 모른 채 또다시 사랑하는 누군가와 동물원을 입장하는 날이 있으리란 기대가 전혀 없었기에, 어린 시절 떠나던 소풍처럼 즐거운 마음이 되어 이미 흥분된 산이보다 그와 그녀 두 사람의 마음이 더 설레고 있었다.

 ​

 

 

 지나가는 코끼리 열차에 과도하게 몸짓을 보이는 산이를 바라보며 어느새 창백해진 그녀는 미안하고 당황한 눈길로 "미안해. 동진아찌 휠체어 때문에 안 돼."라며 달래기 시작했다.

 ​

 ​

 처음 보는 코끼리 열차를 타고 싶어하는 산이는 이미 울상이 되어 온갖 고집을 예고 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단호했다.

 ​

 ​

 연신 두 모자의 눈치를 살피면서 가는 그 역시도 자신의 전동 휠체어 때문에 벌어진 상황이 민망하고 미안했다.

 ​

 ​

 더욱이 곁을 따라 꽤 긴 길을 걷는 그녀의 가녀린 몸이 안쓰러웠다.

 ​

 ​

 또 다시 파래지는 입술과 하얗다 못해 푸른 빛이 안쓰러운 피부는 그의 마음을 찢어버리기에 충분했다.

 ​

 

 

 1급의 복지카드.

 ​

 

 

 공짜 입장에 세상 기뻐하면서도 이미 온몸을 떨고있는 그녀 모습에 여전히 마음이 시린 그였다.

 ​

 

 자신의 마음을 무표정한 가면에 숨긴 채, 서서히 입장한 동물원에선 제일 먼저 얼룩말이 그들을 반겼다.

 ​

 ​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선명한 무늬를 눈으로 담아내던 산이는 그의 얼굴을 자신이 보는 방향으로 돌리며 언제 뾰로통했다는 듯 흥분어린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

 

 

 “우와! 얼룩말이에요! 얼룩말은 줄무늬가 몇 개있어요? 아저씨 세봐요.”

 ​

 

 

 산이 역시 동물원은 처음이었기에,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얼룩말이 마냥 신기해 그 작은 마음이 하늘 높이 들떠 그에게 물었고, 그런 산이가 귀엽기만한 그는 자신의 무릎 위, 이젠 그에게도 보물이 된 소중한 아이를 꼭 껴안아 주었다.

 ​

 

 

 “아저씨는 바보라서 잘 몰라. 우리 산이가 공부해 아저씨에게 가르쳐 주렴.”

 ​

 

 

 “응! 제가 나중에 동물 박사님되어 알려줄게요.”

 ​

 

 

 "그래. 우리 박사님."

 ​

 

 

 아이의 밝고 천진함은 그들에게 신이 내린 선물이 되어 이 순간만큼은 삶의 고단함이 멀리 사라짐을 느꼈다.

 ​

 

 

 산이를 바라보며 무섭게 다가오는 호랑이를 보는 것도 즐겁고, 호랑이 돌조각에서 어흥하며 사진 찍는 것도 즐겁고, 즐거워 하는 사랑하는 이를 보는 것도 즐거운 서로였다.

 ​

 

 

 돗자리 깔고 앉은 두 모자 곁에 전동 휠체어에서 힘겹게 내려앉은 그의 입에 언제 싼 것인지 그녀는 김밥 하나를 넣어주었다.

 ​

 

 

 주변에 동화되어 가족 나들이온 모습으로 앉아있는 세 사람은 행복하고 평온스러웠다.

 

 

 나무 그늘 사이 비치는 한줄기 햇살이 따스하게 그녀의 몸을 감싸안아주고 있었지만, 몸을 부르르 떠는 모습은 그의 눈에 아프게 들어오고 있었다.

 ​

 

 

 더운 여름 열기를 잠시 식혀줄 작은 흐름의 바람은 그녀가 간직한 짙은 향기를 퍼뜨리고 있었다.

 

 

 바람의 손길에 더욱 파래진 입술이 안쓰러워, 지그시 바라본 그녀의 얼굴은 지금 순간 행복해보임에 걱정을 뒤로 하고 안도하는 그였다.

 ​

 

 

 어느새 다 먹은 도시락 통을 정리한 그녀가 그의 허벅지에 기대 누우니 저절로 그의 손이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있었다.

 ​

 

 

 이대로 멈추기를.

 ​

 

 

 ‘이렇게 평온하 삶을 마칠 수 있게 하여 주소서.’

 ​

 

 

 그녀의 간절함처럼 그 역시도 햇살 부서져 내리는 이 나무 그늘에 그를 베고 누운 그녀와 그녀를 베고 누운 산이의 곁에서 이대로 지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랐다.

 ​

 

 

 언제 냉대했다는 듯, 그의 손길은 차가운 그녀의 뺨을 온기로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

 

 

 부드러우면서도 말랑한 느낌.

 ​

 

 

 거기에 입맞춤을 전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누르는 그였다.

 ​

 

 

 흘러나오는 콧노래를 그녀의 새근거리는 숨소리에 가만히 맞춰보면서 흘러가는 바람에게 기도했다.

 ​

 ​

 ‘신께 전해주오. 그녀와 영원히 함께하길. 이 어리디 어린 산이의 친구가 되고 아빠가 되길. 바람아. 저 위에 계신 신께 제발 간절히 전해다오. 이 순간이 계속되게.'

 ​

 

 

 동물원을 한바퀴 돌아 내려오던 길에서 만난 작은 계곡엔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위해 마련된 물놀이 장소가 있었고 물만난 산이는 그의 무릎에서 뛰어 내려 곧장 달려가며 외쳤다.

 

 

 “아저씨하고 엄마도 와요!”

 

 

 산이의 바람과 달리 그는 전동 휠체어를 벗어나 함께하기 어려웠고 그런 그의 사정을 아는 그녀는 그저 웃으며 그의 곁에 서서 자신의 보물을 향해 손만 흔들어 주었다.

 

 하루는 너무도 짧아 올라갔던 길을 돌아 내려오니 어느새 아쉬운 동물원의 넓은 입구가 시선에 들어왔다.

 ​

 

 

 아직도 들뜬 산이는 그의 무릎 위에서 연신 종알대며 신나하였고 곁을 따라 걷는 그녀의 미소도 좋았다.

 ​

 

 

 그때까지는 바람이 그의 기도를 전달한게 분명하다 싶었던 기분좋은 그 순간, 살포시 고개 올려 바라보던 그녀의 모습에 그의 눈동자가 놀라 커지며 정원사의 가위에 잘려 떨어지는 시든 장미 가지 마냥 심장이 떨어져 나감을 느끼고 있었다.

 ​

 

 

 초점 잃은 눈빛, 기운없이 쳐진 어깨 그리고 한낮의 뜨거운 태양에 의해 열기로 달거진 아스팔트 아지랑이 속으로 힘없이 가라앉기 시작한 그녀의 다리.

 ​

 

 

 “엄마!”

 ​

 

 

 놀란 산이가 울음을 터뜨리며 그의 무릎에서 뛰어 내렸고 그제야 정신이 번쩍든 그는 그녀를 안기 위해 전동 휠체어에서 몸을 날렸다.

 ​

 

 

 다행인지 의족 단 그의 다리가 전력으로 힘을 내 그녀를 향해 그를 보내 주었고 아스팔트에 얼굴이 갈리는 아찔한 뜨거움을 고스란히 그의 등이 받으면서도 그녀를 안아 자신의 몸 위로 안전히 자리 잡게 하고는 정신을 잃은 그녀와 달아오른 아스팔트 사이에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

 

 

 웅성웅성, 둥글게 모여든 인파들이 내려다봄에도 부끄럽기는 커녕 그녀를 받아내고 그녀가 상한 곳이 없음에 그저 감사한 바보가 그렇게 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

 

 안도감도 잠시, 몸으로 전해오는 그녀의 한기 가득한 숨결과 싸늘하다 못해 시리도록 차가운 그녀의 몸에 한여름 뜨거운 태양의 열기로 덮혀진 그의 몸조차 식을 지경이었다.

 

 그녀를 몸으로 안은 그와 맞닿은 아스팔트의 열기도 식어 봄날 아지랑이 같이 피어오르던 그의 마음도 따라 식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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