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화 하늘
어김없이 또 아침이 밝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해는 떠오른다. 노미는 푸르스름하게 밝아지고 있는 그 괴이한 색깔의 아침이 참으로 미웠다. 뜬눈으로 꼬박 밤을 새웠다. 그리고 그 미운 아침을 맞았다. 주춤주춤 일어났다. 무슨 정신으로 마당을 가로질러 갔는지, 어떻게 물그릇에 물을 담았는지, 노미는 버릇이 되어버린 아침기도를 위해 또 그렇게 작고 하얀 물그릇 앞에 섰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노미는 가슴을 쥐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감사하지 않았다. 도저히 감사할 수가 없었다. 미웠다. 처음으로 누구신지 어디 계신지 모르는 하늘 저 먼 곳의 그분이 미웠다. 흘러내리는 눈물이 멈출 생각을 안 했다. 혹시라도 뱃속의 아이에게 나쁜 마음을 들킬까 싶어 노미는 가만히 배를 쥐고 아이를 달랬다.
윤화의 편지를 제일 먼저 발견한 이는 태화였다.
“형수님! 둘째 형이!”
태화는 마당에 주저앉아 있는 노미를 발견하고는 놀라서 뛰어왔다.
“형수님!”
태화의 고함소리에 다들 깨었다. 민화와 정화까지 한달음에 뛰어나왔다. 노미는 죄지은 사람처럼 도련님들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아가! 괜찮으냐?”
아버지도 놀라셔서 마루에 서서 벌벌 떨고 계셨다.
“지는... 괜찮습니더. 기도하다 갑자기 기운이 빠져가....”
노미는 다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겨우 대답을 했다. 도련님들은 노미를 거의 둘러업다시피 부축을 해서 방에 눕혔다. 노미를 방에 눕히고 나서야 태화는 손에 쥐고 있던 윤화의 편지를 민화와 정화에게 보여주었다.
“둘째 형이....”
정화가 편지를 휙 낚아채 가더니 빠르게 눈으로 읽었다. 정화가 멍한 표정으로 편지를 쥐고 있자 민화도 뺏어다 읽었다. 민화도 넋이 나갔다. 내용은 간단했다.
‘아버지, 일본에 다녀오겠습니다. 한 집에서 한 사람은 가야 한다고 하니 제가 다녀오는 것이 맞습니다. 허락 없이 길을 떠나는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태화, 민화, 정화는 아버지, 형수님 잘 모시고 있거라. 형님과 남화에게는 잘 다녀올 테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전해라. 형수님은 몸 건강히 아기 순산하십시오. 곁에서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석이네를 돌봐주십시오. 둘째 정윤화 올림.’
몇 날이 속절없이 흘렀다. 참으로 미운 해가 뜨고 또 졌다. 노미는 꼬박 이틀을 정신이 나갔다 들어왔다 하며 앓았다. 친정아버지가 약을 지어주고 가셨다. 뱃속 아기 때문에 기운이 떨어져서 그런 것이라고 하셨다. 식구들이 모두 말할 수 없이 힘들 텐데 자기만 누워있는 것이 노미는 여간 미안하지 않았다. 민화가 약을 들고 들어왔다. 민화 얼굴도 말이 아니었다. 노미는 겨우 일어나 약을 받아 마셨다.
“도련님, 죄송합니더.”
“참말로, 죄송하기는 뭐가 죄송합니꺼. 아기 때문에 그러신 것을예. 마음이 상해 몸까지 상하셔가 그러시는 것이니 쉬셔야 합니더.”
노미는 울컥 눈물이 솟구쳤다.
“지만 맘이 상했습니꺼. 다들 마음이 처참할낀데....”
민화도 눈물이 맺혔다.
“울지 마이소. 울면 몸 상합니더. 어서 마저 드시소.”
노미는 겨우 약을 다 마셨다. 그리고는 애써 몸을 일으키려 했다. 민화가 말렸다.
“와예? 일어나시믄 안됩니더.”
“아닙니더. 아부지 어떠신지 보러 가야됩니더.”
“아부지는 정화랑 태화가 봐드리고 있습니더. 괜찮으십니더.”
하는데도 노미가 일어서려 하자 민화가 억지로 노미를 끌어다 앉혔다.
“제발, 형수님!”
민화가 처음으로 노미에게 소리를 쳤다. 도로 앉은 노미는 자꾸 울음이 복받쳤다. 입술을 깨물며 겨우 참았다.
“아직은 일라시면 안됩니더!”
민화가 평소와 달리 엄하게 말했다. 노미는 할 수 없이 자리에 누웠다.
“큰형한테는 지들이 편지를 썼습니더. 내일 우체국에 다녀오겠습니더.”
민화는 이불을 끌어다 노미를 덮어주었다. 바들바들 떨고 있는 형수님이 한없이 안쓰러웠다.
“형수님, 마음을 편히 하이소. 아기만 생각하이소.”
그렇게 민화는 노미를 달랬다. 형님들이 있을 때는 한없이 아이 같기만 하던 막내 도련님들이 어느새 훌쩍 다 큰 어른 같았다. 노미는 그런 도련님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윤화 소식을 들은 석이 어머니는 한 번 더 까무러치셨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 윤화가 미순이를 찾으러 간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석이는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모두가 견딜 수 없는 것들을 견디고 있었다.
슬픔이 그렇다. 참는다고 참아지는 것도 아니고, 견디자고 견뎌지는 것도 아니다. 강한 이는 잘 견디고 약한 이는 잘 못 견디고 그런 것도 아니다. 벌판에 서 있는 나무에 떨어지는 소나기처럼 후두두 떨어지면 그냥 고스란히 맞을 수밖에 없다. 어서 지나가 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슬픔 앞에서 우리는 모두 그저 벌판에 선 나무일 뿐이다.
어딘가로 달리는 발. 학생복을 입은 남화다. 남화는 손에 편지를 쥐고 있었다. 아니, 거의 구겨 쥐고 있었다. 편지를 쥔 손에 어찌나 힘을 주고 있는지 핏줄이 터질 것 같았다. 남화는 논에 있는 진화를 발견했다. 만주는 추운 지방이라 이제 막 모를 심으려고 논에 물을 대어 놓은 상태였다. 진화는 물이 찰랑거리는 그리 크지 않은 논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논을 이만큼 만들기까지 참 말도 못하게 고생을 했다. 모래땅이라 물을 대면 빠지고, 물을 대면 또 빠지고 해서 몇 차례나 산에서 흙을 퍼다 부었는지 모른다. 이제 겨우 물이 좀 차서 빠지지 않고 있었다.
“형! 큰형!”
진화를 부르는 남화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목소리만 듣고 반가운 마음에 돌아 본 진화는 새빨간 눈에 얼굴은 눈물로, 땀으로 범벅이 된 남화의 표정을 보고 얼굴이 굳었다.
진화는 노미에게 편지를 썼다.
“당신은 괜찮소? 내가 하늘을 볼 수가 없소. 울 수도 없소. 윤화도 미순이도 무사하기만을 바라고 또 바라고 있소. 걱정했던 일들이 일어나고 말았소. 가능한 빨리 식구들을 다 이리로 오게 하고 싶소만, 이곳 사정도 고향과 크게 다르지 않소.
일본은 이제 이곳에서도 그 포악이 극에 달하고 있소. 거대한 나라 중국이 일본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소. 그 끝을 알 수 없이 큰 나라라는 러시아 또한 일본에게는 적수가 되지 못하는 것 같소. 여기저기 조선사람들이 광복군이 되어 일어나고 있지만, 김좌진 장군님이 돌아가신 이후 그 위세가 예전만 못하오.
당신을 곁에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오. 태어날 아기에게도 미안하오. 이런 하늘 아래, 이런 나라의 백성이라 미안하오. 가족들에게 안부 전해 주시오. 부디 석이가 건강을 되찾기를 바라고 바라고 있소.
태화, 민화, 정화, 아버지께도 편지를 썼소. 당신 고운 눈이 그립소. 가을걷이가 잘 끝나면 내려가리다. 그때까지 몸 상하지 말고, 마음 상하지 말고 기다려주시오. 당신의 남편 정진화.‘
노미는 편지를 받아들고 울었다. 편지를 가슴에 안고 또 읽고 또 읽었다. 동생들도 각자 형들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다들 편지를 읽으며 여기저기 쓰러져 울었다. 석이도 이제 자리에 앉을 수 있을 만큼 회복되었다.
석이는 남화의 편지를 읽으며 엉엉 울었다. 윤화는 도대체 지금 어디 있을까. 살았는지 죽었는지 기별조차 없었다. 죽었으면 죽었다는 기별이라도 왔을 텐데 한 달이 넘도록 아무 소식이 없었다.
윤화는 캄캄한 배 안에서 눈을 떴다. 징용 가는 조선 남자들을 잔뜩 태운 배는 이미 부산을 떠난 지 한참 지난 후였다.
“정신이 드는가?”
하고 누군가 말을 걸었다. 윤화는 왜 살아있나 싶었다.
“자네 소문은 들었네. 여자들을 구한다고 난리를 쳤다며? 대단허이....”
윤화보다 대 여섯은 더 먹었을 것 같은 형님이었다. 그는 윤화에게 주먹밥 한 덩어리를 건넸다.
“어서 먹게. 이놈들이 사람을 먹이지를 않는구먼, 오늘 하루종일 먹을 게 이게 다인 모양일세.”
윤화가 자기 손을 보았다. 손에 미순이의 옷고름이 묶여 있었다.
“하도 꼭 쥐고 있길래 내가 묶어주었네. 자네 색시거지?”
“고... 고맙습니더.”
윤화는 손목에 묶인 미순이의 옷고름을 바라보았다. 피가 묻어있었다. 윤화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왜 살아있을까.’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때려눕힌 보초병 두 놈은 아마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그 난리를 쳤는데 놈들이 자기를 살려놓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궁금증은 곧 풀렸다. 그들에게는 죽은 영웅보다 살아서 지옥에서 일할 일꾼이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윤화는 일본에 도착한 후에 기차에 태워졌고, 먼 일본 북쪽 지방의 한 탄광으로 보내졌다. 하늘도 땅도 온통 새까만 곳이었다.
남화는 터벅터벅 동네를 걷고 있었다. 남의 나라, 남의 땅, 남의 하늘 밑인데 동네 풍경은 고향과 사뭇 다르지 않았다. 조선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예쁜 초가지붕에 작은 박들이 조롱조롱 달려있는 풍경도 익숙한 것이었다. 중간중간 멋스러운 기와집들도 있었다.
그렇게 터벅터벅 걷던 남화는 어디선가 울리는 풍금 소리를 따라갔다. 근처에 있는 교회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그리고 보니 오늘은 일요일이었다. 만주에는 사는 조선인들 중에는 기독교인이 많았다. 만주에 조선인들이 정착하는데 영국 선교사들의 힘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지역을 ‘영국덕’이라고 불렀다. 지금 남화가 들어선 예배당도 그 ‘영국덕’ 지역 내에 있는 곳이었다.
예배당에서는 한창 어린아이들이 모여 풍금 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주일학교 시간인 모양이었다. 남화는 아이들을 보니 고향에 두고 온 서당 제자들이 생각났다.
‘재성이, 인규, 한이 모두 잘 있을까?’
하고 생각이 미치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남화는 아무도 말리는 이가 없어 가만히 뒷자리 구석에 앉았다. 풍금을 연주하고 있는 이는 의외로 남자였다. 진화랑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그 남자 선생님은 아이들을 따뜻한 눈으로 둘러보며 함께 목소리를 높여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듣다 보니 찬송가가 아니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남화는 깜짝 놀랐다. ‘애국가’였다. 애국가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 알고 있었고, 가사는 대충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곡조를 붙여 부르는 것은 처음 들었다. 아직 애국가에 정식 곡조가 붙기 전에는 스코틀랜드 민요인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에 맞추어 불렀다. 그런데 지금 저 주일학교 선생님은 남화가 처음 듣는 곡조에 맞추어 ‘애국가’를 부르고 있었다.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남화는 마음이 뜨거워졌다. 조선사람이 아니라 대한 사람이라 하고 있었다. 감히 불러도 되나 싶은 내 나라의 이름이었다.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일편단심이라는 가사에 남화는 ‘풋’하고 웃음이 났다. 남화의 조상님인 포은 정몽주의 시에 나오는 글귀였기 때문이다. 감격스럽게도 애국가에 조상님의 글귀가 들어간 것이었다.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를 사랑하자 했다.
‘사랑이라. 사랑이라. 사랑이라....’
남화는 자기도 모르게 쓴웃음이 올라왔다. 그렇게 한목소리로 애국가를 부른 선생님과 아이들은 사뭇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노래를 마쳤다. 풍금에서 손을 뗀 그 남자 선생님은 아이들을 따듯한 눈으로 둘러 보았다.
“오늘 같이 배운 이 곡은 ‘안익태’라는 선생님이 지으신 곡입니다. 우리나라 애국가에 이렇게 곡을 지어주셨습니다. 참 좋지요?”
하자 아이들은 다 같이
“예!”
하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그 선생님은 풍금 위에 두었던 천을 펼쳐 아이들 앞에 보여주었다. ‘태극기’였다. 남화는 태극기를 석이네 집에서 처음 보았었다. 석이 아버지이자, 남화의 택견 사부님이셨던 김병권님은 광주에서 만세운동을 하다 쫓기는 몸이 되었었다. 품에 가지고 온 태극기를 항상 소중히 여기셨다. 그리고 남화 형제들과 석이에게 보여주시며
‘너희는 대한민국 사람임을 잊지 말라.’
고 하셨다.
‘언젠가 우리가 자주독립을 하는 날 이 깃발을 높이 들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자.’
고 하셨다. 남화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때 그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선생님은 잠시 남화를 지그시 보더니 빙긋 웃었다. 그리고는 아이들을 향해 하려던 이야기를 마저 했다.
“여러분, 이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아이들은 모두 꾀꼬리처럼 대답했다.
“예! 태극기입니다.”
선생님은 만면에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아이들을 대견하게 바라보았다.
“네, 맞아요.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국기 태극기입니다. 이 문양들이 무슨 의미인지 아세요?”
아이들은 그것은 알지 못하는지 모두 선생님의 입만 바라보며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었다. 그러자 그 선생님은 남화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뒤에 앉아있는 잘생긴 청년?”
아이들이 뒤를 돌아보았다. 남화는 깜짝 놀랐다.
“예?”
“이 문양이 무슨 의미인지 아십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에 남화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대답해야 할 것 같았다.
“예, 태극과 건곤감리입니다.”
아이들이 모두 ‘와!’하고 감탄을 했다. 선생님도 사뭇 감동한 표정이었다.
“맞습니다. 그럼 그 뜻도 알고 있습니까?”
“예, 태극은 음과 양의 조화를 의미하고 건곤감리는 하늘 땅 불 물을 의미합니다. 세상을 이루는 네 가지 이치를 말합니다.”
아이들이 ‘와!’하고 탄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박수를 받자고 한 이야기가 아닌데 박수를 받으니 남화는 쑥스러웠다.
“오늘 처음 온 학생이 참 똑똑하네요. 자기소개를 해 줄 수 있겠습니까?”
하고 선생님이 물었다. 남화는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절을 하고는 자기 소개를 했다.
“정가 남화라 하옵니다.”
그러자 그 선생님도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남화를 향해 절을 했다.
“윤가 동주라 하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