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화 돌잔치

　진화는 남화에게 자기가 집에 돌아왔다는 전보를 치러 우체국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만난 복권이에게 며칠 내로 거하게 술을 사겠노라 했다. 복권이는 그런 진화 어깨를 몇 번 툭툭 두드려주었다. 전보를 받은 남화가 얼마나 기가 막혔을지는 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렇게 진화는 집에, 고향에 돌아왔다.

　며칠 후 노미는 평생 가장 감격스러운 생일상을 받았다. 품 안에 아들도 있었다. 살뜰하게 챙겨주시는 시아버지와 남편보다도 더 자기를 지켜주고 아껴주는 도련님들도 있었다. 전라도에서 내내 못 오는가 싶었던 석이랑 석이 어머니도 돌아와 함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정말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서방님이 곁에 있었다.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겠구나 싶었다. 태화가 해준 찰밥이 있었고, 그 찹쌀은 석이가 가져온 것이었다. 민화가 해준 겉절이가 있었고, 석이 어머니가 해주신 고등어조림도 있었다. 그리고 진화가 직접 끓여준 미역국도 있었다. 미역국에 들어간 소고기는 정화가 읍내까지 나가 사 온 것이었다.

　생일상을 받아 앉아있는데 노미를 바라보며 시아버지, 진화, 태화, 민화, 정화, 그리고 석이와 석이 어머니까지 둘러앉아 있었다. 노미는 눈물이 자꾸 솟아올랐다. 슬퍼서가 아니라 감격에 겨워 흘리는 눈물이었다. 그간의 설움이, 그간의 그리움이 다 사라지는 것 같았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싶었다. 그랬다.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다. 그러니 우리 다 울지 말자. 아파도 조금만 견뎌보자. 이렇게 좋은데, 이렇게 기쁜데도 노미는 자리에 없는 이들이 또 마음에 걸려 밥을 쉽게 삼킬 수가 없었다.

　양력으로 12월 25일이 홍이의 첫 번째 생일, 즉 첫돌이었다. 이 집안에 마지막으로 태어난 아기가 정화였으니, 십칠 년 만에 처음으로 아기가 태어나 준 소중한 날이었다. 무엇보다 장손이 돌아와 자리를 턱 지켜주고 있었고, 꼼짝없이 빼앗길 뻔했던 막내들도 이렇게 아버지 옆에 있었다. 떡도 하고, 고기도 삶고, 국수도 했다. 겨우 식구들 먹을 정도밖에는 음식을 할 수 없어 동네 사람들을 초대하지는 못했지만 오랜만에 맛보는 잔치 음식이었다.

　삼촌들은 색동옷에 두건까지 쓰고 돌상 앞에 의젓하게 앉아있는 홍이에게 돌잡이를 시킨다고 정신이 없었다. 홍이 앞에 실, 붓, 돈, 그리고 작은 활과 화살이 놓여 있었다. 삼촌들이 내기를 한 터라 각자 자기가 응원하는 물건들을 잡으라고 성화였다.

　실은 장수와 건강, 홍이가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바라며 민화가 응원하는 물건이었다. 붓은 학문, 홍이가 공부 잘하기를 바라며 정화가 응원하는 물건이었다. 돈은 부, 부자가 되라는 뜻이 아니라 가난하지 않게 살기를 바라며 태화가 응원하는 물건이었다. 활과 화살은 무인(武人)이 되라는 뜻, 석이는 홍이가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한 사람이 되기를 바랬다. 석이는 나중에 홍이에게 꼭 택견을 가르치고 싶었다. 진화는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무엇을 잡든 그것은 홍이의 선택이었다.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행복하고 씩씩하게 살기를 바랬다.

　그때였다. 뒤에서

　“형님!”

　하는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모두 돌아보았다. 남화가 서 있었다. 깔끔한 학생복을 입고, 까만 뿔테 안경도 썼다.

　“형! 남화형!”

　태화, 민화, 정화가 남화에게 달려가 안기고 매달렸다. 주춤주춤 다가간 석이를 남화는 와락 끌어안았다. 두 친구는 그렇게 말없이 눈물을 흘리며 한참을 안고 있었다. 지은 죄가 많은 진화는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서 있었다. 남화가 진화 앞에 와서 섰다. 한 대 칠 것 같은 얼굴이었다.

　“와? 니도 한 대 칠래? 그렇지않아도 정화한테 이짝을 맞았다. 그러니 니는 요짝을 치거라.”

　하며 정화한테 맞지 않은 쪽 가슴을 내밀었다. 남화 얼굴이 씰룩씰룩했다. 다들 남화가 큰형을 얼마나 세게 치려나 기대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남화가 진화 가슴을 주먹으로 치는 대신 품에서 종이봉투 하나를 꺼내 진화 가슴에 안겼다.

　“내 세브란스 의과대학에 합격했습니더.”

　라고 남화가 말했다. 진화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버지가

　“남화야!”

　하며 기쁨의 통곡을 하셨다. 남화는 아버지 앞에 큰절을 했다. 아버지는 그런 남화를 끌어안으셨다. 모두 축하의 뒤통수를 때려주었다. 남화는 돌잡이 앞에 그 봉투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보는 조카 얼굴을 감격에 겨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홍아! 내는 남화 삼촌이다. 처음 보제?”

　하며 남화는 보조개가 쏙 들어가게 웃었다. 홍이도 남화를 따라 방긋 웃으며 ‘또 삼촌이 하나 늘었군. 도대체 나는 삼촌이 몇 명이나 더 있는 걸까.’ 하는 표정이었다.

　홍이와 인사를 나눈 남화는 노미를 찾았다. 그리고 여전히 아름다우신 형수님이 멀지 않은 곳에 서서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남화는 한달음에 노미에게 달려가 형수의 손을 와락 쥐었다.

　“형수님, 아니, 선생님, 댕겨왔습니더.”

　하며 웃었다. 얼마나 자랑스럽고, 얼마나 대견한지, 노미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다시 시작된 돌잡이! 다들 목이 터져라

　“홍아! 이거 잡아라! 이거!”

　하며 홍이를 응원했다. 홍이는 자기 앞에서 온갖 표정을 지으며 재롱을 부리는 삼촌들 모습을 한동안 재미있다는 듯 한참 감상을 하더니 드디어 마음을 정한 듯 앞에 놓인 물건을 향해 손을 뻗었다. 모두 침을 삼키며 홍이의 선택을 기다렸다.

　드디어! 홍이가 앞에 놓인 물건을 하나 집어 올렸다. 남화의 대학합격통지서였다. 남화가 ‘와!’하고 환호를 지르며 홍이에게 달려가 홍이를 번쩍 안아들고 볼에 뽀뽀를 했다. 홍이는 자기 선택이 꽤나 마음에 드는지, 처음 본 남화가 맘에 들었는지 남화 볼에 난 보조개를 손가락으로 꼭 찌르더니 세상 신기한 남화 안경을 손에 쥐고 뺏어 들었다. 남화는 그래도 좋아서 홍이를 안고 마당을 뛰었다. 다른 삼촌들도 그런 남화와 홍이 뒤를 따라 뛰었다.

　“홍이 대학에 보낼라믄 우리가 힘들어도 고생을 좀 해야겠지요?”

　하고 진화가 노미 옆에 서서 흐뭇하게 웃었다.

　“고생이 대숩니꺼. 지가 사람 도리 하고 살겠다 하믄 내는 무슨 짓이라도 합니더.”

　하며 노미가 이를 악 물었다. 그러자 진화가 노미 볼을 잡고 흔들며

　“이는 물지 말고, 살살, 살살 하이소. 살살~”

　하며 킥킥 웃었다. 노미는 그런 진화를 흘겨보았다. 그렇지. 이래야 우리 서방님이지. 노미도 진화를 따라 웃었다.

　다음 날 이른 새벽, 아직 동도 트지 않아 주변이 아침 잠을 덜 깬 듯 희뿌연데, 남화는 물을 길어다 부엌에 있는 큰 항아리에 쏟아 놓고는 사랑방 앞 작은 마루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그곳은 언제나 남화 자리였다. 그 자리에 앉아 마당을 보고 있자니 남화는 내가 집에 왔구나 하는 것이 실감이 났다.

　일찍 잠을 깬 노미가 머리를 매만지며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부엌에 들어가 늘 하던 대로 작은 하얀 그릇에 물을 떠 왔다. 노미는 항아리에 물이 가득 찬 것을 보고는 빙그레 웃었다. 남화가 떠다 놓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노미는 원래 있던 자기 자리에 돌아와 앉아있는 남화를 보니 가슴이 벅찼다.

　“도련님, 잘 주무셨습니꺼. 동도 안 텄는데 물부터 길어다 놓으셨습니꺼.”

　했다.

　“기도하시려구요.”

　하고 남화가 익숙한 형수의 아침 일과가 반가워 말했다. 노미는 빙긋 웃었다. 그리고는 장독대 위에 물을 담은 흰 그릇을 올리고는 평소보다 더 진심을 담아 아침기도를 올렸다. 어느새 남화가 옆에 와서 서더니 같이 기도를 올렸다.

　“형수님...,”

　남화가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채 가만히 노미를 불렀다. 노미는 그런 남화를 맑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제가....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신다는데 왜 세상이 이 모양입니꺼 하고 물었었지예?”

　노미는 가만히 남화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형수님, 세상을 이래 만든 것은 하나님이 아닙니더. 인간의 욕심입니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세상을 다 잡아먹어도 멈추지 않습니더. 욕심은 또 욕심을 낳고 더 커지고 더 거대해질 것입니더.”

　노미는 남화를 존경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욕심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진심뿐입니더. 형수님 같은 사람이 가진 진심 말입니더. 형수님 같은 사람이 많으면 우리가 이깁니더. 진심으로 사랑하며 사는 사람이 많으면 욕심으로 엉망이 된 세상을 바꿀 수도 있습니더.”

　노미는 남화의 손을 잡았다.

　“지는 도련님이 결국 해내실 줄 알았습니더. 답을 찾으실 줄 알았습니더.”

　라고 말했다.

　“저도 아직 잘 모릅니더. 더 배우고 더 알아가야 합니더.”

　늘 깊이를 알 수 없이 아프기만 하던 남화의 눈에 빛이 보였다. 노미는 남화가 한없이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한없이 믿어지고 고마웠다. 천천히 동이 트고 있었다. 그러나 겨울은 아직 깊었다.

　얼마 후, 진화는 복권이를 만나 술을 사기로 했다며 읍내로 갔다. 진화는 복권이에게 그리고 그 얼굴도 모르는 일본 친구에게 술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으로도 갚지 못할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했다.

　저녁이 한참 늦었는데도 진화가 오지 않아 노미는 남자들끼리 어울렸으니 오늘 밤 안 올 수도 있겠구나 싶어 잠자리에 누웠다. 그때 밖에서 차 소리가 들렸다. 복권이 차 소리 같았다. 노미는 복권이가 차로 진화를 데려다주러 왔구나 싶어 머리를 만지고 나갔다. 역시나 대문 밖에 눈에 익은 복권이 지프차가 서 있었다. 복권이 차 엔진을 끄고는 운전석에서 내리며 노미와 눈이 마주치자 미안한 표정으로 웃는다. 노미도 엉겁결에 눈인사를 했는데 차 안에서 누군가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진화 같았다. 술 못하는 사람이 술을 마시고는 많이 취한 모양이었다. 그때 차 뒷문이 열리며 누가 진화를 부축하며 내리는데, 노미는 깜짝 놀랐다. 다케짱이었다.

　어떻게 부산에 있어야 할 다케짱이 진화랑 같이 있게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술에 잔뜩 취해 노래를 부르고 있는 진화를 부축해 든 사람이 다케짱이라니 노미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노미와 눈이 마주치자 다케짱도 어색하게 웃었다. 동생들이 우르르 나와 이 광경을 다같이 보았다. 혀가 완전히 꼬부라진 소리로 알 수 없는 타령을 계속 하고 있는 진화를 다케짱과 복권이가 양쪽에서 붙들고 서서는 마루에 서 계신 아버지께 인사를 했다.

　“어르신, 안녕하십니까.”

　복권이 먼저 인사하자 다케짱도

　“어르신, 안녕하시무니까~~”

　하고 따라서 인사를 한다. 모두 다 헛웃음을 웃었다. 그때 정화가 태화 귀에 대고 속삭였다.

　“형수님 옛날 애인들이 다 모있다.”

　하며 정화는 킥킥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