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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마지막 봄
작가 :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9.10.4

(정통소설/피폐)

전 세계의 질서가 무너져내린 이후 매서운 겨울이 찾아왔다.
남아있는 생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흩어졌고, 얼어붙은 세상에 남은 마지막 불씨는 꺼져버렸다.

이 버려진 도시에 홀로 남겨진 소녀는 이제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야만 한다.

 
20화
작성일 : 19-11-02 18:54     조회 : 13     추천 : 0     분량 : 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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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이봐, 장사꾼이라면 노예 거래도 하겠군? 섭섭지 않게 쳐줄 테니까 그 꼬마를 우리 쪽으로 넘기는 건 어때?”

 

  “좆까는 소리 마. 내가 왜 너희 같은 놈들한테 사고팔려야 하지? 도대체 왜 너희들한테 사람을 사고팔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봄이는 지난번 노예시장에서의 일이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발끈했다.

 

  “권리? 그런 건 주장하는 자가 가지는 거지. 권리도 힘이 있어야 주장할 수 있는 거고. 예전이나 지금이나, 가진 것이 곧 힘이야. 난 그런 힘이 있기 때문에 정당하게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거지.”

 

  “난 너희들이 사고팔 수 있는 물건이 아니야!”

 

  “약자는 강자를 위한 소모품일 뿐이야. 너 같은 녀석들 말이지.”

 

  말라깽이가 봄이를 가리켰다. 열이 뻗친 봄이는 당장이라도 부정하고 싶었지만, 어떤 생각에 가로막혀 그러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지금의 봄이도 값을 지불하고 상훈에게 팔려온 처지가 아닌가. 똑같은 상황인데도 어째서 봄이는 상훈이 자신을 ‘구해’ 준 것이고, 저들은 자신을 ‘사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봄이가 대답하지 못하자 말라깽이가 상훈에게 소리쳤다.

 

  “형씨는 어때, 꽤 괜찮은 조건 아닌가? 딱 봐도 가족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친구처럼은 더더욱 보이지 않고......... 어디서 우연히 만난 꼬마 뒷바라지하느라 힘들 텐데, 우리가 책임질 테니 이제 우리한테 넘겨. 잘 생각해 보라고.”

 

  상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봄이는 그가 부정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두려웠다. 냉정하게 생각해서 지금 자신은 상훈에게 아무런 도움도 안 되지 않는가? 봄이 자신도 한낱 상훈에게 팔려온 사이일 뿐이고, 그가 더 높은 가격으로 저들에게 봄이를 팔아버린다면........ 그 때는 봄이가 거부한다고 해도 그녀보다 더 힘이 센 상훈이 뒤에서 붙잡아버리면 그만이었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그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봄이는 점점 더 초조해졌다. 상훈이 고민에 빠졌다고 생각했는지, 말라깽이는 더욱 달콤하게 유혹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 말해. 음식, 물, 무기, 배터리, 약........ 네가 원할 만한 건 뭐든지 있다고. 아니면 혹시 담배가 필요한가? 개당 30개비씩 두 케이스 주지. 자그마치 60개비라고. 어떤가?”

 

  “아저씨, 저 새끼들이 하는 말 듣지 말아요!”

 

  봄이는 그렇게 외치면서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초조함을 감추지 못한 눈으로 상훈과 남자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놈이 제시한 60개비는 자신의 원래 가격(봄이는 이 단어를 정말 싫어했다-)보다 세 배나 높은 가격이 아닌가.

 

  끝내 상훈이 입을 열었다.

 

  “이 애는 파는 물건이 아니야.”

 

 * * *

 

  놈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말라깽이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어떻게든 흥정하려 했다.

 

  “마음에 안 드나? 그럼 한 케이스 더.......”

 

  “파는 게 아니라고 했잖아. 사람의 인격이란 걸 돈을 주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해?”

 

  그제서야 봄이는 기가 살아났지만, 상훈이 하기에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자존심이 상한 말라깽이가 소리쳤다.

 

  “개소리! 암시장 뒷골목이나, 하다못해 정부 관리구역 안에서도 5개비도 안 되는 값에 한 시간이나 다리를 벌리는 창녀들이 널렸어! 그럼 그 녀석들은 인격이란 게 없는 건가?”

 

  “자신의 가치는 스스로가 정하는 거야. 이 애가 싫다고 하잖아.”

 

  말라깽이의 이가 갈렸다.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듯했다.

 

  “둘 다 죽여버려.”

 

  말라깽이가 낮은 목소리로 명령하자 두 남자의 발이 움직였다. 끝내 협상은 결렬되고 말았다.

 

  놈들이 손에 든 빠루를 바닥에 질질 끌며 천천히 봄이를 향해 다가왔다. 심장이 터질 듯이 두근거렸다. 놈들이 한 걸음 더 다가오자 그녀는 그들을 가로지르던 숨막히는 긴장감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치마폭에서 재빠르게 권총을 뽑아들었다.

 

  “한 발자국만 더 움직이면 다 죽을 줄 알아.”

 

  봄이의 빛나는 총구를 본 그들은 발걸음을 멈췄다. 봄이는 나름 위협적인 말투로 협박하고 싶었지만 목소리를 떨고 말았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믿겨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서로 수군댔다.

 

  “이런 씨발, 총이잖아? 어떻게 저 꼬마가 총을 가지고 있지?”

 

  “멍청아, 저게 진짜 총일 것 같아? 분명히 장난감이야. 굴러다니는 장난감으로 우릴 겁주려는 거라고!”

 

  말라깽이가 그렇게 말하며 두 남자를 독려했는데도 두 남자는 좀처럼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말라깽이가 답답하다는 듯 외쳤다.

 

  “이런 병신들! 내가 속을 것 같아? 잘 봐, 장난감인지 아닌지 똑똑히 보여줄 테니까!”

 

  그가 들고 있던 빠루를 치켜들고 봄이에게로 달려들었다. 그 짧은 순간, 봄이의 머릿속에서 한 가지 질문이 스쳐 지나갔다.

 

  또 다시 후회하고 말 것인가?

 

  그러나 그 때는 이미 오른손 검지에 힘이 들어간 후였다.

 

 * * *

 

  공기를 가르는 치명적인 굉음이 울려퍼졌다. 사실 그 소리는 단 한 번 뿐이었지만 봄이에게는 몇 번이고 들려오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은 봄이의 정신적 공황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었다. 강력한 파동이 고요하던 매장 벽에 부딪혀 몇 번이고 그녀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봄이는 그 소리를 예전에도 한 번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 익숙한 굉음과 함께 풍겨오는 익숙한 향기 역시 그녀가 전에도 맡아본 적 있는 향기였다. 팔뚝이 끊어지는 듯한 진동 역시 익숙한 것이었다.

 

  봄이는 그의 몸통을 조준했지만, 총알은 허공을 갈랐다. 탄환이 튕기는 소리가 매장 벽 끝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소름끼치는 파동과 귀를 찢는 청각적 위협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을 순간적으로 주저앉게 만들었다. 동시에 그들의 머릿속 깊숙한 곳에 어마어마한 공포를 심어주었다. 지금까지 마주한 적 없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말라깽이는 귀를 막고 웅크린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다른 두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옆에 있던 상훈까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말라깽이가 손에 들고 있던 빠루를 옆으로 멀리 던져버렸다.

 

  그는 두 손바닥을 편 채로 들어 보였다.

 

  “씨발, 이건 반칙이잖아........ 그래, 내가 잘못 짚었군. 그러니까 말로 하지, 어떤가?”

 

  아까와는 완전히 다른 태도였다. 그 순간 봄이는 그가 다른 사람으로 보였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눈앞에서 마주한 인간의 말로였다. 아까처럼 맹수와 같던 눈빛은 온데간데없이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고, 식은땀을 흘리며 약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어딘가 멍청해 보이는 눈빛으로 변했다. 그의 입술도 아까와는 달리 약간 벌어져 있었다. 그야말로 덜떨어져 보이는 얼굴이 되어 있었다.

 

  두 남자 역시 무기를 멀리 던지고 손바닥을 휘젓고 있었다. 그들이 뭐라고 말하는 것이 보였지만 봄이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봄이는 그를 조준하기는 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그가 맞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왜 그랬을까?

 

  분명히 자신은 그의 심장을 정확히 조준했다. 살려둘 생각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무의식적으로 총구를 허공으로 향한 것도 아니며, 총소리를 들은 그들이 패닉에 빠져 순순히 항복하리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못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도 자신은 왜 총알이 빗나가길 기도했을까? 봄이는 마음을 굳게 먹지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아직까지는 자신이 인간이 아닌 무언가로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하지만 봄이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권총을 쥐고 있던 오른손을 내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총구에서 새어나오는 화약 연기만을 바라보고 있을 때, 말라깽이가 아까와는 전혀 다른 말투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원하는 게 뭐요? 담배? 먹을 것? 전부 드릴 테니 가져가시오. 내가 입은 옷이라도 필요하다면 그거라도 가져가시오. 그것도 아니라면 뭐가 필요해요? 지도? 나침반? 그러고 보니 길을 묻겠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말라깽이가 마치 랩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들을 쉴새없이 쏟아냈다. 그러자 그때까지 귀를 잡은 채로 상황을 보고 있던 상훈이 그가 들을 수 있게끔 말했다.

 

  “이 근처 통제소가 또 어디에 있는지 아나?”

 

  말라깽이는 그 말을 듣고는 손가락이라도 빨 것처럼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아, 물론 알지. 이 백화점을 나가서 보면 은행이 있는데, 그 쪽 사거리 방향으로 쭉 직진하다 보면 지하철역이 나올 거요. 4호선을 따라 계속 가다 보면 창동역이 나올 텐데 거기서 1호선으로 바꿔서 두 정거장 정도 가면 월계역이 나오니까, 그 쪽 1번 출구로 나가서 찾다 보면 보일 거요.”

 

  말라깽이가 굉장히 어색할 정도로 고분고분하게 딱딱 끊어서 말했다.

 

  “역이라면 지하철이 아직도 다닌다는 뜻인가?”

 

  “아니, 다른 노선이라면 몰라도 이쪽 노선은 오래 전에 멈췄소. 당연히 걸어서 가야 한다는 뜻이지.”

 

  “고맙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알지?”

 

  “내가 방금 전에 거기서 왔었으니까.”

 

  “그런데 왜 나왔지? 영 살기 불편했던 건가?”

 

  “그 쪽이랑 마찰이 조금 있었소. 말하자면 길어요.”

 

  봄이는 아직도 엎드린 채로 쩔쩔매고 있는 놈들을 쳐다보았다. 이제 놈들의 전의(戰意)는 바스라져 버렸고, 놈들은 더 이상 봄이에게 달려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봄이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것은 즉 이제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였다.

 

  긴장감이 사라진 머릿속 빈자리에는 희롱당했다는 수치심이 대신 채워졌다. 봄이는 일부러 발소리를 신경질적으로 울리며 놈들에게로 다가갔다. 놈들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아저씨, 이 새끼들 가진 거 싹 다 내놓으라고 하자구요!”

 

  상훈이 그 말을 듣고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물 한 통만 주겠나?”

 

  그러자 말라깽이가 물 한 통을 더듬더듬 가방에서 꺼내 그들에게로 굴렸다.

 

  “아저씨!”

 

  “미안한데, 얘 것도 하나 줬으면 좋겠군. 자기 걸 안 줘서 화났나 봐.”

 

  이번에는 옆에 있던 중년 남자가 물통을 굴렸다. 상훈은 물통 두 개를 받아들고 그들에게서 몸을 돌려 뒤로 걸어갔다. 봄이가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말했다.

 

  “왜 저놈들 물건을 빼앗지 않는 거예요? 저놈들은 날 업신여기고, 우습게 보고, 우릴 죽이려고까지 했다구요! 저런 나쁜 놈들은........”

 

  “저 녀석들도 가야 할 길을 찾는 것 뿐이야.”

 

  상훈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등을 돌렸다. 투덜대던 봄이가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라 돌아가려고 하는데, 뒤에서 뜬금없이 말라깽이를 제외한 남자들의 간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희도 데려가 주시면 안 됩니까? 저희는 가진 것도 많고, 이곳 지리에 대해서도 잘 알아요.”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데까진 최대한 도와 드릴게요. 부탁합니다.”

 

  봄이는 그들에게 몸을 돌려 말라깽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저리 꺼져요, 이 겁쟁이들아!”

 

  그러자 남자들은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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