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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마지막 봄
작가 :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9.10.4

(정통소설/피폐)

전 세계의 질서가 무너져내린 이후 매서운 겨울이 찾아왔다.
남아있는 생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흩어졌고, 얼어붙은 세상에 남은 마지막 불씨는 꺼져버렸다.

이 버려진 도시에 홀로 남겨진 소녀는 이제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야만 한다.

 
61화
작성일 : 19-11-04 20:34     조회 : 10     추천 : 0     분량 : 8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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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민이 메고 있던 가방을 벗는 사이 상훈이 2층으로 뒤따라 올라왔다. 그는 상민에게 괜찮느냐고 다시 한 번 묻고 나서 아직 숨을 고르고 있는 봄이에게 말했다.

 

  “그리고 너, 너는 좀 이따가 보자.”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해하는 봄이를 뒤로하고 그가 창가로 다가갔다.

 

  “움직임이 보여?”

 

  중년 여성이 여전히 총구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아니, 놈들이 기척을 완전히 숨겼어. 바람이 완전히 그쳐 버렸는데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분명히 이곳 위치는 노출됐을 텐데......”

 

  중년 여성은 총대를 잠시 내리고 코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봄이는 처음으로 그녀가 긴장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안 좋은 예감이 들어. 잠깐 뒤편을 살펴보고 오는 게 좋겠어.”

 

  그녀가 딱히 눈짓을 보내지 않았는데도 상민이 근처 탁자에 놓인 양초를 한 개 집어들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봄이는 조용히 창가에 기대고 앉아 있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미칠 지경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밖으로 뛰쳐나가서 놈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상황을 보고 싶었다. 긴장감이 머릿속을 쥐고 흔들었다. 그 때문인지 봄이는 놈들이 탐색을 포기하고 모두 돌아간 건 아닌가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순간 바깥에서 총성이 울려퍼졌다. 그와 동시에 창문이 깨지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창문에 덧대어진 나무 판자 하나가 산산이 조각났다. 봄이가 갑자기 시작된 공격에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누군가가 봄이의 머리를 강제로 꽉 눌러 숙였다.

 

  두 번째 총성은 봄이의 머리 위에 있던 창문을 꿰뚫었다. 날카로운 유리조각들이 엎드린 봄이의 등 위로 무수히 쏟아졌다. 봄이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지금껏 끓어오르다가 한순간에 터져버린 긴장감이 봄이의 무의식 속 의지를 순식간에 엄청난 공포로 바꿔놓았다. 연이은 총성과 정신없이 창문이 깨지는 소리에 봄이는 바닥이 꺼져라 엎드린 채로 눈조차 뜨지 못했다.

 

  바로 옆에서 사람들이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봄이는 두 귀를 모두 틀어막아 버렸다. 그 상태로 봄이는 마구 소리를 질렀다. 권총은 꺼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공기마저 꿰뚫는 쇳조각이 날아다니고 죽음의 메아리가 빗발치는 상황에서 이 가엾은 소녀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봄이는 두 눈과 귀를 틀어막고 꼼짝없이 살려달라고 빌었다. 빌고 빌고 또 빌었다. 질끈 감았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봄이는 방금 전까지 정신을 잃고 소리치던 게 공포에 사로잡혀 울부짖는 소리였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이젠 싫었다. 그냥 죽어버리고 싶었다. 지금이라도 모든 저항을 포기한 채 두 손을 들어올리고 바깥으로 천천히 걸어나가면 그들이 자비를 베풀지 않을까 하는 역겨운 희망감이 치솟았다. 차라리 제 발로 그들에게 붙잡혀 강간당하는 쪽이 더 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봄이는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 총성이 제발 그쳐 주기만을 바라는 터무니없는 기대감을 품으며 웅크리고 있었다. 지금 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다.

 

  누군가가 봄이의 이름을 소리쳐 불렀다. 하지만 봄이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역겨운 벌레가 꿈틀거리고 귀에서는 윙윙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정신 차려!”

 

  누군가가 크게 소리치며 봄이의 어깨를 움켜잡자 그제서야 봄이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봄이는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창문은 거의 다 깨져 있었고, 바닥에는 유리조각과 나무 판자 쪼가리가 흥건했다. 바깥을 향해 엽총을 몇 발 쏘고는 재빨리 벽면으로 몸을 피하는 중년 여성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그녀의 어깨에서 검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놀란 봄이가 재빨리 팔을 휘저으려다 고꾸라졌다. 상훈은 그런 봄이를 붙잡고 창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내던졌다. 봄이가 울먹이며 소리쳤다.

 

  “아주머니, 아주머니가.......”

 

  중년 여성이 눈치챘는지 봄이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녀는 별 것 아니라는 얼굴로 태연하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괜찮아, 스친 거야.”

 

  어느새 총성을 듣고 달려온 상민이 쏜살같이 응급처치 도구를 가져왔지만 중년 여성은 괜찮다고 말하며 치료를 거부했다. 창가를 향한 총성이 그칠 줄 모르자 그녀가 한탄했다.

 

  “개새끼들, 멈출 줄을 모르는구만. 아예 머리를 못 들게 하려는 속셈이야. 화력이 더 필요하겠어.”

 

  “총을 가진 녀석은 한 명 뿐이야. 자동소총 같은데, 어디서 저런 걸 구한 거지?”

 

  “몰로토프를 던져. 될 수 있는 한 멀리.”

 

  중년 여성이 그 말을 꺼내기도 전에 상훈은 이미 촛불로 화염병 거즈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양초의 촛불이 약해서 불이 붙기까지는 아주 오래 걸렸다. 이윽고 거즈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하자 상훈은 불 붙은 화염병을 한 바퀴 돌린 다음 창 밖으로 내던졌다.

 

  쨍그랑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바깥에서 불길이 피어올랐다. 어둠이 잠식하고 있던 대지는 그제서야 날름거리며 알코올을 따라 퍼지는 선홍빛 불길과 함께 차츰 밝아졌다. 예상치 못한 그들의 반격에 놈들이 우왕좌왕하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중년 여성이 재빨리 놈들 중 하나를 쏘아 거꾸러뜨렸다.

 

  화염병 두 개가 더 날아갔다. 거대하고 위대한 불꽃의 장벽이 작은 집 담벽을 중심으로 마치 경계선처럼 화르르 타올랐다. 그러자 놈들은 섣불리 접근하지 못하고 총만 쏘아댔다. 중년 여성의 옆에서 남아있는 총알을 세던 상민이 불안한 얼굴로 소리쳤다.

 

  “총알이 몇 발 안 남았어. 남은 총알은 어디에 있어?”

 

  그가 중년 여성을 돌아보며 말하자 그녀가 대답했다.

 

  “공구 상자에 있어. 그게 아마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봄이는 그들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침착하고 냉정하게 행동했고, 주위를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깟 총소리 때문에, 아가리를 떡 벌린 죽음의 세계의 입구에 발을 들이자마자 기겁하며 울고불면서 도망치려고만 했던 봄이와는 완전히 대조적이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절대로 물러서면 안 된다는 강한 의지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봄이와는 다르게, 그들의 눈빛에는 자포자기의 심정이나 두려움에 의한 굴복 같은 심정은 일체 존재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한 채로 버려진 봄이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었던 그들이 지금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한 위협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깟 죽음이 무서워서 무엇 하나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꼴사납게 주저앉아 울고만 있었나? 지금 그들이 봄이의 멍청하고 무능력한 행동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된다면, 자신을 진심으로 감싸주고 아껴 줄 사람은 이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왜 모르고 있었는가?

 

  주저앉아 있던 봄이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일어섰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지만 이를 악물었다. 그들이 설사 이 작은 집에서 최후를 맞는다고 해도, 그들 가족들의 눈동자에 비친 봄이의 마지막 모습마저 은혜를 저버린 채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울기만 하는 겁쟁이로 낙인찍히고 싶지는 않았다.

 

  공구 상자라......전에 누군가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분명히 그 때 중년 여성이 했던 말이었다. 누군가에게 2층에 있던 공구 상자를 1층으로 가져오라고......1층으로.....1층........

 

  상민이 일어서기도 전에 봄이가 먼저 양초 하나를 움켜쥐고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1층에서도 총성은 여전히 울려퍼지고 있었다. 너무 다급하게 서두르는 바람에 손에 쥔 양초의 촛농이 봄이의 손목으로 줄줄 흘러내렸다. 손가락이 말 그대로 녹아내리는 고통에도 봄이는 양초를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

 

  한참을 뒤진 끝에 공구 상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공구 상자는 현관문 바로 앞에 놓여 있었다. 봄이는 상자가 열려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무거운 공구 상자를 온 힘을 다해 질질 끌고 2층으로 올라가려고 했다.

 

  그 순간 봄이의 발이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에 걸려 넘어졌다. 들고 있던 양초가 바닥으로 떨어져 꺼져버리고 열려 있던 공구 상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엎어져 내용물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봄이는 또다시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흩어진 내용물 중에는 총알이 땡강거리며 굴러가는 소리도 들렸다. 봄이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총알들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손아귀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봄이는 자신의 처지를 욕하고 원망했다. 그들 가족에게 절대로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었음에도 제대로 도움조차 주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나도 애석하고 무능하게만 느껴졌다. 봄이는 볼품없이 엎어진 채로 어둠 속을 더듬으며 끝없이 자신을 되뇌었다.

 

  나는 겁쟁이가 아니야.

 

  그 순간 어떤 요란한 소리가 또 다시 울려퍼졌다. 하지만 그것은 처음 듣는 소리였다. 무엇인가가 와르르 쏟아지는 소리였다. 그리고 봄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듣기 싫었던 소리이기도 했다.

 

  대문에 매달아놓았던 경보 장치가 작동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2층에서 누군가가 다급하게 외쳤다.

 

  “놈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누군가의 다급한 외침을 듣는 순간 봄이의 머릿속은 완전히 불타버렸다. 봄이의 오그라든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고, 소름끼치는 긴장감에 너무 오랫동안 노출된 나머지 썩어버린 폐가 경련하며 헐떡거렸다. 봄이는 눈 앞에서 번쩍거리는 현관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제 곧 저곳으로 놈들이 들이닥칠 것이다. 이제 저 좁은 문으로 죽음이 물밀 듯이 밀어닥칠 것이다. 죽음의 문이 열릴 것이다.

 

  봄이가 비틀거리며 일어서려는데 누군가가 계단을 빠르게 뛰어 내려왔다. 상훈은 바닥에 엎드린 채 기어다니고 있는 봄이를 일으켜 세웠다.

 

  그가 외쳤다.

 

  “문을 막을 만한 걸 찾아봐. 절대로 이 집 안에 들어오게 해서는 안 돼.”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한 봄이의 생각회로가 빠르게 돌아갔다. 봄이는 차갑게 식은 드럼통 옆에 놓인 가죽 소파를 발견하고 안간힘을 다해 밀었지만 소파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상훈이 재빨리 달려와 거들었다.

 

  봄이는 상훈과 함께 온 힘을 다해 죽음의 문을 강제로 틀어막았다. 이윽고 놈들이 담벽을 지나고 현관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처음 몇 번은 문에 부딪히는 소리가 나더니 곧 그 소리는 문을 부숴버릴 기세로 난폭해졌다. 봄이는 눈을 질끈 감은 채 꼼짝않고 버텼다. 놈들의 숫자가 정확히 얼마나 많은지는 몰랐지만 봄이가 처음으로 봤던 패거리의 수가 일곱이었으니까, 두 명이 총에 맞아 쓰러졌다고 하면..... 다섯이었다. 여전히 불리했다. 게다가 이것은 어디까지나 봄이의 예상에 불과했다.

 

  놈들이 완전히 작은 집을 포위했다. 사방에서 놈들의 지시가 날아다녔다. 놈들이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공격하려는 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바깥 세상은 불길에 휩싸여 번쩍거리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담벽을 넘어 현관으로 접근하는 불청객들의 실루엣이 더욱 선명하게 비춰졌다.

 

  2층에서는 총성이 계속해서 울렸다. 탄피 떨어지는 소리도 미미하게 들렸다. 그러는 도중 문짝을 부술 듯이 걷어차던 놈들의 행동이 잦아들었다. 봄이는 잠깐 안도하기는 했지만 경계를 늦추지는 않았다. 더 이상 놈들이 공격을 포기하고 돌아갔을 것이라는 희망은 갖지 않기로 했다. 그런 헛된 희망은 얼마남지 않은 봄이의 의지에 물을 끼얹었고, 넘어져 멍이 든 봄이의 다리를 더더욱 무겁게 만들 뿐이었다.

 

  봄이와 문 한 짝만을 사이에 둔 채 마주한 놈들은 싸구려 공포영화에나 나올 법한 멍청한 괴물들과는 달랐다. 놈들은 그저 멍한 눈으로 다리를 질질 끌며 어기적어기적 다가와 문을 두드릴 줄밖에 모르는 좀비가 아니었다. 놈들은 인간이었다. 사냥감이 가득한 작은 집을 포위하고 어떻게 공격할 것인지 계획을 세우는 고도의 지능을 지닌 인간이었다. 봄이와 같은 인간이었다.

 

  현관 너머에서 무엇인가를 강철로 내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문고리를 부수고 들어오려는 모양이었다. 쇳덩이가 표효하는 소리로 미루어보아 문고리는 이미 걸레짝이 된 것이 분명했다. 봄이는 본능적으로 최후의 방어선이 그다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이내 와장창 하는 쇳소리가 터졌다. 문고리가 떨어져 나간 것이었다. 봄이는 놈들과 부딪히지 않고 사태를 해결할 생각 따위는 이미 체념해버렸다. 봄이는 침을 꿀꺽 삼키고 나서 천천히 권총에 손을 가져다 댔다. 혹시라도 놈들이 조심하지 않고 무작정 집 안으로 비집고 들어오려고 한다면 언제라도 봄이는 한 발밖에 남지 않은 방아쇠를 당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끝내 현관문이 열렸다. 하지만 놈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놈들의 모습 대신 빛나는 총구가 현관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있을 뿐이었다.

 

  봄이가 반사적으로 위험을 느끼고 엎드리자마자 총성이 실내를 요란하게 흔들었다. 고막이 너덜너덜해지는 진동과 함께 현기증이 올라왔다. 놈들이 퍼붓는 총알 중 약간이 가죽 소파에 가로막혔지만 대부분은 벽에 튕겨져 나갔다.

 

  총성이 사그라들고 나서도 봄이는 섣불리 머리를 들지 못했다. 놈들의 총알에 벌집이 된 소파에서 공기 빠지는 소리만 들렸다. 봄이가 용기를 내어 머리를 드는 순간 때마침 집안으로 침투하려는 놈들 중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봄이는 주저하지 않고 두 손을 치켜올려 놈을 겨누고 발포했다.

 

  탕.

 

  손목이 저리는 반동과 함께 터져나온 총알이 현관에 걸린 거울을 산산조각냈다. 봄이가 가진 권총의 존재를 모르고 침투하려던 놈은 총알이 귓전을 스치자 겁을 집어먹고 재빨리 몸을 숨겼다.

 

  한동안 어느 쪽도 움직이지 않는 대치전이 벌어졌다. 상훈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화염병에 불을 붙였다. 그가 불이 붙은 화염병을 창 밖으로 던지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한 발의 총성과 함께 상훈의 그림자에서 피가 튀었다.

 

  봄이는 상훈에게서 검붉은 피가 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봄이가 입을 다물지도 못한 채 그에게로 손을 뻗었다. 그가 비틀거리며 주저앉음과 동시에 놓쳐버린 화염병이 그대로 그의 발밑으로 떨어졌다.

 

  꽝 하는 소리와 함께 발밑에서 퍼져나가는 불길이 봄이를 덮쳤다. 거대한 폭발과 함께 솟구친 불꽃이 봄이를 삼켜버리려고 입을 벌린 순간 불길 속에서 누군가가 봄이를 거칠게 밀쳤다.

 

  얼마나 세게 밀쳤는지 봄이는 그대로 튕겨져 나가 엉덩방아를 찧고도 벽에 등을 부딪히고 나서야 멈췄다. 밀쳐진 충격으로 권총이 손에서 떨어져 나가 저 멀리에 떨어졌다. 순식간에 집 안에 치솟은 유독성 연기로 인해 봄이는 숨을 쉬기 어려웠다. 가까스로 가다듬은 호흡은 산소 대신 눈앞에서 타오르는 불길 속 잿더미만을 빨아들였다.

 

  봄이는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정신없이 기침을 하면서도 온 힘을 다해 외쳤다.

 

  “아저씨! 어디 있어요?”

 

  봄이는 자꾸만 눈에 들어차는 유독성 가스를 손으로 휘저었다. 하지만 봄이가 연기를 밀어내려 하면 밀어낼수록 호흡기 속으로 더 많은 연기가 스며들어왔다.

 

  “아저씨, 대답해요!”

 

  봄이가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다 대고 필사적으로 외쳤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봄이의 간절한 외침은 곧 희망이 사라지고 절망만이 남은 절규로 변해갔다.

 

  “아저씨, 제발!”

 

  “난 괜찮아.”

 

  상훈의 목소리가 불길 속 어딘가에서 들렸다. 봄이는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찾기 위해 애썼다. 봄이가 반쯤 정신을 놓은 채 또다시 그를 부르자 상훈이 대답했다.

 

  “손목에서 피가 조금 많이 나고 죽도록 아프다는 것만 빼면 난 멀쩡해. 아, 지금 보니까 신발에 불이 붙어 있네.”

 

  “어디 있어요. 괜찮은 거 맞아요?”

 

  목이 터져라 소리치는 봄이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현관에서부터 그림자들이 침입했다. 적어도 두세 명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들은 상훈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길다란 무기를 움켜쥔 놈들의 발걸음이 피투성이가 된 손목을 움켜잡은 채 주저앉아 있던 상훈의 앞에서 멈췄다. 그 찰나의 순간, 봄이의 시간이 멈췄다.

 

  봄이는 더 이상 아무런 망설이지 않았다. 망설일 시간도 없었다. 그저 어떻게 잘못되어 버렸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본능에 온 몸을 맡겼다.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자신이 몸의 제어권을 가진건지조차 자각하지 못했다. 봄이는 자기도 모르게 근처에 떨어져 있던 식칼을 집어들고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발바닥과 어깨가 불에 타는 고통에도 멈추지 않았다.

  불길을 헤치고 놈들에게로 도달한 봄이는 남아있는 모든 힘을 짜내어 놈들 중 하나의 팔뚝에 식칼을 쑤셔박았다. 뒤늦게 봄이의 존재를 알아챈 놈은 곧 엄청난 고통에 비명을 질러댔다.

 

  팔뚝에 찌른 식칼을 뽑아 다시 공격하려던 봄이의 팔이 놈들에게 가로막혔다. 봄이가 가로막힌 칼을 포기하고 다른 팔로 주먹을 치켜든 순간, 봄이의 왼쪽 뺨에 엄청난 충격이 전해졌다.

 

  뇌수까지 전해지는 얼얼한 충격에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곧바로 오른쪽 뺨에 곰처럼 커다란 주먹이 거세게 날아와 때려박혔다. 그러나 이 고통도 잠시 놈들의 다음 공격이 봄이의 코로 날아들었다.

 

  놈이 힘없이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봄이에게서 칼을 빼앗아 들었다. 봄이는 차마 정신을 잃지는 못하고 주저앉아 고통스런 신음만을 흘렸다. 일어서야 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팔뚝에서 피를 철철 흘리던 놈들이 마구 흥분해서 소리 질렀다.

 

  “아아, 이런 씨발.....젠장, 아프잖아.”

 

  “저 계집애를 잡아. 지금 당장이라도 사정없이 죽여 버리겠어.”

 
작가의 말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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