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친은 마흔 일곱이었고 정미경보다는 훨씬 미인이며 온화한 성품을 가지 분이었다. 처음 병문안을 왔을 때 정미경이 거의 발악하는 수준으로 김근수가 얼씬 못하게 했지만 모친의 설득으로 병문안을 올 수 있게 되었다.

　“자네 이제 그만 왔으면 하네!”

　갈피를 잡지 못하는 김근수에게는 천근마마의 말씀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김근수는 순간적으로 발동한 오기를 절제하지 못하고 흥분까지 하고 있었다. 소주를 연달아 들이키면서 다시 뚫어지게 쳐다보고만 있었다.

　“이 사람아! 나를 잡아먹을 건가? 왜 그렇게 무섭게 보냐? 허허허! 그냥 내 말대로 하게나!”

　그러나 김근수는 노려보기만 했지 인두로 다림질 한 것 같은 흉악한 정미경의 허벅지사타구니가 눈에 아른거려 어떤 말이던 잘 나오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수현도 떠올랐다. 인두에 지져지는 게 무서워 인두를 든 경찰에게 시집을 간 사람과 지져진 사람 중에 누가 더 지조가 있는 사람인가? 이건 남녀를 떠나서 김근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어머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사이 아닙니다. 우린 그냥 친구 사이입니다. 미경이가 저보고 좋아한다는 말을 한 마디 한적도 없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경이가 저하고 결혼 할 마음이 전혀 없는 데 너무 앞서간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리고 친구니까 제가 좀 모질게 얘기하겠습니다. 저렇게 흉물스런 허벅지를 가진 여자와 누가 결혼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미경씨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을 겁니다. 조금 더 망측한 얘기하겠습니다. 이해 해 주십시오.”

　김근수가 소주를 한잔 더 마시면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흉물스럽다는 말에 흥분한 기색이 보였던 모친도 소주를 들이키며 마음을 안정시키고 있었다.

　“미경씨가 일년 내내 비키니를 입고 다니거나 발가벗고 다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결혼해서 남편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잠자리를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만약에 하더라도 거기만 쳐다보는 것도 아니잖아요. 겉으로 드러난 상처가 흉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우습잖아요. 자궁을 헤프게 쓴 지저분한 여자는 표시가 나지 않으니 시집가도 되고 겉으로 흉물스럽게 드러났다고 시집을 못 간다는 건 우습잖아요.”

　정미경의 어머니가 한숨을 길게 내쉬면서 말했다.

　“자네 말이 일리가 있지만 부부는 그런데 아냐. 평생 동안 좋을 때만 있으면 좋겠지만 나쁠 때가 있으면 그걸 험으로 삼아 헤어질 수도 있어. 거기를 남자들 앞에서 인두로 지져질 때를 상상해봐. 미경이의 모멸감에 자네는 자네의 모멸감을 하나가 더 추가하게 돼 있어. 나는 우리 미경이가 더 이상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네. 특히 생리하다가 그렇게 피가 새어 나와도 망신스러워 학교를 다니지 못할 건데 우리 미경이 경우는 다르잖아. 벌써 소문이 다 났을 거야. 자네도 아마 수군거리는 말을 들었을 걸 믿고 싶네.”

　김근수가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언성을 높여 말했다.

　“아닙니다. 저도 어머님이 얘기해서 알았지 전혀 모르고 있었었습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혈을 한 정도만 알고 있지 과거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릅니다. 만약에 소문이 나면 제 입밖에 없으니 그런 걱정은 절대로 하지 마십시오.”

　어머니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김근수가 그걸 보고 어머니가 입술을 한번 더 꽉 깨물게 하는 말을 했다.

　“소문의 발원지는 어머님. 앞으로 저한테 잘 보여야 합니다. 허허허!”

　“허! 아이고 내가 참! 자네는 나이도 어린 녀석이 어떻게 그렇게 능글맞아? 내보다 백 년은 더 산 사람 같다.”

　“며칠 동안 정들었나 봅니다. 이 참에 사위 삼으시죠. 미경이 성깔을 보면 사실 정나미 뚝 떨어지는 데 어머님 뵈면서 계속 정이 가는 있죠. 나이 들면 어머님처럼 변하겠죠?”

　술기운도 한몫을 했지만 어머니 머리가 복잡해지고 있었다. 한번 더 김근수를 쳐다봤다. 성격도 인물도 어디 내놔도 괜찮은 것 같은데 같은 학교를 다니는 게 마음에 걸렸다. 미경이가 그런 고문만 당하지 않았다면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했을 거란 생각도 들었지만 왠지 모르게 빨려 들어가는 느낌도 같이 들고 있었다.

　“그런데 어른께서는 뭐하시냐?”

　“예! 농사짓고 있습니다.”

　“형제는?”

　“예! 저 혼자입니다. 그래서 제가 많이 바쁩니다.”

　어머니의 인상이 갑자기 울상이 돼버렸다. 그 모습을 본 김근수가 소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따님 고생 절대로 안 시킬 테니까 이 참에 따님 저한테 주시죠.”

　그때 정미경의 어머니가 발끈 했다.

　“야 이 사람아! 우리 애가 물건이냐? 어디 넘겨 볼 때를 넘겨 봐야지. 자네는 안돼!”

　김근수의 기분이 급격하게 가라 앉아 버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수현과 같은 마음이란 걸 알아차린 김근수가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교활했다는 생각도 같이 하고 있었다. 정미경에 대한 마음은 반반이었다. 말 그대로 못 먹는 떡 찔러나 본다는 생각으로 접근했다가 바로 내팽개쳐진 기분이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정미경의 어머니를 마음을 떠보려다가 냉혹한 현실만 실감하고 기가 팍 죽어 있었다.

　“자네 내 말에 상처 받은 모양이지?”

　“그럼! 그 말씀에 상처 안 받을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제가 저기 저 서울에 있는 대학 다니면 그런 말씀을 안 하셨겠죠. 무슨 말씀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따님한테 인사나 하고 소인은 멀리 떨어지겠습니다.”

　일어서는 김근수를 다시 붙잡아 앉혀 절반의 호통으로 헷갈리게 하고 있었다.

　“사내자식이 그만한 말에 삐쳤나? 서울에 있는 대학도 대학 나름이야! 그리고 덩치 값 좀 해라. 여기 앉아 봐!”

　정미경의 어머니가 김근수의 비위를 상하게 했다가 어루만지기도 하면서 유심이 살피고 있다는 사실을 김근수도 알아차리고 줄다리기를 하듯이 밀고 당기는 기 싸움을 하다가 두 사람 다 곤드레만드레한 상태로 정미경에게 갔다가 호되게 야단을 맞고 있었다.

　“야! 임마! 나 정말 미치겠다. 우리 엄마와 마셨어?”

　그러나 정미경의 야단은 그녀의 어머니에게도 김근수에게도 소 귀에 경이나 마찬가지였다. 정미경은 한숨도 못 자고 두 사람의 드르렁 소리에 시달리며 김근수만 노려보고 있었다. 새벽 4시 30분이 조금 넘어 갈 무렵에 김근수가 기상나팔이나 들린 것처럼 벌떡 일어섰다.

　“어!”

　정미경이 사타구니의 통증을 무릅쓰고 어기적거리려 일어나, 김근수의 귀를 잡아 비틀어 당겨 밖으로 나갔다.

　“야! 우리 엄마 내 때문에 알코올 중독됐어. 너 지금 제 정신이야? 얼마나 마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