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화 스미마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민화는
“스미마센!(실례합니다.)”
하고 외치며 앞에 있는 한 일본 군인의 무릎과 가슴을 타고 올라서 어깨를 잡고 몸을 날렸다. 그렇게 일본군들 머리 위로 날아오른 민화는 몸을 붕 날려 건너편으로 떨어졌다. 다가오는 군인들을 발로 손으로 밀치고 휘돌려 차며 민화는 계속 바닥에 나뒹구는 일본군들을 향해 ‘스미마센!’을 외쳤다. 헤치거나 다치게 할 뜻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민화는 그저 태화에게 가야 했을 뿐이었다. 태화를 발로 차던 놈들까지 민화에게 달려들자 성재는 태화에게 달려가 태화를 안았다. 하지만 태화의 몸부림은 가라앉지 않았다.
“민화야! 태화 클나겠다~!”
성재가 거의 울며 민화를 다급하게 불렀다. 태화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민화는 덤벼드는 놈들을 어쩔 수 없이 바닥에 내리꽂고 발을 걸어 넘겼다. 그러다 한 놈 오금을 걸어 붕 나가떨어지게 했는데 그 일본군 머리가 책상 모서리를 향했다. 민화는 얼른 발을 대 그 일본군 머리를 받쳐 다치지 않게 했다. 아까 그 짚신이랑 버선 가져다준 녀석이었다. 민화는 싱긋 웃으며
“스미마센. 다이조부?”
했다. 민화 발 덕분에 책상 모서리에 머리를 박지 않은 그 일본 군인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하이!’라고 대답했다. 그를 마지막으로 민화는 태화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민화는 드디어 태화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자장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자장 자장 우리 태화, 잘도 잔다. 우리 태화, 멍멍개야 짖지마레이. 우리 태화 잠을 깰라. 우리 태화 잠을 깨믄 니그들 마카 다 죽는다!”
민화는 그 특유의 다정한 목소리로, 그러나 낮게 으르렁거리듯 자장가를 불렀다. 희한하게도 민화가 자장가를 부르기 시작하자 덤벼들던 일본군들도 멈칫하고 그 자리에서 섰고, 태화의 몸부림도 거짓말처럼 잦아들기 시작했다.
“자장 자장 우리 태화, 언능 언능 잠을 깨라. 멍멍개가 암만 짖어도 우리 태화, 우리 태화는.... 벌떡 일어나가 니그들 다, 니그들 싹 다 잡으러 간데이!”
민화의 서슬 퍼런 자장가를 일본군들은 미처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감히 다가가지도 못했다. 그때였다. 태화의 떨리던 몸이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그리고 태화가 눈을 떴다. 태화는 벌떡 일어났다. 태화와 민화가 등을 맞대고 섰다.
한 일본군이 총을 들려 하자 대장이 소리쳤다.
“총을 쓰지 마라! 징용자들은 죽이면 안 된다!(일본말)”
‘撃つな！ 徴用者は殺すな！’
(우츠나! 초오요오샤와 코로스나!)
그러더니 재미있는 구경을 하게 됐다는 듯 피식 웃더니
“때려서 잡아와라!(일본말)”
殴って捕まえて来い！
(나굿테 츠카마에테코이)
하고 명령했다. 군인들은 빈틈을 노리며 주춤주춤 다가오고 있었다. 얼추 이삼십 명은 넘어 보였다. 태화가 아까 맞아 입술이 터진 곳을 쓱 하고 한번 닦더니 빙긋 웃는다. 그것을 보며 민화가 말했다.
“다들 귀한 집 아들이다. 뼈는 다치게 하지 마래이.”
그러자 태화가 말했다.
“눈깔은 쑤시도 되나?”
민화가 픽 웃었다.
“살살해래이.”
일본군 대장이
“捕まえろ！”
(츠카마에로!)
‘잡아라!’‘
하고 명령을 내리자 일본군들이 ‘와!’하며 태화와 민화에게 덤벼들었다.
한바탕, 마치 춤판 같은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랬다. 마치 춤판 같았다. 태화는 잡히는 대로 놈들 얼굴을 손으로 잡아 뜯고, 목덜미를 손날로 내리치고, 옆구리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민화는 주로 오금을 당기거나 손바닥으로 밀치며 덤벼드는 이들을 바닥에 나뒹굴게 했다.
택견은 원래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무술이 아니다. 그저 내 몸을 지키고 상대에게 사람을 해하는 죄를 짓지 않도록, 적으로 하여금 감히 사람을 상하게 하는 죄를 짓지 않도록 그 공격 의지를 꺾는 것이 목표다. 그래서 택견은 아름답고 부드럽다. 당하는 자조차 그 아름다움에, 그 부드러움에, 그리고 그 너그러움에 압도당하게 하는 것이 택견의 정신인 것이다.
일본군들은 바닥에 나뒹굴면서도 민화의 부드러운 미소를 보았다. 그들은 태화에게 목 날을 맞으면서도 자기 코앞에서 빙긋 웃는 그 햇살같이 아름다운 얼굴에 넋을 잃었다. 민화는 마음을 어지럽히는 달빛 같았고, 태화는 감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햇빛 같았다.
그때 아까 줄 서라고 소리치던 덩치 큰 일본군이 몽둥이로 민화의 이마를 내리쳤다. 제대로 맞았으면 정신을 잃었을 것이다. 다행히 빗맞는 바람에 민화의 이마가 찢어지며 피가 났다. 구경하던 이들이 모두 ‘악!’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민화는 이마를 한번 쓱 닦고는 놈을 타고 날아올라 공중에서 머리를 잡아 돌려 바닥에 내리꽂았다. 민화가 잘하는 기술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넘어뜨리면서도 머리를 끝까지 잡고 있었다. 놈의 몸은 바닥에 떨어졌지만, 머리는 민화가 끝까지 잡고 있어 바닥에 부딪히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살포시 머리를 땅에 내려주며 민화는 그 덩치 큰 녀석의 눈앞에서 ‘더는 그러지 마라.’는 표시로 손가락을 까닥까닥 흔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스미마센!”
성재를 포함해 모여있던 조선 남자들은 참으로 오랜만에 제대로 된 택견을 구경했다. 어떤 이는 손뼉까지 치며 환호를 질렀다. 춤판은 순식간에 끝났다. 더 잡아 돌릴 놈들이 없어질 때쯤이었다.
“止めろ！”
(야메로!)
‘멈춰라!’
하며 정문이 활짝 열리더니 총 든 일본군들을 몰고 한 일본군 장교가 척척 걸어들어왔다. 일어설 수 있는 일본군들은 모두 그 장교를 향해 경례했다. 하지만 대부분 바닥에 나뒹굴며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장교를 향해 경례를 할 수 있는 군인은 몇 안 되었다. 성재는 이제 태화도 민화도 꼼짝없이 죽었구나 싶었다. 태화와 민화는 서로 등을 기댄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 장교는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고함을 쳤다. 앉아있던 군의관이 장교에게 다가가 상황 설명을 했다. 장교는 군의관에게 진단서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不良だな。”
(후료~다나.)
‘불량이로군.’
하고 그 장교가 짧게 말했다.
“え(에)?”
하고 군의관이 되물었다.
“결핵이면 불량이지 않나? 그리고 저놈은 간질발작을 했다고? 간질이 있는 환자를 노무자로 쓸 수는 없다!(일본말)”
‘結核なら不良じゃないか？ それに、あいつはてんかんの発作を起こしたって言うじゃないか。てんかんのある病人は労務者として使えない！’
(켓카쿠나라 후료오자 나이카? 소레니 아이츠와 텐칸노 홋사오 오코시탓테 유우자 나이카? 텐칸노 아루 뵤오닌와 로오무샤토 시테 츠카에나이!)
하며 짜증 섞인 말투로 고함을 쳤다.
“일을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건가? 불량인 놈들을 데려다 어쩌자는 건가? 저놈 둘 다 불량! 불량! 불량이라고!(일본말)”
‘ろくに判断もできないのか！ 不良な奴らを連れて来てどうするんだ。あいつらは２人とも！
不良！ 不良なんだぞ！’
(로쿠니 한단모 데키나이노카! 후료오나 야츠라오 츠레테키테 도오스루다.
아이츠라와 니닌토모 후료오후료오! 후료오나다조!)
하며 고함을 치며 군의관을 몰아붙였다.
“하지만 대령님! 이놈들이 방금 여기 있는 군인들을 때려눕히고 난동을 피웠습니다. 응당 감옥에 보내야 합니다.(일본말)”
‘ですが、大佐殿！ こいつらがたった今、ここにいる兵士たちを殴り倒して、乱暴狼藉を働きました。当然、監獄送りです.’
데스가 타이사도노! 코이츠라가 탓타이마 코코니이루 헤에시타치오 나구리타오시테, 란보오로오제키오 하타라키마시타. 토오젠, 칸고쿠오쿠리데스.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 대령은 군의관을 향해 다시 비아냥거렸다.
“지금 나보고 저 두 놈이, 겨우 두 놈이 대일본제국의 훈련된 일본군 삼십 명을 때려눕혔다는 말을 믿으라는 건가?(일본말)”
하며 건물 안을 둘러보았다. 언제 일어났는지 상처 하나 없는 일본군들이 조금은 머쓱한 표정으로 다 일어나 총을 들고 서 있었다. 군의관은 잠시 할 말을 잃고 대령이란 자의 눈치만 살폈다. 대령은 민화와 태화를 돌아보았다. 다케짱이었다. 순간 민화는 반갑다고 손을 흔들뻔했다. 다케는 자신의 눈치만 살피며 허리를 곧게 세우고 서 있는 이곳 책임자에게 다가갔다. 그는 다케보다 계급이 낮은지 ‘하이!’하며 경례를 부쳤다.
“어이! 자네 부대가 조선놈들한테 당했나? 여기 조선놈들이 난동을 부려 자네 부대가 당했다고 상부에 보고하면 자네가 어떻게 될 거 같나? 소령!(일본말)”
하며 낮게 속삭였다. 소령이라는 자는 순간 멈칫하더니,
“아!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방금 불량 조선인 하나가 간질 발작이 나서 잠시 소란했을 뿐입니다.(일본말)”
하고 보고했다. 다케는 맘에 든다는 듯 빙긋 웃더니,
“검사결과 불량인 자들은 모두 돌려보낸다. 성전의 역군으로 선택되어 가는 자들 사이에 불량이 섞여서는 안 된다. 알았나!(일본말)”
하며 군의관을 향해 다시 서슬 퍼런 명령을 내렸다. 군의관은 몸을 곧게 세우고 ‘하이!’하며 경례를 부쳤다. 그리고 군의관은 태화와 민화를 손가락으로 불렀다. 그러더니 둘에게 ‘불량’이라고 외치며 불량이라는 벌건 도장이 찍힌 진단서를 주었다. 그리고 장부에도 ‘불량’이라고 기록했다. 그리고는 불량인 자들이 앉아있는 쪽으로 태화와 민화를 보냈다. 다들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있었나 하고 얼이 빠졌다. 불량으로 보내진 태화와 민화의 눈에 건너편에 서 있는 성재의 얼굴이 들어왔다. 성재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태화도 민화도 안타깝게 성재를 바라보았다.
“성재야!”
하고 태화가 성재를 울먹이며 불렀다.
“내는... 내는 우야노? 내는.... 니들은... 좋겠다.... 우리 색시한테 안부 전해도. 얼라 낳거든 잘 좀 봐도. 알았제?”
하는데 목이 멘다. 다케가 그 모습을 보았다. 그러더니 군의관에게
“あいつは誰だ？”
(아이츠와 다레다?)
‘저 자는 누구냐?’
하고 물었다.
“아! 저 불량인 녀석들과 한동네 놈인 모양입니다. 여기 기록에 보니 그렇습니다만.(일본말)”
‘あ！ その不良の奴らと同じ町の奴のようです。ここの記録で見ると、そうですが。’
A! sono huryo~no yatsurato onaji machino yatsuno yo~desu. Kokono kirokude miruto, so~desuga.
이라고 군의관이 말했다. 다케는 성재의 진단서를 쓱 훑어보더니 민화에게 물었다.
“おい！ あいつと仲がいいのか？”
(오이! 아이츠토 나카가 이노카?)
‘어이! 저자랑 친한가?’
민화가 못 알아들으니 성재가 통역을 해주었다.
“니 내랑 친하냐고 묻는데?”
그러자 민화가
“친하다 해라.”
했다. 그러자 성재가 일본말로
“はい、親しい友達です。同じ町に住んでいます。”
(하이, 시타시이 토모다치데스. 오나지 마치니 슨데이마스.)
‘네, 친한 친구입니다. 같은 동네 삽니다.’
하고 다케에게 대답했다.
“그럼, 결핵 환자일 가능성이 있군.”
이라고 군의관에게 말했다. 그러자 군의관은
“저 자의 결핵은 전염성이 아니라....”
하고 말하자 다케는 다시 고함을 쳤다.
“같은 동네이니 얼마든지 가능한 것 아닌가! 피검사를 다시 해라. 알겠나?”
하며 으르렁거렸다. 높은 놈들 말도 안 되는 명령에 이골이 난 터라 군의관은 ‘하이!’하고 짧게 대답했다. 그리고 다케는 군의관에게 다가가 귀에 대고 낮게 속삭였다.
“같은 동네이니, 결핵이 맞을 것이다. 알겠나? 결핵! 불량!”
그러면서 다케는 그 군의관에게 찡긋하고 눈짓했다. 군의관은 알았다는 듯
“はい！ わかりました！”
(하이! 와카리마시타!)
‘예! 알겠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다케는 쓱 돌아서려다 말고 성재를 한번 보았다. 성재가 속없이 다케를 향해 벙긋 웃었다. 다케도 티나지 않게 씩 웃었다. 다케는 성재 옆에 허망한 표정으로 서 있는 다른 조선 남자들도 보았다. 간절한 눈, 미움의 눈, 꼿꼿한 눈, 아무것도 모르는 맑은 눈들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케는 순간 노미의 말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친구입니까?’
“きちんと調査して不良はすべて家に送れ！”
(키친토 초오~사시테 후료~와 스베테 우치니 오쿠레!)
‘제대로 조사해서 불량은 다 집에 보내라!’
다케는 빠른 걸음으로 태화와 민화 앞을 스쳐 지나갔다. 잠깐이었지만 다케는 두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태화 민화는 그 순간 다케의 눈빛을 읽었다. 마음도 읽었다. 그렇게 태화와 민화 그리고 성재까지 ‘불량’이 되었다.
그때 성재 옆에 아까 그 오차 들었던 자그마한 일본군이 다가왔다.
“あの人たち、一体誰ですか。”
(아노 히토타치 잇타이 다레데스카)
‘저 사람들 도대체 누굽니까?’
하고 일본말로 물었다. 그러자 성재가 짐짓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さあ、誰でしょうか。まあ、私と親しい友人です。”
(사아, 다레데쇼오~네? 마아, 와타시토 시타시이 유~진데스.)
‘글쎄요, 누굴까요? 뭐, 나랑 친한 친구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