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꽃 장식 넥타이핀을 한 사람이, 누가 봐도 억지스러운 조건을 내걸자, 다른 사람들은 당혹스러운 듯했다. 그 중 보라색 마름모꼴 넥타이핀을 한 사람에게, 붉은 꽃 장식 넥타이핀을 한 그 사람에게 말했다.

　"바로 아까까지 그 오페라가 미국에서 유명한 작품이라면서 적극 추진했던 입장이니, 당혹스러운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정보를 제때 알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 아닙니까? 그렇게 호통을 칠 일은 아닌 듯 싶습니다만."

　"그러니까 문제를 지적할 거면, 응당 완벽한 대안도 제시해야 한다는 겁니다. 대안도 없으면서 반대부터 하자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자, 이제 말해보게. 자네는 이 문제에 대한 완벽한 대응책이 있겠지. 그러니까 감히 이런 자리에 끼어든 것일 테고. 그렇지 않나?"

　붉은 꽃 장식 넥타이핀을 한 사람은, 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표정을 보면서 난 다시금 확신했다. 이 사람은 내가 그 문제를 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그리고, 내가 그 문제를 풀지 못한다면, 즉시 날 물어뜯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이다.

　보통 사람에게라면, 그 계획은 통했을 것이다.

　1919년 시점의 대한제국에서 궁중 여인도, 유학자도, 일반 서민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오페라 작품을 말해보라는 것.

　그리고 미국이 대한제국과 문화교류를 위해 오페라를 공연하기로 했는데, 미국 측에서 정한 작품을 우리가 바꾸고 싶다면, 미국이 기뻐하면서 작품을 바꿀 수 있는 명분을 만들라는 것.

　이런 문제라면, 여러 날 동안 심사숙고하고 정보를 찾아도 대답을 찾기는 힘들 것이다.

　 문제를 낸 사람도, 답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낸 문제일 터이다.

　하지만 저 질문에 대답할 사람은 바로 나였다. 내가 있던 시점에서 인터넷으로 검색할 수 있는 정보는, 모두 머릿속에 있는 사람 말이다. 기껏해야 10초 정도의 짧은 순간에, 난 두 질문의 대답을 모두 찾았다.

　내가 대답하려는 순간, 붉은 꽃 장식 넥타이핀을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여기서 내게 가장 적대적으로 행동하며 몰아붙인 사람이었다.

　"역시 모르는 모양이군.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고 반대하다니, 자네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자는 것인가? 표면적으로는 민간행사라고, 이 행사가 그리 우습게 보이나?

　이 행사는 나라 대 나라끼리 진행되는 일일세. 그런 막중한 일에, 함부로 나서지 말게나."

　"전 대안이 없다고 말한 적 없습니다."

　"어처구니없군. 그럼 대한제국에서 누구나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오페라가 있단 말인가? 지금 우리가 새로 작곡하지 않는 한, 그런 작품은 없을 걸세.

　서양 문물을 모르는 사람도 재미있게 볼 수 있고, 유학자들도 만족할 작품이 있을 리가 없네. 혹시 지금부터 찾아보자고 대답할 요량이면, 이 곳에서 당장 나가야 할 걸세.

　난 자비로우니, 자네에게 제 발로 스스로 나갈 기회를 주도록 하지. 지금 이 자리에서 나간다면, 자네를 쫓아내지는 않고 처벌도 하지 않겠네."

　자기가 모르던 것을 지적받으니까,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몰아세우는 것으로 때우려는 티를 대놓고 팍팍 내고 있었다.

　난 입을 열었다.

　"<라 체네렌톨라 La Cenerentola>라면, 대한제국 사람들이 누구라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난 붉은 꽃 장식 넥타이핀을 한 사람을 쳐다보았다. 내가 척척 대답하는 것을 보면, 과연 무슨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그 남자는 일순간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 같더니, 웃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다시 물었다.

　"그건 어떤 작품인가? 처음 들어보는군. 실제로 있는 작품이기는 한가?"

　"<세빌리아의 이발사>로 유명한 조아키노 로시니가 1817년 작곡한 작품입니다."

　작곡가 이름에 만들어진 시기까지 이야기해줬다. 이 정도면 찾을 수 있겠지.

　붉은 꽃 장식 넥타이핀은 내게 소리쳤다.

　"그게 어떤 작품인지 말해보게. 만약 대한제국 사람들이 불편해할 요소가 하나라도 있다면, 자네는 이런 자리에 함부로 끼어든 데 대한 경을 치게 될 걸세!"

　초조해한다는 티를 팍팍 내고 있었다. 그럼 완벽하게 대답해서, 더욱 초조하게 만들어주는 게 인지상정이겠지.

　"고전소설과 비슷한 내용이기에 궁중 여인이나 서민들도 좋아할 작품이며, 유교적 가르침과 비슷한 교훈도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현실적이고 교훈적으로 각색한 신데렐라 이야기라고나 할까. 난 그 오페라의 줄거리를,1919년 대한제국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번안해서 설명하기로 했다. 콩쥐 팥쥐 이야기와 비슷하니까, 대충 콩쥐 팥쥐 버전으로 번안하면 되겠지.

　"콩쥐 팥쥐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교훈적이면서도 행복하게 끝나지요.

　콩쥐팥쥐같은 자매가 있는데, 어느 날 웬 거지가 나타납니다. 팥쥐는 거지를 쫓아내려하지만 콩쥐는 거지에게 먹을 것을 주며 도와줍니다. 그런데 그 거지는 사실 그 나라 왕자의 스승이 변장한 것이었습니다.

　연회가 열리자 팥쥐 어머니는 콩쥐 팥쥐 이야기처럼 연회에 팥쥐만 데려가지만, 거지로 변장했던 스승이 콩쥐에게 나타나 좋은 옷을 마련해주며 연회에 참석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콩쥐는 그 옷을 입고 연회에 나타나고, 연회에서 사람들은 아리따운 아가씨가 등장했으니 왕자와 혼인하게 될 것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한편 그 나라 왕자는 하인 옷을 입고 밖을 돌아다니는데, 하인 신분으로 콩쥐와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콩쥐는 나중에 왕자와 혼담이 오갈 때에도, 왕자의 하인을 사랑하고 있으니 왕자와 맺어질 수 없다고 말하지요.

　그 말을 듣고, 하인으로 변장했던 진짜 왕자는 당연히 감동받습니다. 그리고 왕자는 콩쥐를 신부로 맞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왕자는 결혼식에서 콩쥐를 괴롭힌 팥쥐 일행을 쫓아내라고 하는데, 콩쥐는 팥쥐를 용서합니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마저 이었다.

　"이런 내용이라면, 대한제국 남녀노소 모두 재미있게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보라색 마름모꼴 장식 넥타이핀이 감탄했다.

　"정말 멋진 이야기로군! 자네 말대로일세. 고전소설과 비슷한 내용이라 대한제국 사람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이야.

　그리고 사람을 옷차림으로 판단하지 말고 진정한 내면을 보아야 한다는 교훈도 있군. 그리고 콩쥐 팥쥐 이야기는 신령이나 선녀 같은 존재가 콩쥐를 도와주는데, 그 오페라에서는 굉장히 현실적인 존재가 개연성 있게 콩쥐를 돕는군.

　게다가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 복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니, 권선징악 이야기이기도 하네. 유교적 교훈도 있고, 신령이나 선녀 같은 존재도 안 나오니, 유학자도 흡족해할 작품일세.

　자네는 정말 서양 문물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진 모양이군. 게다가 자유자재로 응용할 수도 있고!“

　하지만 붉은 꽃 장식 넥타이핀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다고 저 자의 건의대로 이 일을 추진하자는 겁니까?"

　다짜고짜 소리지르더니, 한참 있다가 말을 이었다. 소리부터 지르고 난 뒤, 소리지른 이유를 갖다붙여서 정당화하려는 티를 팍팍 내면서 말이다.

　"미국이 호의로 공연작품을 정했는데, 우리 입장에서 멋대로 작품을 바꾸자고 하는 것은 결례가 돌 겁니다. 그리고 다른 작품을 공연하자고 한다면, 그쪽에서도 번거로울 텐데, 그걸 기쁘게 받아들이겠습니까? 미국을 공연히 언짢게 만들어서, 우리에게 이득이 될 게 있겠습니까?

　미국이 거절당하면서도 흡족하게 만들 수 있는 거절 명분이 없다면, 그렇게 하는 것은 안 될 일입니다.

　세현 자네는 그런 거절 명분을, 이 자리에서 당장 만들 수 있나?"

　정말이지 어처구니없는 논리였다. 따지자면 이건 미국 측이 잘못한 거다.

　미국 측에서야 아마 인기 있는 작품을 무심히 선정한 거겠지만, 일본 식민지였던 나라에 일본과 일본인이 나오는 작품을 공연하겠다니, 너무 무성의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은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는데, 자라 보고 놀란 사람에게 자라 모형을 보여줘야겠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저런 말을 하다니, 하여간 내게 트집잡으려고, 별의별 억지를 다 부린다.

　보라색 마름모꼴 넥타이핀이, 붉은 꽃 장식 넥타이핀을 만류했다.

　"일본이 나오는 작품이라는 것만으로도, 우리 입장에서는 꺼려하기에 충분한 이유입니다. 사안이 사안이니, 잘 포장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겁니다."

　"그래서 나중으로 미루자는 겁니까? 지금 당장 해답을 내야 할 것 아닙니까! 이 자리에서 해답을 내지 못한다면, 저 자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하고요!"

　그 순간, 내가 입을 열었다.

　"미국이 흡족해할 거절 명분이 있습니다.

　그 작품에는 한 미국인이 외국인 여성에게 결혼 사기를 치면서, 미국인은 모두 그런다는 대사를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대한제국은 미국인이 신의를 지킨다고 신뢰하고 있으니, 미국인이 신의가 없다고 묘사한 작품은 공연하고 싶지 않다고요."

　푸른 사각 장식 넥타이핀이 놀라서 말했다.

　"아니, 그런 장면이 있단 말인가?"

　"예, 정말입니다."

　정말로 나온다. 문제는 그러는 사람이 남주인공 본인이라는 거다. 그것도 여주인공과 결혼식 하기 직전에, 친구와 대화하는 장면이다. 남주인공에게 적대적인 사람이, 남주인공 폄하하려고 하는 말이 절대 아니다.

　정말이지, 미국에서 왜 <나비 부인>이 유난히 인기 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아무리 외국 작품에 자기 나라 사람이 나오면 반갑다지만, 저렇게 묘사되는 걸 보고 기분이 좋나? 아무리 오페라 음악이 좋아도, 난 우리 나라 사람이 저렇게 묘사되는 작품이라면 정이 뚝 떨어질 것 같은데.

　의친왕이 입을 열었다.

　"세현이 중대한 문제를 즉각 찾아내 보고한 뒤, 해결방책까지 깔끔하게 제안하는 데 성공한 것 같군. 이의 있는 자가 있소?"

　보라색 마름모꼴 넥타이핀이 말했다.

　"마치 조선시대 성종 때의 구종직의 일화를 보는 것 같군요. 성종이 우연히 말단 관리이던 구종직을 만난 뒤, 말 몇 마디를 나누고 구종직을 파격적으로 승진시켰지요. 말단직이던 종 9품에게, 중간급 지위인 정5품을 내린 것입니다.

　당시 관료들은 그 인사에 반발했지만, 구종직인 <춘추좌전>을 비롯해 수많은 유교경전을 암송하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의친왕 전하는 그 구종직에 비견할 만한 인재를 얻으셨습니다."

　날 호평하는 것보다, 성종이라는 표현이 귀에 먼저 들어왔다. 대한제국 사람이 성종을 부른다면, 성종대왕 정도로는 부르지 성종이라고만 부르지는 않는 게 법도일 텐데, 내 귀에는 성종이라고 들렸다. 아마 내 언어변환능력은, 이런 호칭이나 고유명사도 내게 익숙한 표현으로 변환시켜주는 모양이다.

　회의는 그렇게 끝났고, 내가 제안한 것이 모두 수용되었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의친왕은 사동궁으로 돌아왔고, 나도 그 뒤를 따라왔다. 그리고 사동궁에 도착하자마자, 의친왕은 내게 말했다.

　"자네 정말 대단하더군. 황지선이 그렇게 어처구니없는 트집을 잡았을 때, 자네가 어떤 대답을 하는지 지켜보려고 했는데, 그렇게 깔끔하고 완벽하게 해결하다니.

　난 기껏해야 그게 터무니없는 트집이라는 걸 논리적으로 지적하는 정도로 대응할 거라고 생각했었다네. 만약 자네가 못한다면, 이번 일의 총책임자 권한으로 내가 자네 보고를 수용하려고 했었지. 그런데 그럴 것까지도 없었네. 자네는 그 문제에 완벽한 대답을 제시해냈지 않은가.

　이제영은 오히려 자네를 과소평가한 걸세. 구종직에 비견할 만하다는 표현도 모자라겠어. 자네는 구종직 이상의 능력을 가지고 있네."

　이제영? 의친왕이 구종직 어쩌고 하는 말을 한 것 보니, 내게 가장 우호적이었던 보라색 마름모꼴 넥타이핀을 한 사람을 말하는 것 같았다. 이름을 알면, 그 사람이 누구고 어떤 사람인지 곧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사람들도 내가 자네를 내 옆에 둔 것에 반대하지 못할 걸세. 이토록 통쾌하게 활약했지 않나.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내일 사람들을 모아 논의할 것이 있으니, 자네도 그 자리에 참석하게나. 이젠 아무도 반대하지 못할 걸세."

　이 정도 분위기라면, 이걸 물어봐도 괜찮을 것 같았다.

　"전하, 그런데 아까 회의장에서 전하 왼쪽에서 두 번째에 앉았던 사람이 누구입니까? 넥타이에 붉은 꽃 장식 넥타이핀을 꽂았던 사람이요."

　"아아, 황지선을 말하는 것인가. 하기야 대놓고 자네를 그토록 적대했으니, 누군지 궁금해지는 게 당연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