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화 국민증
부산의 겨울은 혹독하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칼바람은 볼때기고 귀때기고 다 뜯어갈 듯했다. 눈까지 흩날리고 있는데 태화와 민화는 원래 입고 왔던 옷 그대로 징용자들이 모여있던 그 건물 밖으로 나왔다. 성재는 피검사를 다시 받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며칠 더 있어야 풀려날 것이라 했다. 혹시라도 불량이 안 나면 어쩌나 걱정되었는데 군의관은 매우 깍듯하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태화도 민화도 이제 살았구나 싶었다.
“그건 그렇고.... 집에까지 우예 가노?”
하고 태화가 이를 덜덜 떨며 말했다. 부산에서 감포까지는 꽤 먼 거리였다. 걸어서 갈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이 추위에 둘은 외투조차 없이 홑저고리 차림이었다. 돈도 한 푼 없었다. 징용에 끌려가지 않고 산 것은 기쁜 일인데 집까지 도대체 무슨 수로 가나 싶었다. 그때 민화의 눈에 광장 맞은편에 있는 우체국이 보였다.
“우체국이다! 저 가면 전화할 수 있지 않겠나?”
“전화?”
“그래, 복권이 형님한테 전화하자.”
그러자 태화가 픽 웃었다.
“언제부터 그눔아가 형님이고?”
했다. 민화는 태화를 툭 치며
“아직도 모르겠나. 다케짱을 불러준 게 복권이 형님이고, 복권이 형님한테 이른 사람은 틀림없이 형수님일끼다.”
그제야 태화도 빙그레 웃었다.
“근데, 니 전화할 줄 아나?”
하고 태화가 물었다. 민화 표정이 난처해졌다.
감포 우체국, 전화벨이 울리자 교환원 아가씨가 전화를 받았다.
“예, 예? 부산이요? 누구시라고예? 예, 예, 알았습니더.”
하고는 그 여직원은 복권을 불렀다.
“계장님, 부산에서 전화왔습니더.”
부산이라는 말에 복권이 눈이 휙 올라갔다.
“부산?”
“예, 정민화라는데예.”
복권은 튀듯이 전화기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그래, 민화가?”
전화기 너머에서 조그맣게 민화의 목소리가 들렸다.
“알았다. 잘했다. 그래, 그래, 내 기별할 테니 거 있어라. 딴 데 가지 말고 일단은 거 있어라. 아이다, 근처에 내 아는 여관이 있는데 일단 거서 자라. 내 얘기해 놓을 테니, 그래, 받아 적어라.”
복권은 그 길로 노미에게 달려갔다. 복권은 이 근처에서 거의 유일하게 자기 차가 있었다. 군용 지프였다. 복권이 차에서 내려 마당으로 들어서자 노미는 깜짝 놀랐다. 이제나저제나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터라 노미는 복권의 표정부터 살폈다.
“애들 나왔다. 됐다. 풀리났다.”
복권의 말에 노미는 자리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아버지가 나오셨다.
“그기, 그기 참말이가?”
“어르신, 안녕하십니꺼. 진화 동무 김복권입니더.”
하고 복권이 마당에서 절을 했다. 아버지는 복권이에 대해 대충 알고 있었다. 친일파 김 아무개 아들이라는 것 또한 익히 알고 있었다. 고마운 것은 사실이나 그다지 반길 수만은 없었다.
“고맙네. 이 은혜를 우예 갚나?”
아버지는 애써 예를 갖추었다. 그러나 복권이는 그런 아버지의 반응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 빙그레 웃으며,
“아입니더. 진화 오거든 술이나 사라 하이소.”
했다. 노미의 고마움은 말로 할 수가 없었다. 노미는 복권이를 향해 몇 번이나 고개를 숙여 절을 하고, 또 절을 했다. 복권이는 그런 노미를 바라보며 그저 빙긋 웃었다. 정화가 덜덜 떨리는 표정으로 마루에 서 있었다.
“애들 부산에 있다. 데리러 가야 된다. 노미야, 데리러 갈 수 있겠나?”
하며 복권이는 노미의 부른 배를 보았다.
“가야지예, 부산이 아니라 어디라도 데리러 가야지예.”
라고 노미가 말했다. 그러자 정화가
“내도 갑니더. 형수! 내도 갑니더.”
했다. 복권은 그런 두 사람을 잠시 바라보았다.
“정화는 지금 영장이 나온 상태라 움직이면 위험하다. 정화는 국민증도 없다 아이가?”
국민증이란 당시 일본에서 발행한 신분증으로 결혼한 사람이나 이십 세 이상인 사람은 여행시에 반드시 소지하고 있어야 했다.
“형수님 지금 만삭입니더. 혼자 우예 가십니꺼?”
정화는 안타까웠다. 그때 노미가 번쩍 무언가 떠오른 듯 눈이 빛났다.
“도련님, 서방님꺼 있습니더. 두고 가셔가 집에 있습니더. 사진으로 보믄 얼굴이 닮아가 티가 안 나지 싶습니더.”
하며 노미는 방에서 진화 국민증을 가지고 나왔다. 노미는 복권이에게 진화의 국민증을 보여주었다. 복권이 사진으로나마 친구 얼굴을 오랜만에 보니 반갑다. 복권은 잔뜩 굳은 표정으로 찍힌 진화의 사진 속 얼굴과 눈앞에 서 있는 정화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누가 형제 아니랄까 봐 빼다 박은 듯이 닮았다. 복권은 헛웃음이 났다.
“됐다. 돼지 싶다. 내 사무실에 가가 소개장을 하나 써올 테니 그거 보여주면 별일 없을 끼다. 웬만하면 보자 하진 않을 텐데, 요즘 하도 도망 다니는 사람들이 많으이 우쨌든 안 걸려야 된다.”
복권은 날이 늦어 내일 아침 일찍 데리러 오기로 했다. 가는 데 하루, 오는데 하루가 꼬박 걸리는 길이었다. 경주까지는 복권이 차로 데려다 주기로 했다. 경주부터 부산까지는 기차로 가야했다.
노미는 옷장에서 진화의 겨울 두루마기를 꺼내 정화에게 입혀보았다. 내일 나설 채비를 미리 하는 것이었다. 이제 겨우 열여섯인 어린 도련님이 스물세 살 큰형처럼 보여야 했다. 두루마기를 입히고 보니 정화는 정말 진화랑 많이 닮았다. 노미 눈에 눈물이 맺혔다.
“시상에, 우리 도련님 언제 이래 컸습니꺼. 형님 옷이 딱 맞네예.”
하며 정화를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지금은 지가 큰형보다 더 클끼라예.”
하며 정화가 배시시 웃었다. 그렇게 웃는 얼굴을 보니 형을 더 닮았다. 노미는 그만 울음이 터져버렸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엉엉 울고 말았다. 깜짝 놀란 정화가 노미를 달랬다.
“와예? 형수님!”
순간 수많은 감정이 복받쳤던 모양이었다. 쌍둥이 도련님들이 무사히 돌아오게 되었다는 것도 너무 다행이었고, 복권이 말로는 정화도 지킬 방도가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진화도, 윤화도, 남화도, 석이도 없는데, 아버지마저 병이 점점 깊어지시는데, 아기는 이제 곧 나올 때가 되었는데, 아무것도, 아무 방도도 없이 그저 이 많은 일을 겪어내야만 했다. 정화는 주저앉아 우는 노미의 등을 가만히 두드렸다. 누군가 울면 가족은, 곁에 있는 사람은 이렇게 해줘야 하는 것이었다.
“형수님, 걱정마이소. 지가 형들이랑 약속했습니더. 형수도, 아기도 지가 지켜드릴 겁니더. 내 반드시.... 반드시 지켜드립니더.”
정화도 겨우 속에서 터지는 울음을 참으며 노미에게 다짐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다짐했다.
이튿날 아침, 복권의 차가 도착했다. 단단히 차려입은 노미와 정화가 마당으로 나섰다. 정화는 형들 솜옷을 잔뜩 싼 커다란 봇짐을 둘러매고 있었다. 아버지가 진화의 옷을 입고 의젓하게 서 있는 정화를 쓰다듬으셨다.
“조심해서 댕겨오니라.”
“야,”
정화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아버지는 노미의 손을 부여잡았다.
“몸조심 하그라. 내 니 볼 낯이 없다.”
“식사 꼭 챙기 드시소. 아랫집 아지매한테 부탁했으니 걱정마시소.”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아버지는 이번에는 복권이의 손을 잡았다. 복권이 살짝 당황했다.
“고맙데이. 내 이 은혜는 죽어서도 갚겠네.”
했다. 복권은 그런 아버지의 손을 묵묵히 잡아드렸다. 친일파, 공산당, 조센징, 일본놈, 서로를 부르는 포악한 말들이 많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복권이는 그 중 무엇이었을까. 그러나 그날 복권이는 아버지에게, 노미에게 그저 고마운 사람이었다.
감포에서 경주까지 가는 산길은 험하기로 유명했다. 포장도 되지 않은 꼬불꼬불한 산길을 복권의 차는 먼지를 날리며 달렸다. 큰길도 있었지만 한참이나 돌아가야 했다. 정화는 처음 타보는 자동차에 정신이 다 없었다. 하지만 촌뜨기티 내기 싫어 멀미가 나는데도 용케 잘 참았다.
“괘안나?”
하고 복권이 옆에 앉은 정화에게 물었다.
“괘안습니더.”
정화는 입을 꾹 다물고 앞만 보며 말했다.
“이런 차는 얼마나 합니꺼?”
하고 물었다.
“와, 사게?”
하고 복권이 묻자, 정화는 복권을 픽 째려보며
“내 나중에 돈 많이 벌면 꼭 살낍니더.”
했다.
“그래라. 니는 꼭 돈 마이 벌어가 차도 사고, 집도 사고 할끼다.”
정화는 차를 이리저리 꼼꼼히 살폈다. 복권은 그런 정화가 귀여웠다. 뒤에 앉은 노미는 멀미가 나 죽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경주역에 도착했다. 복권이 어느 틈에 기차표를 사 왔다.
“아이구, 이라시믄 안됩니더. 지 돈 있습니더.”
하며 노미가 사양했다.
“진화보고 갚으라 해라.”
하며 복권은 사람 좋게 빙긋 웃었다. 노미가 아는 어린 시절의 복권이는 늘 다케를 괜히 괴롭히고 놀리는 개구쟁이 소년이었다. 늘 친구들을 우르르 몰고 다니며 대장처럼 굴었다. 그런 모습이 어린 노미 눈에는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말도 아이답지 않게 괜히 거칠게 하고, 노미를 다정하게 대해 준 적도 없었다. 아버지끼리 혼담이 오고 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노미는 복권이에게 시집가는 것은 싫었다. 넌지시 묻는 아버지에게 노미는 두 번도 생각하지 않고 싫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노미 앞에 서 있는 복권이는 노미가 알던 그 소년이 아니었다. 진화 때문인지 노미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복권은 최선을 다해 노미를 돕고 있었다. 이 마음을 도대체 어떻게 갚아야 하나 싶었다. 그러나 정작 복권이는 별일 아니라는 듯 진화 오거든 술이나 사라고 하라며 껄껄 웃을 뿐이었다. 이게 어찌 별일이 아닌가. 복권이는 사람 목숨을 몇이나 구한 것이었다. 복권이는 노미에게 소개장을 주었다.
“이거는 두 사람이 자기 동생들 데리러 부산에 간다는 내용의 내 소개장이다. 신원이 확실한 사람이라고 내가 증명하는 것이니 가지고 있으믄 된다. 거짓말도 아이고.”
노미는 뭐라 감사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감사함이 가득한 눈으로 복권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노미가 하도 말갛게 바라보니 복권은 좀 쑥스러웠다.
“집에 올 때는 우짤끼고? 내 데리러 올까?”
하고 복권이 말했다. 노미는 깜짝 놀라 고개를 저었다.
“아니라예. 경주에 할아버지가 계십니더. 거기 가면 달구지를 빌릴 수 있으니 달구지 타고 집에 갈 수 있습니더.”
했다. 기차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복권은 이제 돌아갈 시간이었다. 조금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복권은 정화 어깨를 툭 치며
“형수님 잘 모시고 갔다 온나. 이 순간부터 니는 이제 정정화가 아니라 정진화다. 알겠나?”
“예.”
하고 정화가 제법 어른스럽게 대답했다.
“내는 정진화다. 함 해봐라.”
하고 복권이 정화에게 연습을 시켰다.
“내는 정진화다.”
하고 정화가 가슴을 펴며 말했다. 복권은 그런 정화가 귀엽기도 하고 믿음직스러웠다.
“진화야, 그럼 내 간데이. 갔다와서 보자.”
하며 복권이 정말 진화를 대하듯 정화 어깨를 잡고 말했다. 그러자 정화가 복권의 어깨를 잡으며.
“그래, 복권이 니도 욕봤데이.”
하며 웃었다. 복권이는 ‘요놈 봐라.’ 하며 따라 웃었다. 그렇게 복권은 정화와 노미를 역에 두고 떠났다.
“에헴! 여보! 갑시다!”
하며 정화가 노미 팔짱을 끼었다. 노미는 정화 하는 짓이 우스워 오랜만에 까르르 웃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자,
“지 색시입니더, 지 얼라입니더.”
하고 물어보지 않은 말을 했다. 노미가 당황해서 눈만 껌벅거리는데 정화는 뭐가 좋은지 연신 벙글벙글 웃었다. 주변에서 보면 그저 금실 좋은 부부처럼 보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경주역에서 부산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생전 처음 기차를 타보는 정화는 무섭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자리에 앉은 정화는 노미의 손을 꽉 쥐었다.
“와예, 무섭습니꺼?”
하고 노미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닙니더. 무섭기는예. 형수 지킬 사람이 이제는 내 뿐입니더. 부산에 가가 형들 만날 때까지, 만주에 있는 큰형이 올 때까지, 또 둘째 형이 다시 올 때까지.... 형수는 이제 지가 지켜드립니더. 아셨지예?”
노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소년은, 소년들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