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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마지막 봄
작가 :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9.10.4

(정통소설/피폐)

전 세계의 질서가 무너져내린 이후 매서운 겨울이 찾아왔다.
남아있는 생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흩어졌고, 얼어붙은 세상에 남은 마지막 불씨는 꺼져버렸다.

이 버려진 도시에 홀로 남겨진 소녀는 이제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야만 한다.

 
59화
작성일 : 19-11-04 20:29     조회 : 10     추천 : 0     분량 : 7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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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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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외로 아래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들 잠시 집을 비운 모양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현관문을 열고 바깥을 살펴봤지만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봄이는 그 잠깐 새에 중년 여성과 상민이 어디로 가버린 건지 궁금해졌다. 또 한편으로는 집을 이렇게 요새처럼 단단히 방비해 두었으면서 정작 집주인들이 집을 비워도 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봄이는 천천히 거실로 향했다.

 

  봄이는 불씨가 튀는 드럼통 옆에 조용히 앉았다. 드럼통에 얼마 남지 않은 불씨가 곧 꺼지려는 듯 환하게 타올랐다. 그 순간 봄이는 아까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조금 더 발견할 수 있었다.

 

  천장에는 붉은 빛을 띠는 둥근 시계가 걸려 있었다. 그 시계가 가리키는 시곗바늘이 제대로 된 시각을 가리키고 있는 것인지는 몰랐지만 시계 자체는 잘 작동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이런 세상에서 돌아버린 시곗바늘을 다시 끼워맞추고 있을 만큼 심적으로 여유로운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시계 옆에는 가족사진이 끼인 액자가 보였다. 사진에는 미성숙한 두 남자아이와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부부가 보였다. 봄이는 상훈의 인생사를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가족사진에 찍힌 인물들이 누구인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무엇보다 봄이는 그런 것에 관심을 두고 싶지 않았다.

 

  가만히 웅크린 채로 불꽃을 바라보고 있자니 졸음이 몰려왔다. 하지만 잠들어서는 안 되었다. 봄이는 지금 자신마저 잠들어 버린다면 이 누추한 작은 집을 지킬 사람이 아무도 없어지게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억지로 눈을 뜨려고 해도 눈꺼풀이 자꾸만 무거워졌다. 여기서 자 버린다면 집을 지킬 사람이 없는데.......

 

  봄이는 결국 졸음을 이기지 못했다.

 

 * * *

 

  꾸벅꾸벅 졸던 봄이가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봄이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처음 눈을 감았을 때와 바뀐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방금 전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고요한 실내에는 시계가 째깍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아까까지만 해도 미약하게나마 타오르던 불꽃은 전부 차갑게 식어 있었다. 봄이는 시간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주춤거리며 일어섰다. 얼마나 잠들어 있었는지는 몰랐지만 꽤나 시간이 흐른 모양이었다.

 

  정신이 반쯤 돌아오지 않은 봄이가 발을 질질 끌며 계단으로 향했다. 집 안은 특별한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아직도 중년 여성이 돌아오지 않았다면 나름대로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초조하게 계단을 오르는 봄이의 정신이 차츰 돌아오기 시작했다. 봄이는 2층에 도착하자마자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엽총을 들고 자리에 앉아있던 중년 여성이 봄이를 홱 돌아보았다.

 

  “안녕. 무슨 일 있어?”

 

  봄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는 중년 여성을 보자 뛰던 가슴이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어디 있었어요?”

 

  봄이가 흠칫하니 묻자 중년 여성이 눈을 껌뻑거리며 대답했다.

 

  “어디 있었느냐고......아, 아까 말이야? 잠깐 불씨를 가지러 지하에 내려갔다 왔었어. 상민이도 불씨 옮기는 걸 도와줬어. 일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네가 불이 꺼져버린 드럼통 옆에 기대고 쿨쿨 자고 있는 걸 봤어. 깨워서 따뜻한 방으로 옮겨 주려다가 네가 너무 곤히 잠든 것 같아서 놔뒀어. 1층은 추울 텐데 왜 그런 곳에서 졸고 있었어?”

 

  “현관 앞에서 집을 지킬 누군가가 필요할 것 같았어요.”

 

  봄이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신이 깜빡 졸았다는 사실만큼은 끝까지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문득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아직까지도 곤히 곯아떨어져 있는 상훈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본 중년 여성이 히죽이며 말했다.

 

  “그 녀석은 잠시나마 내버려 둬. 이제 곧 교대 시간이니까. 춥지 않니? 차라도 한 잔 마실래?”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봄이의 뱃속에서 허기가 느껴졌다.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시기보다는 배부르게 식욕을 채우고 싶었다. 봄이는 통제소에서 도망쳐 나온 이후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차 안에서 상훈이 건넨 에너지 바 하나를 먹은 것이 전부였다. 봄이는 중년 여성에게 먹을 게 있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미소를 지으며 ‘차’를 따라 주는 중년 여성을 보니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봄이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물었다.

 

  “지금이 몇 시쯤 되었죠?”

 

  그 말을 들은 중년 여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가리고 있던 커튼을 걷어냈다.

 

  “해가 완전히 떨어진 걸 보니 꽤나 밤이 깊은 모양이야. 바깥이 내다 보이기라도 하면 대강 짐작이라도 할 수 있는데 며칠 전부터 검은 하늘에 안개가 잔뜩 끼는 바람에 요즘은 시각을 예측하기가 어려워졌어.”

 

  그렇게 말하고 나서 중년 여성도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봄이는 눈을 감기 전까지만 해도 안개 속 지평선에 어렴풋이 떠 있는 해를 보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해는커녕 빛 한 줄기도 보이지 않았다. 서리 낀 창 너머로 보이는 건 오직 검은 안개와 어둠뿐이었다. 창 밖을 내다보고 나서 봄이는 실내에 수없이 놓인 불 붙은 양초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 양초들이 없었다면 아마 이 작은 집조차도 떡 벌린 괴물의 아가리 같은 어둠 속으로 통째로 삼켜져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봄이는 자신이 상당히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창 너머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만을 보고 있자니 눈동자가 암흑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봄이는 고개를 돌려 탁자에 수없이 놓인 양초들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봄이가 한참 동안이나 일렁이는 촛불을 바라보자 중년 여성이 한마디 던졌다.

 

  “불꽃을 너무 쳐다보지는 마. 불꽃의 끝은 죽음의 세계로 이어져 있다는 소문이 있으니까.”

 

  봄이가 홱 돌아보자 중년 여성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그 모습을 본 봄이는 그녀가 자신을 놀리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한동안 촛불가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봄이는 아까 전 거실에서 본 가족사진이 그들의 사진이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중년 여성은 흔쾌히 맞다고 대답했다. 그 사진은 15년 전에 자신이 그들 형제와 함께 찍은 사진이라고 말했다. 봄이는 그 사진에 보였었던 부부 중 한 명에 대해서도 물었지만 중년 여성은 그것에 관해서는 일체 입을 열지 않았다.

 

  봄이가 이번에는 상훈에 관해서 물었다. 중년 여성은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은 것 같았다.

 

  “......15년 전까지만 해도 말 잘 듣고 귀여운 녀석이었어. 지금은 언제 저렇게 커 버렸는지 내 가슴께에 닿던 키도 어느새 훌쩍 넘어가 버렸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그냥 다 큰 어른인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직도 그저 철없는 어린애 같아. 상민이는 아직 한창 사춘기를 지날 나이인데도 찬찬히 돌아보면 녀석이랑 함께 있었던 시간도 많이 부족했던 것 같아. 예전부터 저 녀석들을 데리고 멀리 떠나서 낚시라도 해 보고 싶었는데.”

 

  봄이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녀에게는 낯선 감정들이 머릿속에서 한데 뒤섞여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봄이를 바라보며 중년 여성이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너, 가까이에서 보니까 정말 예쁘구나. 멀리서 볼 때는 그저 그런 줄 알고 은근히 깔보고 있었는데...... 지금 보니까 어렸을 적 나보다 지금 네가 더 예쁜 것 같은데. 너 주변에서 예쁘다는 소리 많이 듣지?”

 

  봄이는 그 말을 듣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녀의 말뜻을 완전히 이해하고 나서도 당황한 봄이는 중년 여성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흘겼다.

 

  “예? 아, 아뇨. 한 번도......”

 

  봄이가 부담스러워했지만 중년 여성은 뭐가 그리 좋은지 마냥 누런 이를 보이며 웃어대기만 했다.

 

  “왜, 농담 같아? 진심이야.”

 

  중년 여성은 봄이의 얼굴로 손을 뻗었다. 봄이는 약간 흠칫하기는 했지만 잠자코 있기로 했다. 추위에 빨갛게 튼 봄이의 얼굴에 거칠고 까끌까끌한 중년 여성의 손바닥이 닿았다. 그녀는 자꾸만 흘러내려 눈을 가리는 봄이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넘겨주며 ‘아이구, 어쩌면 이렇게 예쁠 수가’ 따위의 말을 해댔다.

 

  봄이는 지금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도 잘 몰랐지만, 눈 앞의 중년 여성에게 봄이는 어떠한 감정이 느껴졌다. 포근하고, 신뢰할 수 있는 엄마의 품 같은..... 그런 감정이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봄이에게는 낯선 감정이었다.

 

  중년 여성이 만족한 듯이 손을 치우고 두 팔을 이리저리 흔들며 손짓했다.

 

  “아, 그리고 말이지. 방금 전에 생각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들어볼래? 어느 하루는 우리가 말이야.......”

 

  그러나 중년 여성의 이야기는 끝을 맺지 못했다. 고요하기만 하던 검은 하늘 속에서 천둥 같은 굉음이 울려퍼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소리는 봄이에게 상당히 익숙한 굉음이었다.

 

  총소리가 울려퍼졌다.

 총소리가 울려퍼졌다.

 

  방금 전까지 미소를 띠고 있던 중년 여성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는 번개처럼 엽총을 집어들고 일어나 창가에 착 달라붙었다. 봄이도 한 발 뒤늦게 잽싸게 일어났다. 어찌나 정신없이 일어났는지 하마터면 팔로 탁자에 놓인 양초들을 쳐서 엎어버릴 뻔했다.

 

  중년 여성이 총구멍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나직이 말했다.

 

  “상훈이 깨워.”

 

  봄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누워 있는 상훈을 깨우기 위해 다가갔다. 그러나 그는 이미 눈을 뜨고 있었다.

 

  “나도 들었어.”

 

  상훈이 벌떡 일어나 재킷을 챙겨 입었다. 봄이도 조용히 권총을 꺼내고 중년 여성에게 달라붙었다. 봄이가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창문을 열려고 했지만 중년 여성이 가로막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의 한 줄기 빛은 표적이 될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상훈이 말했다.

 

  “이번이 네 번째인가?”

 

  중년 여성이 바로잡아 주었다.

 

  “아니, 다섯 번째야.”

 

  봄이에게는 그들의 대화가 예전부터 총소리가 가끔 들려왔다는 말처럼 들렸다. 봄이는 어떻게 총소리가 들릴 수 있냐고 물어보려고 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었다. 봄이가 지금 당장 오른손에 힘을 주기만 해도 낼 수 있는 소리가 아닌가.

 

  그들은 조용히 바깥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잠시 총소리가 잦아들었다가 다시 울려퍼졌다. 탕탕 하는 소리가 들렸다가 딱딱딱 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상당히 먼 곳에서부터 들려오는 것 같았다. 봄이는 순간적으로 자신이 사격했을 때가 떠올랐다. 화약이 폭발하는 소리......공기가 진동하는 소리....... 지금 창 밖에서부터 울려퍼지는 소리가 그런 소리일까?

 

  총구멍 속에 눈을 집어넣고 있던 중년 여성이 말했다.

 

  “이번에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아무리 못해도 최소 500미터는 떨어진 것 같아. 저번에는 바로 코앞에서 들렸던 적도 있었어. 그때에 비하면 새발의 피야. ”

 

  그 말을 들은 봄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중년 여성이 안도시키기는 했지만 심장이 요동치고 혓바닥이 경련을 일으켰다. 아무튼 지금 당장은 괜찮아 보였다. 마음을 추스른 봄이는 천천히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한 명이 부족하지 않나?

 

  “그런데 상민이는 어디 있죠?”

 

  봄이가 묻자 중년 여성이 아차하며 말을 비틀었다.

 

  “맞아, 그 녀석. 아까 전에 먹을 걸 구해 온다면서 밖으로 나갔어. 나간 지 적어도 한 시간은 되었을 텐데...... 찾으러 가야 해.”

 

  중년 여성이 뛰쳐나가려 하자 상훈이 그녀의 팔을 움켜잡았다. 중년 여성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뭐 하는 거야?”

 

  “안 돼. 너무 위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중년 여성이 상훈의 뺨을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그 광경을 지켜본 봄이는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입조차 다물지 못했다.

 

  “너 이 새끼야, 방금 뭐라고 했어? 다시 한 번 말해 봐.”

 

  얼음처럼 차가운 실내 공기를 타고 정적이 흘렀다. 그 와중 바깥에서는 총소리가 다시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봄이는 어쩔 줄 모르고 식은땀만 흘렸다.

 

  상훈이 침착한 어조로 덧붙였다.

 

  “녀석은 무사할 거야. 우리가 전부 다 몰려나가면 놈들의 주의만 잔뜩 끌게 되는데다 집을 지킬 사람도 없어져. 지금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밖은 온통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이야. 우린 무기도 부족하고 인원도 부족해.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는 게 좋겠어.”

 

  중년 여성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내가 씨발 널 그렇게 가르쳤었어? 네가 사람이야? 형이야?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눈 앞에서 위험에 처했을지도 모르는 가족을 두고 방금 뭐라고? 상황을 지켜보자고? 씨발 지금 장난해? 왜, 그때로는 부족했어? 또다시 잃고 싶어? 좆까는 소리 하지 마. 두 번 다시 두 눈 멀쩡히 치켜뜬 채로 당하지는 않을 거야. 난 찾으러 갈 거야.”

 

  중년 여성이 소리치자 상훈도 맞섰다.

 

  “나도 마찬가지야. 가족을 잃고 싶은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 물론 어딘가에는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아니야. 지금 나가면 우리 모두가 위험해져. 한 명을 위해 나갔다가 한 명만이 돌아오게 될 지도 몰라. 어쩌면 아무도 돌아오지 못할지도 몰라. 무슨 일이 있어도 가족을 지키라고 가르쳤잖아? 그렇기 때문에 이러는 거야. 더 이상 모두를 끌어들여서 더 큰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아. 더 이상 가족을 잃고 싶지는 않아.”

 

  중년 여성이 이를 빠득 갈며 상훈을 무섭게 쏘아보았다. 상훈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총소리는 계속 울렸다.

 

  봄이는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도저히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마치 수소로 가득 찬 풍선처럼 금방이라도 폭발해버릴 것 같았다. 봄이는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 중재하는 건 효과도 없을뿐더러 그다지 좋은 생각도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봄이는 두 사람의 의견 충돌이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이들은 모두 봄이에게 도움을 준 적이 있었다. 상훈은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던 봄이를 데려다 돌봐주었고, 중년 여성은 갈 곳 없이 떠돌아다녀야 했을지도 모르는 봄이를 따뜻하게 받아 주었다. 만약 이 두 사람이 서로 갈등을 빚는다면 봄이는 도무지 누구의 편에 서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렇기에 봄이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더욱 더 초조하게만 느껴졌다.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총소리의 간격은 더욱 더 잦아들었다. 봄이의 눈앞에 선 두 사람마저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뇌가 쪼그라들 정도로 고민하던 봄이는 한 가지를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이들에게는 동일한 목적이 있었다. 동일한 신념도 있었다. 가족을 절대로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다는 굳은 신념이었다.

 

  봄이는 드디어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드디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확신이 서기 시작했다. 봄이는 더 이상 어린애처럼 그들에게 도움만을 받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그들의 발목을 잡고 싶지 않았다. 도와주고 싶었다. 차갑게 얼어붙은 봄이의 가슴을 녹여 준 상훈에게, 다른 사람이었다면 곧바로 내쫓아 버렸을 꾀죄죄한 봄이를 당연하다는 듯이 따뜻하게 식구로 대해 준 중년 여성에게 보답을 하고 싶었다.

 

  봄이가 말했다.

 

  “상민이를 찾아서 데려오기만 하면 되는 거죠?”

 

  서로의 팔을 움켜쥐고 있던 상훈과 중년 여성의 시선이 동시에 봄이에게로 쏠렸다. 그 모습을 본 봄이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봄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일이었다. 소중한 누군가를 위해 서로를 노려보는 꼴이라니. 비록 폭력이 동반되기는 했지만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을 위해 저리도 핏줄을 세우는 꼴이라니. 봄이는 그 두 사람의 모습이 왠지 조금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봄이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두 사람은 움직이지 않았다. 어차피 이것은 봄이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봄이는 그들의 가족이 아니었으니까.

 

  “금방 다녀올게요.”

 

  차마 누군가가 말릴 새도 없이 봄이는 권총을 움켜쥐고 계단 밑으로 뛰쳐나갔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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